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309)
가짜 용사 이야기-309화(309/310)
시즌 3 : 117화
프리퀄의 에필로그, 나, 당신과 같은 용사가 되어 (9)
스승님, 안녕하셨어요?
테르쉬 열도에 부딪쳐 오는 물살은 맑거나 사나웠다.
안녕, 카미!
오늘도 좋은 아침이로구나.
인계(人界)와 마계(魔界), 먼 남북에서 흘러온 파도가 바위섬들을 때리고 휘감으며 뒤엉켰다.
인간계의 것은 소금의 지린내가 났고, 마계의 것은 유황의 고린내가 났다.
물이 바다로 끌려가는 간조의 때에 바다는 느긋하고 태평했다. 물이 뭍으로 달려드는 만조의 때에, 남쪽 바다는 또다시 피와 비명과 연기와 화산재로 뒤덮였다.
오늘 아침 운동은 좀 많이 격렬했지만, 전투가 끝나자마자 훈련도 했어요.
저 있잖아요?
항상 스승님과 약속한 시간에 검술을 열심히 훈련하고 있어요. 전투 때문에 늦어지면 늦어진 대로 꼭이요. 이제는 휘하에 병단까지 둔 어엿한 페이쿼리어인데도요.
늘 그렇게, 최전선에 찾아오는 여명은 피 안개에 젖어 흐릿했다.
매일매일이 노을처럼 붉었다.
저무는 태양이 붉게 잠드는 노을이 아니라, 죽어가는 것들이 잠들며 토해내는 피의 노을이었다.
이렇게 첫 햇살이 들판을 적시는 시간이면 말이지?
항상 그날들이 떠올라.
카미와 함께 꿈에 대해 이야기하던 날들 말이야.
최전선 너머, 대륙의 아침은 안개 속에서 비릿하게 깨어났다.
아침에 나가는 새들이 울고.
저녁에 돌아오는 새들이 짖는.
쇳소리도 피비린내도 없는 대륙의 파도 소리는 세상이 숨을 쉬는 듯 맑고 고요했다.
스승님, 하늘나라는 어떤가요?
거기에서 누군가에게 또 검술을 가르쳐주고 계신가요?
검술이라고 하니, 스승님에게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또 최전선 너머, 빼앗긴 땅의 아침은 화산재와 용암 속에서 빛과 어둠의 구분이 뒤틀려 있었다.
아침이 곧 어둠이었고.
밤 또한 더 어두운 밤이었다.
오직 세계를 비추지 않고 저마다의 빛으로 깔깔대는 별빛만이 화산재 틈새로 영롱했다.
꿈이라고 하니 말이야.
카미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게 생겼어.
아직, 빼앗기지 않은 섬과 대륙 끝단에서 파도가 뒤엉키는 아침이면, 두 여자는 상대에게 결코 닿을 수 없는 편지를 쓴다.
바로 제 검술이에요.
저 있죠? 이제 발(發)을 섞지 않고 모든 초식을 무한히, 그러니까 체력이 다할 때까지 반복할 수 있게 됐어요. 아라다만텔이 도와주거든요.
꼭 검술을 펴실 때 꽃이 피어나는 것 같았던, 스승님처럼요.
어쩔 때는 고요하게 웃고.
또 어쩔 때는 숨죽여 울면서.
그건 바로 내 아이들이야.
이 스승님이 말이지, 자식들을 낳았다 이 말이야. 딸의 이름은 라텔이고, 아들의 이름은 카이센이란다.
라텔이 정말 어찌나 씩씩한지 몰라, 카미처럼 말이야.
강은 양쪽의 물줄기가 만나기에 이루어지는 것이며.
편지 또한 양쪽의 말들이 만나야 성립하는 것인데.
두 편지는 수년의 시간 속에서 평행선을 달렸으므로 편지가 아니라 혼잣말이었다.
언젠가 꼭 보여드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옛날에, 기초를 배울 때처럼요.
그때처럼 칭찬받고 싶은 건 아니에요. 저도 이제 어른이거든요. 그냥, 보여드리고 싶어요.
대륙의 끝단과 바위섬들 사이의 거리는 인지의 영역이 아득해지도록 멀었다.
멀어서…….
너무 멀어서…….
혼잣말의 메아리조차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멀고 또 멀어서…….
언젠가 꼭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 카미와 나, 그리고 라텔과 카이까지 해서 넷이서.
옛날에, 했던 말 기억나니?
