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85)
가짜 용사 이야기-285화(285/310)
시즌 3 : 93화
청성 미른가디아는 핏빛 성당으로 향했다.
분화구, 즉 지하는 광대했다.
그 광대한 옛 도시 <라리엔>의 모래밭 위에, 핏빛 광휘를 뿜는 성당 하나가 고독하게 서 있었다.
– 여기는 카듀엘, 히스기비드 해방 대기 중! 신호를 주시면 길을 열어 드리겠습니다!
이는 과거의 환영…….
이 땅에 새겨진 순교의 역사가 잔상으로 남아 있었고, 미른가디아는 그걸 볼 수 있었다.
네이갈라스 토벌전.
– 여기는 슈리간. 알카이오스가 현재 네이갈라스의 움직임을 봉인하는 중이야. 테르벨은 여명뢰의 기도문을 거의 다 읊어가.
– 슈리간의 결계가 얼마 더 버티지 못해. 서둘러줘!
– 알겠습니다, 졔안니르 성하.
– 카듀엘, 핵(核)으로 향하는 위치를 마킹해 두었다. 날려버려!
– 네, 대장.
진성검 히스기비드가 차원을 뒤틀고 또 왜곡시키며 날아가 네이갈라스의 흉부에 거대한 구멍을 뚫어내는 환상이 보인다.
– 아직 한 발 더 사용 가능! 명령 대기 중입니다!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저 정도의 공격조차도 같잖단 듯이 초고속으로 육신을 수복시키는 네이갈라스, 그때 창천의 태양 테르벨의 손에서 빛줄기가 낙뢰로 결집되었다.
– 1초다. 엘디아 알마(01), 베테(02), 1초만 목표를 고정시켜라. 내가 끝장낸다.
누군가를 사지로 내모는 대신 스스로 사지로 나아가던 <온 것들>과 엘디아들로부터 용현의 모습을 겹쳐본 청성 미른가디아는 슬픈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
지금 나는 당신의 발자취를 제대로 따라가고 있는 건가요. 누군가에게 죽음을 계속 명하기만 해야 하는데.
‘평생을, 당신을 닮아가려 했건만…….’
옛 전쟁의 환영은 거기까지였다.
청성이 과거의 환영을 엿볼 때 위장 상태로 뒤를 노리는 네이갈라스의 군대가 있었다. 렙틸리언이다.
그것들을 청성은 손가락만 까닥여 몰살시켜 버렸다.
‘이제 렙틸리언까지 깨어났나.’
서둘러야겠군.
[자카드린 : 여기는 맹진, 적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중!] [메이트 : 병단 전원 공중 포격 개시!] [키시엔 : 스승님, 시가지 좌측 구획 돌파 당하는 중입니다!] [메이트 : 그쪽까지는 엄호 못 해! 아인 포병대, 여기는 비격! 오우거 및 트롤 대거 출현, 저지 불가능! 반복한다, 저지 불가능! 좌표 7-4-1-1-2! 포격 지원 바란다!]이미 청성이 있는 분화구 내부에서는 지각 균열이 시작되었다.
<슈리가나큐스> 시가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용암이 <라리엔> 전역을 바다처럼 뒤덮어가고 있었다.
그 흐름을 조금이나마 억누르고 있는 건 슈리간의 결계였는데, 미른가디아를 수룡 예리세리카로 인식한 결계가 양쪽으로 열렸다.
[할바론 : 좌표를 확인했다. 스팀코어 예열 중, 소이탄 포격 개시! 포격 도달까지 25초. 선견 병단 전 인원, 위험 지역 인접, 위험 지역 인접, 포격에 대비하라!] [자카드린 : 하하하하하핫! 이런 미친! 오우거들이 아주 그냥 박살이 나잖아! 이렇게나 좋은 걸 아인들만 써왔다니! 내 마음까지도 불타오르는구만!] [제로니 : 떠들 시간 없어! 이 멍청아! 빨리 이쪽으로 와! 또 고립되기 전에 빨리, 빨리!]핏빛 성당으로 통하는 미래적 회랑은 슈리간의 빛의 인도를 따라서만 지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바닥에서도 균열이 포착되고, 균열을 통해 용암이 간헐천처럼 끓어올랐는데, 문득 저 앞의 지반이 붕괴하였다.
