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94)
가짜 용사 이야기-294화(294/310)
시즌 3 : 102화
“근데 왜 엘디아 뮤(04)가 이걸 노린단 거야?”
카밀라가 물었다. 카밀라와 샤론은 공허의 회랑을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오는 데 걸린 시간이 3시간.
3시간은 너무 길다.
30분 안에 돌아가야 한다.
카밀라와 샤론보다 체력이 부족한 요란은 공허충들이 서로 뭉쳐서 만들어낸 발판에 올라타서 둘의 뒤를 따랐다.
“시공간 역행 때문이 아닐까요?”
“시공간 역행?”
“안리달은 다섯 왕 중 가장 시공간에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는 권능을 받았습니다. 그 힘으로 과거의 무언가를 되살려 내려는 게 아닐까요?”
샤론이 눈썹을 치켰다.
“확실한가요?”
“그렇죠. 이건 제 생각이 아니라, 청성 각하의 생각이에요.”
“그분께서는 모르시는 게 없구나.”
그래, 청성은 모르는 게 없었다.
모르는 게 없는 앎으로, 이 슬프도록 약한 세상을 지키고자 했다. 옛 용현이 그러했고, 그 누이들이 그러하듯이.
그래서, 그래서, 모든 이들이 그분을 자발적으로 따르게 되는 것이 아닐까…….
– 왜 인간들을 위해 희생하시는 겁니까?
작전이 시작되기 전의 일이다.
그러니까 스승님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전에, 작전실을 나오던 때의 일이다.
– 태어나면서부터 폭력적이고, 이기적이며, 자기들의 안위밖에 모르는 족속입니다.
요정왕 사오로 1세가 <오르벤하임>의 북구, 항구 쪽에 시선을 주며 청성 미른가디아에게 그렇게 말했다.
항구는 번잡했다.
200만에 가까운 인류의 생존자 대부분이 배에 올랐고, 그 10분의 1도 안 되는 20만이 겨우 넘는 숫자만이 저 라노아 대교로 향하는 기관차에 탑승하고 있었다.
– 그 겁쟁이 선조들로부터 똑같은 피를 이어받았지요.
카밀라는 그때만큼, 태어나서 그 순간만큼, 인간이라는 종족이 부끄러웠던 적이 없었다.
아니, 경멸감마저 느꼈다.
요정이나 아인은 그 누구 하나 이탈하지 않는데, 인간이란 족속은 도대체, 삶을 구가하는 생명체로서 당연한 반응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 태어나면서부터 이타적인 존재가 있단 말이냐?
청성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사오로가 반박했다.
– 우리 요정의 선조께선 <온 것들>을 따라 싸웠으며, 그들 중 가장 걸출했던 에누엘 돌격대는 수인이 되었지요. 아인들 또한 카렌덴의 피조물로서 검은 태양을 종전까지 보필했습니다.
– …….
– 하지만 인간은?
– …….
– 그때나 지금이나, 늘 모든 싸움을 타인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먼 곳에서 뒷짐 지고 서서 방관할 뿐입니다.
사오로의 비난을 말없이 들으며 앞서 걷던 청성이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 사오로, 양 떼를 거느린 주인에게 두 종이 있다고 치자.
– ……?
– 주인이 잠시 멀리 떠나야 한다며, 한 종에게 밤에 양 떼를 돌볼 등불을 맡기고 떠났다.
– ……?
– 등불이 맡겨진 종이, 등불이 없는 종에게 밤에 양 떼를 돌보지 않는다고 역정을 내는 게 옳다고 생각하느냐?
‘은의 시대’를 열고 죽은 용현과.
그 용현이 이 세상에 남긴 삼영룡은 똑같이 이 세상 너머, 창세의 진리를 보고 그 진리의 근원을 이 땅에 설파해 주었다.
– 우리는 단지, 창세의 은혜로 등불을 받았을 뿐이다. 세상이 힘이라고 말하는 그 무언가를 말이다.
창세의 진리는 이 세상의 가치 판단 기준과 달랐다.
– 우리의 무엇이 잘나서가 아니라, 그냥 그 크시고 충만하신 은혜로 거저 받은 것이란 거다.
사랑.
헌신.
희생.
섬김.
– 그러니 그리 알고, 오직 등불을 받은 것을 감사하며 소명의 푯대로 향해 나아가라. 그것이 우리를 향하신 창세의 뜻이다.
세상이 바보라고 말하는 것들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세계, 천국의 복음이었다.
– 등불을 맡길 만큼 믿음직스럽고 또 강인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사오로도 청성의 말에 감명을 받은 듯했으나, 선민으로서 굽힐 수 없는 자존심이 있던 모양이다.
그러자 청성이 웃었다.
그 발언을 비웃은 냉소가 아니라, 아버지와도 같은 자애의 미소였다. 창세의 사랑이 그 만면에 드러나는 천사(天使)의 미소였다.
