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307)
가짜 용사 이야기-307화(307/310)
시즌 3 : 115화
뇌향은 서임식의 날에 검의 요람에 있었고, 그곳에서 교차하는 모든 감정을 읽었다.
가장 크고도 인상적이었던 감정은, 제자 고르고티아를 얼싸안고 울던 니븐 알터 지에르다의 기쁨이었다.
페이쿼리어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스승으로서, 제자가 자신의 길을 계승하는 걸 지켜볼 수 있던 존재.
아…….
이런 기쁨이 있구나…….
마음이 터질 것 같은 기쁨을, 사람이 느낄 수가 있는 것이로구나…….
뇌향은 라미네아가 카밀라와 만났을 때 분명 똑같은 기쁨을, 그보다 더 큰 기쁨을 느낄 것임을 알았다.
뇌향은 기도했다.
추기경들께 지혜롭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고, 또 그분들의 마음이 완악하지 않고 부드럽게 풀어지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다섯 추기경들 앞에 섰다.
「경애하는 추기경 어르신들, 이제는 라미네아와 카밀라를 만나게 해주고 싶습니다. 카밀라는 성년이 되었으니 스스로의 감정을 추스를 수 있을 것이고, 이제 동기들과 부대끼지 않으니 그 감정의 변화를 알아챌 이들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라미네아의 삶의 연한이 어느 날까지인지 아무도 알지 못하니, 더 늦기 전에 둘을 만나게 해주고자 합니다.」
다른 추기경들이 침음을 흘렸다.
수석 추기경 인라히트의 고갯짓은 단호했다.
「불가하다. 카밀라는 이제 과거와 현재와 미래 모두를 버리고 용사가 되었다. 과거의 잔재에 얽매이면 용사의 길을 걷지 못할지니, 용사란 검의 침례를 받아 자기 자신을 완전히 죽이고 오직 빛의 칼날이 되어야 한다.」
「그 아이의 마음이 확고해 보일지 모르나, 슬픔을 아픔으로 채찍질하는 것에 불과하니 언제 그 마음이 깨어져 무너질지 모르옵니다.」
「허락하지 않는다. 이제 그 둘이 만나는 건 영혼과 영혼의 만남만이 유일하다.」
영혼과 영혼의 만남은, 저 창세의 낙원에서의 재회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즉, 절대 불가를 통보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뇌향은 감사히 읍했다.
「영혼과 영혼의 만남은 가능하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러하다면 어르신께서 제가 생각하신 방식을 허락하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프리퀄의 에필로그, 나, 당신과 같은 용사가 되어 (7)
한나 루드윅은 벨르윈 저택의 안뜰에서 홀로 기도하고 있었다.
늙어서 밤잠이 줄었건만…….
시력이 나빠진 후로는 밤에 책을 읽는 것조차 버거워졌으니…….
밤에 숲의 소리를 들으면서 기도하는 것만이 한나가 슬픔을 추스르는 방법이었다.
– 페이쿼리어 임관 과정이 완전히 끝났습니다. 병단 소집을 위해 대륙을 좀 돌아볼 예정입니다. 잠시 저택에 들르고자 하오니, 그때 뵙겠습니다.
라미네아는 죽었고, 라디스는 출가하여 벨체스터 가문에 들어갔으며, 자발은 다시 특무과의 일을 위해 떠났으니 저택은 오직 황량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카밀라가 온단 것이다.
카밀라가 무사하기를, 훌륭하고 뛰어난 이들이 휘하로 모여들기를, 아무런 문제 없이 이곳까지 오게 되기를…… 그렇게 기도했다.
「한나.」
기도의 와중에 문득 여명의 온기가 느껴져 한나는 고개를 들었다.
뇌향의 세츠넨이었다.
그런데 그 뒤로 세 명의 인영이 더 보였다.
눈이 뿌예서 무엇 하나 정확히 보이지 않는데, 혈육은 냄새만으로 아는 것인지, 한나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 아아, 아아…….”
