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92)
가짜 용사 이야기-292화(292/310)
시즌 3 : 100화
“적색산맥 지하에 이 공허의 심층을 세워 이 봉인구를 격리시킨 게 1563년의 일입니다.”
“이게……?”
“<잊혀진 왕들> 중 하나가 저 안에……?”
용현 레인 루드윅이 이 땅에 남긴 기적 중 장녀…… 홍염의 아키레아.
삼영룡 중 최강의 무력을 지녔다는 그녀는 홀로 아드리온 대륙의 평화를 지켜왔으며, 안리달 사변 때는 몸소 나서서 그 봉인을 주도했다고 한다.
뇌향 각하와 청성 각하도 엄청나게 강하셨는데, 그보다 더 강하다면 대체 얼마나 강하신 거지?
“홍염 아키레아의 꺼지지 않는 불꽃이 현재 안리달의 핵(核)을 휩싸고 있습니다. 그게 진짜 봉인이고, 저 공허의 봉인구는 그 불꽃을 보좌하기 위해 아르젠께서 펼치셨죠.”
“……!”
“아르젠 님께서 만드신 봉인구는 무려 10척 두께의 공허 에너지로 안리달을 완전히 격리시켜 두고 있어요. 절대 풀려나서는 안 되니까요. 또 오면서 보셨다시피 무수한 공허의 하수인들을 남겨서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이 지켜 왔습니다.”
힘에 관한 설명만으로 정신이 압도되는 듯한 경험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사실, 저 봉인구를 본 순간부터 느낀 의문이었다.
“근데 이걸 내가 어떻게 운반하라는 거야? 이렇게 큰데?”
요란이 봉인구 앞으로 이동하여, 양팔을 높이 들어 봉인구의 아랫면을 받들었다.
저걸……?
들어 올릴 셈인가……?
그런 무식한 의문을 품자마자, 봉인구 전체로 파문이 번졌다. 공허의 파장이 질척하게 꾸물거리면서 아래에서 위로 퍼졌는데, 불현듯 봉인구가 축소되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는 해도 저 녀석도 공허의 사도란 거구나…….’
보이드레이크가 그 몇백 겹의 뿌리와 줄기를 거두어들이고, 점점 축소되어 가는 봉인구가 마침내 요란의 품에 안겼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크기였다.
지하 공간의 수평선 전체를 좀먹고 있던 것이, 요란의 상반신만 한 크기가 되어 그 품에 안겨 있다니.
“12시간 안에 다시 이곳에 돌려놔야 해요. 이제 가시죠.”
요란이 카밀라에게 그 봉인구를 건네주려는데, 샤론이 고개를 저었다.
“이걸 이 상태 그대로 목표에게 가져가다가는 뭔 일이 생길지 몰라요, 왕녀님. 상대는 엘디아입니다! 카밀라의 양손과 양발만큼은 모두 자유로워야 해요.”
“음, 그게 맞겠군요.”
“샤론, 그리고 평범한 가방으론 안 돼.”
“뒤돌아서 보시겠습니까, 아가씨? 네, 지금 그대로 가만히 계세요. 놀라서 움직이지 마시고요.”
사도는 기적을 사용하는 방식이 사사나 사제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후자는 간절한 기도를 통해 그 힘을 받아낸다면, 전자는 명령하는 식이었다.
“레아 바롤루스(Rea barolus).”
사도의 목소리는 곧 신의 대리 명령, 그 명령에 공허의 권속들이 응한다.
카밀라의 등 뒤에서, 정확히는 등 뒤 차원에서 공허의 악마의 팔이 불쑥 튀어왔다.
그리고 그 양팔로 봉인구를 꽉 붙들어 맸는데, 샤론이 안간힘을 써서 그걸 빼내려 해도 미동조차 안 했다.
“타우라스조차 내동댕이칠 수 있는 힘이니, 이게 떨어질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거예요.”
“후훗, 진짜 엄청나시군요? 나중에 이름 좀 날리겠어요.”
“아가씨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참으로 영광입니다.”
카밀라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고는 크게 감탄했다.
악마의 팔은 카밀라의 등이 아니라 공허의 차원에서 나온 것이었으므로, 어떠한 무게나 속박도 느껴지지 않았다. 즉, 제 몸처럼 편히 움직일 수 있었다.
좋아, 이거라면…… 카밀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엘디아 봉인 작전이 시작됐을지도 몰라. 어서 봉인구를 가지고 돌아가자.”
