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301)
가짜 용사 이야기-301화(301/310)
시즌 3 : 109화
모두가 멍하니 그 기적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폭주하던 용암이 해수면 밑으로 점차 가라앉고, 수평선 전체에 휘몰아치던 모래바람이 서서히 사그라진다.
라노아 대교는 마우나 로아의 폭발과 함께 붕괴되었으므로 마족이 대하를 넘을 방도가 없었고, 또 통합의 구심점도 사라졌으니 놈들이 협력할 리 만무했다.
“……!”
“……!”
“……!”
살인적인 열량의 절망 속에서.
저 깊고도 뜨거운 심연 속으로 끌려가다가 수면 위로 끌려 나온 것처럼.
어떠한 호흡도 이루지 못하던 장병들은, 화산재의 하늘이 갈라지고 태양의 빛줄기가 비쳐든 다음 순간, 일제히 울음을 터뜨렸다.
“우, 우, 우와아아아아아아……!”
“이겼어, 이긴 거야……!”
“겨우 20만으로 화신급 마우나 로아를 저지하고 마족의 진군을 막아냈어……!”
서로 얼싸안고 우는 이들도 있는 반면, 멍하니 서 있는 이들도 있었다.
홍련 병단…….
주상절리와 연결된 해안을 사수하다가 백 명도 채 남지 않고 전멸한 병단의 생존자들은 거신 48식의 귀환만을 기다렸다.
혹시, 몰라서…….
혹시, 모르니까…….
니븐 알터 지에르다와 모즈나 알터 솔랑도 무장을 허겁지겁 던져놓은 채로 달려왔다.
“아오 젠장, 빨리 좀 오지!”
“모즈나, 화신급 토벌 최고 수훈자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그게, 아니, 평소에는 그리 스윗하더니 중요한 순간에 저리 굼뜨니까 그렇죠…….”
반파된 거신 48식이 바다를 헤치며 나아왔다.
스팀코어가 폭발하면서 마지막 동력도 상실한 거신은 해안가에 주저앉았다.
할바론은 그 자리에 있는 이들보다 더 멍한 표정으로 조종석에서 비틀거리면서 나왔다.
“제독님!”
“제독님, 우리 단장님은!”
“아이딘은요!”
할바론은 아무 대답도 주지 않았다. 거신의 어깨에서 황은의 사사, 발브레이가 뛰어내렸다.
“사사님!”
“사사님, 저희 단장님은……?”
발브레이가 단호한 고갯짓으로 현실을 짚어주었다.
“라미네아는 자신의 길을 마치고, 마지막 여정을 떠났다.”
“예?”
“그 위대한 용사를 곁에서 섬길 수 있던 것을 너희 평생의 자랑으로 여겨라.”
홍련 병단의 장병들이 눈을 끔뻑이며 시선을 주고받았다.
죽었다고……?
그 라미네아가……?
그 현실을 빠르게 받아들인, 어쩌면 그때 미소를 주고받은 순간, 이렇게 될 것 같았는데, 델프레드가 다리가 풀려 꿇어앉았다.
“스승님…….”
요한이 조심스레 다가와 그 어깨에 손을 얹었으나, 제자의 손 또한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 요한은 정말 너무 귀엽다니까.
라미네아는 그냥 단장이 아니었다. 병단의 어머니와도 같이, 모두를 아울러 보살피던 존재였다.
– 나중에 요한처럼 똘똘한 아들을 낳아보고 싶을 정도야.
그 사람과 함께라면, 병단의 일원은 지옥불 속까지도 걸어갈 수 있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마침내, 델프레드의 반응을 따라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어버린 병사들이 자리에 주저앉아 땅을 치며 통곡하기 시작했다.
“단장님, 어찌…….”
“이렇게 가시면 우리들은…….”
모즈나가 몸을 휘청거리다가 쓰러질 뻔하자, 니븐이 그 몸을 지탱해 주었다.
“모즈나…….”
“또, 또 이러네? 하, 하하, 왜, 왜 항상 이런 식으로…….”
카밀라가 라노아 대교 전선에 도착한 건 그즈음이었다.
온몸에서 땀이 비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폐가 터질 듯이 호흡을 쌕쌕거리고 있었다.
카밀라는 양손으로 무릎을 잡고 숨을 돌리다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바로 옆에 서 있던 고르고티아를 발견했다.
“야, 고르고티아, 이긴, 이긴 거지? 이겼지? 스승님은? 네 스승님, 그러니까, 니븐 님, 말고, 내, 내 스승님……!”
