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98)
가짜 용사 이야기-298화(298/310)
시즌 3 : 106화
‘끝났다.’
뤼카엘이 공허의 하수인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본 걸 마지막으로, 카밀라는 공허의 차원에서 빠져나왔다.
‘엘디아 봉인 작전이 끝난 거야.’
산야가 깎여나가고, 천지가 진동할 정도로 격렬했던 싸움터는 이제 적막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제 다 끝났는데…….’
적막의 골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숨죽인 울음소리들이 오르내렸다.
샤론…….
스승 플로렛의 피투성이 주검에 머리를 박은 채로 울고 있었다. 엘티레도 스승 제로니의 시체를 부여잡고 울고 있었다.
“아, 아버지…….”
요란 또한 울고 있었는데, 울음을 일으킨 감정이 180도 달랐다.
“왕녀 전하, 왕께서는 살아 계십니다. 출혈이 조금만 더 극심했어도 사망하셨겠지만, 청성 각하께서 지켜 주셨지요. 그러니 우실 때가 아닙니다. 공허의 봉인구를 심층에 되돌려놓고, 전선에 가서 왕족으로서 본을 보이십시오.”
외팔에 외발이 된 팔라딘 에베스란이 요란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있던 것이다.
“카밀라, 다행이다, 살아 있었구나…….”
문득 그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는 소스라치게 놀라야 했다.
그 반가운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단 데서 온 감격이,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절망으로 곤두박질치는 당혹감.
카밀라는 내뱉어지지 않는 신음을 흘리며 그쪽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언니! 괜찮아! 뤼카엘 님은 제대로 봉인했어! 근데, 아아, 어떻게, 청성 각하! 언니, 언니가……!”
그 극위성검 르노드가 흔적도 없이 찢어발겨졌는데, 그보다 더한 상태로 도대체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인가.
이런 몰골로, 이런 상태로.
그날 보았던 에쉬르의 상태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카밀라…… 미안해…….”
무엇 하나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눈앞이 물결치며 부서져 내려서 그런 게 아니었다.
제대로 보려 하지 않았으니까.
제대로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 상태를 눈을 통해 뇌에 각인시키는 순간, 그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서.
“함께…… 페이쿼리어가…… 된 뒤에…… 춤추자는 약속, 지키지 못해서…….”
그때가 어느 계절이었던가?
“무슨 소리야, 언니, 언니! 안 돼, 언니, 제발, 안 돼…….”
이제 막 제자가 되었을 때, 처음 만난 에쉬르가 지어주었던 웃음이 어찌나 맑고 깊던지…….
“가지 말아줘…….”
그 계절은 생각나지 않는데, 그 웃음만은 항상 머릿속에서 생생히 떠오르는데.
“나 혼자 두고, 그리로, 제발, 가지 말아줘…….”
칼집에 든 칼을 맞부딪치면서 나눈 약속의 계절이 언제였던가.
그 계절에는 아직 세상이 여름이 아니었다. 들판과 산악에서는 강들이 휘돌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조차 청명하게 들렸다.
그 계절부터 이 여름까지, 함께 웃고 함께 슬픔을 매만지며 걸어온 에쉬르는 먼저 저편으로, 그 스승에게 인도받은 길을 끝까지 나아가 자신의 푯대에 도달했다.
“언니…….”
에쉬르는 웃었다.
처음 만나던 그날처럼.
마지막에도 똑같이.
“언니……?”
슬픔이 비벼지고 치받치며 생겨난 바닥의 틈새로 그, 숨 막히는 허망함이 밀려든 순간에야, 비로소 뤼카엘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울고 있었구나…….
이래서 그렇게 되었구나…….
10년을 함께한 사람이 죽었을 때의 슬픔과 절망이 이렇게나 큰데, 수백 년을 동고동락한 동료가 죽었다면, 누구나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텐데.
그 삶을 긍정할 수는 없지만…….
