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300)
가짜 용사 이야기-300화(300/310)
시즌 3 : 108화
“하아, 하아, 하아…….”
카밀라는 미친 듯이 헐떡이면서도 계속 철도를 따라 달렸다.
라노아 대교 방면으로…….
화산재로 시커멓게 뒤덮인 세상의 저변으로…….
“하아, 하읏, 하아, 아아앗……!”
숨이 차서, 폐가 터질 것만 같아. 기관지가 찢어질 것만 같아.
그래도…….
그런데…….
멈출 수가 없어. 멈추고 싶지 않아. 멈췄다가는, 모두 잃어버리게 될 것만 같아서. 페이쿼리어들이 모두 죽어가는데, 그 죽음은 바뀌지 않는데, 스승님께서는……?
‘빨리.’
앞으로 곧게 뻗어나가는 철도 양옆의 세상은 아직 여름의 폭염에 파먹히지 않아서, 그 풍경이 아름다웠다.
‘빨리, 더 빨리.’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이보다도 더 빨리, 제발.’
이 참혹한 여름이 시작되기 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그 아련한 광휘에 휩싸인 인연을, 시작부터 끝까지 순차적으로.
– 이제부터는 스승님이라고 부르렴, 당신이나 언니가 아니라.
용기(勇氣)의 실천이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줄 아는 자애와 섬김의 자세에서 나온다는 것을 스승님께서는 알려주었다.
– 카미가 왜 처음 본 순간부터 마음에 쏙 들었나 했더니, 나랑 닮은 점이 정말 많구나.
그 말씀은 이 세상의 진리.
그 동행의 날들은 평생의 보물.
– 울지 마, 카미. 앞으로 이런 일이 몇 번이고 있을 텐데. 그때마다 이렇게 울면, 탈수증에 걸려버릴걸? 곧 4월도 끝나고 여름이 오는데 말이야.
글귀가 아니라 목소리와 손짓과 온기로, 창세의 뜻을 명료하게 배워나갈 수 있던 축복.
– 걱정하지 마. 그때 성검이 나보다도 더 상냥하게 널 이끌어줄 테니. 이것 봐! 아라다만텔도 웃고 있잖아. 동의한단 소리야.
스승님, 저 살아남았어요.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스승님과의 약속대로 살아남았어요.
– 언젠가, 카미가 용사가 되고…… 제자를 받게 되었을 때 말이지?
지금, 거기로 가고 있어요.
– 제자에게 이런 질문을 받게 되는 날이 올 거야. 그때, 오늘의 기쁨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렴.
발목을 접질려 철도에 무릎을 찧어도, 철도 사이사이의 돌밭에 넘어져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도.
– 있잖아, 나 언젠가 카미처럼 귀여운 아이들을 낳아보고 싶어.
다시, 다시, 다시, 일어나서.
– 애를 낳고, 그 애들이 말을 배울 때쯤에는 카미를 내 친동생이라고 소개할 거야.
다시, 다시, 다시, 달려간다. 철도의 끝, 수평선이 어둡게 물드는 여름 속으로.
– 그럼 그 아이가 카미를 이모라고 부르면서 따라다니겠지? 귀엽게 아장거리면서…….
창세의 어머니.
창세의 아버지.
제발, 제발, 제 기도를 한 번만 들어주세요. 앞으로는 어떤 기도도 안 할게요.
– 그 아이가 언젠가 이렇게 울먹거리면서 카미한테 이르는 날도 있을 거야. 이모, 엄마가 간식을 안 줘요…….
평생 감사함만 갖고 살게요.
그러니 스승님을 살려주세요. 스승님을 지켜주세요.
– 그때 카미가 몰래 간식을 쥐여주며 이렇게 말해. ‘알지? 엄마한테는 비밀이야’라고.
스승님 대신 제가 두 배로 싸울게요, 스승님이 안 싸우시는 만큼 제가 더 열심히 싸울게요.
– 그리고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해맑게 웃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스승님, 한 번만 살려주세요. 저런 소박한 행복을 한 번이라도 누리게 해주세요…….
