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306)
가짜 용사 이야기-306화(306/310)
시즌 3 : 114화
아스란 마을에서, 라미네아는 새벽에 가정 예배를 드렸다.
교회가 멀고, 아이딘은 거동이 불편했으므로 그냥 집에서 아이딘의 설교 아래 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마치고 기도를 드리는 시간의 고요 동안, 파도의 소리가 먹먹했고 숲을 흔드는 바람의 소리는 청명했다.
라미네아는 늘 세 가지 기도 제목을 간절히 부르짖었다.
창세의 아버지, 이 아이들에게 눈부신 인연의 축복이 있게 해 주시옵소서.
창세의 어머니, 하루라도 더 많이 저와 아이딘이 이 아이들을 함께 품으며 동행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또 창세의 아버지와 어머니, 오늘은 뇌향 고모님이 이곳에 오게 해 주시옵소서.
라텔이 걸음마를 떼고 또 말을 하기 시작하는 3년 동안, 뇌향 세츠넨은 비정기적으로 이 아스란 마을을 방문했다.
뇌향은 늘 인적이 없는 새벽의 끄트머리에만 왔다.
뇌향은 올 때마다 사진첩을 가지고 왔는데, 그 사진에는 라미네아가 마음으로 낳은 딸의 성장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 카밀라의 성적이다. 제일 우수하다는구나.
– 카밀라가 샤론을 상대로 이번에도 이겼다는구나.
– 수석 교관 리노야가 카밀라를 전투에서는 역대 최고의 생도라고 마음속으로 크게 칭찬하더구나.
뇌향은 늘 그런 칭찬들도 함께 가져왔는데, 그런 행동들에서 조금도 변치 않는 뇌향의 사랑을 느껴 라미네아는 울먹거렸다.
‘카미의 소식을 듣고 싶어요. 그 사진을 보고 싶어요. 뇌향 고모님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다 보면,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 여명의 빛이 아련히 비쳐들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기도하던 고개를 들면 뇌향이 빙그레 웃고 있었다.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였다.
라미네아는 뇌향의 품에 안겼다. 그 재회의 순간마다 아이딘은 자리를 비켜주었다.
「라텔, 잘 지냈느냐? 네 어미는 어린 시절에 어찌나 말썽꾸러기였는지 속을 많이도 썩였다. 너는 그러지 마라.」
뇌향이 침을 흘리며 자던 라텔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 기도를 하자, 라텔은 잠결에도 미소를 지었다.
라텔은 뇌향을 아기 시절부터 따랐다. 울다가도 뇌향이 안아주면 울음을 그쳤다.
그런 관계를 어쩌다가 발설할까 두려워, 뇌향은 라텔이 다섯 살이 될 때부터는 아이들을 따로 만나지 않았다.
“고모님, 여기, 이거 좀 보세요. 아들이에요. 카이센이라고…….”
뇌향은 라미네아로부터 아기 카이센을 조심스레 받아들었다.
카이센은 누이와 달리 잘 울지 않는 편이었는데, 오늘도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낳고, 몸과 마음을 닮는 그 창세의 법도는 300년 동안 거듭 지켜봐 와도 항상 신비했고 또 거룩하게 느껴졌다.
「아…….」
“왜 그러세요?”
「이럴 수가 있는가. 어머니의 빛보다 더 강대한 빛이 있었구나.」
“어머니?”
「미리아…… 리스타라고 해야겠구나. 리스타 알터 쉬르팽 말이다. 너희들이 엘디아 다음으로 따르는 존재.」
뇌향은 리스타 알터 쉬르팽을 어머니라고 한 것에 대한 설명보다는, 자신이 ‘빛’이라고 말하는 것의 정체를 설명하는 걸 우선시해야만 했다.
이 무슨 압도적인…….
어찌 이렇게나 눈부신…….
이런 빛이 있구나, 칼의 세계에 이런 빛이 있을 수가 있었구나.