그 삶을 이해할 수는 있게 되는구나, 똑같은 슬픔을 겪은 지금에서야, 아아, 인간은 이 어찌나 슬픈 생물이란 말인가.
“카밀라.”
그때, 에누엘 돌격대의 대족장 그리프베런이 몸을 질질 끌면서 다가왔다.
“네 몸은 온전하니, 라노아 대교 전선으로 가서 힘을 보태라. 죽음은 되돌릴 수 없고 산 자는 살아야 한다. 단장님의 곁으로 가는 거다…….”
카밀라는 그리프베런의 말의 밑바닥에 깔린 두려움 어린 우려를 감지했다.
아니, 알 수밖에 없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참극, 그것이 자신의 인연에만 힘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건 지극히 어린아이다운 낙관이 아닌가.
카밀라는 고개를 들었다.
가자…….
가야 한다…….
가야만 한다…….
그러나 에쉬르의 주검을 끌어안은 손이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가, 카밀라.”
샤론이 다가와 그렇게 경직된 손가락을 부드럽고도 단호한 힘으로 떼어주었다.
“너와 라미네아 님은 우리 같은 결말을 안 맞았으면 좋겠어…….”
그리프베런도 고개를 끄덕였다.
“청성 각하의 옥체와 용사들의 주검은 내가 요정들과 함께 거둘 테니, 너는 서둘러 그분의 곁으로 향하거라…….”
내가 보고 배운 용사(勇士), ‘검은 여름’의 종막 (11)
[라미네아 : 오늘도 나를 통해, 당신의 향기를 이 땅에 전하소서.]극위성검 아라다만텔이 붉은 일갈(一喝)을 터뜨리자 붉은 선이 세상을 가로질렀다.
그 선은 세상을 두 개의 영역으로 나누는 선이었다. 삶과 죽음.
적의 선견대, 키랄의 늑대 기병대의 수백의 목이 선혈을 흩뿌리며 허공을 휘돌았다.
[멜레느 : 심연 개체 접근, 위험도 중상…… 요주의.]빛의 잔광이 살육의 궤적을 훑고 지나가는 가운데, 그 빛을 흐트러뜨리며 무언가가 내달려들었다.
키란즈키 가가, 렌쿠지.
늑대 기병대의 선봉을 총지휘하는 최강의 전사, 그 거대한 늑대와 함께 라미네아를 전력으로 들이받았다.
[모즈나 : 선배님!]대교 위를 나뒹굴던 라미네아는 토혈을 블라쉬우르프의 눈에 뱉으면서 몸을 즉시 일으켰다.
충돌의 반향, 즉 관성에 의해 필연적으로 자세를 유지할 수 없는 건 피차일반일 터.
블라쉬우르프가 피에 의해 시각이 차단되어 허공에 아가리를 맞부딪칠 때, 아라다만텔이 그 주둥이를 절단했다.
“Ro Ke Bekusha!”
그걸 기다렸단 듯, 가시가 무수히 돋아난 작살이 아라다만텔을 덮쳤다.
심연의 축복이 깃든…….
칼을 계속 쥐고 있으려 했다가는 상대의 노림수에 넘어가는 셈이 될 터였다.
라미네아는 칼을 놓았다.
매섭게 돌진해오던 렌쿠지의 복부에 칼집을 꽂아 넣은 일순, 허리춤에서 두 번째 칼을 꺼냈다.
그녀의 제자가 선물해준 보물.
소검의 칼날 위로 마력의 기류가 소용돌이치며 그 절삭력을 몇 배는 끌어 올린다.
소검의 재질은 가히 명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비상시에 성검을 대신할 만했다.
소검의 칼날이 렌쿠지의 경추를 절단한 게 아니다. 제자의 마음이 그렇게 만들어준 것뿐.
[라미네아 : 아라다만텔, 이리 와.]라미네아는 소검을 소중히 칼집에 꽂고 저편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라노아 대교 바닥을 나뒹굴던 순혈의 태도가 빙그르르 솟구치더니, 허공을 날아 손에 와 잡혔다.
