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90)
가짜 용사 이야기-290화(290/310)
시즌 3 : 98화
청성의 작전은 항상 승부의 과정을 외줄타기에 가까운 도박으로 설계했다.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도박이건만, 주고 물러나야 할 때의 손해는 최소한으로 줄였고 취해야 하는 이득은 최대한으로 증폭시켜온 것이 청성의 지성(知性)이었다.
그러나…….
엘디아 뮤(04) 봉인 작전에 비하면, 지금까지 청성이 고안해왔던 작전들은 도박 수준에도 끼지 못할 것이리라.
「요란, 앞으로 나오라.」
요정 왕국의 제1왕녀, 요란 엘 바텐베르크가 인류 역사에 등장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사미글 여러분. 공허의 사도 요란입니다.”
후세에, 공허의 사도가 되어 용사 리암과 대영웅 샤릴리온과 함께 절대 심연에 맞선 그 리드워즈의 본명이다.
처음에, 카밀라는 요란이 왕녀라는 말을 믿지 못했다.
왕자처럼 입고 왕자처럼 무장하고 왕자처럼 머리카락을 치지 않았는가.
– 아름다운 사미글 아가씨.
샤론에게 이딴 식으로 수작질을 벌이기도 했다.
여하튼 그때 만난 리드워즈는 공허의 사도라기보다는 아직 귀가 다른 요정들만큼 길쭉해지지도 못한 열한 살 소녀에 불과했던 것이다.
리드워즈의 내력을 읊자면 발브레이의 제자로서 기적을 배워 나갔는데, 열 살까지 어떤 기적도 사용하지 못했다고 한다.
요정 왕가에서 이건 빛에게 버림받았다는 증거로 여겨져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러던 절망의 순간, 공허의 사도로 선택받게 되면서 전쟁사의 중역으로 성장하게 된다.
“아직 공허의 힘을 완전히 다루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공허의 심층으로 직결되는 차원 회랑은 열어드릴 수 있습니다.”
“공허의 심층……?”
“거기라면, 공허의 사도 아르젠이 시간의 군주를 봉인한……?”
“네, 청성 각하께서는 안리달의 봉인구를 엘디아 뮤(04) 봉인 작전에 사용하실 생각이십니다.”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간의 군주, 안리달.
16세기 사변에서 공허의 사도 아르젠과 홍염의 아키레아가 겨우 봉인해낸 <잊혀진 왕들>.
그 대가는 결코 작지 않았다.
지금 청성과 마찬가지로, 아니 그보다 더 큰 중상으로, 홍염의 아키레아는 100년째 역사의 중심에서 물러나 있는 상황이었다.
홍염의 아키레아가 건재했더라면 ‘검은 여름’은 오지 않았을 것이란 말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였다.
「안리달의 봉인구는 이중 구조다. 먼저…… 홍염의 화염이 그 핵(核)을 꿰뚫은 상태로 첫 번째 막을 이루고…… 그 위를 공허의 힘이 두르고 있는 구조지.」
“……!”
「공허의 막만을 걷어낸 뒤…… 뤼카엘을 무력화시켜 화염과 공허 사이에 집어넣어야 한다. 직후 공허의 막을 재생시킨다…….」
모두가 스스로의 입이 벌어졌단 것을 깨닫지도 못한 채 식은땀의 한기만을 느꼈다.
한 끗 차이의 외줄타기 승부.
무엇 하나 잘못되었다가는 뤼카엘을 저지하지 못한 것에서 멈추지 않고, 안리달마저 세상에 풀어놓게 될 것이다.
「이 작전을 위해서는…… 봉인구의 운반자가 필요하다.」
“백부님, 제가 하겠어요.”
「너에게는 다른 임무가 있다. 그리고 운반자를 결정하는 것은 너도 아니며, 나 또한 아니다. 이 모두 공허의 주인께서 결정하실 일이니…….」
공허의 사도, 요란의 손가락 끝에서 벌레들이 꼬물거리며 기어 나왔다.
샤론이 탄성을 흘릴 정도였다.
언뜻 꿀벌처럼 생겼는데, 여섯 개의 눈이 달린 암녹색의 사역마들로 공허의 사도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들이었다.
부우우우우웅…….
공허충들이 일제히 날았다.
요정왕 사오로를 지나, 필두 페이쿼리어 메이트도 지나쳐, 그 모든 중역을 무시하고 날아간 공허충들이 내려앉은 머리의 주인은…… 모두의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은 한 소녀였다.
카밀라 플라워.
“백부님, 카미는 아직 그럴 만한 실력이……!”
모두가 당혹스럽게 카밀라를 바라보던 그때, 라미네아가 목소리를 냈다.
이미 그 머릿속에는, 그때 만난 뤼카엘의 압도적인 무위가 벼랑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카밀라는 강하다, 강해졌다, 그러나 뤼카엘과 비교한다면…… 그 참격 한 번이면 저 모든 영육이 찢어져 흔적조차 없어지리라.