「미르는 이 말을 과학적으로 풀이해 ‘재능 인자의 유전’이라 했지만…… 나는 불이 이어지고 또 이어져 마침내 완성됐다고 표현하고 싶다.」
“……?”
「만약 이 아이가 칼을 잡게 된다면 칼의 역사가 송두리째 바뀔 거다. 이 아이를 기점으로 검술의 지평이 전후로 나뉠 게야. 그런 재능을 갖고 태어났다. 검을 위한 재능. 나도 말은 이렇게 하고 있으나 횡설수설이구나. 이 아이의 가능성을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
「내가 본 리스타의 검의 재능, 즉 빛이 성냥불처럼 느껴질 정도다. 뤼카엘도 이 아이와 비교하면 밤하늘의 별빛 정도밖에 안 돼. 이 아이는 한낮에 감히 쳐다볼 수조차 없는 열량의 태양이다. 검술의 역사 정도가 아니라, 한 시대, 어쩌면, 세계 전체를 바꿀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의 빛이다.」
별들이 새벽의 첫 빛에 빛을 잃고, 닭이 울었으며, 검푸르던 바다가 여명 속에서 붉게 깨어났다.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라미네아는 입술을 뒤척였다.
그게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고모님, 근데 어쩌죠? 저는…… 이 아이가 평화롭게, 사랑하는 여자와 만나서 아이를 낳고, 역사에는 아무런 이름도 남기지 않고 평범하게 살다 행복하게 죽었으면 좋겠어요.”
「…….」
“카미를 보면서 항상 그렇게 생각하고 후회했거든요. 이건 다 제 욕심일까요? 꼭 검술을 가르쳐야 한다면, 모든 걸 알게 된 뒤에, <위용검전> 입교 나이에, 열여섯 살이 됐을 때쯤에…….”
뇌향의 세츠넨은 라미네아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라미네아는 바라고 있었다.
진실로 진실로 바라고 있었다.
자신이 살던 그 세계가 아닌…… 칼이나 싸움이나 피가 없는 세계에 있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피비린내가 아니라 꽃향기가 나고, 싸움이 아니라 웃음이 있고, 칼이 아니라 농장기가 옆에 있는…….
「그게 어찌 욕심이겠느냐.」
하늘에 여명의 붉은 기운이 배어들 때, 처연한 미소를 짓는 뇌향은 꼭 붉은 피를 흘리며 우는 것처럼도 보였다.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자들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거늘. 네 욕심이 아니라, 우리의 불찰이며, 또 심연(深淵)의 농간이다…….」
프리퀄의 에필로그, 나, 당신과 같은 용사가 되어 (6)
법황청 <위용검전>은 기원력 1679년 12월 24일을 979기의 서임식 날짜로 잡았다.
본래는 성검 적합성 평가 이후 5일 후에 광룡이 정식 서임 의식을 주관하였다.
현재는 그럴 수 없었으므로, 평가와 서임식을 추기경단이 동시에 진행하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역대 최초로, 공개 행사로 진행하기로 결정되었다.
이는 페이쿼리어들의 연이은 전사로 바닥에 곤두박질친 사기를 다독여 세우고, 또 세상에 희망의 불빛이 꺼지지 않았음을 공표하기 위해서였다.
카밀라.
샤론.
올리에르.
로베리스.
고르고티아.
엘티레.
한 기수에 이렇게나 많은 제자가 배정된 것도, 또 성검 적합성 평가까지 생존한 건 초유의 사태였다.
세계 각국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기자들 또한 모여들었다.
각 생도의 보호자도 방청 권한을 얻었다. 서임식을 기점으로 더 이상 공식적으로 가족관계가 아니게 되는 이들이란 이유에서였다.
보호자들이 타고 온 마차의 외양이 곧 그 생도의 품격으로 직결된다고 생각했는지, 마차 행렬은 엄숙하되 화려했다.
