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99)
가짜 용사 이야기-299화(299/310)
시즌 3 : 107화
내가 보고 배운 용사(勇士), ‘검은 여름’의 종막 (12)
라노아 대교 저 너머, 흑암의 세계에서도 선명한 붉은빛으로 보이는 악(惡)의 사념. 대기에 중압감을 끼얹으며 나타난 그것은 악몽(惡夢)의 현신.
옛 왕(王)의 힘의 편린.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화산의 포효에 천지가 두려워 떤다. 그 간결한 사념이 포악한 힘으로서 산하를 진동시킨다.
[델프레드 : 스팀코어들이 과부하된다! 요한! 공격 말고 아군 포병대의 스팀코어를 지켜!] [요한 : 온도 상승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얼음도 얼마 버티지를 못하고……!] [멜레느 : 스팀코어가 문제가 아님……. 이대로면 인체가 먼저 발화점에 도달해서…… 모두 죽처럼 녹아내릴걸…….]라노아 대교 전선과 엘디아 저지 작전의 중심부.
‘아.’
공손히 꿇어앉아 기도하는 자세로 뇌향심공명진을 전개하던 뇌향의 세츠넨이 피를 쏟으며 고꾸라졌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사념인가…… 아이들의 마음을, 저 사념으로부터 지켜내야 하는데, 아, 의식이…….’
제1진을 맡고 있던 병사들의 총신과 포신들이 녹물과 쇳물로 녹아내리며 인체에 달라붙는다.
비명, 절규가 뒤얽혀 솟구친다.
마우나 로아, 살아 움직이는 화산…… 두개골 형태의 분화구 위로 현현한 네이갈라스의 정신체가 요사스럽게 웃었다.
「호, 호, 호…… 실로 감미롭게 울부짖는구나. 너희들의 그 갸륵한 우짖음이 내 귀에 상달되었으니, 내 친히 생멸의 뒤틀림이라는 포상을 내려주마.」
옥체를 움직일 수 없으나 정신은 움직일 수 있나니, 왕의 정신은 곧 압도적 힘의 파도로서 필멸의 지각을 뒤틀고 부순다.
“으, 으으으으아아아아……!”
“하, 하, 아하하하하하……!”
우주적 계몽이 오감을 넘어선 원초적 공포를 깨우고, 그 지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의 뇌는 폭발한다.
인간의 언어로는 그 공포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단지, 광기(狂氣) 또는 광란(狂亂)이라는 모호한 단어로만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었다.
‘아버지…….’
그런 대참사가 일어나지 않는 건 오직, 한 존재의 중보기도 덕분이었다.
전신으로 피를 쏟으면서.
피 웅덩이에 고꾸라진 채로.
곧 끊어질 듯 숨을 쌕쌕대면서.
간절히, 절실히, 필사적으로 모은 양손을 결코 풀지 않는 뇌향 세츠넨의 기도.
‘저에게, 힘을 빌려주세요…….’
강철함대도 해저 용암 분출과 해수면 상승의 영향으로 불안하게 흔들렸다.
[구스타프 : 제독 각하, 포신뿐만 아니라 선체 또한 과열의 영향을 심히 받고 있습니다!]적을 정확하게 포격하지 못하고 포탄들이 먼바다에 떨어졌다.
[할바론 : 바닷물로 대충 식혀라! 그 전선 하나하나, 겨우 이딴 온도로 녹아내릴 만큼 대충 만들지 않았다. 자세 똑바로 잡아라! 고폭탄 장전!]그 광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라미네아는 잠시, 악몽의 주체를 바라보았다.
‘아…….’
아라다만텔의 칼자루를 손끝 마디만으로 놓칠 듯 아슬아슬하게 쥔 것도 자각하지 못한 채.
‘아, 살고 싶은데…….’
살아서…….
카미와 다시 만나고 싶어…….
그리고 또…… 태내에 깃든 아이의 얼굴을 보고 싶어…….
그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어보고 싶어…….
이 아이가 카미와 함께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
[니븐 : 목표, 날아오릅니다!]어떤 얼굴일까?
어떤 식으로 웃을까?
미래의 꿈은 뭘까?
남편을 고르는 기준은?
돈? 얼굴? 인성?
[멜레느 : 말도 안 돼. 비행 능력이 저렇게나 뛰어날 수가.]지금 라미네아 자신의 육신과 검술의 수준은 바야흐로 최고 전성기에 이르러 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무리하지 않는다면…….
조심히 몸을 사린다면…….
많은 이들이, 어쩌면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죽을지는 몰라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몰라.
– 그게 제가 보고 배운 용사(勇士)니까요.