내가 보고 배운 용사(勇士), ‘검은 여름’의 종막 (5)
“에쉬르, 이 답도 없는 년아! 왜 거기 자빠져 있어!”
제로니 알터 플라디마르테의 일갈에 에쉬르가 아랫입술을 무력하게 짓씹었다.
“선배님, 죄송해요. 최대한 노력했는데, 제가 부족해서…….”
“그게 아니라, 왜 혼자 싸웠냐고! 도망 안 치고! 너까지 먼저 보내면 우리더러 비네사 선배님을 어떻게 보라고.”
비네사 알터 르노드, 항상 우리의 길을 선도해 오신 분이었다.
항상,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길을 가면서 용기의 불꽃을 세상에 전파하던 사람이었다.
그분께서는 누구보다 아름답게 페이쿼리어의 자리를 내려놓았어야 했다.
‘타르스 선배님도 마찬가지고.’
제자가 페이쿼리어로 임관하는 모습을 보면서, 스승으로서 직접 성검을 계승시켜 주면서.
성당들의 종이 울리고…….
사람들이 꽃가루를 뿌리고…….
모든 후배들이 박수를 치는 빛 속에서…… 삶의 개선식(凱旋式)을 올렸어야 했다.
“비네사 선배님의 제자를 저 꼴로 만들었으니, 저것보다 몇 배는 더 비참하게 만들어 주겠어, 이 화석 할망구!”
뤼카엘의 입가에 쓰라린 미소의 자취가 배어났다.
닮았군, 옛날의 나와…….
모조품의 대리자는 그 성격까지도 진품의 계승자와 비슷한 이가 선발되는 것인가.
카아아아아앙────!
진성검 요니울란과 극위성검 플라디마르테의 격돌.
극위성검은 본래 위(僞; 거짓)성검으로 불릴 예정이었다고 했다.
즉, 이것은 그야말로 진짜와 가짜의 격돌과도 같았다.
성화검법(聖化劍法) 제6식.
연사천(硏蛇千).
뱀처럼 휘는 칼날들이 얽히고설키며 서로의 검신을 거칠게 긁으며 끔찍한 쇳소리가 일었다.
제법이군.
‘내 검술’의 형태가 부족하긴 해도 완벽하게 정립된 동작이야.
「하지만 함부로 짖던 것에 비교하면 매가리가 없지 않느냐.」
플라디마르테의 칼날이 요니울란과의 격돌을 이기지 못하고 수직으로 튕겨 올랐다.
요니울란의 칼날은 벌써 칼자루로 돌아가기 시작하며 다음 공격을 예비하고 있었다.
요니울란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검사가 앞으로 나아가면 사복검의 결합 시간은 극도로 단축되는 법.
‘이 무슨 미친─!’
한순간.
‘─이 화석 할망구, 2천 년 동안 밥 먹고 검술만 했나!’
뤼카엘의 발끝에 힘이 집중되기 무섭게 그 신형이 제로니의 배후로 미끄러지듯 파고들었다.
칼자루로 돌아오는 요니울란을 새로 휘두를 필요도 없다. 그 수습의 궤적을 살(殺)의 궤적으로 뒤바꾸는 한 수.
생명을 한 끗 차이로 비껴나가는 자리로, 요니울란이 제로니의 몸을 찢어발기려던 그때, 그 순간, 뤼카엘은 몸을 비틀었다.
챠르르르륵…… 채애애애앵!
몸을 뒤로 비틀면서 자연스럽게 요니울란의 궤도 또한 수정된다.
그 궤도 위에서, 고막을 찢는 폭음이 터진다. 여명의 어스름조차 눈부시게 밝히는 불티가 빗발처럼 흩뿌려진다.
동시에 충돌의 자리에 주홍색의 차원 균열이 벌어진다. 순간 카듀엘……이라는 간절하고도 다급한 생각이 뤼카엘의 뇌리를 스쳤다.
이럴 수밖에 없다.
이런 반응이 당연하다.
저건 엘디아 베테(02), 카듀엘의 진성검 히스기비드의 모조품…… 극위성검 볼비에르가 현대에 히스기비드의 힘을 구현해낸 것.
“제기랄, 절원 천쇄향경을 저렇게나 쉽게……!”
그 화살의 직선 궤도 끄트머리에서 나타난 건 메이트 알터 볼비에르, 궁검형 성검 볼비에르의 대리자인 현 필두 페이쿼리어였다.
절원의 반동이 전신을 덮친다.