[니븐 : 여기는 필중, 아인 포병대에게 포탄을 보급받았기에 비격 병단과 작전 편제를 교체합니다. 상공을 선회하며 퇴로를 엄호하겠습니다, 이상!]그것은 악(惡)의 현신.
용암이 응고된 형태이거나 또는 화산이 움직이는 형상…….
마우나 로아, 즉 두 기의 데몬이 팔을 내밀고는 그 악의 형상을 지각 위로 솟구쳐 올린 것이다.
‘봉인의 끝이 가깝다. 마우나 로아들이 빠른 속도로 증식하는군.’
청성이 눈을 가늘게 떴다.
「수신(修身)을 정돈하여 체통을 지켜라. 이곳은 신성한 땅이니.」
고위 마우나 로아들이 그 주둥이로 용암을 쏟아내려던 순간, 미른가디아가 손을 내뻗었다.
이것은 파도……?
아니, 해일인 것인가……?
이곳에서는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하지 않았던 극량의 물이 불현듯 솟아나 데몬들을 덮치더니 그 상태로 얼어붙었다.
[니븐 : 에쉬르! 3층 지붕에 누위긴 놈들이 대공망을 설치하고 있어! 네가 처리해!]주여소계대반(主濾小計袋反).
대마법사 린과 화룡의 무녀 프리데가 협력하여 만든 불사의 술식을 즉발 제압기로 개량시킨 것.
필멸의 존재가 사용하는 것과, 신룡의 여의주를 품은 존재가 사용하는 것에는 범접 불가능한 힘의 차이가 존재한다.
[플로렛 : 피난민 절반 이상을 열차로 내보냈다! 선배님들께서도 어서 철도역 쪽으로 오세요!]청성이 내민 손을 그러쥐었다.
그러자 그 얼음덩어리 표면을 내달리던 실금들이 빛의 뿌리로 일변, 얼음 내부로 짓쳐들어 데몬의 육신을 꿰뚫었다.
빛에 관통된 육신이 잿더미로 바스러지며 정화되어 간다. 청성은 그걸 스쳐 지나갈 뿐, 딱히 결과를 확인하지도 않았다.
[니븐 : 저건, 이런 젠장! 고위험 개체 출현! 반복합니다, 고위험 심연 개체 출현! 누위긴 클랜 족장이 분명합니다! 용암 전차를 앞세워 고속으로 접근 중!]청성은 마침내 성당 중추로 들어섰다.
<온 것들>의 방위 기능들은 청성을 적으로 인식하지 않았고, 오히려 제어실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제어실에는 광학 기술로 반투명하게 출력된 지구본이 회전하고 있었다. 청성은 그 위에 손을 얹었다.
[자카드린 : 드디어 내 불꽃을 바칠 상대가 나타났군! 제로니 선배, 저놈은 내가 맡겠습니다! 여기서 빠져나가십시오! 제 제자 보윈을 부탁합니다!]수룡 예리세리카의 여의주가 접속 코드였다. 청성은 제어실 제어 권한을 성공적으로 인수해냈다.
<온 것들>의 기술력으로 구현된 빛의 상이 무수히 열렸다.
현재 <슈리가나큐스>의 전체적인 상황이, 요컨대 절망이 그 상들 위로 투영되었다.
[제로니 : 너, 너 이 멍청아…… 지금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자카드린 : 불은 얼마나 오래 타올랐냐가 아니라 얼마나 강렬하게 타올랐냐에 따라서 사람들의 마음에 기억되는 법! 하하하하하하! 즐겁습니다!] [보윈 : 스승님, 싫어요! 같이 싸우다 같이 빠져나가요! 청성 각하가 계시니, 같이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제로니 : 그래, 나도 네 제자 데리러 갈 여유가 없어! 있어도 안 데려가! 네가 꼭 살아서, 제자랑 같이 와! 알겠어? 안 그러면 죽여버린다!]창세의 언어를 일곱 살에 모두 꿰찬 미른가디아는 제어실에 명령어를 빠르게 입력했다.
Ru butex AL 77 – 1 OX.
이 명령어는 통제 불가능한 ‘봉인 붕괴 상황’의 대응 명령으로, 네이갈라스의 결계를 유지하던 동력을 도시의 모든 방위 수단의 동력으로 전환시키는 것이었다.