그 목소리가, 제자의 목소리가, 아무도 모르는 봄 어딘가로 도망가고자 한 의지를 묵살한다.
그래…….
내가 어떻게 그러겠어. 카미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내가 그랬다간 부끄러워서 어떻게 카미의 스승이라 할 수 있겠어?
[요한 : 놈이 날아오는 궤도 위로 용암이 주상절리를 형성하면서 길을 만들고 있어요! 적들이 건너옵니다! 라노아 대교 방어선 무력화!]집중하자.
의지를 다잡는다.
칼자루를 손가락 전부로 꽉 쥐자, 그 검광이 미친 듯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라미네아 : 놈이 여기로 넘어오게 둬선 안 돼. 아이딘, 내가 저기로 갈 수 있게 도와줘. 중간 지점에서 놈을 쓰러뜨리겠어.] [니븐 : 선배님, 대체 무슨……?] [라미네아 : 니븐, 공군 최고 현장 지휘관은 이제 너야. 모즈나, 이제 네가 라노아 대교 전방을 맡아. 오우칸들이 오고 있어. 할 수 있지?] [모즈나 : 선배님, 제발, 선배님까지 그러지 마세요. 저희들 두고 먼저 가지 마시라고요!] [라미네아 : 홍련 병단과 혈마 병단만 나를 따르고, 선견과 흑장미는 철성 병단의 명령을 받도록 해.] [니븐 : 선배님, 너무 위험해요! 저 위에서 싸운다뇨? 오게 놔둬요! 그래서 해안에서 협공하죠! 그래도 괜찮잖아요!]강철함대의 함상 포격과 델프레드의 마법과 발브레이의 기적 앞에서 마족들이 라노아 대교를 넘지 못하고 죄다 고꾸라져 간다.
그러나 문제는…….
마우나 로아가 만들어낸 제2의 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화산의 대교다.
[라미네아 : 아니, 이건 내 직감이야. 저 녀석이 여기 상륙하면 그때부터는 걷잡을 수 없게 돼. 구경만 할 수 없어. 사람들 목숨이 달린 일이야.] [모즈나 : 선배님 목숨은요!]모즈나가 그렇게 항변하던 그때 지축이 흔들리더니, 거신 48식이 앞으로 나온다.
[할바론 : 자네 후배들이 뭔가 대단히 착각을 한 것 같은데, 걱정하지 마라. 이 땅개 친구만 가는 게 아니니.]황은의 사사, 발브레이 또한 특유의 오만한 웃음을 흘리며 그 옆으로 나왔다.
[발브레이 : 항상 위험한 길을 먼저 가는 건 첫 번째 자손에게 주어진 영광이지.] [할바론 : 그 발 뒤로 반 발짝 빼시지, 귀쟁이. 먼저 앞으로 나온 건 나다.] [발브레이 : 그 쇳덩어리 안에서 조작 장치만 딸깍딸깍 누른 주제에 그게 무슨 말인가? 직접 발을 움직여 발자국을 남긴 자가 우선인 법이다.] [할바론 : 강철함대 제독의 명령이다.] [발브레이 : 최고 사사의 명령이다.] [할바론 : 들을 필요도 없군.] [발브레이 : 동감이니라.]무슨 냉전이 시작되나 싶더니만, 발브레이와 할바론이 마구 웃고, 라미네아도 그 웃음에 동참했다.
[라미네아 : 두 분을 이제야 만난 게 참 아쉬워요.] [발브레이 : ‘이제야’라는 표현은 이상한 것이야. 그런 건 없어. ‘마침내’라고 해야지. 창세의 인연이 우리를 ‘마침내’ 이곳으로 인도하셔서 만나도록 하신 것이니.] [할바론 : 라미네아, 저 귀쟁이 말은 듣지 마. 성직자란 족속이 지들 이익에 맞게 성서를 여기 붙였다 저기 붙였다 하는 족속이니까.] [아이딘 : 그건 흘려들을 수 없군요.]예상치 못한 제삼자의 참전에, 할바론이 이마를 치며 웃었다.
[할바론 : 아차차, 성직자 놈이 여기도 하나 있었군. 성서에 기록된 축복이 모두 실재한단 걸, 이 전투에서 모두 살아남는 것으로 증명하면 자네 앞에서 고해성사를 백 번이라도 더 하도록 하지.] [라미네아 : 그거 좋은데? 받아들여, 아이딘!] [아이딘 : 제독님을 전도하면 아인 전체를 전도하는 것과 똑같을 테니, 역사적 위업으로 남겠군요. 좋습니다.]그 웃음 속에서, 전황은 더욱 심각해져 가고 있었다.
