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305)
가짜 용사 이야기-305화(305/310)
시즌 3 : 113화
파티슈 듄 제라예는 기원력 1676년 7월 15일부터 전담 생도 셋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카밀라와 샤론과 올리에르였다.
979기를 향한 추기경단의 관심과 정성이 지극해서, 교관 전부가 979기 양성에 투입되었다.
수석 교관 리노야 듄 제라예가 지도관이었고, 다른 교관들은 생도 하나하나를 볼 수 있는 전담 교관으로 배치되었다.
카밀라와 샤론…….
학자들이 최근 ‘검은 여름’이라 명명한 그 전쟁에서 죽어서, 사명을 마치고, 이제는 만날 수 없게 된 친우들의 제자를 맡게 된 일에 파티슈는 아련한 운명을 느꼈다.
사실은…….
무어라 할까…….
자신은 듄이 되고, 그 둘은 알터가 되어 헤어질 때…….
세 사람의 운명은 이렇게 되도록 예정되어 있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그 제자들이…….
내 품으로 오려면…….
그 둘은 죽었거나 죽어가거나 곧 죽게 되는 몸일 테니…….
카밀라와 샤론을 지도하면서, 친우들의 목소리나 미소 같은 것들이 자꾸만 그 위에 포개지는 것이라 파티슈는 밤에 숙사에서 궐련 연기에 숨어 자주 숨죽여 울었다.
– 람, 이놈이 우리 제자들까지 골초로 만들면 어떡하지?
– 와서 때려야지 어떡해.
– 해보시지. 너희 제자들을 나를 뛰어넘는 최고의 골초로 만들어놓는 동안, 너희들이 뭘 할 수 있는데? <위용검전> 교관의 권한은 절대적인데?
– 이 <잊혀진 왕들>도 울고 갈 만큼 사악한 녀석 같으니라고!
– 맞아, 맞아! 오주 어르신들한테 일러바쳐야 돼!
때리러 온다고 했잖아, 이 나쁜 녀석들아…….
너희가 오지 못하니, 너희 제자들을 골초로 만들 이유도 딱히 없겠네…….
너희가 있으면, 너희가 여기로 올 명분을 만들 생각이었는데…….
“나쁜 년들…….”
물론 올리에르의 지도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카밀라와 샤론은 이미 올리에르의 실력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그리 지도할 게 많지 않단 소리였다.
또한 올리에르는 스승이라는 뒷배가 없던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면이 많았다. 그 동질감 속에서, 파티슈는 세 생도를 동일한 애정 속에서 훈련시키고 지도해냈다.
“플로렛은 사실 도난이 취미라, 배가 고프다며 식당으로 몰래 내려가서 부식들을 빼오곤 했어.”
“진짜요?”
“그래. 그 덕 좀 잘 봤지. 항상 우리 걸 챙겨와 주더라.”
“공범을 만들려던 거 아니었을까요?”
“맞아, 맞아. 여하튼 그년이 극주검법을 그리 잘 쓰던 게 그런 훈련도 도움이 됐을 거다.”
자주, 정말 자주.
파티슈는 친우의 제자들에게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라미네아는 뭔가 생도 시절부터 남들과는 달랐지. 최연소 입학이길래 엄청 건방진 줄 알았는데, 그렇게 깍듯한 애가 없었어.”
남겨진 사진이 있다면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이야기 속에서, 친우의 제자들은 낯 전체에 깊게 드리워진 슬픔의 장막을 비집고 웃음을 흘릴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파티슈도 내심 크게 기뻐했다.
플로렛과 라미네아는 죽었다.
죽음은 돌이킬 수 없었다. 죽은 이와는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제자들은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사실을 현실로 인정해야만 했다.
물론, 파티슈 자신도.
프리퀄의 에필로그, 나, 당신과 같은 용사가 되어 (5)
카밀라의 검술은 단순해 보이되 단호했다.
그 단순하고도 단호하게 연계되는 참격과 찌르기 속에서 상대는 자세를 제대로 잡지도 못하고 허물어졌는데, 생도들 중에서 과연 실력이 발군이었다.
십문자도라고 하기에는 너무 과격하고, 십일자도라고 하기에는 비교적 온순했는데, 비네사와 에쉬르 곁에서 십일자도를 보고 배운 영향이 있는 것 같았다.