그러기 무섭게, 아이딘이 앞으로 나서며 빛의 역장을 대교에 드넓게 전개했다.
[아이딘 : 제 뒤로 오십시오!]곧, 모래 폭풍이 밀려들었다.
단순한 모래가 아니었다.
닿는 모든 것의 생명을 급속도로 퇴락시키고 풍화시키는 왕의 심연(深淵)이었다.
[델프레드 : 대교 전방에 고위험 심연 개체 출현! 키랄의 족장이다!]라미네아는 아이딘 옆에서 호흡을 고르며 전황을 분석했다.
좋지 않아…….
저 모래 폭풍과 아이딘의 결계 때문에 아군의 사격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어.
‘적이 앞에 계속 모이다가…….’
한 번에 들이닥치면, 순식간에 전선이 붕괴하고도 남을 텐데.
[라미네아 : 모즈나.] [모즈나 : 네, 선배님.] [라미네아 : 저 힘을 상대로 솔랑이 몇 초나 버틸 수 있을까?] [모즈나 : 8초 정도? 10초까지는 오기로 해볼게요.] [라미네아 : 9초면 되겠어. 가자, 앞장서.]모즈나가 솔랑과 유사한 광채를 뿜는 방패를 앞세우고는, 아이딘의 결계 밖으로 튀어나갔다. 라미네아가 그 등 뒤로 바짝 붙었다.
[모즈나 : 나는 모즈나 알터 솔랑이다.]극위성검 솔랑은 타스알포의 자매검(姉妹劍)이지만 그 특질은 완전히 다르다.
[모즈나 : 생명의 빛을.]방패와의 합일을 통해, 엘디아 알마(01) 알카이오스의 진성검 리벨덴의 ‘파장 전환’의 힘을 제한적으로 체현시키는 게 가능하다.
[모즈나 : 세상의 가장 먼 곳까지.]원리를 쉽게 설명하자면, 방패를 통해 상대의 힘을 빨아들인 후 검극을 통해 방출시키는 것이다.
[발브레이 : 그라함, 첫 번째 자손들을 앞으로 내보내라. 돌파의 선봉이다.] [그라함 : 홀트란크스, 전진!]솔랑의 방패 앞에서, 죽음의 사풍(砂風)이 소용돌이치면서 빨려 들어간다.
솔랑의 광도가 점차 강해진다.
거기 대항하려는지, 모래 폭풍의 풍압이 솔랑 쪽으로 집중되면서 솔랑의 빛이 용적 한계를 가리키는 광도까지 순식간에 치민다.
[라미네아 : 델프레드!]대기가 급속도로 얼어붙으면서 모래 폭풍의 힘이 살짝 둔화되었다.
둔화란 곧 빈틈.
모즈나가 솔랑을 칼집에서 뽑으며 전방으로 내찌르자, 지금까지 흡수한 힘이 일점으로 방출되며 전방의 시야를 활짝 열어냈다.
라미네아가 모즈나의 어깨를 밟고 위로 몸을 솟구쳤다.
그때, 상공에 형성시킨 마력 발판을 거꾸로 밟으며 궤도를 트는 동시에 가속.
도약에서 강하로 강제로 전환시킨 힘의 법칙을 오롯이 칼날 위로 집중시킨다.
선혈(鮮血).
키랄의 본진에 상식을 벗어난 속도로 착지하자, 족장을 에워싸고 있던 전사들의 목이 느닷없이 수직으로 솟구쳐 올랐다.
[할바론 : 사풍이 약해졌다. 전 함대, 대교 위로 포격 개시!]키랄의 족장, 즈칸은 왕의 송곳니들이 세 갈래 발톱처럼 엮인 클로를 착용하고 있었다.
심연의 성물(聖物).
살갗을 찢은 표적에게 생멸의 모래를 주입해서 그 생사를 뒤틀어 버리는 저주가 깃들어 있다.