다그치듯 묻고 있었으나, 그건 사실 물음이 아니라 사실 확인에 가깝지 않았을까.
모든 것이…….
모든 정황이…….
모두가 울고 있고, 고르고티아는 호명된 순간 눈동자를 떨더니 울먹거리며 입을 열고, 아무도 시선을 맞추지 못하는 이건.
“마지막에, 마지막에…… 화신급 데몬을 쓰러뜨리시면서…….”
스승님은 어떻게 되셨고, 또 어디에 계신 것일까.
고르고티아는 말을 흐렸지만.
그 말이 가리키는 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곳으로 달려오는 내내 어떻게 떼어낼 수 없던 불안이 현실의 옷을 입는 순간이었다.
“하, 하하, 하하하…….”
왜 웃음이 나왔을까. 삶의 모든 것이 부서진 그 순간에. 삶에 모든 것을 주었던 것이 사라져버린 그 순간에.
스승님은 먼저 떠나신 것이다.
손이 닿지 않고, 말이 닿지 않으며, 칼로써 세상을 붙들어 맬 필요가 없는, 이 세상이 아닌 세상의 저편으로, 에쉬르와 함께.
“핫, 아하하, 아하하하핫, 하하하하하하하…….”
울 기력이 없는데, 몸은 자꾸만 소리를 내려 해대서, 그냥 있는 대로 내뱉더니 그러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먼 기억…….
이제는 함께할 수 없으니 공유할 길이 없는 추억의 지평선에서, 항상 들려오는 스승의 웃음소리가, 왜 자신의 입에서 나오던 걸까.
“하하하, 하, 하하, 하, 하…….”
서로 영원히 헤어지게 되는 순간, 저 소리를 들려주고 싶어서 스승님은 항상 그렇게 맑게 웃으셨던 것일까.
울지 마, 카미…….
자, 이렇게 웃어보렴…….
카밀라는 스승처럼 될 수 없었다. 죽는 날까지, 그 무엇 하나도 제대로 닮아가지 못했다. 스승님은커녕 에쉬르의 삶도.
“아, 아아, 아아아, 아아…….”
에쉬르와 라미네아의 비보를 받은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카밀라는 그 두 사람처럼 웃을 수 없었다.
해협 한가운데…….
용암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는, 묘비 하나 남기지 못하고 죽은 스승에게로 향해 달려가던 카밀라는 니븐에게 양팔이 붙들렸다.
“카밀라, 진정해! 카밀라! 너까지 죽게 할 수는 없어. 너까지……!”
아직, 저 너머의 세상으로 갈 수 없는데…… 가고 싶은 마음의 응어리들은…… 순식간에 쌓이고 또 넘쳐나서…….
양팔이 단단히 붙잡힌 채…….
손발을 미친 듯이 휘젓고 또 뻗는데도…… 스승이 죽은 바다가 아닌 먼 내륙 쪽으로 몸이 끌려가고…… 울음이 되지 못한 탄식만이 거듭 흘러나왔다.
“아, 아아, 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프리퀄의 에필로그, 나, 당신과 같은 용사가 되어 (1)
한나 루드윅은 기원력 1676년 2월 20일 아침에 벨르윈 저택에서 맏딸의 비보를 접했다.
아침의 햇살 아래.
발칸 벨체스터와의 혼담을 마무리하던 차녀 라디스 루드윅은 처녀의 맑음과 풋풋함이 드러나고 있었다.
저택 모두가 그걸 훔쳐보며 웃고 또 기대하던 차였다.
머지않아 큰아가씨와 카밀라도 돌아올 텐데…… 저택이 정말 시끌벅적해지겠구나…….
“용검제에서 우승했건만 부상을 돌보느라 전장에 나가지 못한 일은 가문의 수치입니다. 돌아와서 마저 이야기하겠습니다.”
발칸이 그렇게 혼담을 마무리하려던 그때, 그리핀 기수가 돌풍을 일으키며 저택 들판에 내려앉았다.
그 순간, 라디스의 찻잔 손잡이가 갈라지며 차가 그 치마 위로 쏟아졌다.
시녀들이 다급히 작은아가씨의 몸을 돌볼 때, 가문의 수호 기사 비몬테가 다가가자 그리핀 기수가 급보를 전해주었다.
“무슨 일인가?”
“아드리온 대륙 소실, 이제 법황청에서 아드리온 대륙을 마계(魔界)로 지정하였습니다.”