또한 카밀라는 역대 십문자도 계승자들 중에서 발도술을 가장 능수능란하게 다루기도 했다.
정통 십문자도의 잣대로 비교하면 라미네아를 쫓을 수 없겠지만, 발도-십문자도 개념으로 보면 그 뒤를 충분히 따라잡으리라.
파티슈는 카밀라의 평가 점수에 전부 만점을 주었다.
편애가 아니었다.
흠잡을 곳이 없었으므로 감점을 주지 못했고, 그러니 점수는 필연적으로 만점이 될 수밖에 없다.
샤론 또한 섬뜩할 정도로 예리하게 다져진 극주검법을 완성시키고 있었다.
호흡뿐만 아니라, 상대의 의식의 흐름조차 좇는 검술의 경지는 마족과의 숱한 전투에서 칼날처럼 연마되었으리라.
카밀라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샤론뿐이었고, 마찬가지로 샤론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도 카밀라뿐이었다.
“아팟! 뭐야, 그건!”
“오직 너 하나만을 조지기 위해 새로 개발한 발도술이다, 짜샤! 발탄도(發彈刀)! 네가 자꾸만 빨라져서 칼날을 뺄 시간도 없으니, 그냥 총을 쏘듯 칼자루만으로 머리통을 박살내 보려 한 건데 기가 막히게 잘 먹히네?”
“후훗, 잔인한 게 딱 악당 같구나. 너한테 참 잘 어울려.”
“엿이나 처먹어! 그렇게 웃는 놈들이 대개 악당이던데?”
“그럼 이렇게 하자. 이기는 놈이 정의야!”
“이게 비겁하게 말하는 도중에!”
그 대련 속에서도, 자신의 어린 날의 일상이 겹쳐지는 것이라 플로렛은 자주 눈가를 훔쳤다.
– 좋아, 오늘은 렛을 상대로 기강 좀 잡아볼까?
– 까불고 있네! 좋아, 덤벼!
카밀라와 샤론, 두 사람의 대련 성적은 78승 76패였다.
샤론도 다른 시험에선 모두 만점이었으나 대련 성적에서 카밀라가 2승이 더 많았으므로 결국 수석 졸업은 카밀라로 낙점되었다.
참고로 두 사람은 다른 979기 동기들을 상대로는 단 한 번도 패배를 기록하지 않았다.
로베리스는 외팔이었으므로(페이쿼리어 신체 개조가 시작되면 서서히 재생될 것이다) 오히려 검술 성적이 가장 낮은 편이었다.
물론 전략ㆍ전술 이론이나 역사학, 마력 운용 쪽에서는 발군이었으나 페이쿼리어에게는 검술의 재능이 더욱 우선시된다.
같은 기수였으나 상하 관계가 뚜렷하게 존재하고 있었고, 카밀라와 샤론은 최고 연장자로서 모든 동기와 후배들의 존경심을 실력으로나 업적으로나 한 몸에 받았다.
카밀라는 심지어 열여덟 살의 나이에 최고 무공 훈장에 수훈된 장교이기도 했다.
‘그에 비해 올리에르는…….’
뒤처지는군, 나와 똑같이.
자신은 경험의 차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건 사실 의지의 차이야…….
“저 둘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웃고 있는 게 아니야.”
두 사람의 검투를, 무력하게 주먹을 쥔 채 지켜보던 올리에르에게 파티슈가 말을 걸었다.
무거운 중압감.
죽은 스승에게 부끄러운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대한 중압감이, 확고한 신념으로서 두 사람을 계속 위로 끌어올리고 있어.
“저 두 사람은 완벽해야만 해. 그 스승들이 완벽했으니까. 이제 어리광을 부릴 수가 없는 거야.”
그러니까 자신이 약해져 있는 걸, 타인의 눈에 약하게 비치는 걸 용납할 수가 없는 거고.
너랑은…….
우리랑은 다르지…….
올리에르, 너는 지금 저 두 사람을 부러운 눈으로 보고 있지만, 저 두 사람의 눈에는 네가 가장 부러울걸.
“우리에게는 부모와도 같은 스승님이 살아 계시잖니.”
두 사람에 비해 뒤떨어진다고는 해도, 올리에르 블라디파이레도 그 염룡검파의 후기지수답게 무골의 기상을 품고 있었다.
강한 것이다.