[요한 : 화산 폭발! 바다 위에 주상절리로 길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 기세면 30초 안으로 북쪽 해안에 닿습니다!]온도가 폭증하면서 스팀코어들이 불안하게 떨린다. 스팀코어의 계기판들이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크라우잔 : 저걸 속히 제압해야겠군. 선견 병단을 움직인다. 주상절리로 이어지는 길목 앞에 포진하라.] [요한 : 목표, 가속합니다!] [라미네아 : 가자, 홍련 병단!]삐삐삐삐삐삐삐삐…….
거신 48식 내부에 내장된 심연 측정기가 몇 차례나 회전하더니 결국 터져버렸다.
마우나 로아가 날개를 펼치고, 그 날갯짓 한 번에 용암을 폭발시키며 해수면 위를 활공해오고 있던 것이다.
「Ro…… so Gir Neigalras Purakia(난…… 네이갈라스의 목소리다)!」
마우나 로아가 바다를 절반쯤 횡단했을 무렵, 할바론은 기어봉을 앞으로 내리고 스팀코어 활성화 액셀 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그 동작의 결과로, 대교 지지대를 박차며 뛰어내린 거신 48식이 마우나 로아의 머리를 움켜잡고 주상절리 위에 처박았다.
세상이 붕괴하는 것만 같은 굉음이 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을 진동으로 덮쳤다.
무수한 포탄들이 마우나 로아의 육신을 흔들며 그 외피와 같은 암반을 깨트렸다.
유효한 타격은 주지 못한다.
그러나 그 움직임에 둔화를 주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할바론 : 하핫, 이 자식.]끄득, 끄드드드득…….
[할바론 : 힘이 장사로군그래!]마우나 로아를 지면에 메다꽂은 채 제압하려는 거신 48식이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그 비상식적인 거대 물체들의 힘겨루기는 거신 48식의 왼쪽 팔이 마우나 로아의 아가리에 뜯겨 나가면서 종료되었다.
마우나 로아가 48식을 떨쳐내고 일어서서, 용암을 토해냈다. 그 용암의 장막을 펼쳐 강철함대의 포망을 무력화시킨다.
「Gu Bok a shiaaa───!」
그뿐인가.
그 울음 속에서, 용암들이 어떠한 형체와 생명을 입기 시작한다. 화신급 데몬은 고위급 데몬을 낳는다. 이것이 바로 힘의 분열.
마지막 울음으로 용암이 완전히 고위 데몬으로 빚어지려던 그때였다.
[발브레이 : 누가 함부로 짖어도 된다고 허락했느냐, 이 하찮은 것아.]마우나 로아의 목울대와 주둥이를 황은의 사슬이 수백 겹으로 뒤엉켜 결박했다. 영창이 끊기면서, 자연스레 용암은 생명을 입지 못하고 해수면 위로 떨어졌다.
[발브레이 : 너에게는 특별한 교육이 필요하겠구나.]마우나 로아가 원념의 격노를 터뜨려 발브레이를 공격하려는데, 빛의 창이 그 가슴팍을 꿰뚫고 튀어나왔다.
[아이딘 : 모든 아인들을 전도하려면 사사님께서 꼭 살아 계셔야 합니다.]뇌창, 창천극.
빛의 균열이 그 육신으로 퍼지며 잠시 동작이 둔화된 틈에, 할바론이 기어봉을 끝까지 잡아당겼다.
거신 48식이 격렬히 증기를 뿜으면서 마우나 로아의 꼬리를 잡아당겼다. 그 가슴팍 깊숙이 무릎을 꽂았다.
[모즈나 : 이 무슨 스윗한 아인 기술력…… 화신급 데몬과 육탄전이라고?] [요한 : 주상절리 통로가 해안과 연결되었습니다!] [라미네아 : 델프레드, 멜레느! 저곳으로 부대 전개해! 넘어가는 적들을 막고 토벌전에 개입 못 하게 해!] [델프레드 : 걱정 마라. 바다는 내 영역이나 다름없으니까.] [라미네아 : 너에게 부탁하면서 걱정한 적 한 번도 없어.] [델프레드 : 피차 마찬가지다.]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오랜 친구와 마지막으로 미소를 주고받은 라미네아는 마침내 지면을 박차 몸을 날렸다.
대교 저편, 화신의 머리 위로.
숙적의 존재감 앞에서 미친 듯이 요동치는 극위성검 아라다만텔을 경건히 칼집에 납도했다. 그리고 이렇게 소리 내어 기도했다.
“절원, 대홍련지계(切願 – 大紅蓮地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