과자 작전으로 호감도를 쌓기로 했잖아. 카미도 이제 어른이니까 그게 얼마나 훌륭한 작전인지 알게 되었을 거라 믿어.
글귀도 소리도 마음도 바다를 건너 상대에게 닿지 못하는 건 당연한 것일까.
스승님, 사실…….
검술, 못 보여드려도 좋으니…….
그냥, 잠깐,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다시 뵙고 싶어요…….
봄이면 꽃가루에 휩쓸리고.
여름이면 열기에 메마르고.
가을이면 낙엽에 파묻히고.
겨울이면 눈보라에 얼어붙으니.
사실 나도 알아. 넷이서 만나는 게 욕심이라는 걸…….
넷이서 못 만나도 좋으니…….
혼자라도 좋으니, 카미랑 다시 한번 웃는 얼굴로 마주 보며 이야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계절은 지나고, 흐르고, 닿고 이르고 떠나고 다시 돌아오건만 편지는 결코 닿지 못했다.
편지는 늘 눈물로 인봉되었다.
바다를 넘지 못하는 편지에 여름빛이 가득히 흘렀다.
“선배님께서는 지나칠 정도로 수명을 과소모하고 계십니다.”
“로로, 잔소리하러 왔으면 신경 긁지 말고 그냥 꺼져라. 뒤지기 싫으면.”
“그 행위는 옳지 않습니다. 왜 제자를 받지 않으시는 거죠? 청성 각하께서 말씀하셨듯 전쟁은 종전이 아니라 휴전일 뿐, 언제 다시 개전되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기원력 1692년, ‘붉은 여름’이 개전하기까지 카밀라는 제자를 받지 않았다.
자신이 없었다.
스승님이 나를 사랑해 주셨던 만큼, 그 크신 자애와 후한 미소와 상냥함으로 길러줄 자신이.
그리고 또 자신이 없었다.
그 아이에게 나와 똑같은 아픔을 남기고 먼저 이 세상을 떠날 자신도, 만약 제자가 먼저 죽기라도 했을 때 그 슬픔을 견딜 자신도…….
‘도와줘…….’
베고, 또 베고.
죽이고, 또, 죽여도.
‘누가, 나를 좀 도와줘…….’
적들의 피와 시체로 이 마음속, 영혼의 구멍을 메우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구멍은 더 커지고 깊어져만 가.
‘어머니, 스승님…….’
피와 사체는 구멍을 메우는 게 아니라, 주위에 계속 쌓이고 또 쌓이는 것이라…….
‘숨을, 숨을 쉴 수가…….’
피와 사체는 늪이 되고…….
‘숨을 쉴 수가 없어요…….’
나는 그 늪 속으로, 더 깊숙이, 더, 더, 더 깊숙이 잠기고 또 잠겨서, 이제는 숨을 쉴 수 없고, 수면도 보이지 않는 저 깊은 바닥으로…….
“엄마가 남긴 유품이야……. 그러니까 돌려줘! 엄마 물건은 이제 그거 하나밖에 없다고!”
그것은 빛.
그것은 손길.
암흑으로 뒤덮이던 늪의 바닥까지 비쳐들던 빛이자, 수면 위로 끄집어내는 손길.
‘스승님의 아들……?’
스승님과 함께 웃으면서 꿈꾸던 날들 속에서만 존재하던 존재가, 실체를 입고…….
스승님의 얼굴을 갖고…….
스승님의 향기를 지니고…….
쿠키를 몰래 쥐여주며 ‘엄마에게는 비밀이야’라고 말하기로 약속한 존재가, 이렇게 눈앞에…….
– 약속할게. 내가 스승님한테 받았던 것 모두를, 하나도 빠짐없이 카미에게 주겠다고.
살자.
조금만 더 살자.
스승님께서 내게 주셨던 것을, 이 녀석에게 되돌려줄 때까지.
“네가 단 한 대라도 공격에 성공하면? 그래, 스치기라도 하면 이 칼도 돌려주고 검법도 가르쳐줄게.”
스승님께서 가르쳐 주었던 것을, 이 녀석에게 전부 가르쳐줄 때까지…….
홀로 살아남아서…….
홀로 이 잔혹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 정도까지는, 살자, 살아가자, 살아가 보자…….
“칼의 세계에서는 운다고 아무도 도와주러 안 와! 누구 하나 안 온다고! 혼자서 이 칼 한 자루로 헤쳐 나가야만 한다고!”
그래도 정들게 하진 말자.
나를 미워하게 하자.