[에쉬르 : 아니, 뭐지? 고대의 광자포 포탑들이 가동되었어요! 적들이 쓸려나가고 있습니다!] [모즈나 : 해내셨군요, 각하! 믿고 있었습니다!] [제로니 : 아니, 근데 이상해! 마족들도 더 강해졌어! 땅 밑에서 온몸이 떨릴 정도의 심연 반응, 설마 정말 왕의 봉인을 깨버리신 건가?]성당 제어실 지면을 이루던 것은 물질이 아니라 결계였다.
결계의 동력이 방위 체계로 이전되면서, 바닥이 분자 단위로 흩어지더니 새로운 형태로 재정립되어 갔다.
그래, 봉인의 심장부로 향하는 길이 열린다…… 바닥이 핏빛 안개로 흩어지는 틈새 저 너머로 보인다.
‘곧장 눈을 떴나.’
패(悖)?
패악(悖惡)?
악(惡)?
‘바라던 바다.’
용암처럼 작열하고 끓어오르는 눈자위의 중심부에, 그 모든 것을 고혹하고 뒤틀며 삼키는 패악의 핵…… 네이갈라스의 눈동자였다.
「호, 호, 호, 내 친히 보니 참으로 예쁜 아이로구나. 내 잠을 깨워주다니 기특하기도 하지.」
아직 육신을 재구축할 수 없기에 네이갈라스는 용암을 이용해 옛 악몽의 형상을 갖추었다.
그러나 정신체는 예외였다.
모든 신(神)들은 이 세상의 미적감각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을 갖는다. 그 어떤 존재보다도 아름다운 외형을 갖는 것이다.
「네 모습은 감히 절대의 형상을 본떠 불경스럽기 짝이 없으나, 그럼에도 아리따우니 내 축복을 받기 마땅해 뵈는구나.」
네이갈라스의 정신체는 용인의 형상과 닮았다.
카렌덴이 요토스 욜레 요티아토스의 전투력을 모방해 용족을 창조하였으므로, 용인이 네이갈라스를 닮았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용린과도 같은 갑주가 여성적이며 고혹적인 외모를 왕의 위엄으로 승화시키고, 용암을 머금은 꼬리가 온 세상의 생명을 미혹하여 삼키려는 듯 미려하게 움직인다.
– 미르, 미르미르!
용암이 흐르는 듯한 붉은 머릿결부터 눈동자까지…….
언뜻, 연상시킨다.
홍염의 아키레아를.
그러나, 외형은 닮았어도 그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호쾌하고도 따스한 미소가 아니라 사특하고 섬뜩한 미소였다.
「나에게 오너라. 느흐흐흐흐, 내 너를 내 취향에 맞는 형상으로 더 정결하게 바꾸고 큰 축복을 내려줄 테니.」
그 절대적 패악 앞으로 뛰어내리며, 청성은 양손을 기도하듯 맞잡았다. 이는 술식의 위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기 위한 기도의 자세.
그 간절한 기도가, 빛을 부른다.
기원전의 시대, 카렌덴이 암흑을 불태울 때 사용하던 빛과 또 용현 레인 루드윅이 ‘은의 시대’를 밝힐 때 부렸던 빛을.
「제1심계, 창명식 : 유량세존(彰明式 : 流量世尊).」
기회는 위기의 뒷면, <슈리가나큐스> 후퇴 작전 (2)
[할바론 : 포탄 잔량 없음. 반복한다, 포탄 잔량 모두 소진. 이동포 부대는 먼저 철수를 개시하겠다. 여기서 머뭇거리다가는 철수 작전에 지장을 주게 될 테니.]불멸자들이 영겁의 전투를 벌이는 동안, 필멸자들도 영겁처럼 느껴지는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에쉬르 : 감사합니다, 제독님.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격전의 현장은 도원수 크라우잔이 설정한 승강장 방어선이었다. 생존자 전원을 도시에서 데리고 빠져나가기 위한 싸움인 것이다.
[알리도나 : 전방 포탑 적습에 의해 무력화 직전! 저걸 막아낸다면 포탑의 도움을 더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니븐 : 우리가 공중에서 해결할게! 플로렛 선배님, 저희 빈자리를 메워주세요!] [플로렛 : 알았다! 에쉬르, 네가 11시 쪽을 맡아!]네이갈라스가 받은 심연의 형상은 부정형(不定形), 즉 용암과 모래다.