“무엇이? 그러면 장병들은?”
“라미네아 알터 아라다만텔의 활약으로 화신급 마우나 로아 저지 성공, 마족들은 한동안 대륙에서 나오지 못할 겁니다. 자세한 내용은 그 안에 있습니다. 저는 갈 곳이 많아서 이만.”
비몬테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저택 테라스에 있던 한나 루드윅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었다.
한나는 염동력 마법으로 그 급보를 2층 테라스로 끌어 올린 후, 급히 그 봉인을 뜯었다.
봉인을 뜯는데, 손톱 끝이 갈라졌다. 그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한나는 휘청거리다가 쓰러졌다.
“마, 마님!”
“어, 엄마!”
자식은 부모를 잃으면 땅에 묻는다는데…….
자식을 먼저 잃은 부모는 그걸 어디에 묻어야 한단 말인가…….
자식에게 부모는 삶의 일부이지만, 부모에게 자식이란 삶의 전부인데…….
“엄마, 대체 왜 그래? 여기 뭐가 적혀 있는데?”
한나와 똑같은 절망을 목도한 라디스도 풀썩 주저앉았다.
입가가 웃는 꼴로 일그러졌다.
체념과 공포의 소용돌이로 의식이 빨려 들어가는 가운데 라디스는 생각했다.
‘뭐가 그렇게나 당황스러운데?’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잖아.
– 실종(失踪).
어린 시절, 언니가 저택을 떠나던 그날부터.
– 라미네아 알터 아라다만텔, 실종(失踪).
언젠가는 이렇게 되리라고, 알고 있었잖아.
– 라미네아 알터 아라다만텔, 마우나 로아 화신 저지 작전 직후 실종(失踪).
그래, 알고 있었지, 알고는 있었는데…….
– 라디라디! 언니는 용사가 되러 갈 거야. 잘 지내고 있어! 언니 몫까지 엄마 속 더 많이 썩히면서!
그 웃음소리가…….
‘언니, 그러면…….’
그 항상 맑고 순수하던 그 웃음소리가…….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 거야……?’
이명처럼 정신없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몸이 휘청 흔들리더니 라디스 또한 모로 쓰러졌다.
‘아버지처럼…… 언니도……?’
* * *
마법맹 특무과는 법황청 직계 명령을 받는다.
‘검은 여름’이 이어지던 기원력 1671년부터 1676년까지, 아크라드 대륙의 사계절 또한 기괴하도록 무더웠다.
흑교회 조직이 서캐처럼 거듭 출몰해, 하르바도니아ㆍ트라이덴트 포인트ㆍ적색산맥 등 <잊혀진 왕들>과 그 권속이 봉인된 장소를 범하려 했다.
“너희들도 참 질리지도 않네. 니들 사실 심연이고 뭐고 상관없이 그냥 나 만나고 싶어서 이러는 거지? ‘팬이에요, 우리 소통해요~’ 이런 느낌으로?”
자발 루드윅은 그 기록되지 않은 혈전의 중심에 서 있었다.
“흐, 흐흐흐흣, 흐하하하하! 잔뜩 여유 부려놔라. 대마법사 나부랭이 놈.”
“지금보다 더 부려달라고? 허허, 취향 참 독특하네. 내 부하들은 이 정도로도 넌더리를 내는데. 마음에 들었어. 너, 내 부하가 되라.”
“곧 별들의 움직임이 정립되고, 그분의 표식(表式)을 받은 이들이 나타나…… 왕들을 깨우고 세상을 원래대로 되돌리리니.”
“과장님, 저 자식 시간을 끌던 겁니다! 술식이 발동되고 있어요!”
“절대 나 혼자 가지 않는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왕들께 너희 모두를 제물로─!”
“─응, 벨 퀴리어스. 다 무효화야. 무지개 반사 뿅뿅뿅.”
………………….
…………………?
“미, 미친, 마, 말도 안 돼! 어디로 간 거지? 왜 사라진 거냐! 3개월 동안 준비한 결계인데!”
“네가 3년 공부할 내용을 난 3분이면 끝내. 일단 네 머리통부터 정립시켜 줘야겠다. 빵.”
최고의 배틀메이지들로만 선발되는 특무과의 동료나 선후임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죽어갔다. 기원력 1674년부터 자발은 특무과 과장이었다.
“과장님, 법황청에서 긴급 연락이 왔습니다.”