– 그러면 더욱 쉬운 일이다, 사오로야. 등불이 없는 이들이 너처럼 믿음직스러워지고 강인해질 수 있도록, 앞에서 너의 등불로 길을 비추어 주어라.
내가 보고 배운 용사(勇士), ‘검은 여름’의 종막 (7)
– 뭐? 심연의 권속?
감각기관이라고는 기계식 두개골 중앙에 동그랗게 박힌 카메라가 전부인데, 왜 녀석이 우는 것처럼 느껴졌을까?
왜 울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노화된 것도 아니고, 장애 속에서 살아가는 것조차 아니고, 기계 속에서 삶을 겨우 연명해가고 있던 동료가, 이 새로운 육신을 얻은 나를 보며 울고 있다고.
– 에누엘, 나랑 같이 가자. 새로운 몸을 얻자! 함께 살아가자고! 슈르비엘도, 카듀엘도, 알카이오스 대장도 모두 살려서!
하지만 에누엘은 칼끝을 거두어들이지 않았다. 지면을 박차기 위해 하반신에 힘을 집중시키는 것까지 포착됐다.
분노 치밀었다…….
아니, 울분이 북받쳤다…….
대체 왜 너는, 왜 죽어서까지 그런 것들에게 충성을 바친단 말이냐, 몇 번이고 등을 맞대고, 몇 번이고 같은 적을 상대로 싸웠던 내게 검을 세우면서까지.
– 바로 이해해 달라고는 안 하겠어. 하지만 네 핵(核)은 가져가야겠다. 새 육신을 줄 수 있게.
힘으로 납득시키는 방식은 싫지 않다.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가장 이 우주의 규칙을 꿰뚫는 정론이라 생각한다.
쓰러뜨려야 한다.
상대는 옛 최강의 전우.
그러나 그건 온전한 육신과 샤릴리온이 있을 때의 이야기고, 지금 저 녀석은 기계식 몸에 샤릴리온도 갖고 있지 않다.
– 가자, 요니울란. 힘 조절을 할 상대가 아니란 건 너도 알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승리를 낙관했다.
그러나 첫 합이 맞부딪친 순간, 그 낙관은 춘몽에 불과했다는 걸 알아낼 수 있었다.
– 각인참(刻印斬) – Yanabatsu(꿰뚫다).
무겁다, 뼈가 부서질 정도로.
빠르다, 쳐내는 게 고작일 정도로.
강하다, 단 다섯 합 만에 왼팔과 오른쪽 발목이 분쇄되었을 정도로.
– 왜, 대체 왜……!
억울하지도 않은 거냐. 어떻게 그렇게나 충성스러운 거냐.
한 달조차 살아보지 못하고, 네 삶에 네 이야기는 단 하나도 남겨보지도 못한 채, 전투 병기로 살아가다가 죽게 만든 존재한테.
이제는 이런 병정 인형으로 살아가게 되었으면서, 옛 동료였던 나에게 칼을 망설임 없이 휘두를 정도로.
– 뭐가 엘디아 오메크(06)냐! 그놈이 나타날 때까지 관할지를 지키고 있으라고? 고철 덩어리 안에서? 엿이나 처먹으라고 해! 우린 고작 그놈을 위한 제물에 불과하단 거냐? 평생을 싸웠는데?
초고속 재생보다도 빠르게, 시커멓고도 시뻘겋게 수명을 겨누며 짓쳐들어오는 것은 사(死).
알 수 있었다.
직감한 것이다.
다음 합이 이루어지는 순간, 그건 힘과 힘의 격돌이 아니라 힘이 힘을 부수고 생명을 끊어가는 종전이 될 거라고.
– 카렌덴, 그놈은 사이코다! 우리는 그놈한테 장난감에 불과해. 팔다리가 부서지면 새로 만들면 그만인 장난감!
그 <잊혀진 왕들>마저 압도했던 검술, 최강의 창세시편을 핵(核)으로 빚어진 용사.
죽는다.
옛 전우에게, 죽는다.
‘이 또한…… 나쁘지 않으리.’
그래…….
차라리 이런 결말이 나을지도…….
– 각인참, Bakhu(격리).
그러나 옛 전우에게 죽는 일은 없었다. 포박할 생각이었을까, 차원 자체가 격리되어 간다.
에누엘의 대검은 뤼카엘의 복부를 꿰뚫었다. 핵에서 한참 밑이었다.
즉, 절명을 비껴가는 자리였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 대체 무엇이 당신을 이렇게 만든 겁니까, 뤼카엘…….
옛 전우는, 최강의 엘디아는, 그때 분명 울고 있었다…….
그 울음이 빈틈이었다.
요니울란으로 격리의 장막을 깨트리고, 그 자리에서 달아났다. 에누엘은 쫓아오지 않았다.