온몸에서 흘러내리는 식은땀, 이마에서 비처럼 떨어지는 땀을 훔치면서 용혈 혈청 주사기를 손목에 꽂는 모습이 보인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제가 더 확실히 유인했어야 했는데……!”
“집중해! 계속 밀어붙인다!”
양측에서 내달려드는 극위성검의 위협 앞에서, 진성검 요니울란이 거칠게 포효한다.
그 포효가, 일대를 찢는다.
상식을 벗어난 속도로 128차례 일대를 난도질한 요니울란의 빛 앞에서, 극위성검들이 공포에 질린 비명을 내지른다.
「오호라, 이걸 피해?」
에쉬르를 어깨에 걸머지고 저 뒤로 물러난 제로니는, 식은땀에 젖은 입매가 웃는 것처럼 벌어지는 걸 느꼈다.
전율, 전율이 일 정도다.
지금 이 자리에서, 성화검법과 플라디마르테의 계승자인 나보다 저 기술의 경지를 정확히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단지 참격이 빠른 수준이 아냐.’
그 참격을 더욱 빠르고도 날카롭게 끌어 올리는 섬세한 발동작부터 몸놀림까지, 모든 것이 그야말로 검술의 교과서다.
“다른 방식으로 만났으면 어떻게든 매달려서 검술 지도를 좀 받아봤을 텐데!”
사복검의 통제 실력조차 발군.
한 번 휘둘렀다고 끝이 아니라, 사복검의 변칙적인 움직임이 상대의 반응을 일방적으로 봉쇄해 버리고 있어.
이런 전투를 수백 만, 수천 만 번은 해온 게 틀림없다. 그러니까 상대가 할 법한 반응을 죄다 꿰고 있는 거야.
“아쉬워, 아쉬워 죽겠는걸!”
성화검법 제10식.
칠성(七成).
사복검이 분열하면서 상대를 일곱 방위에서 노리고, 동시에 일곱 갈래로 찢어버리는 초식.
「못 알려줄 것도 없지. 손동작이 어설프군. 칼자루를 잡는 방식을 바꿔봐라.」
그 강렬한 초식이, 요니울란의 보랏빛 울부짖음 속에서 덧없이 흐트러지고 플라디마르테의 칼날 한편에 미세한 금이 퍼진다.
「칼자루의 끝과 끝을 잡고, 왼손은 검지를 떼서 힘에 여유를 줘라. 그러면 사복검의 움직임이 더 부드러워진다.」
그렇게 조언을 건네면서도 뤼카엘은 순간 심장을 노리는 살(殺)의 기척을 감지했다.
몸을 가볍게 뒤틀었다.
옆구리 사이로 볼비에르의 화살이 스쳐 지나갔건만, 오슬오슬한 오한이 척추 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타고 오른다.
‘또 다른 공격?’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극위성검 타스알포의 검극이 바로 심장 앞까지 짓쳐들고 있었다.
모든 것은 이 한순간을 위해.
플라디마르테와의 격돌의 불티도, 볼비에르의 화살을 피할 때 발생할 시야의 사각도, 그 모든 걸 은폐물로 이용해 접근한 플로렛 알터 타스알포의 한 수.
「재밌군.」
타스알포는 방금 전까지 뤼카엘의 심장이 있던 곳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칼끝에 마찰의 불티가 일었다.
한 끗 차이로 놓친 것이다.
플로렛이 다급한 헛숨을 삼키기도 전에, 그 복부 깊숙이 뤼카엘의 정권이 꽂혔다.
“플로렛 선배님……!”
플로렛이 지면을 튕기며 나뒹구는 걸 보면서 에쉬르가 고통 속에서 다급히 소리쳤다.
젠장, 젠장…….
용혈 혈청을 계속 박고 있는데, 빨리, 빨리 좀 재생되란 말이야. 이제야 뼈대가 재생되고 있으면 어떡해.
「미흡한 부분이 많아도 서로의 결점을 보완하며 상당히 우수한 연계를 펼치고 있어.」
저 옛날…….
그 빛 한 점 없이 절망적이고 처참했던 대심연 전쟁에서 함께 피 흘리며 싸워나가던 우리처럼.
– 뤼카엘, 그 검법은 이런 식으로 바꾸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속도가 한층 더 붙을 거다.
엘디아 알마(01), 알카이오스.