재능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파티슈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이 아이도 알터가 아닌, 자신처럼 듄이 될 것이라고.
“무슨 말씀이시죠?”
“성검이 선택하는 건……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이 아니거든.”
고결한 극위성검들은, 자신들이 고결한 만큼 그 대리자들도 고결한 이들로만 뽑는다.
그리고 그 고결함이란…….
아름답고도 눈부시게 세워진 유년의 세계가 한번 붕괴하는 가운데에서만 확고하게 세워진다.
“스승이, 가족이, 친우가 죽는 걸 보면서, 비로소 완성되는…… 용사(勇士)의 마음이 있어야 해.”
“네?”
“올리에르, 만약 성검의 선택을 받지 못하게 되더라도 실망하지 마라. 너는 네 생각보다 더 인간적이라는 거니까.”
그 길은…….
저 녀석들이 걷는 저 길은…….
말이 용사지, 평생 피를 뿌리고 피를 흘리고, 그 피에 빠져 죽어가는…… 수라(修羅)의 길이야.
“쉽게 말하자면,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그런 길이 아니란 거야. 너도 언젠가 나처럼 된 뒤에 알게 될 거다.”
* * *
대륙 남단 땅끝의 벽촌, 아스란 마을의 1월은 단애에 치받는 파도의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기원력 1677년 1월 12일.
그 자연의 울음에 사람의 울음이 더해졌으니, 라미네아가 해산한 갓난아이의 울음은 해수면 저 멀리까지 울렸다.
“딸이여.”
아이를 받아낸 마을의 늙은 산파가 탯줄을 조심스레 잘라내며 껄껄 웃었다.
“네 어미를 닮아서 건강하고 참한 딸이 되겠구먼.”
마을 주민들은 새로 벽촌으로 와 정착한 이 젊은 부부를 지극한 관심과 호기심으로 대했다.
신랑 이름이 라넨이고.
신부 이름이 아이린이었다.
젊은 신랑이 제대로 걷지 못해 쩔쩔매고, 대신 임신한 신부가 이런저런 소일로 끼니를 채우는 걸 보고는 내지에서 어떤 말 못 할 풍파가 있었겠거니 싶어 주민들은 내력을 더 묻지 않았다.
라넨은 아이딘이며.
아이린은 라미네아란 걸 모른다.
주민들은 부부에게 일을 주었고, 부부는 그 일을 통해 먹고살아 왔다.
“자, 아빠가 먼저 안아봐.”
아이딘은 망설였다.
내가…….
나 같은 것이…….
타인의 죽음으로 살아남은 나 따위가, 이런 생명을 감히 안아도 된단 말인가?
“안아줘, 라넨.”
라미네아가 진 빠진 목소리로 그렇게 속삭였다.
“우리 딸을 꼭 안아줘.”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보는데, 정신이 멍해지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 울음…….
이 맥동…….
이 온기 속에 스며든 빛의 임재가 놀라워 눈물을 흘렸다.
‘이토록 애틋하고 또 이토록 사랑스러운 것이 생명이구나.’
이것이 생명이고 빛이며 창세신들이 세상을 빛과 사랑과 평강으로 빚을 때 내주신 사랑의 섭리구나…….
“웃어줘, 라넨.”
생육하고 번성하고…….
낳고 낳아서…….
믿음과 삶을 이어가는 그 위대한 섭리가 두렵고 놀라워 눈물을 흘렸다.
“그러니까 누가 막 태어난 아인지 모르겠잖아.”
그리고 어둠이 침투하여 점점 잔혹해지고 또 서글퍼지는 이 세계를 살아가야 할 딸의 운명이 가여워서 울었다.
“그러니 웃어줘.”
그런데 그 가여운 운명을 함께 걸어가 줄 시간이 없는 자신의 시간이 한스러워 울었다.
“그 아이가 아빠의 웃음소리를 최대한 많이 들을 수 있게.”
그 울음은, 그런 울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울음은, 곧 닥쳐올, 또한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그날의 이별에 대한 울음이었을 것이다.
“라넨, 나도, 나도 우리 아이가 보고 싶어…….”
아이딘은 조심스럽게 라미네아의 옆에 아이를 눕혀주었다.
라미네아는 해산의 고통조차도 잊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눈이 너무 맑아서, 어떤 호수보다도 맑아서, 자신의 얼굴이 그 눈동자 위로 비치고 있었다.
