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35)
가짜 용사 이야기-35화(35/310)
제35화
기원력 1697년 9월.
6대 마족의 주력부대가 대거 집결한 중부 전선 군대는 인류의 모든 거점을 일소시키며 북진.
구공화국의 서부 요충지 <아리스타포>를 시작으로 동부 수도 <테르베노플>이 으깨졌다.
구공화국의 마지막 칠대도시, <아우렐리노플>마저 함락되며 인류는 대륙 남방의 모든 요지를 소실.
거칠 것이 없게 된 마족은 대륙을 북쪽으로 크게 종단하며 살아가는 모든 것들을 유린하나…….
그 끝이 없을 듯했던 광기의 폭주는, 어느 순간 천험의 요새 앞에서 가로막히게 된다.
그 요새의 이름이 바로, 적색산맥(赤色山脈)이었다.
“Kke──────!”
투석기의 평형추가 일제히 급락.
발사대가 커다랗게 기울어지며 가로대를 육중하게 때렸다.
하늘을 빙그르르 돌며 날아가는 물체에서 시뻘건 용암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끄, 끄아아아아……!”
“서, 성벽이 녹아내린다……!”
미른가디아가 명령했다.
[철십자 기사단, 돌진 개시까지 대기. 10분.]철십자 기사단은 산맥 서부 산기슭에 위치한 제13삼림에 은폐하고 있었다.
그 수풀 너머의 하늘은 잿빛과 쇳빛뿐이었다. 거석과 강철이 끝없이 교차하고 있었다.
평야를 얇고 길게 내달리는 방벽 위로 거석이 꽂힐 때마다 피육이 으깨지는 비명이 잇달았다.
서부 평원 지대의 공성전이 한창이었다.
하이 쿤 타르크, 누위긴 클랜을 위시한 대군이 방벽 아래에 새까맣게 집결했다.
사다리가 방벽 위로 놓아졌다가 총탄과 끓는 기름에 떨어지고…….
통상 규격의 두 배에 달하는 광폭한 투석기들이 장벽으로 내던지는 건 용광로였다.
[여기는 철성(鐵城) 병단의 세이라 알터 솔랑, 더는 못 버텨요! 성벽이 녹아내려 길이 열립니다! 페이쿼리어가 더 필요해요!]서부 평원 지대는 적색산맥 방어선의 허점이었다.
산맥이 끊기고 평야가 시작되는 이 땅은 본디 제국과 구공화국의 교역로였다.
평야가 바다에 닿기까지 푸르게 펼쳐지는 넓음이란 평시에는 심히 풍요로웠으나 전시에는 위태로운 구조적 결함으로 작동했다.
이에 대한 미른가디아의 해답은 ‘무식하게 생각하자’였다.
긴 방벽을 축성해 평야를 틀어막되, 이 방벽 어디에도 성문을 달지 않았다.
마치, 돌로 쌓은 석산처럼.
성문이 없으면 공성추가 들어설 도리가 없다. 사다리와 정란차뿐이다.
전투의 양상은 성벽 위에서 치고받는 백병전보다 먼 거리에서 쏘고 맞는 화력전으로 귀결된다.
인류군은 원거리 고정 진지전에서는 마족과 대등한 승부를 펼칠 수 있었다.
‘상대가 누위긴 클랜이 아니었더라면 말이지.’
하이 쿤 타르크, 누위긴.
그 뜻이 은밀히 품은 의미는 ‘검은 화산’이었다.
‘누위기리오도’라는 옛 화산을 터전으로 잡은 누위긴 클랜은 철을 벼려내고 뽑아내는 일에 있어 우루크 가운데 으뜸이었다.
“이야, 저것들 쉴 새 없이 뿌려 대는데요.”
트발이 말했다.
로베리스가 대답했다.
“누위긴 클랜의 공성전 승률은 8할이 넘는다. 공성전에 약한 우루크 중에서 독보적이지.”