“백부님, 이 임무는 제가 할게요. 제가 하게 해주세요.”
카밀라 또한, 수백 가지의 망상 속에서 자신이 뤼카엘에게 찢어져 죽는 결과를 목도했다.
그러나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손바닥의 식은땀을 옷섶에 닦으며 성대를 울려 그렇게 목소리를 냈다.
「봉인구의 운반은……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다. 뤼카엘의 지척까지 접근해야만 하는 일이거늘, 두렵지 않느냐……?」
스승님께서 첫 전투의 날에 말씀하신 것이 뇌리를 스친다.
“두렵고 무서워요. 두렵지만, 두렵다고 말 안 할래요.”
모두 무서워.
모두 두려워.
“무섭다고 도망가지 않을래요.”
하지만 그 공포를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거야. 이겨내는 뒷모습을 모두에게 보여주는 거야. 우리들은 용사(勇士)니까.
“그게 제가 지금까지 보고 배운, 용사(勇士)니까요.”
떨림이 멈추지 않는 손을 심장 위에 얹으며 말한다.
그것은, 소녀의 고백.
그날, 삼족을 막론하고 모든 영웅들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게 만든 것은 바로 그 고백이었다.
“또 제가 여기서 맡겨진 일을 하지 않고 도망가겠다고 해버리면, 절 살리고 죽으신 분들을 볼 면목이 없잖아요…….”
라미네아의 눈이 물기로 젖어들었다. 플로렛이 그 어깨에 손을 얹고 등을 토닥였다. 샤론이 카밀라 앞으로 나서며 손을 들었다.
「발언을 허한다.」
본래라면 제자의 발언은 금지되는 장소였으나 청성은 허락해 주었다.
“각하, 카밀라는 아시다시피 용맹하기만 하지 머리에 든 게 없어 엘디아의 빈틈을 노리는 데는 부족함이 많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느냐?」
“제가 카밀라를 돕는 걸 허락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나보다는 둘이 낫다, 만고의 진리잖아요?”
내가 보고 배운 용사(勇士), ‘검은 여름’의 종막 (3)
라노아 대교가 놓인 해협은 인계(人界)와 마계(魔界)의 경계선으로 보였다.
네이갈라스의 두 권능 중 하나, 모래바람은 대상을 침식해 순식간에 풍화시켜 버린다.
요컨대 대교 남쪽의 모든 것들은 모두 메말라 비틀어져 문명의 형체를 갖추고 있는 것이 없었다.
“Ro she tas…….”
하이 쿤 타르크 2위, 키랄.
그들 중 최고 여섯 전사로 구성된 키란즈키 가가.
그 필두로서 늑대 기병대를 이끄는 ‘모래의 포효’ 렌쿠지가 사구 위로 올라 블라쉬우르프의 고삐를 당겼다.
렌쿠지는 라노아 대교 너머를 유심히 지켜보다가, 허리춤에서 나팔을 꺼내 힘차게 불었다.
스르르르르르르륵…….
그 나팔은 기괴하게도 소리가 아니라 모래바람을 일으켰는데, 이 또한 평범한 바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힘의 메아리.
도마뱀 군주, 네이갈라스의 전언을 그 하수인들에게 전하는 힘의 폭풍이었다.
[사냥감 포착.]모래바람이 전장 저 뒤쪽으로, 수평선 전체에 먼지를 일으키며 내달려오는 네이갈라스의 하수인들에게 퍼졌다.
[여긴 시타이린.]네크론 최고 신관 팔크-샤 바로 아래의 술사, 불사의 시타이린이 응답했다.
[전 원시 부대, 진군 개시.]화산재와 모래가 뒤엉켜 만들어낸 지대를 발소리 한 번에 뒤흔들어 모래가 흘러내리게 만들던 존재.
최강의 10개 트롤 부족, 십석두.
사석계(沙石界)의 오우칸 ‘해골 분쇄자’가 답했다.
[크락본, 출발함.]같은 십석두, 용석계(鎔石界)의 오우칸 또한 휘하 오우거와 트롤들을 선도하던 속도를 높였다.
[파괴자 스베이테, 가는 중.]화산재 흩날리는 상공 위에서 고대의 마물, 투아키의 비명과 날갯짓이 지천을 뒤흔든다.
하이 쿤 타르크 제5위.
칼트쿼린 클랜의 수장, ‘사막의 박쥐’ 오긴.
[오긴이 먼저 간다.]타락의 피로 조작하는 노예, 혈노들이 멘 가마 위에서 누구보다 오만한 자세로 누운 존재도 있었다.
혈족 오대성가(五大星家).
츠이데넨 가문의 가주, 리케바.
오대성가 중에 네이갈라스의 직속 명령을 받는 두 대가문 중 하나(나머지 세 가문은 안리달을 섬긴다).
[나 리케바가 말하니, 피의 군대 또한 행진 중이다.]그리고, 저 모든 군세를 합한 것보다도 배는 더 많은…… 수평선 전체를 뒤흔들며 행군하는 일족이 있었다.