“안녕? 엄마야. 내가, 엄마야.”
라미네아는 엄마, 라는 그 한마디 말을 하는 것뿐인데 울음이 터지는 걸 느꼈다.
이 한순간…….
오직 이 한순간을 위해…….
이 한순간 널 만나려고…….
나는, 엄마는, 그 잔혹한 세계에서 참혹한 싸움을 거듭 해가며 살아온 것만 같아.
이렇게나 작은데…….
이렇게나 따스하다니…….
이것이 생명이구나…….
사람이 자신을 닮은 사람을 낳고 그 성장을 지켜보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 속에 숨겨진 창세의 드높은 섭리에 라미네아는 왠지 모를 슬픔을 느꼈다.
그리고 또한 그 슬픔 위로…….
저 가까운 날, 운명으로 예정된 이별을 아는 데서 오는 슬픔이 포개지면서 라미네아의 두 눈도 투명하게 젖었다.
“라넨, 역시 그 이름으로 하자…….”
라미네아는 종전 이후의 모든 밤을 아이의 이름을 생각하며 보내왔다.
청성 백부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지어주셨듯…….
그렇게나 아름답고, 멋지고, 또 풍성한 이름을 주고 싶어서. 그 감동을 자식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그걸 뭐라고 했지……? 라 카밀라 텔 카이센 벨루였나……?”
“라 카밀라 텔 카이센 키데로 벨루(La Kamila Tel Kaisen Kidero Belru)입니다.”
그 고민의 날에, 아이딘이 해준 말이 있었다.
저것은 용족의 격언으로, ‘모든 만남은 신들께서 선물로 주신 인연이다’, 라는 뜻이라 했다.
카밀라의 이름은 용언으로 풀이하면 ‘선물’이라는 뜻이 된다.
– 카이센은 ‘인연’이란 뜻이며, 라(La)와 텔(Tel)은 연결되는 두 주체를 이어서 ‘만남’이란 뜻을 형성하지요. 벨루는 ‘창세의 뜻이’ 또는 ‘신들께서’라고 풀이합니다.
그걸 들은 순간, 라미네아는 아이딘이 자신을 위해 이 격언을 기억해냈고 준비해내 또 들려주었단 걸 알았다.
그리고 이 격언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을 위해…….
창세의 섭리가 용족의 역사를 통해 오늘날까지 전해져오게 하셨단 것도 알았다. 그래서 곧장 결정하게 되었다.
딸을 낳으면 라텔.
아들을 낳으면 카이센.
이 이름을 아이들에게 주기로.
둘 다 낳아서 이름을 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한 명의 아이를 잉태한 것만으로도 이미 창세의 한량없는 축복이었다. 무엇을 더 기대하는 건 양심이 없는 일이었다.
“라텔, 엄마야, 엄마 여기 있어. 어떡하지? 라텔이 이렇게 태어나준 것만으로, 이렇게 살아서 나와준 것만으로, 엄마는 너무 기쁘고 행복해서…….”
라미네아는 울기 시작했다.
오직 꿈에서만, 결코 현실이 될 수 없는 꿈에서만, 이루어지던 아이와의 만남이 성사되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 꿈에는…….
그 꿈속에는…….
바로 옆에서, 아이가 꼼지락대는 손가락을 잡아보고는 놀라워하던 카밀라가 있었는데.
– 와, 스승님. 얘 잡는 힘이 장난이 아니에요! 커서 한가락 하겠는데요? 찝쩍대는 남자 놈들 다 패고 다니겠어요.
왜 이렇게나 기쁘고 행복한 곳에, 너는 없고, 나만 있는 걸까…….
왜 너는 함께하지 못하고…….
왜 나만 이곳에서, 너 없는 이곳에서, 나는…….
– 아무런 걱정 하지 마세요. 제가 스승님 자식들은 어지간한 잡배들 정도는 다 패버릴 수 있게 훈련시켜줄 테니까.
* * *
라미네아는 창세의 지극한 축복으로 1년 후에 다시 아이를 잉태하여 또 1년 후인 기원력 1679년에 해산하였다.
아들이었다.
그 이름이, 카이센이었다.
바로 그 아이가 후일 장성해서, 칼 한 자루로 심연(深淵)의 절대자를 베어내고 영원한 봄을 꽃피우는 대영웅 샤릴리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