현 제국 굴지의 명문가인 루드윅 방백 가문과 페이지 방백 가문이 왔고 또 두노스 왕조도 왔다.
오직 기자와 가족 구성원, 또는 보호자에게만 방청권이 주어지며 이외의 이들에게는 입장이 허가되지 않았다.
방청객들이 검의 요람, 즉 극위성검들이 보관되는 장소로 모여들어 회중을 이루었다.
뇌향과 청성의 배려로 최전선에서 시간을 낼 수 있게 된 니븐 알터 지에르다가 스승 신분으로 앞자리에 앉고, 그 뒤로는 가족들이 앉았다. 끝에는 기자들이 앉았다.
979기 기수들이 마침내 검의 요람으로 입장했다.
극위성검들이 저마다 숨을 쉬듯 내뱉는 빛으로, 왕릉과도 같은 검의 요람은 오색창연했다.
그 다채로운 빛의 저편에서 가족들이 와 있었다.
방청석을 돌아보니, 한나와 라디스와 발칸과 자발이 와 있었다. 그들이 손을 흔들었다.
미소로 화답하다가 그 시선이 방청석의 맨 앞에 잠시 머물렀다. 니븐이 제자에게 흐뭇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스승님도 저기 계셨더라면…….
잠시 눈물이 어른거려서, 입술을 깨물어 감정을 추슬러야 했다.
여성들의 헤어스타일이 비슷한 게 눈에 띄었다.
종전 이후 스승님의 땋아 내린 댕기머리가 여성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던 것이다.
“저게 카밀라구나.”
“사진으로 보던 거랑 달라.”
“엄청 강해 보이는걸. 열여덟 살에 최고 훈장을 받았다더니만.”
황룡 신관들에게 허락을 받은 기자들이 카메라의 섬광을 터뜨려 979기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이제 의식을 진행해야 하니 정숙이 명해졌다. 오주들의 명령은 절대적이었으므로 침묵이 회중을 압도했다.
카밀라는 저기 저쪽, 극위성검 아라다만텔을 바라보았다. 아라다만텔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마침내, 여기에 왔구나…….’
여기까지 왔어…….
그 숱한 슬픔을 헤치고 헤집고, 이곳까지 왔구나…….
이제 여기부터 또 저기까지 가야 하고, 또 저기부터 어디까지 가야 이 길이 끝날지…….
‘안녕, 너도 날 기다렸어……?’
슬프게 우는 아라다만텔의 울음 속에, 3월의 그날 스승님을 지키지 못한 회한과 사과가 담겨 있는 듯했다.
「성검 적합성 심사를 시작하라. 수석 생도부터 앞으로.」
카밀라는 절제된 걸음걸이로 아라다만텔 앞으로 향했다.
그것은, 칼이 아니었다.
그것은, 성검이 아니었다.
이제는 되돌아보는 것밖에 허락되지 않는 한 세계가 칼의 형태로 집약되어 있었다. 그 칼 위로, 스승님과 함께한 모든 세월이 포개져 있었다.
웃음이…….
기쁨이…….
눈물이…….
슬픔이…….
스승님과 함께하던 모든 순간 속에 아라다만텔이 있었다. 아라다만텔은 스승과 연결되는 추억의 연결 고리였다. 이제는 아무도 들이지 않는 세상으로 향하는 통로였다.
‘아라다만텔, 나 있잖아…….’
스승님처럼 현명하지 못해. 현숙하지도 못하고. 우는 사람들의 슬픔을 다독여 주지도 못해. 웃는 이들과 함께 웃지도 못해.
나는 엄청 무식하거든…….
성격도 엄청 괴팍하고…….
내가 잘하는 건 하나뿐이야. 내가 제대로 배울 수 있던 것도 하나뿐이야. 검술. 스승님한테 그거 하나는 확실히 배울 수 있던 것 같아.