한나가 발치를 더듬거려 몸을 일으키자, 상대가 앞으로 나아왔다.
자신의 앞으로 나아온 이의 얼굴을 양손으로 만지작거리던 한나의 두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상대도 울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 그 얼굴의 형태, 그 숨소리, 그 울음의 높낮이, 무엇 하나 잊을 수 없는 한나의 전부였다.
“살아 있었구나, 내 딸, 라미네아, 네가 살아 있었어…… 이게 꿈이냐? 아, 꿈이라면 평생 깨어나지 않기를…….”
“엄마…… 죄송해요…… 더 빨리 왔었어야 했는데…….”
라미네아는 어미의 두 손을 맞잡고 울었다. 둘은 오랫동안 부둥켜안고 울었다. 울고 또 울었다.
그날이, 이 세상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지금 흘리는 눈물이 서로에게 보내는 작별 인사였으므로.
달이 중천에 오르는 고요 속으로, 사별한 줄 알았던 모녀의 울음은 거듭 비벼지고 교차하고 뒤섞였다.
「…….」
뇌향은 멀찍이 서서, 다른 모든 이들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도록 그 마음을 매만지고 또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결계를 펼쳤다.
“엄마, 이 아이들은 엄마 손녀랑 손자예요. 라텔이랑 카이센이라 해요. 얼굴을 보실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라텔, 할머니야. 할머니, 하고 불러봐.”
어미의 다리 뒤에 붙어 있던 라텔이 앞으로 나와 배꼽에 손을 얹고 허리를 숙였다.
“아녕하떼요, 할머니.”
“그래, 그래…….”
한나는 너무나도 딸을 닮은 손녀의 목소리와 그 형태에 놀랐다.
이것이 손녀로구나…….
이것이 딸이 낳은 딸이구나…….
한나는 라텔을 안고 또 오래 울었다. 뇌향이 카이센을 품에 안고 다가와 한나의 품에 안겨주었다.
“카이센, 네 할미다. 내가 네 할미야.”
카이센은 “우, 아” 하는 소리와 함께 꺄르륵 웃었다. 울지는 않는데, 잘 웃는 아이였다.
그 모습이…….
그 맑게 웃는 모습이, 아기 라미네아와 너무나도 닮아서, 한나는 웃으면서 울었다.
“엄마, 라디스는 잘 지내요?”
“라디스에게는 갈 생각 하지 말아라. 심정적 동요가 일어날 것이 분명해. 그 아이는 이제 네가 없는 세상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그런가요?”
“행복해져 가고 있어.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서, 곧 사랑하는 아이를 낳겠지.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너도 행복해지거라.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텐데, 그 시간 동안 감사하며 사랑하며 오직 행복하게 살아라.”
“네, 하지만 카미는 그렇게 될 수 없겠죠.”
“라미네아.”
“카미를 만나러 온 거예요. 여기로 온다고 들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카미와 라디스 모두, 제가 온 줄도 모를 테니까……. 뇌향 고모님이 그렇게 해주신대요……. 추기경단들도 승인해 주시고…….”
* * *
카밀라는 사흘 뒤에 벨르윈 저택으로 왔다. 그 사흘 동안 라미네아는 한나의 방에 있었다.
이제는 카밀라 알터 아라다만텔이었고, 백발과 용안을 지니고 있어 그 위엄이 날카로웠다.
가문의 고용인들이 그 변한 모습에 놀라고 또 기뻐하면서도, 뇌향 각하가 와 계셔서 그런지 당주 마님의 용태가 눈에 띄게 좋아지셨다고 말했다.
“그래요? 잘된 일이네요.”
한나 루드윅의 용태가 걱정되어 와본 것이었는데, 좋아졌다고 하니 기쁠 수밖에 없었다.
“마님, 저 왔어요.”
그 방에 들었을 때, 어딘가, 슬프도록 낯익고 그리운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스승님……?