내가 보고 배운 용사(勇士), ‘검은 여름’의 종막 (13)
페이쿼리어가 다루는 모든 힘에는 대가가 필요하며, 절원(切願)은 그야말로 미래(未來)가 대가라 할 수 있었다.
빛의 씨앗이 뿌려진다.
꿈의 씨앗이 뿌려진다.
미래의 씨앗이 뿌려진다.
밀알은 땅에 심어져 빛의 뿌리를 내리고, 빛의 싹을 틔우며, 빛의 열매를 맺어…… 너무나도 고결한 붉은빛의 검(劍)으로 돋아난다.
【갓난아이의 얼굴.】
라미네아는 갓난아기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도 못 해본 일이었다.
사람이, 사람의 몸으로 다른 사람을 낳는다는 것은, 용사로서 성검을 쥐기 위해 내려놓아야만 했던 기쁨이었다.
【갓난아이의 온기.】
아마도, 카밀라의 아기 때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싶었다.
【갓난아이의 옹알이.】
마음을 닮은 제자조차도 그렇게나 사랑스러운데, 하물며 얼굴과 몸과 냄새까지 닮은 자식이라면 그 기쁨이 어떠할까…….
【갓난아이의 첫걸음마.】
지금 이곳…….
산 것이 죽어가는 피비린내와 고린내와 누린내와 노린내가 열기가 저 미래와 이어질 수 있는 것일까…….
생명을 먹이는 젖비린내와 온기가 펼쳐지는 미래로…….
【갓난아기가 처음으로 ‘엄마’라고 말하는 날.】
붉은 꽃을, 홍련(紅蓮)을, 붉은 검을 연달아 뽑아서 휘두르고 버리고 또 휘두르면서…….
그 꽃은 미래였다.
자신의 미래를, 현재의 힘으로 바꾸어서 휘두른다. 이 땅에 꽃향기가 흐드러질 수 있는 밀알로 심는다.
【갓난아기와 처음으로 맞이한 봄, 함께 산책을 나가서 맡는 꽃향기.】
그 붙잡을 수 없는 미래의 알갱이들이 강이 되어 뇌리의 들판을 흘렀다.
그 모든 눈부신 미래의 모든 웃음 속에는 카밀라가 곁에 있었다.
라미네아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 라미네아의 맏딸, 마음으로 낳은 딸.
[니븐 : 대단해……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속도지? 화신급의 장갑이 깎여나가고 있어!]제자의 괄목적인 성장을 지켜보면서 라미네아는 숨죽여 울지 않은 밤이 없었다.
헤어져야 하는구나…….
언젠가, 저 아이를…….
이 길 위에 홀로 남겨두고…….
헤어져야 하는 게 운명이라면, 서로 반대쪽으로 흘러야만 하는 그 슬픈 운명이, 언젠가 세계를 둥글게 돌아 다시 만나게 해줄 수 있을까.
[할바론 : 하하하하! 라미네아만 보고 있으니 내 48식이 네놈의 죽탱이를 계속 날리는 거다!]영원히, 함께하고 싶었다.
싸우다 죽는 게 아니라, 늙어서 죽게 되는 날에 그 아이의 눈물과 손의 온기를 느끼며 죽고 싶었다.
해줄 수 있는 말을 모두 하고,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모두 나누고, 모든 마음을 정리한 후에 그렇게 헤어지고 싶었다.
[발브레이 : 나는 난쟁이의 보조에 집중하겠다. 라미네아의 방어는 사미글 사제, 네놈이 전담하도록.]이제 그만, 이 운명이란 것을 받아들이자.
결의를 굳히자.
함께할 수 없으면, 이게 나의 마지막이라면, 이 길 위에 그 아이를 홀로 두고 갈 수밖에 없다면.
[아이딘 : 라미네아 경,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이대로는 놈을 쓰러뜨리기 전에 수명을 모두 소진하실 겁니다!]그 아이가 짊어져야 할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하자. 감사함으로 하자.
【카밀라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울먹거리는 아이, ‘이모, 엄마가 쿠키를 안 줘요’.】
최선을 다하자.
그 아이가 내 삶의 자랑이었듯.
그 아이도 나를 평생의 자랑으로 여길 수 있도록.