– 뤼카엘, 검법을 단순히 신체 작용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우주 물리학을 적용하여, 상대적인 거리와 피해의 방정식을 적용한다면 더 효율적이고도 강력한 검법을 만들 수 있지요.
엘디아 베테(02), 카듀엘.
– 아오, 내가 알아서 한다고!
그런 우스꽝스러운 일상 속에서는 항상, 엘디아 델(03), 데이터 모듈로 얼굴을 소심하게 가린 슈르비엘의 숨죽인 웃음소리가 섞여들었다.
– 핫, 하하, 아핫, 흐흐흣…….
어떤 봄보다도 더 따스하고, 어떤 여명보다도 더 눈부시게 영혼을 적시는, 어느 날의 기억…….
「하지만 내 앞에서는 아무 의미 없다. 너희들의 모든 동작과 검술, 그 원류를 수백 년 동안이나 봐오면서 꿰고 있으니까.」
아무에게도 양보할 수 없다.
그 기억을 이 세상 속으로 다시 불러내기 위해, 꿈속의 기억이 아니라 현실로 바꿔내기 위해.
「찢어발겨라, 요니울란.」
순간, 페이쿼리어들은 반사적으로 그 공격의 예상 궤도로 칼날을 올려놓았다.
그러나 무의미하다.
‘상식적인 힘’으로 방어가 가능한 공격이었더라면, 그것은 <잊혀진 왕들>의 피육조차 저미던 진성검 해방이라 할 수 없으니까.
“서, 선배님들……!”
지반이, 삼림이, 흉물스럽게 찢어발겨져 있었다.
무언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짐승의 송곳니에 세상이 살점째 물어뜯긴 듯, 이빨 자국과도 같은 균열이 지형을 뒤덮었다.
그 반경 안에 있던 모든 것이, 분자 사이의 연결을 잃어버리면서 처참하게 찢어져 원형을 잃었다.
“……!”
“……!”
“……!”
극위성검을 내밀어 어떻게 목숨은 지켜냈으나, 페이쿼리어들 모두 피 칠갑이 되어 온몸으로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이제 좀 깨달아라! 왜 너희들이 이곳에서, 이길 수 없는 상대와의 싸움으로 내몰려서 싸우다 죽어가야 한단 말이냐? 대체 왜! 그걸 이상하다고 생각한─!」
뤼카엘은 뭔가 이상한, 어쩌면 섬뜩하기까지 한 특이점을 발견했다.
이것들이, 왜 웃고 있지?
호흡을 추슬러 출혈사로부터 몸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고역일 텐데, 대체 왜?
청광(淸光).
압도적인 빛살이 시야를 뛰어넘어 의식마저 뒤덮었다.
이건 단순한 빛이 아니다.
빛을 구성하고 있는 분자들 모두가 창명시편(彰明詩篇)의 문자열, 요니울란의 성검 해방으로도 가볍게 찢어내기 힘든 힘의 파도.
그러나 방어는 가능하다.
뱀이 똬리를 틀듯, 청광의 포화로부터 뤼카엘의 전신을 휩싼 요니울란의 보랏빛 검광으로 그 빛을 상쇄시켜 흘려낸다.
「예리세리카냐? 오랜만이다.」
청광의 폭류가 사그라들었을 때, 요니울란을 거두며 뤼카엘이 입을 열었다.
예리세리카, 옛 수룡.
그 꼬맹이의 어린 시절부터 성년의 때까지의 성장 모두가 뤼카엘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때 뤼카엘의 눈앞에 나타난 존재는 예리세리카가 아니었다. 똑같은 힘과 존재감을 품고 있긴 했으나, 외형이 크게 달랐다.
「그래도 눈동자는 똑같군.」
왼손으로 입을 막고 토혈을 하면서도 곧게 쳐든 눈동자로 고요하게 자신을 응시하는 청성을 보며 뤼카엘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 눈…….
저 눈이 싫었다…….
어딘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상에 서 있는 것 같은 눈, 자신은 안전한 곳에 있고, 꼭두각시들만 위험한 곳으로 내보내는 자의 눈.
‘카렌덴의 눈이다.’
그래서 뤼카엘은 광룡 하라데리만과 화룡 벨’다키둔은 귀여워했으나 예리세리카는 도무지 예뻐할 수가 없었다.
놈은 닮았다.
닮아도 너무 닮았다.
그 무정한 창조자, 검은 태양 카렌덴을. 청성의 미른가디아가 페이쿼리어들에게 말했다.
「1분 벌어주마…… 너희들은 몸의 치료를 서둘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