“석축, 무너져 내렸습니다. 각축전이 시작되겠어요.”
메른이 말했다.
아주 잠시, 카이센은 <위용검전>에서의 교육을 떠올렸다.
– 누위긴. 놈들은 용철(鎔鐵)이라는 이형의 철로 주조한 무기를 사용한다. 극도로 뜨겁지. 조금만 닿아도 인류의 육체는 심각한 화상을 입는다.
그 섬뜩한 까닭은 용철 내부에서 끓어오르는 용암에서 기인한다.
누위긴은 용암을 담는 철을 만들어낼 수 있었고, 그 기술력은 ‘검은 여름’ 때부터 인류에게 악몽을 선사해왔다.
또한 누위긴은 충격형 중장보병으로 유명했다.
– 가죽옷을 입거나 상반신을 드러내고 무장이 제멋대로인 여타 우루크 부족들과 달리, 누위긴은 용철 갑주와 대방패와 도끼창으로 무장을 통일한다.
충돌 시 용암이 폭발하는 특징에서 비롯된 저지력은, 이미 여러 전투에서 그 무위를 증명해왔다.
[5분, 돌격 준비.]철컥, 로베리스 알터 쉬르팽이 투구의 면갑을 닫았다.
판금 투구와 갑주에서 황금 장미가 아름답게 교차하였는데, 이는 페이지 방백 가문의 상징이었다.
시야를 닫되 두개골을 굳건히 지키는 철의 울림들이 일제히 울렸다.
“철십자, 쐐기 대형.”
2천 중기병대가 산림을 빠져나와 쐐기꼴로 집결할 때, 기사단은 3개의 부대로 나뉘었다.
로베리스가 본대를 이끌었다.
카이센이 좌익, 트발이 우익에 배치되었다.
[여기는 제4보병여단, 생존자 숫자 오백 명이 채 안 됩니다! 전선 유지 불가능!]용광로가 수없이 떨어지며 마침내 성벽이 허물어졌다.
마침내, 우루크 전사들이 성벽이 흔들려 무너질 듯한 함성을 터뜨리며 그 틈새로 밀려들어 갔다.
그리고 마침내, 순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진 개시.]트발이 큼지막한 쇠나팔을 쳐들었다. 그 큰 폐활량으로 진격의 폭음을 터뜨렸다.
뿌우우우우우…….
군마들이 지축을 뒤흔들며 산자락을 내려가자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고블린 따위의 떨거지 마족들은 혼비백산하는 모습에는 맹위도 투지도 없었다.
그러나 하이 쿤 타르크, 누위긴 클랜은 즉시 방진을 펼쳤다.
그 위용은 철옹(鐵甕).
순식간에 수평선에 새까맣게 장벽이 세워지는 압박감(壓迫感).
지면을 발로 차서 몸을 앞으로 밀어내는 군마들이 공포의 숨결을 큰 콧구멍으로 빨아들였다.
“절원(切願).”
그러나 극위성검 쉬르팽은.
아라다만텔조차 한 수 접는 이 성검은 그보다 더 많은 전장과 전설 속에 신비의 자취를 남겨왔다.
그리고 이날, 그 자취에 새로운 무늬를 더했다.
“시공섬(時空殲).”
허공에 붓으로 일획을 긋듯이.
차분히.
천천히.
하지만 단호하게.
선봉을 달리던 로베리스가 대검의 칼날로 똑바르게 횡선을 그었다.
“……?”
“……?”
“……?”
그러자 철의 장벽이, 신기루가 꿈틀거리듯 흐느적거리기 시작하더니 그다음 순간.
일도양단(一刀兩斷).
쩌적, 쩌저저적…… 채애앵, 차원의 창이 유리처럼 깨지며 새하얀 미립자가 나부꼈다.
차원의 파열은 막대한 폐열을 일으키며 그 절단면에 놓인 모든 존재를 게걸스레 집어삼켰다.