【몰래 쿠키를 내어주며 입술에 검지를 세우는 카밀라, ‘엄마한테는 비밀이야’.】
라미네아는 꿈결과도 같은 미래의 파도에서 고개를 들어, 악몽(惡夢)을 바라보았다.
악몽은 화산의 형상이었다.
화산이 두 발과 두 날개와 두 손으로 섭리를 범하고 있었다. 용암을 사방으로 쏟아내는 그것은 도마뱀 군주, 네이갈라스의 화신이자 멸망의 요람이었다.
【얼굴에 쿠키 가루를 잔뜩 묻힌 채로 돌아오는 아이.】
라미네아는 다시 땅을 찼다.
진성검 갈라디엘의 힘을 모방한 극위성검 아라다만텔이, 잠시나마 필멸의 몸으로 하여금 빛의 영역에 들어서는 걸 허가한다.
빛의 영역은 고요하다.
속세의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될 때, 남들이 1초로 사용하는 시간 동안 10초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해낼 수 있게 된다.
【그 모습을 보고는, 카밀라와 미소를 주고받는 자신.】
마우나 로아가 전방으로 용암의 해일을 쏟아낸다.
광범위하게 절망을 흩뿌리고는 있으나, 라미네아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시위 행동에 불과하다. 그리고 라미네아는 혼자가 아니다.
거신 48식과 황은의 사슬이 마우나 로아의 주둥이를 뒤틀어, 용암이 닿지 못하는 빈틈을 제공해 주었다.
일섬(一閃).
그 틈새로 파고들며 붉은빛의 섬광을 흩뿌려, 화신의 육체를 깊숙이 범한다.
일보(一步).
다시, 나아간다.
나아가서 미래를 뽑아낸다.
검의 형상으로 피어나 있던 미래가 손에 꽉 잡힌다.
【아이가 처음으로 학교에 가는 날.】
【아이의 첫 수업 참관.】
【아이의 첫 체육회.】
【함께 도시락을 준비하며 샌드위치의 맛을 보는 카밀라.】
그 모든 미래를, 꿈꾸는 것만 허용될 뿐 이루는 것은 결코 허가되지 않는 미래를.
모조리 제물로 바쳐서.
왕의 화신의 육신을 베고 저미고 좌우간 계속해서 베고 저미고 또 베고 저미고 또 베고 저미고…….
‘아아, 역시…….’
수명을 과소모하는 아라다만텔이 대리자와 공명하며 맹렬한 열량을 토해낸다.
그것은 빛의 회오리.
그것은 빛의 꽃바람.
그 일섬과 일보의 반복은 붉은빛의 포화로 마우나 로아를 휘감았는데, 그 궤적에서 빛이 넘쳐나며 점차 커져간다.
‘나는 죽고 싶지 않구나…….’
화신의 옥체를 가로지르는 궤적들은, 마침내 제어할 수 없는 균열로 각인되었다.
찢어지고, 갈라지고…….
그 강대한 힘과 중량을 감당할 수 없어서 앞으로 쓰러지려는 마우나 로아의 모습이 꿈결처럼 고요하게 보였다.
– 스승님도 죽지 마세요, 꼭, 다시 만나요.
그것이 작별 인사였다니, 겨우 그것이…… 서로를 마지막으로 보며…… 목소리를 나눌 수 있던…… 순간이었다니.
그 짧은 순간이…….
그 너무나도 짧던 한순간이…….
이 세상에서 가장 눈부시게 시작되었던 인연의 덧없는 마침표일 수밖에 없었다니…….
‘돌아가고 싶어. 돌아가서, 카미를 다시 한번 보고 싶어. 한 번이라도 좋으니,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꼭 안아주고 싶어…….’
마우나 로아의 무릎이 주상절리의 지반을 때렸을 때,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꿈결의 적막을 깨뜨렸다.
스스로 잘 안다.
스스로의 몸이기에, 누구보다 잘 안다. 이제 자신은 살 수 없다는 것을.
제자를 만날 수 없단 것을.
마우나 로아의 용암, 즉 왕의 심연이 복부 깊숙이 침투해 꿈틀거리고 있었다. 초고속 재생으로도 이걸 회복시키는 것은 불가능.
