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302)
가짜 용사 이야기-302화(302/310)
시즌 3 : 110화
열아홉 살이 되는 해의 4월은 아크라드 대륙에서 맞았다.
바다는 푸르게 부풀어 있었다.
이제, 아드리온 대륙은 마계(魔界)로 공인되었다. 두 대륙 사이에 놓인 테르쉬 열도가 이제 인류의 최전선이었다.
푸른 도시 <테르베노플>에서 성대하게 준비한 개선식에서 웃는 낯을 가진 자는 아무도 없었다.
도시 성당의 종탑이 일제히 울리며 위로해주는 추모식에서 다시 흑, 하고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져 나왔을 뿐이었다.
사흘 동안의 일정을 끝마치고 생존자들은 저마다의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그렇게 생존한 2만 장병은 뿔뿔이 흩어졌다.
카밀라라고 다를 건 없었다.
고향…….
벨르윈 저택…….
스승의 비보를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막막했으나, 신문을 통해 이미 그 소식은 전해져 있었다.
저택의 ‘가족’들은 단정하게 정돈된 슬픔으로 카밀라를 따스하게 맞아주었다.
장례식을 준비한 뒤 카밀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카밀라…… 너와 다시 이렇게 만나게 되니 이 기쁨이 한량이 없구나. 창세의 어머니이시여, 감사를 받으소서.”
그래도 슬픔의 기척을 지울 수는 없어서, 당주 한나 루드윅은 머리가 전부 새하얗게 세어 있었다. 나중에 알기로 시력조차 크게 감퇴해 사물의 윤곽만 간신히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까미까미,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키가 어쩜 이리 컸대? 완전 숙녀가 다 됐잖아!”
라디스도 짐짓 활기차게 카밀라를 맞아 주었으나, 극심한 충격으로 몸이 심히 병약해져 있었다.
자발은 잠시 실어증을 앓았다.
대마법사가 된 일로 얼마나 으스댈지 걱정했건만, 소리 없는 미소로 카밀라를 맞아주었고 또 소리 없는 울음을 식장 앞에서 한없이 흘렸다.
“미안하다, 카밀라…….”
“응?”
“누님이 돌아가실 때…… 내가 곁에 있었어야 했는데, 그렇게 힘든 일을, 너 혼자서 감당하게 해서…….”
“그게 왜 오빠 잘못이겠어요. 사과하지 마세요.”
“부탁이야. 사과하게 해줘…….”
자발은 카밀라의 어깨를 잡고 고개를 떨군 채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의 떨림이, 그 깊이가 절절히 전해져 카밀라도 메마른 줄 알았던 울음을 다시 흘렸다.
장례식은 가문 내에서만 비공식적으로 사흘 동안 진행되었다. 페이쿼리어는 가족이 없고, 또 죽지 않기 때문이다.
“카밀라…… 나도 전장으로 가려 했는데, 설마 그런 일이 생길 줄은.”
라디스와 혼례가 결정된 발칸 벨체스터가 칸니야 벨체스터와 함께 장례식에 참석해 위로를 건넸다.
벨체스터는 이제 성년이었다.
청년이 가지는 굳건한 혈기와 의기가 그 몸에서 어른스럽게 흘렀는데, 못 본 사이에 참으로 듬직해졌구나 싶었다.
“오빠 존나 약하잖아. 와봤자 바뀌는 거 아무것도 없었을 테니까 신경 쓰지 마.”
“…….”
“아, 또 왜 그래? 아까 자발 오빠도 그러더니만. 그런 표정 좀 짓지 마, 다들. 자꾸 그러면 스승님이랑 내가 애써서 싸운 보람이 없잖아?”
장례식이 끝난 뒤, 당주 한나 루드윅은 가족 모두를 모은 자리에서 카밀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카밀라, 용사가 될 필요 없다. 그 참사를 겪고도 용사가 될 마음이 남았을 리 없어. 루드윅의 성(姓)을 받고 내 곁에 있거라. 아무도 널 비난하지 않을 테야.”
발칸 벨체스터도 말을 보탰다.
“루드윅보다는 벨체스터의 성을 받는 게 더 법적으로 문제가 없이 빠를 겁니다.”
카밀라가 고개를 저었다.
“저요…… 안 믿기시겠지만 진짜 행복했어요. 분명 삶에서 불운했던 시기가 있긴 했어요. 하지만 스승님을 만나고 난 뒤로, 매일이 즐겁고 기대되고 행복했어요. 이대로 죽어도 좋을 만큼 행복했어요.”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누군가를 빛으로 만나게 되는 행복도 알지 못하고…… 마족한테 죽게 된다면.
그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다.
“저는 스승님처럼은 못 될 거예요. 말도 잘 못하고, 아이들도 잘 못 웃겨주죠. 하지만 칼은 잘 써요. 엄청, 엄청 열심히 배웠으니까. 그러니까…….”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게.
사람들이, 서로에게 빛으로 다가갈 수 있게.
“저, 용사가 될래요.”
이대로 용사를 포기했다가는.
지금까지 용사의 길을 가르쳐준 스승님을, 선배님들을 뵐 면목이 없다.