용철 갑주와 방패가 분쇄되고, 거기서 터져 나온 용암에 끓는점이 800도 미만인 누위긴 전사들이 녹아내리고 끓어올랐다.
[대단해…… 로베리스 알터 쉬르팽, 누위긴 방진 일제히 붕괴시켰습니다!]그 직후.
소멸의 공백을 메우려고 휘몰아친 돌풍이 용암의 열기를 지면에 낮게 깔았다.
“알리도나.”
“알아.”
알리도나가 입을 열었다.
그 혀끝에서 말(言)이 형식을 입고 힘의 실체를 얻어, 주술(呪術)이란 이름으로 발현된다.
느닷없이, 용암이 들끓는 대지가 가라앉더니 그 위로 온전한 발판이 놓였다.
“Ka z ku shi rak!”
그 발판을 막으려고 새로이 방진을 꾸리는 누위긴 전사대.
“메른.”
청광의 화살이.
맑고 청명한 입자를 흩뿌리며 그 대열의 중추를 꿰뚫고 날아갔다.
그 입자가 내려앉은 지면에서 신록의 뿌리들이 솟구치더니 누위긴 전사들의 사지를 붙들었다.
“트발.”
그리고 트발이.
그 어깨에 걸친 창이라기보다는 기둥에 가까운 중병기, 용골창을 휘둘렀다.
용철로 무장한 누위긴 전사들 십여 마리조차 그 압도적 질량을 견디지 못하고 20미터 가까이 튕겨 나갔다.
“철십자!”
그들이 만들어낸 것은 길이었다.
기사단이 나아갈 통로였다.
전장의 혈(穴)을 꿰뚫는 돌파구였다.
“모조리 짓밟아라!”
4.5척이라는 살인적인 길이를 자랑하는 오백여 자루의 랜스들이 희뿌연 빛에 휩싸였다.
그리고 붕괴된 진용을 수습하지 못한 적의 측면을 세차게 치고 들어갔다.
철십자 깃발을 위엄차게 나부끼는 강철의 물결.
그 격랑의 창끝이 우루크들을 두셋씩 꿰뚫고…… 땅을 구르는 것들을 말발굽으로 짓밟고…….
‘어떤 용사 파티보다도 가장 용사 파티답다고 정평이 나 있다더니…….’
진실로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카이센은 철십자 기사단, 즉 로베리스 파티에 붙은 별칭을 무심결에 곱씹었다.
600년 전의 동란기를 끝낸 전설적인 용사 파티, 리스타 알터 쉬르팽 파티의 재림이라고 했던가.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이렇게 길을 만들어내는 임무보다 더 막중한 임무가 카이센에게 부과되어 있던 것이다.
총력전의 서막,
적색산맥 공방 (3)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카이센이 물었다.
이는 되묻는다기보다는 당혹을 강조하기 위한 어법이었다.
로베리스가 대답했다.
“내 강점은 토벌이 아니라 진형 붕괴다. 일대일보다 일대다에 특화된 쉬르팽의 능력 때문에.”
이 대화가 오갔던 건 돌진이 시작되기 전의 일.
아직 전투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요컨대 제13삼림으로 이동하던 와중이었다.
“전설적인 페이쿼리어 리스타께서는 시공섬을 당연하게 난발했다고 하시지만 난 그게 안 돼. 긴 역사 동안 그걸 해낼 수 있던 대리자는 한 명도 없었다.”
“……!”
“시공섬은 극위성검의 극한의 힘을 끌어내는 절원으로밖에 구현할 수 없어.”
절원은 페이쿼리어로서의 무위에 정점에 도달한 것을 상징했다.
절원은 각 페이쿼리어의 개성을 상징하기도 했고, 시공섬처럼 하나의 비기로서 계승되기도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카이센은 아직 아라다만텔의 절원을 깨치지 못했다.
– 절원이란 그야말로 극의. 용령과 성검을 다루는 힘이 극에 달해야만 그 길이 열린다.