하이 쿤 타르크 제2위.
키랄 클랜의 수장, ‘황야의 여우’ 즈칸.
[키랄 본대 출격! 네이갈라스 폐하께 무한한 영광을!]그리고 그 모든 마(魔)의 물결 한복판에서, ‘그것’이 악몽을 토해내며 전진한다…….
아직 심연에 침식되지 않은 것들의 생멸(生滅)의 경계를 뒤틀며, 모든 것을 왕 앞에 무릎 꿇게 만드는 ‘그것’은 왕의 메아리.
왕들의 화신, 마우나 로아.
“화신급 데몬 출현! 마족 대군세를 이끌고 라노아 대교로 접근 중입니다! 그 숫자, 추정컨대 300만에서 400만!”
그렇게, 마족 1진이 라노아 대교의 지척까지 접근했다는 소식은 봉화와 뇌향심공명진을 통해 통합 사령부에도 전해졌다.
1진의 핵심은 하이 쿤 타르크 제2위(현 잠정 1위), 키랄이었다. 모든 우루크 부족 중 최대의 규모를 자랑해, 당시 부족의 전사 숫자만 단독으로 100만을 넘길 정도다.
선견대…… 블라쉬우르프를 운용하는 늑대 기병대가, 사냥감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쉬지 않고 달려온 것이 분명했다.
「대교 방어 병력은 순차적으로 기관차에 올라 라노아 대교로 향해 군진을 갖추라…….」
잔존 병력이 분주하게 움직이던 그때, 카밀라는 요란이 열어낼 공허의 회랑을 통해 심층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카미!”
그 화급한 와중에 라미네아가 카밀라를 불렀다.
말하고 싶은 게 산더미지만, 해주고 싶은 게 바다보다도 넓지만,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라미네아의 오른손이 카밀라의 심장을 짚었다. 그 손끝을 타고, 전신의 혈관이 아찔하게 떨릴 정도로 방대한…… 마력이 흘러들어 왔다.
“스승님, 이건……?”
“나한테는 어차피 아라다만텔이 있으니 괜찮아. 엘디아를 상대하려면 이 정도 마력은 있어야지.”
“그치만, 그치만 이렇게 많은 양을 받을 수는…… 스승님께서도 화신급을 상대해야 하잖아요!”
“괜찮아. 카미가 준 이 선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괜찮지 않아요! 다시 가져─”
“─대신 두 개만 약속해줄래? 하나는 카미가 나중에 나보다도 더 멋진 용사가 된 후에, 이 마음과 마력을 제자에게 똑같이 주겠다고. 그리고 또 하나는…….”
스승으로서, 멋있고, 아름답게, 마지막으로 든든한 미소를 지어주고 싶었는데, 지어줬어야 했는데.
미소가 되었어야 할 주름은…….
서서히 일그러지며 울음의 모양새로 변했다. 제자를 끌어안고 이마를 맞댄 라미네아의 온몸이 고요히 흔들렸다.
“죽지 마, 카미, 죽으면 안 돼, 절대 죽으면 안 돼…….”
카밀라 또한 공포와 용기로 억누르고 있던 울음이 더 이상 억눌러지지 않고 터져 나왔다. 그 눈에서 뜨거운 물줄기가 흘러나왔다.
“스승님도 죽지 마세요, 절대 죽지 마세요, 그래서, 그래서, 꼭…… 다시 만나요.”
그때, 가까운 곳에서 차원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공간의 바람이 피부에 와 닿아 온몸에 소름이 일었다.
공허의 회랑이 열린 것이다.
반쯤 동시에 승강장 쪽에서는 증기기관차가 사납게 기적을 토해내는 소리가 울렸다.
“회랑이 닫히기 전에 이동해야 합니다. 사미글 운반자 아가씨. 제가 에스코트해 드릴 테니 겁먹지 마시고, 이리로 오십시오.”
요란과 델프레드의 목소리가 양쪽에서 반쯤 동시에 들렸다.
“라미네아! 발차 준비가 끝났고 토벌대에 배속된 수인 병단을 제외하고 홍련 병단 전원 탑승했어! 빨리 와!”
더 안아주고 싶은데, 더 그 목소리를 듣고 싶은데, 그래서는 안 된단 걸 아는 의식이 몸의 움직임을 통제한다.
그래도…….
그래도…….
이성을 따르지 못하는 몸은 자꾸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놓아주려 하지 않고…….
‘아, 이래서 페이쿼리어가 될 때 가족과 연인 모두를 버리게 하는 거구나…….’
하지만 제자가 아까 모두의 앞에서 그렇게나 멋진 말을 했는데, 이 이상 스승으로서 안 좋은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라미네아는 손을 거두었다.
끌어안다가 거두어들인 손으로, 그 어깨와 등을 저쪽으로 밀어주었다.
“가, 카미. 이따가 다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