내가 떠나가게 됐을 때, 이런 아픔과 슬픔을 겪게 되지 않도록.
‘살자, 살아가자,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옆에 있어주자…….’
그 성장을 지켜보면서, 하나씩, 하나둘씩, 스승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는데…….
그게 너무 눈물겨워서…….
눈물이 나올 정도로 슬퍼서…….
항상 남몰래 울고 또 눈물을 삼키다 보니, 어떻게든 살아가게 되고,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게 되어가고…….
‘엄청난 재능이다…….’
이 재능을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어. 지금의 내가 3개월 걸릴 내용을 3일이면 완벽히 소화해내고 있어.
‘더 무서운 건…… 그 습득 속도가 점점 빨라진단 거야.’
원래는 30일이 걸리던 게, 보름, 열흘을 지나 3일까지 온 것이다.
나중에는 3분?
아니, 3초 만에도 어떤 초식을 익히게 되는 거 아니야?
‘그런 게 가능할 리는 없겠지만, 어쩌면 이 녀석이라면 그런 것도 가능할지도…….’
창세의 섭리가 모든 것을 쏟아부어 창조해낸 것만 같은 재능…….
타르스 알터 쉬르팽께서는 힘의 크기가 곧 사명의 크기라고 하셨었는데…….
그 판단 기준으로 보면 이 녀석의 사명은 도대체 뭐지?
– 혹시 모르는 일 아니냐? 네가 퍼질러 싼 똥 하나를 보고 열을 배우게 되는 어떤 또라이 제자가, 이 미친 전쟁을 아예 끝내버릴지?
문득, 할바론의 말이 떠올랐다.
그때는 웃고 넘겼었는데, 이 녀석이라면, 어쩌면.
아니, 아니다…… 카밀라는 냉정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무거운 짐을 이 녀석에게 짊어지게 할 수는 없어.’
그렇게 살고, 또 살고, 악착같이 살아가다 보니, 스승의 편지를 받는 날이 오게 되었다.
「남쪽 바다에 닥친 참변을 듣자마자 라미네아를 찾았으나, 찾을 수 있던 건 딸 라텔뿐이었다.」
카이센을 거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뇌향의 세츠넨과 지휘부에서 재회했을 때였다.
「울면서 자기는 여기 두고 가도 좋으니 동생을 찾아달라고 하였으나 찾을 수 없었다. 발크루쉬의 낙인 때문이었겠지. 그게 영혼을 변질시켜 내 뇌향심공명진이 닿지 못하게 만든 게다.」
“그런가요?”
「그러니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구나. 저 아이를 찾아줘서.」
“고마워하실 것도 없습니다. 찾은 게 아니라 그냥 알아서 굴러들어 왔던데요.”
「넌 항상 그렇게 말하더구나, 카밀라. 조금은 더 솔직해져도 될 텐데 말이다.」
“…….”
「이건 라미네아의 집에서 찾아온 것들이다. 불타고 또 화산재에 말라비틀어져서 알아볼 수 있는 건 얼마 없지만.」
내용을 알아볼 수 없었으나, 눈앞이 희뿌옇게 부서져 무엇 하나 볼 수 없었다.
그것은 단순히 편지 뭉치가 아니었다. 스승의 마음이었다.
이곳, 심연에 당하면서 죽어가던 순간까지 자신을 생각하고 매일같이 편지를 쓴 스승의 사랑이었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이었고, 또 영원히 변치 않는…….
「요슈하르 어르신과 미르와 함께 간청하고 또 간청하였고, 광룡 성하께서 마침내 눈을 뜨셔서 다른 오주 어르신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너와 라미네아의 재회를 재가하셨는데…… 그때 여름이 시작되어 버리고 말았구나.」
“그랬나요?”
「라미네아의 일에 대해 숨긴 것을 두고 날 원망하느냐?」
뇌향은 한참 머뭇거리다가 저 말을 꺼냈다.
카밀라는 피식 웃었다.
스스로, 자신이 웃었단 사실에 놀라워하면서도 재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원망하지 않아요. 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 그냥, 아 씨, 왜 자꾸 눈물이 나와서, 그러니까, 뭐라고 말씀드려야 되지? 이거, 이 편지를 전해주셔서…….”
스승님을 살려주셔서.
스승님이 자식을 낳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셔서. 그래서, 지금 이렇게 이 녀석과 만나게 해주셔서.
제자를 보면서, 스승님이 저를 보며 품으셨던 마음을 알아갈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