고속으로 용암을 분출시켜 섭리라는 개념을 녹이거나, 모래 폭풍을 확산시켜 대자연의 질서를 어그러뜨려 계절을 ‘여름’으로 고정시킨다.
예전에, 한 세계를 제물로 바치고 진왕(辰王)이 되기 전에 그녀는 유망한 술사였다고 했다.
[니븐 : 좋아, 해결 완료! 포탑 정상 작동 중! 방어전이 한결 수월해질 거야!]<슈리가나큐스>의 지반, 즉 <라리엔>의 천장이 그 초월의 모래 폭풍에 비현실적인 속도로 풍화되어 간다.
심연의 근본이란 시공간 제어.
여기에서 네이갈라스의 용암은 공간을 범하는 것이고, 모래는 시간을 범하는 것이었다.
[모즈나 : 잘하셨습니다! 1824번 열차가 방금 막 발차했으며 1825~1828번 열차는 피난민을 한계 직전까지 수용하고 발차 대기 중입니다! 나머지 피난민을 다 태우려면 20분이 더 필요합니다!]끼긱…….
끼긱…… 끼긱…….
끼긱끼긱끼긱끼긱끼긱끼긱끼긱끼긱끼긱끼긱끼긱…….
[메이트 : 알았어! 승강장 확실히 지켜! 방어선을 뚫고 거기로 향하는 놈들은 계속 있으니까!]주인의 부름에, 힘이 봉인되어 휴화산이 되었던 산맥이 일제히 답한다. 고막이 터질 것 같은 굉음들이 켈티무스 화산 지대에서 연달아 터진다.
[멜레느 : 안 좋은 소식…… 현재 모든 분화구에서 이상 현상이 감지됨……. 화산 폭발의 전조……. 델프레드와 <바네시스> 쪽의 폭발은 어떻게 억누르는 중…….] [플로렛 : <슈리가나큐스>의 지반도 붕괴하는 것 같은데? 모즈나, 피난 절차 서둘러! 20분도 길어! 15분 안에 끝내!] [니븐 : 이런 망할, 지반에 균열이 가고 용암이 새어나오고 있습니다. 시가지 전체가 붉은 용암에 파묻혀가기 시작했어요!]용암의 진원, 네이갈라스가 발한 세 개의 폭풍이 일차적으로 청성을 덮쳤다.
1차 폭풍은 <라리엔> 전역을 용암의 수평선으로 뒤바꿨다.
용암은 격렬하게 날뛰며 <슈리가나큐스> 지반을 용화시키고 저 먼 천공까지 솟구쳐 올랐다.
[제로니 : 자카드린! 응답해! 지반이 붕괴하고 있어! 어떻게 됐어! 빠져나오고 있냐?] [자카드린 : 걱정 마십시오! 못 나가겠지만, 이놈의 머리통을 분쇄해 버려서 그쪽으로 못 가게 막겠습니다!] [제로니 : 이 멍청아, 우회해서라도 오란 말이야!]2차 폭풍은 청성을 덮쳤다. 광범위한 대재앙을 의도했던 1차 폭풍과 달리 오직 청성의 멸살에 초점을 둔 일격.
모래 입자가 용암의 성질을 띠면서 방대한 폭염의 소용돌이로 돌변했다. 발화점이 755도 미만이라면 이 대기조차 불사르는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여기 노출된 핏빛 성당은 무참히 액화되어 걸쭉하게 흘러내리다가, 끝내 용암 속으로 삼켜졌다.
[크라우잔 : 안 된다, 제로니! 너무 늦었다. 자네가 거기서 이탈하면 방어선 전체가 붕괴한다.] [니븐 : 용암이 철도역 쪽으로도 오고 있습니다! 저게 철도를 삼키면 끝장입니다!] [제로니 : 자카드린을 죽게 놔두라고요? 이대로?]3차 폭풍은 네이갈라스가 직접 휘두르며 다가왔다.
그 어떤 용암보다도 사납게 끓어오르는 꼬리가 청성의 결계를 정확하게 뜯어내고 녹여낸다.
술법의 위력이란 술사와 술법 간의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강해진다. 원격 통제를 할 필요가 없고 위력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인데, 이 원리는 빛이나 심연이나 다를 바가 없다.