‘끝이야…….’
마우나 로아는 힘의 집합체, 그 소멸은 곧 압축된 힘의 폭발과도 같다.
요컨대 용암의 격동(激動).
온도를 폭증시키고 바다를 요동시키고 라노아 대교를 순식간에 허물어뜨리는 용암의 격류가 세상을 붉게 뒤덮었다.
‘아이딘…….’
라미네아는 고개를 들었다.
붕괴하는 대교 어딘가에 매달려, 이쪽으로 손을 내뻗으며 무어라 미친 듯이 소리치고 있었다.
뇌향심공명진이 마우나 로아가 토벌되는 순간 뇌향이 혼절하며 끊겼기에, 아이딘의 마음은 전해지지 않고, 또 이쪽의 마음도 전할 수 없겠지만, 목소리를 내서라도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고마워.”
꿈을 꾸게 해줘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제자와 함께 그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며, 그 아이 곁에서 눈을 감게 되는…….
너무나도 멀고…… 멀기에 더욱 눈부신, 그런 봄을 향한 꿈을.
“……!”
아이딘을 향해 마지막 미소를 지어 보인 라미네아는 쓰러지면서 아라다만텔을 떨어뜨렸다.
붉은빛 검광이 지면을 튕긴다.
그 옆을 새하얀 칼집이 함께 나뒹굴 때, 아이딘이 그쪽으로 자신의 몸을 날렸고.
“라미네아 경!”
동시에 그 위로 용암의 파도가 쏟아졌다.
“이런 미친, 귀쟁아!”
“알고 있다!”
반파된 48식의 어깨에서 용암의 폭주를 억누르느라 피를 쏟던 발브레이였으나, 어떻게 사슬 하나를 따로 뽑아내 라미네아와 아이딘 쪽으로 날렸다.
촤르르르르륵……!
일대를 휩쓸어서 무언가가 확실하게 묶였다는 반동이 온 순간, 용암에 사슬이 녹아내리기 전에 다급히 사슬을 끄집어냈다.
“!”
“!”
발브레이와 할바론의 눈동자가 전율했다.
사슬이 낚아채서 가져온 것은, 단 두 개뿐이었다. 극위성검 아라다만텔과 그 칼집.
찾아냈었어야 했을 두 사람은, 그날 이후, 그 주검도 종적도 자취도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제기랄…… 어디로 간 거냐, 나와라!”
“난쟁이, 이제 뒤로 빠져야 한다. 이대로라면 네 장난감도 용암에 파묻히게 될 거다!”
“그 멍청이들을 두고 어떻게 빠지라고! 나와! 둘이 쌍으로 내게 고해성사를 시킨다고 하지 않았나! 장난치지 말고 나오란 말이다, 이런 빌어먹을 놈들……!”
“아인답지 못하게 굴지 마라. 그 둘은 죽었지만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너는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할바론!”
“헛소리, 헛소리 집어치워! 귀쟁이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라더니, 진짜였군! 그 둘이 죽었을 리가 없잖느냐! 이 나한테 고해성사를 시키겠다고 말한 놈들인데!”
그렇기에 역사는 끝내, 그 전후 결과를 이렇게 기록할 수밖에 없던 것일까.
– 홍의 사제, 아이딘 : 전사(戰死).
– 라미네아 알터 아라다만텔 : 실종(失踪).
먼 훗날에, 젊은 날의 혈기가 가라앉고 한 종족을 대표하는 영웅으로서 냉정한 관록을 갖게 된 후에야…….
할바론은 다시 만나게 되었다.
친구의 얼굴을 가지고, 친구의 표정을 가지고, 친구의 검을 가지고 나타난 존재를.
– 감사합니다. 스승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할바론은 첫 만남의 순간에 바로 그 정체를 알아보았다.
그래, 이게 너희 아들이구나…….
설령 그때 알아보지 못했더라도, 마지막 순간에는 확실히 알아보았을 것이다.
그 마지막 미소가…….
제 어미의 마지막 미소를 빼닮아 있었으니까…….
여름이 끝나고 영원한 봄이 시작되던 그해, 할바론은 고해성사를 마치고 신앙을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