“또 임무 할당이야? 아니 씨, 이럴 거면 나 특무과 안 왔어. 그냥 전장으로 나갔지. 내 누님과 동생이 거기 있는데.”
“그것이……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자식이 무게 잡기는. 줘봐, 인마. 뭐 월급이라도 깎겠대?”
특유의 장난기를 부리며 긴급 전문을 건성으로 읽던 자발의 표정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자발에게 그 전문이 전달되는 동안 내용을 확인했던 특무과 과원들은 과장의 침묵을 감히 깨트리지 못했다.
자발은, 함께 싸우지 않고 먼저 전장을 떠나갔던 이들과, 전장에 남아서 싸우다 죽어간 이들의 경계를 멍하니 생각했다.
‘용사는 무엇인가…….’
용사는 꼭 죽어야 하는가…….
용사는 무엇이고…….
용기는 무엇이며…….
어째서 세상에는 용사와 용사가 아닌 자가 따로 있어야만 하는가…….
* * *
아드리온 대륙 소실 및 승전의 소식은 4월에 대륙 전체로 퍼졌다.
전사자들을 향한 애도의 물결은 ‘승전’과 ‘종전’의 그림자 속으로 금세 묻혔다.
아크라드 대륙은 전쟁으로부터 멀리 비껴서 있었고, 그들에게 전쟁이란 무거운 징세의 원인일 뿐 일상을 해치는 존재가 아니었다. 부모가 전쟁터로 나간 이들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제 총동원령도 해제될 테니 좀 배불리 먹겠구먼.”
“여행 준비도 할 수 있겠어요.”
“아빠도 이제 돈 많이 버셔서 돌아올까요?”
푸른 도시 <테르베노플>에서 이 비보와 인류의 행태를 고루 접한 황룡 요슈하르의 슬픔은 고요했다.
요슈하르는 진실로 슬퍼했다.
나 또한 그곳에 가 있었어야만 했거늘, 그랬더라면 결말이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일이거늘, 12세기의 그 모든 싸움들처럼…….
항상…….
장작의 아이들이…….
이런 식으로 죽어 가는구나…….
법황청 추기경단은 반드시 네 명의 추기경이 법황청 천궁에 남아 광룡의 옥체를 돌봐야만 했다. 추기경들이 심연을 제하지 않는다면 광룡은 순식간에 서거할 터였다.
이런 방관이 정녕 충(忠)인가…….
이딴 삶이 정녕…….
빛을 선도하는 길인가…….
12세기 동란기에 웃으면서 법황청을 떠나던 리스타 알터 쉬르팽과 라미네아 알터 아라다만텔의 미소가 뇌리에서 겹쳐졌다.
– 아저씨, 다녀올게요!
– 어르신, 다녀오겠습니다!
용족에게는 편애의 감정이 없으니, 이 유전적 법칙엔 모든 이들을 아울러 사랑하라는 카렌덴의 훈시가 깃들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슈하르는 리스타를 통해 편애란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 알게 되었다.
리스타는 15세기에 미리아로 환생했고 후손을 남겼으니 그 끝에 라미네아가 서 있었다. 라미네아는 조상을 빼닮아 있었다.
– 아저씨.
그 외형부터.
그 성격과 삶까지.
– 어르신.
요슈하르의 몸이 침묵 속에서 술렁거렸다.
그날, 요슈하르는 오래 울었다.
이튿날 새벽에 요슈하르는 생환자들이 돌아올 때까지 대륙 모든 장소에서 가무음곡을 금하는 시행령의 초안을 법황청으로 보냈다.
추기경단에서 답신이 돌아왔다.
시행령을 만장일치로 승인했으며 시행안을 점검한 뒤 공표하겠다는 답신이었다.
* * *
인류 생환자 2만 명을 수용한 강철함대는 전후 아드리온 대륙 해역에서 벗어났다.
함대는 검은 깃발을 걸어 장송의 뜻을 드러냈다. 페이쿼리어들의 시신은 이름 없는 관에 극위성검과 함께 실렸다.
강철함대는 테르쉬 열도의 녹색 도시 <카르시코>를 경유해서 돼지기름과 장작 따위를 보충했다.
정박할 때, <카르시코> 시장이 준비해둔 의장대가 조포(弔砲)로 함대를 맞았다.
함대는 <카르시코> 군악대의 장송곡 속에서 푸른 도시 <테르베노플>로 북상 항로를 잡았다.
<테르베노플>에서 요슈하르가 생환병들과 페이쿼리어들의 관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