‘역시, 이놈이 족장이군.’
즈칸이 전사들을 이끌고 라미네아를 덮쳤다.
아무 문제 없다.
적이 많다는 것은, 적에게 둘러싸였다는 것은, 어떤 검무를 펼치건 모든 것이 유효 범위 안에서 유효 타격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 둘, 셋.
라미네아는 이리저리 간격을 잴 필요도 없이, 몸을 낮추었다가 폈다가 팔을 휘둘렀다가 접기를 반복하며 우루크 전사들의 목덜미를 날카롭게 베고 흉부를 찌르고 발목을 잘랐다.
사실, 이 모두가 예행 동작.
진짜 표적을 베어내기 위한.
잠시 호흡을 고른 후, 벼락이 내리치는 듯한 폭발음과 함께 비상식적인 속도로 거리를 좁힌다.
그 흉부에 칼집을 꽂고 이어 칼로 마무리하려 했으나, 그 일순, 눈앞으로 짓쳐든 발톱.
경이적인, 아니, 하이 쿤 타르크 족장다운 반응속도.
“읏……!”
라미네아는 얼굴을 비틀어 그 일격을 피해냈으나 왕의 송곳니가 왼쪽 턱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즈칸이 눈웃음을 지었다.
이제 왕의 축복이 네 모든 것을 뒤틀어 버리리라…… 그러나 그 미소가 경악으로 바뀌기까지는 한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아파라.”
라미네아가 아라다만텔로 즉시 왼쪽 턱을 절단한 것인데, 그 즉시 용혈 혈청 주사기를 꽂았다.
그리고 다시.
극한까지 증폭시킨 각력으로 지반에 균열을 남기며 쇄도, 적광과 사념의 격돌이 무수한 폭발로 일어난다.
[모즈나 : 대단해, 하이 쿤 타르크 2위의 족장을 일대일로 압도하고 계셔!]베고, 막고, 쳐내고.
[그라함 : 페이쿼리어의 후위를 맡아라! 홀트란크스 전개!]그 충격으로 라노아 대교 사방으로 생채기 같은 빗금이 퍼져나가고, 포석이 갈라지기 시작한다.
[발브레이 : 잠깐.]그리고 마침내.
[발브레이 : 드디어 올 것이 왔군.]폭풍 같은 힘의 흐름을 머금은 칼날이 적의 허점을 완벽하게 포착, 그 왼쪽 팔을 잘라버리며 목을 꿰찌르려던 순간.
세계(世界)가 뒤흔들린다.
바늘구멍에 실을 통과시키는 것보다도 더 정확해야 할, 칼날의 궤도가 순간 틀어질 정도로.
‘아, 안 돼.’
경동맥과 힘줄을 벤 것 같기는 한데, 정확하지는 않았다.
‘끝장을 냈어야 했는데.’
즈칸은 상처 부위를 붙잡으며 뒤로 물러서자마자, 마무리를 지으려 나아가야 할 길을 키랄의 전사들이 육벽을 이루며 막아섰다.
‘내가, 베어냈어야 했는데.’
요정병들의 홀트란크스가 그 육벽에 맞서서 라미네아 좌우로 방벽을 형성한 순간, 세상이 다시 한번 뒤흔들렸다.
[크라우잔 : 무슨 일인가? 보고하라.] [니븐 : 비상, 비상입니다! 화신급 데몬 출현! 대교 쪽으로 접근 중!] [할바론 : 대교 쪽이라고? 대교로 오는 게 아니란 말인가?]지진이 다시 한번 천해를 덮친다. 무언가로 지탱하지 않고서는 두 발로 서 있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강렬한 지진이.
[델프레드 : 뭐야, 지진?] [아이딘 : 아니, 이건 해저 화산 분출입니다!] [니븐 : 이런 미친, 수심이 상승…… 마우나 로아의 힘에 해저에서 용암 분출! 용암이 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저 자식, 라노아 대교 방어선을 저딴 억지로 무력화시킬 속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