카밀라의 절원은 발도술이었다.
그 깨우침을 토대로 카이센에게 발도의 극의를 전수해준 것일까.
“한 전장에서 세 번이 최대다. 말이 최대지, 세 번을 썼다가는 무조건 실신이야. 한 번만 써도 온몸의 마나체인이 뒤엉켜서 칼질을 할 수조차 없다.”
시공섬은 열두 자루의 극위성검이 가진 절원의 역사 속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
힘에는 대가가 따른단 것일까. 불합리하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가짜의 몸으로, 진짜 용사의 힘을 휘두르려면 그에 맞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게 당연했다.
“두 번째 시공섬도 어지간한 긴급 상황이 아니면 안 써. 한 번 쓸 때마다 수명이 몇 개월씩 깎여 나가는 느낌이거든. 몸에 과부하가 안 걸리는 게 이상한 거지.”
“그럼 어떻게……?”
“한심한 이야기지만, 이번 돌격에서 누위긴 치프의 목을 베는 임무는 네게 맡기겠다.”
수많은 시선들이 부담스러운 당혹감으로서 이쪽으로 쏠리는 게 느껴졌다.
그때 카이센의 눈은 고요했다.
쉬르팽이 대리자의 의지를 강조하듯 새하얀 숨결을 내뱉자, 등허리에 매달린 아라다만텔이 붉게 울어 화답했다.
“좋은 눈이다. 대신 내 부하들이 널 전력으로 보좌할 테니 걱정하지 마라.”
“선배님은?”
“난 본래 페이지 가문의 장녀야. 페이지 가문은 초대 대현자 에밋사 페이지를 선조로 두고 있지.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나?”
제국에는 5개의 마도세가가 존재하며, 가문들은 각기 비전 마법을 갖고 있었다.
페이지 가문은 그 특이한 힘의 사용법 때문에 ‘그리는 마법사’로 불렸다.
지금 로베리스가 손끝으로 허공을 더듬자, 거기서 아름다운 룬이 태어나는 것처럼.
“난 원래 시공섬을 쓸 때를 제외하면 마법으로 싸운다. 그게 아니라면 트발 저 근육덩어리를 왜 전위로 넣었겠냐?”
* * *
[위협적 심연 인자의 접근을 확인. 누위긴 치프일 가능성을 98%로 계산한다.]누위긴 치프 디마르텍 아이도로셰는 그 살육적인 존재감을 저 아득한 멀리에서부터 과시했다.
그 살기(殺氣), 둔중하고 깊다.
예리한 바늘이 척추의 골간을 찌르는 듯한 긴장감이 크고 두려운 적의 존재를 암시하고 있었다.
온다.
온다.
오고 있다.
전장을 휘덮는 모래바람 위로, 화산을 그려낸 부족 깃발이 새까맣게 나부꼈다.
디마르텍 아이도로셰.
강철 손, 디마르텍.
디마르텍은 누위긴 전차대의 선봉을 이끌고 나타났다.
차륜에서 야만적으로 회전하는 칼날은 적의 발목을 자른다.
그 바퀴가 지나간 길에 떨어지는 용암은 적의 진영이 재합되지 못하게 막는다.
“Al kru te! 이 벌레 같은 것들이 감히 나의 화산에 소란을 일으키다니!”
디마르텍이 전차 위에서 뛰어올랐다.
강철 손으로 움켜쥔 철퇴, ‘판데모니움’에서는 용암이 사납게 끓어오르는 것이 언뜻 용광로처럼도 보였다.
트발이 즉각 군마에서 뛰어내렸다. 그 일격이 대열을 붕괴시키지 못하도록 받아쳤다.
“아둔한 인간 놈, 겨우 그딴 걸로 화산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 일순.
판데모니움과 격돌한 트발이 디디고 선 지축에 거미줄과도 같은 균열이 퍼졌다.
그 균열에서 요사스럽게 춤추며 들끓는 붉은 열기, 이는 옛 왕의 권능이다.