[제로니 : 썅, 썅, 썅, 썅, 이런 썅!!! 그래요, 알겠습니다. 야 이 멍청한 년아! 기왕 죽을 거면 그 불꽃인지 뭔지 제대로 태워버리고 가라! 내가, 내가 그걸 죽을 때까지 기억할 테니까…….]네이갈라스가 다가오며 결계가 점차 깨어져 나가자, 대기를 구성하는 공기의 분자까지도 녹이는 폐열이 청성의 숨통을 압박해왔다.
[모즈나 : 여기는 철성, 철도역에 병력이 더 필요합니다! 피난 지휘를 할 병력조차 없어요!]호수 위로 퍼지는 파문.
창명식의 결계가 저 용암의 쇄도를 필사적으로 막아낸다.
[크라우잔 : 에쉬르, 혈마 병단을 지휘하여 철도역으로 가도록!]코와 입으로 과부하의 혈액이 쏟아질 때, 청성의 마음속에서 어떤 무언가가 이렇게 속삭였다.
기뻐해야지…….
평생 아버지처럼 되길 원했잖아. 지금 똑같은 자리에 서게 됐잖아. 대신 저것들을 모두 사지로 내몰게 됐지만.
[에쉬르 : 해당 구획 전투가 거의 다 끝나갑니다! 곧 우회해서 이동할게요!]평생을…….
한평생을…….
그분처럼 되길 원했다. 하지만 그건 그 위업이나 명성을 그대로 답습하겠단 소리가 아니었다.
[모즈나 : 마지막 피난민을 열차에 수용했어요! 이제 우리들이 나갈 차례니까 빨리들 오세요!]알고 싶었다.
단지, 알고 싶었다.
그분의 마음을, 그분께서 품으셨던 마음을…… 자신의 성장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그걸 진실로 알고 싶었기에 평생 그 뒷모습을 닮아가려 노력해온 것뿐.
[타르스 : 렙틸리언이다! 위장 상태로 다가온다! 모두 주의해! 이런 젠장, 이러면 버틸 수가 없는데!]그 사랑…….
모든 것을 주신 사랑…….
그 사랑을 값없이 주셨고, 또 가르쳐주신 분…… 그 이름 레인 루드윅.
[로베리스 : 제가, 식별 마법을 쓸게요……!]이제 한 발, 단 한 발자국 남았다.
여기까지 버텨야 하는데…….
이제, 영육이 심연(深淵)에 노출되었다. 용암이 육신의 껍질을 녹이고, 그 틈새로 스며든 모래가 영혼 깊숙이 파고든다.
「흐, 흐, 흐, 가까이에서 보니 더욱 탐스럽구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아름다운 얼굴의 살가죽도 녹아내리고, 무릎의 뼈가 모래의 흐느낌 속에서 바스러져 간다.
더는, 그 어떤 육신의 재생도 이루어낼 수가 없다. 이대로 눈을 감는다면 편해질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그것은, 아버지가 걸어가신 길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 저걸 봐, 미르.
추억 저편…….
이제는 너무 멀어서 닿지 못하는 어느 봄날의 기억이…….
불현듯 수채화의 물감이 번지듯 뇌리로 펼쳐진다.
– 이게 여명이야.
여명의 사전적 정의는 지극히 단순했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용 시절의 청성은 모든 지식을 책으로만 익혀왔다. 그것이 가장 효율적이라 판단했으므로.
그런데, 그때 처음 본 여명의 그 단순하고도 명료한 빛은 감히 사전의 설명으로는 형언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 책에는 여명에 대해서 뭐라고 나와 있어?
– 날이…… 밝을 때의 희미한 빛…….
– 그런데 실제로 보니 어때?
– 눈부심, 따뜻함……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아름다움…….
그 대자연의 경이…….
창조의 섭리에…….
그 거대하고도 깊고 또 맑게 세상을 극채색으로 물들이는 위엄을 설명할 어휘를 찾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 미르.
그러나, 그 첫 여명을 목도한 순간을 떠올릴 때면, 더 눈부시게 기억나는 것은 바로 당신의 미소.
머리에 와 닿던 손길의 온기.
새롭게 부풀어 오르던 봄의 향기보다도 더 따스하게 몸과 마음과 영혼 속에 스미는, 그 목소리.
– 이 아름다운 세계에서 넌 무엇을 이루고 싶으냐.
이루고 싶은 것…….
아버지, 제가 받은 소명은…….
지금 여기에서, 포기해 쓰러지면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