「뭐가, 대체 뭐가 잘못됐단 거냐…….」
기억 속에서 의식을 회복한 뤼카엘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당연히 누려야 했던 걸, 한 번이라도 누려보고 또 누리게 해주고 싶다는 소망이…… 뭐가 그렇게나 잘못됐단 거냐! 말해봐라! 에누엘 돌격──!」
순간, 뤼카엘의 가슴팍 위로 주홍색 빛살이 솟구쳐 올랐다.
───푸하악!
울혈이 입으로도 쏟아진다. 극위성검 볼비에르의 절원, 차원 붕괴의 힘이 뤼카엘의 핵을 노출시켜 냈다.
“됐어……!”
“지금이야, 이게 기회다……!”
“일어나, 플로렛! 지금 말고는 몰아붙일 기회가 없을 테니까!”
옛 기억이 일으킨 동요 때문에, 칼날처럼 날카롭게 다져진 인지 영역에 빈틈이 생겨난 것일까?
아니, 백운(白雲) 때문이다…….
뤼카엘의 시선 끝에, 피를 쏟으면서도 이쪽으로 손을 뻗은 청성의 모습이 들어왔다.
‘저 자식, 사라졌다고 생각하게 만들고는…… 일말의 힘을 남겨서 숨겨두고 있던 건가.’
초고속 재생의 힘이 차원 붕괴에 맞선다. 육신을 붕괴시키는 힘과 수복시키는 힘이 맞물리며 몸에 거대한 과부하가 일어난다.
「약자들은 살 가치가 없다. 너희의 목숨을 버려 가면서까지 지켜줄 가치가 없단 말이다.」
뤼카엘은 피를 쏟으며 말했다.
어느새 회복을 마치고 자신에게로 칼을 겨누며 달려드는 후임(後任)들을 막아내며.
「내 말이 어렵냐? 대체 뭐가 어렵냔 말이다!」
대체 뭐가 어려워서.
팔다리가 잘려나가도 다시 달려들고, 계속 일어나고 또 일어나서, 승리가 불가능한 상대에게 계속 달려드는 거냐.
「너희는 싸우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야! 싸우다 죽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란 말이다!」
볼 눈이 없는 거냐?
들을 귀가 없는 거냐?
「너희 하나하나의 삶은 소중해서, 남들처럼, 아니, 남들보다도 더 행복해질 권리가 있단 말이다! 꿈을 이루고,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그럴 권리가!」
그 길의 말로(末路)가 지금 너희들의 눈앞에 이렇게 서 있는데.
먼저 그 길을 가본 존재가.
먼저 그 길을 끝까지 가봤던 존재가 그 길이 어떤지 말해주고 있는데, 왜 들으려 하질 않냐?
「너희가 지금 광인처럼 계속 덤벼드는 건, <온 것들>이 그렇게 세뇌해놨기 때문이다! 용사란 아름답다고, 남을 위해 싸우다 죽는 게 고결하다고!」
고결하지 않아.
무엇 하나 고결하지 않다.
「너희의 죽음은 그냥 개죽음일 뿐이다! 저 뒤에 남겨지는 약자들이 너희의 죽음을 과연 진정 슬퍼할까? 매년 슬퍼하고 애도하며 가슴을 칠까?」
아니.
10년만 지나면 잊어버릴 거다.
100년이 지나면 오히려 무의미한 죽음이었다고, 아니면 선전용으로 과장된 것뿐이라고 놀리는 놈들도 있겠지.
「내가 본 세상의, 약자들의 역사는 항상 그딴 식이었다!」
진성검 요니울란이 태도 르노드의 칼날을 쳐내고, 그 기세 그대로 배후를 노리던 사복검 플라디마르테를 붙잡아 찢는다.
「그 세뇌된 신념을 도무지 내려놓을 수 없다면, 죽어라! 죽어서 편히 쉬고 있어라. 이건 안락사다! 내가 모든 것을 정상으로 되돌려놓은 다음, 너희 하나하나가 응당 누릴 수 있는 걸 모두 누릴 수 있는 세계에서 깨워줄 테니!」
폭풍 같은 힘의 흐름이 일순간 쇄도하며, 뤼카엘을 동시에 겨누던 페이쿼리어들에게 치명상에 가까운 자상을 남겼다.
팔라딘 에베스란은 전율했다.
저 먼 고대의 전쟁, 엘디아라는 명칭을 모르던 선조들이 그들을 부르던 언어가 뇌리에 자동적으로 떠올랐다.
“루사엘라(대천사)…….”
날개, 검의 날개였다.
서른여섯 자루의 보랏빛 칼날들이, 뤼카엘의 등 뒤로 가지런히 펼쳐지며 날개를 이루고 있었다.
형상은 칼날이나 저것들 하나하나가 힘의 정수(精髓), 뤼카엘이 행하는 참격들을 그대로 행하는 검술의 극도.
「성화시편 열성 : 이기어검술(聖化詩篇-列聖 : 異氣馭劍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