“화산은 그 무엇도 막지 못해! 네놈들의 더러운 몸을 화산의 은혜 속에서 새로운 갑주로 만들어 주겠다!”
그것은 화산의 폭발.
균열의 틈새를 비집고 나오는 재해의 덩어리.
그 불그스름한 패악들이 지축을 게걸스레 집어삼키고…….
“……!”
앞서 달리던 군마들이 발이 녹아내려 쓰러지고.
바닥을 구르던 종자와 시종 몇이 용암에 뒤덮이는 비명 속에서 몸이 녹아내리고.
선봉을 뒤따르던 군마들이 평정심을 잃으면서 돌진 대형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로로!”
“알아!”
로베리스의 마법과 알리도나의 주술로 탄생된 빙판이 용암의 폭주를 차단한다.
수증기가 뿌옇게 폭발하는 소리.
빙판 아래서 용암이 새까만 기포를 일으키며 부글거리는 소리.
그리고 팅…….
억제기의 핀이 뽑히는 소리.
일순 메른이 필살의 힘을 담아낸 화살이 디마르텍의 흉부를 꿰뚫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트발을 힘으로 짓누르던 디마르텍이 승리감이 깃든 음흉한 미소로 메른을 노려보았다.
메른이 차가운 콧방귀를 뀌었다.
“단단하긴 하네. 근데 내가 노린 건 네가 아니라 통로야, 얼간아.”
기류를 휘몰아치며 나아간 화살은 수증기의 안개 속에 하나의 통로를 만들어냈다.
그 통로는 길이었다.
벼락이 지나갈 길을 예비하는 화살이었다.
바로 이 순간.
벼락이 그 무늬를 밤하늘에 아로새길 때처럼, 이리저리 굽이치며 미끄러지는 저 선홍의 빛이 살(殺)로 향하기 위한 길.
─ 십문자도 7식(式).
카밀라는 성별 차이를 고려해 카이센에게 십문자도의 초식들을 대폭 수정하여 가르쳤다.
마나체인의 응용력이 떨어지는 남성은 연계의 검무인 십문자도를 완벽히 다룰 수 없었으므로.
그 결과, 하나의 초식들은 연계의 동력을 잃어버리고 단발성의 힘으로 분리되었다.
연계를 버린 대신 취한 것은 힘.
모든 초식이 ‘4식 – 발(發)’을 통해서만 시작되어.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살(殺)을 이루는, 그저 압도적인 힘.
십문자도는 본디 하나의 초식으로 완벽한 살(殺)을 노리지 않는다.
십문자도는 검무의 칼이다.
춤의 물결로 세를 이루고, 춤의 물결로 살(殺)에 닿는다.
하지만 카이센의 십문자도는.
여성처럼 춤을 출 수 없는 남자의 십문자도는.
발도술을 기반으로 오직 하나의 초식에 강대한 파괴력을 담도록 설계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증강된 파괴력이, 신룡과 진룡의 용령을 한계적으로 발휘하는 카이센의 특수성 속에서 완성되었다.
─ 발(發) – 진뇌룡(進雷龍).
용이 벼락을 토해내듯.
칼집에서 빠져나오는 칼날은 벼락을 시뻘겋게 휘감고 있었다.
그리고 어떠한 동체 시력으로도 좇지 못하는 뇌전의 속도로 간 표적을 집어삼켰다.
일섬(一閃).
칼이 나아간 궤적을.
반 박자 늦게, 붉은 잔상이 벼락의 무늬를 그리며 뒤따라온다.
한 박자 늦게, 칼날을 뒤쫓아온 참격의 쇳소리가 찰나의 적막을 베어낸다.
───챠르르르르릉!
절대적인 혼의 힘을 휘두른 칼날이 매섭게 명동했다.
칼이 들떠 있었다.
초월의 힘을 휘두른 반동으로 칼이 힘겨워하고 있었다.