나는 그분들의 삶을 곁에서 보고 배웠으니, 그분들과 같은 세상의 장작이 되어야 한다.
“각오는 되어 있어요. 그래서 라디스 언니랑 발칸 오빠가 자식을 낳고, 또 자발 오빠나 칸니야가 각자 가정을 꾸리고, 한나 아주머니가 그런 손주들을 마음껏 안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게요.”
“카밀라…….”
“스승님은…… 지켜드리지 못했지만…… 여기 있는 모두의 일상(日常)은 반드시 지킬게요…….”
카밀라는 자신의 입에서 나가는 말이 곧 울음으로 얼룩지는 위기를 느꼈다.
얼굴 주름을 꽉 붙들었다.
어떤 소리도 새어나가지 않게 성대를 긴장시켜 수축시켰건만, 두 눈에서는 물방울이 뜨겁게 쏟아지고 있었다.
“스승님과…… 똑같은…… 용사가 되어서…… 제가, 여기 있는 모두의 일상은…… 반드시…… 지켜낼 테니까…….”
한나가 안 보이는 눈으로 더듬더듬 다가와 카밀라를 끌어안더니 조용히 울었다. 라디스가 그 위로 팔을 얹고는 함께 울었다.
자발은 고개를 떨군 채 울었다.
그 숨죽인 울음들은 깊게 스몄고 오래도록 끝나지 않았다.
프리퀄의 에필로그, 나, 당신과 같은 용사가 되어 (2)
아크라드 대륙 남단에서는 해안이 드넓게 펼쳐지는 모양새가, 푸른 해수면 위로 새하얀 수채화를 펼쳐낸 것만 같았다.
바다의 향기가 흘러온다.
바다에 내린 빛은, 시간이 여명인지 황혼인지 알 수 없도록 몽롱했는데…… 그 모든 것이 생명으로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음……?”
라미네아가 오랜 잠 끝에, 눈을 뜬 곳은 바로 그런 장소였다.
내가 죽은 건가?
그럼 이곳은 낙원인 건가?
옆구리부터 등을 침식하던 심연(深淵)이 사라진 걸 보니 분명 그러할 텐데, 뭔가 이상했다.
배가 불렀다…….
배 속에서 눈물겨울 정도로 힘차게 맥동하는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는 게 아닌가. 임산부들은 본래 죽으면 태내의 아이와 함께 천국으로 온단 말인가?
“마우나 로아를 토벌하고 전쟁은 끝났습니다. 역사가들은 그 전쟁을 ‘검은 여름’이라고 명명했더군요. 어찌나 적절한지 처음 들었을 때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언제부터 옆에 있던 것일까.
아니, 의문보다는 오히려 옆에서 그 목소리를 듣고 그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기쁨이 우선이었다.
“아이딘.”
형체는 분명 아이딘이었으나, 그 육신으로부터 심연(深淵)의 기운이 짙게 느껴졌다.
“괜찮아?”
불안한 마음에 그쪽으로 손을 뻗자, 아이딘이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손을 내저었다.
“왕의 심연을 억누르는 중입니다. 아직은 익숙하지가 않으니…… 혹시 전염될지 모르니 한동안은 가까이 오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왕의 심연이라니, 너 멀쩡했잖아. 설마 당한 거야?”
“…….”
“너 설마…….”
“만약 그때 당신 대신 죽어야 했었더라면 기꺼이 그렇게 했을 겁니다. 이 정도는 대가가 싼 편입니다.”
“대체 어떤 기적을 썼기에…… 그러지 마! 다시 돌려줘!”
“육신이 약하면 약할수록 왕의 심연의 침식 속도도 느려집니다. 저는 거기에다 사제로서 심연 내성이 남들보다 뛰어나죠. 당신이 1년 겨우 버틸 것을 10년은 거뜬히 버틸 수 있을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고……!”
“뇌향 각하께서 말씀해주신 겁니다.”
“뇌향? 넨 고모님이?”
“그 순간에 저희를 구해주셔서 이곳으로 은밀히 데려다주신 것도 뇌향 각하이십니다.”
아이딘이 고갯짓으로 저편, 이 오두막의 창문 너머…… 황혼의 빛이 아스라이 내려앉는 절벽 위를 가리켰다.
“넨 고모님.”
라미네아는 홀린 듯이 몸을 일으켰다. 다급히 그리로 가려 했으나 가질 못했다.
배에 한 생명을 품고 있다는 것이, 그 무게가 성검과 비교하면 조촐할 정도로 가볍건만, 어찌나 거동이 진중해지는지 그런 생명의 소중함에 새삼 놀랐다.
뒤뚱거리는 듯한 걸음걸이로 오두막을 나서, 그 절벽으로 나아갔다.
온몸을 차갑게 적시는 바다의 바람과 따스하게 적시는 황혼은 온몸이 떨릴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태내의 아이도 기분이 좋은지 그 발길질이 느껴졌다.
절벽 위 바위 앞에 꿇어앉아, 기도를 드리고 있던 존재가 몸을 일으켰다.