그러나 스승님은 죽었으니 그럴 리가 없었다.
‘한나 루드윅이 스승님의 어머니이시니 비슷한 향기를 내는 것이거나…….’
아니면 스승님이 어린 시절 여기서 지내셨으니 그 향기가 남아 있는데, 페이쿼리어가 되면서 오감이 증폭되어 맡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 왔구나. 널 보니 어찌 기쁜지 모르겠다. 만찬을 준비하겠으니 먹고, 오늘 저녁은 편히 쉬어 여독을 풀도록 하여라.”
카밀라는 오랜만에 만난 고용인들과 해후를 나눈 뒤, 라미네아의 방에서 잠에 들었다.
스승님의 향기가 난다…….
항상 곁에서 웃으며 이야기하며 안아주시던 스승님의…… 그 향기는 눈물겨웠다. 너무 따스해서 오랜만에 편한 잠이 밀려왔다.
[되었다.]서서히 잠기는 눈꺼풀 너머로, 방 안에서 황금의 기류가 아늑하게 살랑거리고 있었다.
빛이 벚꽃처럼 피어나 지고 또 흩날릴 수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빛의 가루들이 몽글거리며 솟아났다가 부서지기를 반복했다.
그 빛의 선율과 온기 속에서, 라미네아는 자신의 인생에 찾아온 선물과 다시 만났다.
[이 아이도 이제 혼에 용령이 깃들었으므로, 그 의식을 오래 붙잡아둘 수 없느니라. 서두르거라.]서둘러야 했다.
그러나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서두를 수가 없었다.
“안녕, 아라다만텔.”
아라다만텔이 미친 듯이 울기 시작했으나 라미네아는 입술 앞에 검지를 세웠다.
“앞으로 카미를 잘 부탁할게.”
그리고 라미네아는 제자의 잠든 얼굴을 보았다.
이렇게, 이렇게 컸구나…….
나와 똑같은 머리를 가지고, 똑같은 눈을 갖고, 똑같은 성검을 지니고…….
‘아…….’
제자의 얼굴을…….
카미, 하고 부르면…… 네, 스승님…… 하고 밝고 맑고 솔직하게 웃던 제자의 얼굴을…….
그 앳되고……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던 얼굴이…… 자신과 같은 백발을 갖게 된 걸 다시 본 순간, 울음이 치받쳐 목구멍을 막아버렸다.
‘내가 전쟁을 끝냈어야 했는데.’
전쟁을 끝냈더라면, 너는…….
그러한 무력감에서 비롯된 안타까움이 어찌 이토록 눈물겨울 수 있는 것인지를 생각했다.
“엄마, 누규에여?”
카밀라를 신기하게 관찰하던 라텔이 혀 짧은 소리로 물었다. 라미네아는 부서질 것 같은 미소로 흐느낌을 억눌렀다.
“선물이야…….”
“떤물?”
“응, 선물. 엄마가 살면서 받은 선물 중 제일 크고 아름답고 귀한…….”
라미네아는 눈물을 훔치고는 다시 제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안녕, 카미.”
“…….”
“잘 지냈어? 이런 말이 너무 이상하다, 그치?”
“…….”
“하, 하, 아하하, 다시 만나게 되면 하고 싶은 말이 잔뜩, 정말 잔뜩 있었는데? 근데, 어떡해, 생각이 하나도 안 나고 눈물만 나와.”
그때, 라미네아가 품에 안고 있던 카이센이 그 여리고 동그랗고 주름진 손을 뻗었다.
카밀라 쪽으로.
카밀라의 볼 쪽으로.
그 볼을 쭈욱 잡아당기더니 까르르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소리 속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의 환상이 현실 위로 포개어진다.
– 이모, 이모!
저 푸르고 청명한 들판.
그 세상에서는 용사가 없고 백발도 없으며 용의 눈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단지, 강아지풀을 물고 그 위에 드러누워 있던 카밀라에게로 어린 카이센이 울며 달려간다.