‘인간이 만든 칼이었더라면.’
초월의 힘의 반동을 버티지 못하고, 참격을 휘두르기도 전에 여러 파편으로 쪼개졌을 터.
‘무리시켜서 미안하다, 아라다만텔.’
카이센은 순혈의 칼날을 우아하게 빙글 돌려 순백의 칼집 속으로 고요히 납도했다. 칼의 울음이 서서히 멎었다.
탁…….
날밑이 칼집을 때리는 소리를 끝으로 칼의 울음이 멎었을 때.
디마르텍 아이도로셰의 육중한 투구 쓴 머리통이 말끔하게 베어지며 용암 위로 고꾸라졌다.
상반신이 목의 절단면으로 피를 쏟아내며 쓰러졌다. 거칠게 맥동하던 판데모니움을 놓치며.
[이, 일격……?!] [누위긴 치프의 생명 신호 소실을 확인……!] [누위긴 클랜 대열, 혼란에 빠집니다……!]지면에 꽂힌 판데모니움의 내부에서 들끓던 용암이 잠들었다.
반쯤 동시에 천지를 갈아엎을 기세로 빙판 밑에서 폭주하던 화산의 폭발도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왕의 권능이 연결점을 잃고 흩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카이센 알터 아라다만텔이 누위긴 치프를 격파, 적 대열 붕괴합니다. 제2방면군을 토벌대로 투입해 주시길 요청합니다.”
인류 방어군 쪽에서 승리의 함성이 매섭게 치솟는 가운데 로베리스가 저렇게 보고했다.
[기각한다. 제2방면군을 잔당 토벌 투입에는 불가능, 제2작전목표인 공성 포대를 무력화시키고 방어선 유지에 힘써라.]늘 그렇듯, 미른가디아로부터는 냉철한 이성의 목소리만이 돌아왔다.
“원군을 보내 주십시오, 청성 각하. 지금 여기서 모조리 걷어낼 수 있습니다.”
[진영이 소란스럽다. 해당 사안에 대한 새로운 진언을 불허한다. 다만 카이센 알터 아라다만텔은 즉각 휴식을 취하게 하라.]“각하, 아직 전투 중입니다.”
[명령대로 하라.]로베리스는 압도적 승기 속에서도 소극적 자세를 취하는 미른가디아의 명령을 이상하게 여겼다.
그때 미른가디아가.
평원 전선의 승전보에 취한 이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전황을 내다보고 있는 걸 몰랐으므로.
“제2방면군, 제3보병연대 전멸……!”
“뱀그림자 병단, 전멸! 오필리아 알터 베룸페이라의 생명 신호도 소멸……!”
“화산재의 폭풍 때문에 정확한 판독 불가…… 여러 상을 제2방면군 전선에 집중시키는 중입니다.”
마침내 세계수의 수면 위로 적의 존재가 떠올랐다.
화산재가 격렬하게 소용돌이쳐서, 그 깊은 안쪽 적의 윤곽은 흐릿했다.
그럼에도 그 옛 형체, 그 옛 영광으로 단번에 그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원초의 암흑(暗黑)이, 찢어지는 울음을 내지르고 있었다.
고대의 화산(火山)이, 악마의 몸을 빌려 세계에 현현해 있었다.
그 초월적 무위와 힘의 격랑 앞에서, 무수한 병사들이 핏덩이로 짓밟히고 짓이겨지고 녹아내렸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오랜 세월 미동조차 없던 미른가디아의 육신, 그 눈썹이 전율 속에서 꿈틀 흔들렸다.
[마우나 로아…….]그리고 숙적의 이름을 읊었다.
마우나 로아(Mauna Roa; 왕들의 화신).
그 옛 이름을, 그리고 그 이름의 뜻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저 세계의 원수를 통틀어 이렇게 칭했다.
“심연 농도 측정 불가능…… 데몬! 데몬입니다! 화신급(化身級) 데몬 출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