「라미네아. 내 사랑하는 딸아.」
낡은 삿갓 아래, 십자 무늬의 눈동자가 자애롭게 빛난다.
「네가 깨어나기를 창세의 빛께 거듭 간구하고 또 간청하였더니 이제 그 기도를 들어주셨구나.」
“어떡해…… 이제 몸은 좀 괜찮으세요?”
「이 또한 창세의 은혜다. 검을 휘두를 수는 없겠으나, 예전처럼 아이들의 앞길에 빛을 비추어 주지는 못해도 그 등을 밀어주는 것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아, 고모님…… 그러면 엘디아 봉인 작전은 성공한 건가요?”
「그 아이들이 해냈다. 네 제자, 카밀라도 큰 공을 세웠다.」
카밀라, 내 제자…….
그 문자가 언어를 이루기도 전부터, 어찌할 수 없는 떨림이 전신을 뒤흔들었다.
왜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시상이 희뿌옇게 부서지는 것일까.
“카미는 어디에 있나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죠? 제가 여기 있는 걸 알고 있나요?”
뇌향의 눈매가 일그러지며 울음의 모양새를 이루었다. 그 그늘로부터, 고요하게 다가드는 슬픔의 그림자를 보았다.
「너는 칼의 세계를 떠나고자 하였다. 그 길 위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느냐? 이제 그만 이 살(殺)의 나선 위에서 내려가 쉬어라. 그것이 나의 뜻이다.」
“고모님, 카미는…….”
「네가 죽었다고 알고 있다.」
“네?”
「그 아이는 솔직한 아이다. 네가 살아 있단 걸 알면, 그 표정과 태도의 변화로부터 세상 전체가 네 생존을 알게 되겠지. 그러면 너는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나아갈래요. 나아가야죠! 카미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네 태중의 아이를 끊어내야 한다고 해도 말이냐?」
“……!”
「페이쿼리어는 금혼 서약을 한다. 너는 필두 페이쿼리어로서 지엄한 법도로 후임들을 선도했어야 하나, 도리어 군율을 범했으니 그 처벌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괜찮으냐?」
영혼의 일부와도 같던, 마음으로 낳은 자식과 떨어져서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만나면…… 안 된다고요?”
라미네아는 허리춤을 만지작거렸다.
카미가 준 선물…….
카미가 내게 주었던…….
그 소검은 뇌향의 품에서 나왔는데,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가 라미네아에게 전달해 주었다.
「그래, 만날 수 없다.」
그 성장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이렇게나 선한데…….
몸으로 낳는 몸의 자식을 위해 마음으로 낳는 자식을 버려야만 한단 말인가…….
함께 봄을 지내고 여름을 지새우고 가을을 걷고 겨울을 보내던 날들이, 카밀라의 몸과 마음의 성장이 떠올랐다.
– 스승님.
– 스승님?
– 스승님!
카밀라는 처음부터 자신을 스승이라 부르지 않았다.
세상에서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스승이라는 말을 듣기까지 너무나도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 긴 시간이 깨어졌을 때, 라미네아는 가슴에 사무치는 울음을 느꼈다.
만약…….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옹알이를 떼고…….
말을 하게 돼서…….
엄마, 하고 처음으로 말했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렇기에 카밀라는 단순한 제자가 아니라 마음으로 낳은 자식이었다.
마음으로 기르면…….
그 마음을 닮아오는…….
그렇기에 자신은 카밀라의 어머니였고 카밀라는 자신의 딸이었다. 아직도 심금을 울리는 스승님이라는 울림 속에서 라미네아는 울기 시작했다.
“대체 저는…… 저는 어떻게 하면 좋죠……?”
뇌향의 세츠넨이 양팔을 크게 벌렸다.
아직도, 요니울란으로부터 얻은 자상이 낫지 않아 그 동작이 엉성하고 어색했으나 세츠넨은 라미네아를 꼭 끌어안았다.
갓난아기 시절부터 받아온 온기와 향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우리가 어찌 그걸 그냥 내버려 두겠느냐. 내가…… 미르와…… 또 요슈하르 어르신과 함께…… 어떻게든…… 너희가…… 만날 방도를 찾아낼 터이니…… 울지 마라…… 내 딸아, 울지 마라…….」
카밀라가 마음으로 낳은 딸이라면, 나 또한 뇌향 고모님께서 마음으로 낳은 딸이겠구나…….
그렇다면…….
저 칼의 세계에…….
그 잔혹한 세계에…….
마음의 어머니와 마음의 딸 모두를 남겨둔 채, 나 혼자 이 바닷가에서 가정을 꾸리게 되는구나.
“죄송해요, 고모님…… 저 혼자…… 저 혼자 도망가서…… 고모님도 힘든데…… 카미도 무서울 텐데…… 저 혼자…….”
라미네아는 오래 울었다.
그 울음이 그칠 때까지, 뇌향의 세츠넨은 라미네아를 끌어안고 함께 울어주었다.
「이게 어찌 네 탓이겠느냐…… 세상이 어지러운 것을…… 너희들을 전장으로 내몰 수밖에 없는 내 무력이 슬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