‘나는 베고 죽이는 것밖에 못 해. 그러니까 그냥 제일 잘하는 그거를 열심히 하려고.’
베고.
베고, 또 베고.
베고, 베고, 또 베어내다 보면.
‘비네사 님은 그게 곧 용사의 빛이라 했는데…….’
이 길의 끝에 도착할 수 있을까.
스승님과는 완전히 다른 양극단에 서 있는 것 같지만, 같은 끝에 도달할 수 있을까.
이 길의 마지막에, 스승님과 당당히 마주 설 수 있게 될까. 마주 서서, 내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될까.
다시, 함께 웃을 수 있게 될까.
다시, 함께 이야기할 수 있게 될까.
그때에는 스승과 제자로서가 아니라, 같은 소명의 길을 걸어 같은 푯대에 도달한, 같은 용사(勇士)로서.
‘……네 생각은 어떤지 말해줄래?’
카밀라는 순간 눈을 뜨더니 시렁에 얹힌 아라다만텔을 뽑아 눈앞에 수직으로 세웠다.
그 일순간, 모두가 소리 없는 탄성을 흘렸다.
그야말로 예술에 가까운 발도, 칼과 신검합일을 이룬 자들만이 내보일 수 있는 유려하고도 자연스러운 발도.
“……!”
“……!”
“……!”
순백의 칼집에서 뽑혀 나온 순혈의 칼날은 망막이 아플 정도로 붉고 또 눈부시게 울부짖었다. 피와 같은 색채를 열기로 머금은 칼날은 그 누구보다 적의 피를 갈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무슨 빛이……!”
“한낮의 태양도 아니고…….”
수석 교관 리노야 둔 제라예가 파티슈 듄 제라예에게 물었다.
“파티슈, 계측 수치는?”
“비정상적으로 높습니다. 아직도 측정 중입니다. 82, 86, 89, 91%……? 91%입니다.”
“역시 엄청나군. 90%를 넘긴 대리자는 역대 페이쿼리어 중 열 명도 안 되는데.”
파티슈는 리노야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단지…….
찬란하던 지난날…….
자신이 교관이 아닌 생도로서 이 요람에 와 있던 그날, 라미네아가 똑같이 아라다만텔을 뽑아내던 순간을 저 위로 겹쳐보고 있을 뿐.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어.’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마치, 당연히 선택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선택을 받게 된 것처럼. 알고도 읽는 명작의 결말처럼.
파티슈는 잠시 손에 얼굴을 파묻고 눈물을 가려야 했다.
‘라미네아, 오늘 네 제자가 널 계승해서 용사(勇士)가 됐어…….’
그날, ‘검은 여름’에 종군했던 페이쿼리어의 제자들이 모두 그 스승의 성검을 계승해 페이쿼리어가 되었다.
카밀라 알터 아라다만텔.
샤론 알터 타스알포.
로베리스 알터 쉬르팽.
고르고티아 알터 지에르다.
엘티레 알터 플라디마르테.
후일 시작되는 최후의 악몽, ‘붉은 여름’을 선도하던 페이쿼리어들이 이날, 이렇게 서임식을 마치고 용사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라미네아 알터 아라다만텔의 제자, 카밀라.」
추기경 요슈하르가 카밀라를 호명해 옥좌 앞으로 불렀다.
「이제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모두 버리고, 아라다만텔이 이끄는 대로 용사의 길을 걷겠노라고 서약하겠느냐?」
그 앞에 아라다만텔과 함께 부복한 카밀라는 슬픈 미소를 지었다.
이 순간, 자신은 이 순간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를 이미 알고 있단 것이 슬펐다.
그 대답을 삶으로 가르쳐주신 스승님과 동행하던 모든 날들을 생각했고, 그 모든 날들을 한 줄의 언어로 풀어서 대답했다.
“각하, 용사가 가야 할 길을 명하십시오. 카밀라 알터 아라다만텔이 죽기까지 청종하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