– 왜.
– 엄마가 쿠키를 안 줘요. 쿠키 먹고 싶은데.
– 네가 하도 처먹어대니 금지하신 거겠지. 나이도 어린 게 뱃살 잡힌 것 좀 봐. 살찐 남자만큼 꼴불견인 게 없어, 이 새캬.
카밀라가 강아지풀로 카이센의 얼굴을 살살 긁으며 장난을 쳤다.
– 쿠키, 먹고 싶었다고요.
– 아니, 세상에 별꼴을 다 보겠네. 고추 달린 사내놈이 뭐 이딴 걸로 울고 그래? 모양새 빠지게.
– 이모도 미워요.
– 야, 뒤질래? 일로 와봐.
카밀라가 광주리로 손을 뻗었다.
산책을 하다 가볍게 요기하기 위해 가져온 샌드위치와 쿠키가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쿠키 하나를 집어 꺼냈다.
카이센의 표정이 밝아졌다.
입을 벌리고 먹는 시늉을 하자 그 표정이 어두워졌다가, 슬그머니 건네자 어두워지던 표정이 맑게 깨어났다.
– 받아, 하지만 조건이 있어.
카이센의 작은 두 손에, 그 쿠키를 쥐여주면서 카밀라가 입술 위에 검지를 세웠다.
–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카밀라가 킥, 하고 웃었다.
카밀라가 웃자 카이센도 덩달아 웃기 시작했다.
그 교차하는 웃음이, 마음속을 고요하게 울리며 넘쳤다. 그 웃음이, 꿈의 장막을 걷어내고 다시금 현실의 빛이 비춰들게 만들었다.
라미네아는 웃었다.
자신의 처지가 슬퍼서 웃은 게 아니었다.
그 이루어질 수 없고 또 이루지 못할 꿈속의 카밀라와 카이센과 함께 웃은 것이었다.
“카미.”
예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하니?
우리 라텔과 카이가 카미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카미 이모, 카미 이모, 하면서…….
“만약 시간이 몇 번이고 되돌려지고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세상이.
세상이 조금만 평화로웠더라도.
세상이 조금이나마 더 평화로웠더라면, 저 꿈은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나는 그날, 카미를 제자로 받지 않을 거야.”
모두가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당연하게 움켜쥐는 꿈이 왜 이토록 멀고 아득한가.
왜 이토록 막연하고 슬픈가.
라미네아는 카밀라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대었다. 이마의 온기는 같았다. 몸의 냄새 또한 같았다. 모든 것이, 예전과 같았다.
“제자로 받는 게 아니라, 함께 저 먼 어딘가로 도망쳐서…… 남은 모든 시간을 함께할 거야.”
오직 하나만이 달랐다.
이제는, 함께할 수 없다는 것.
“미안해……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평생의 삶 속에서, 네 행복을 기도하고 또 기도할게…….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리고 만약, 창세의 섭리께서 허락하신다면 우리가 재회할 수 있기를…….
다시 만나서, 웃게 되기를…….
멀리서 그 대화를, 그리고 그 생각들을 듣던 뇌향의 세츠넨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이제, 시간이 없구나. 그만 가야 한다.]조금이라도 더 이 시간을 움켜쥐고 싶었을까.
맞댄 이마를 떨어뜨리지 않는 라미네아의 몸이 빛에 휩싸이면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몸이 뇌향의 빛 속에서 사라진 이후, 방에 흩날리던 빛의 꽃잎들도 하나둘 사그라졌다.
“안녕, 내 삶에 찾아온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선물…….”
카밀라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육신은 잠들어 있었으나, 혼은 깨어 있었던 것이다.
그 감긴 두 눈꺼풀 틈새로 슬픔의 이슬이 빚어졌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 안에, 그 영혼 속에서 응어리지며 썩고 부패하던 슬픔의 둑이 무너지는 눈물은 끝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