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38)
가짜 용사 이야기-38화(38/310)
제38화
시야가.
화산재 저 너머 데몬의 심장으로 향하는 길을 맑게 열어낼 때.
세계의 원수를 포착한 성검의 칼날이 붉고도 날카롭게 포효하기 시작했다.
─ 십문자도 제4식, 발(發).
칼집 내부에서, 한 줄기의 살상력으로 집중되어 벼려지는 힘의 물결.
칼날이.
날밑이.
칼자루가.
이윽고 칼 전체가 힘의 반동에 삐걱거리며 흔들릴 때, 지면을 전력으로 박차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
그 일순, 날개를 펼치려던 데몬이 비상식적인 속도로 팔을 내뻗었다.
그리고 그 일순, 카이센의 몸이 팽이처럼 팽그르르 회전하며 그 팔을 깊숙이 베어냈다.
베어낼 때, 카이센의 신형은 데몬의 팔을 따라 옆으로 돌아섰고 그 회전의 힘으로 절단면을 확실히 열어냈다.
「───!」
암반이 으깨지듯 둔중한 파열음.
그 파열음과 함께 절단면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용암.
인간 육신의 끓는점을 아득히 상회하는 원시의 용암이 흩뿌려지는 자리에 카이센은 이미 없었다.
─ 발(發) – 십문자도 제6식, 섬무참.
빠르게.
더 빠르게.
한 번의 참격으로는 얕아. 살(殺)을 노리려면 더 빨라야만 해.
─ 발(發) – 십문자도 발도술, 장작 패기.
카밀라처럼.
카밀라가 하던 것처럼.
무수한 칼의 춤사위를 하나로 엮어서, 별개의 초식을 여러 개 펼쳐내는 게 아닌, 하나의 춤으로 엮어내야만 해.
─ 발(發) – 십문자도 제10식, 십자참수.
참격이 끌고 온 빛의 잔영이, 사그라지기도 전에 또다시 일섬.
다시.
다시, 다시.
다시, 다시, 다시, 또다시.
그 잔영들이 겹치고 또 겹쳐서, 남들의 눈에는 꼭 데몬 주위로 붉은 꽃이 만개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건, 아니……?”
그때, 그 자리의 모두가 압도되듯이 그 광경을 바라보았는데 로베리스의 감상은 남달랐다.
저 춤사위, 본 적이 있었다.
저 꽃의 환영, 본 적이 있었다.
‘검은 여름’의 끝자락, 지금과 똑같이 화신급 마우나 로아를 ‘영웅’이 베어낼 때…….
“……라미네아 님의?”
십문자도는 본래 춤사위의 칼.
하나의 독립된 행이 아니라 연속된 행으로 상대를 겨누는 칼.
하지만 카이센이 선택하는 기본 동작은 발(發) 하나이기에 이는 불가능하다 들었는데, 어떻게……?
챠, 챠, 챠챠챠챠챠챠챠챵!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은 간단했다.
인체의 구조와 용령의 힘을 한계까지 구사해서 납도와 발도를 연속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최고 속도로.
─ 발(發) – 돌발격.
─ 발(發) – 진뇌룡.
─ 발(發) – 절뢰도.
가짜 성검의 힘은 데몬의 혼을 겨누지 못했으나, 그 발목을 움켜잡는 것만큼은 확실히 해냈다.
“데몬, 움직임 봉쇄!”
“카이센 알터 아라다만텔의 혈투에 데몬의 기동 능력이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대(大) 주여소계대반, 위력 88%까지 집약 완료!”
흑요정 수종자들이 들뜬 목소리로 내뱉는 말들은 미른가디아에게 가슴 떨리는 전율을 남겼다.
‘카이센, 광룡의 혼을 품은 용현의 후손…….’
그 참격의 빛 속에서, 미른가디아는 ‘검은 전쟁’의 끝머리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라미네아 알터 아라다만텔.
라미네아는 날 때부터 맑은 아이였다.
제 조상을 닮아서, 어린 날부터 맑게 웃었고 또 짐승이 죽는 사소한 슬픔에도 눈물을 흘리는 아이였다.
그 얼굴에, 용현의 맑음과 삼영룡의 어미와도 같았던 미리아의 맑음이 합쳐져 드러난 아이였다.
웃을 때, 몸과 마음의 모든 빛이 꽃처럼 피어나게 웃던 아이였다.
오직 삼영룡을 돕고 싶다며 용사의 길로 들어선 아이였다.
– 어르신들을 온 마음과 힘으로 돕고 싶어요.
한 사람이.
한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나.
옛 사람의 얼굴과 표정과 향기와 마음을 모두 계승하는 창세의 아름다움에 미른가디아는 몇 번이고 놀라고 또 감복했다.
– 미르 백부님, 이제 여기서 제 길을 끝마치고자 해요. 많이 다치셨잖아요? 그만 쉬세요.
그 아이는 ‘검은 여름’의 끝머리에 미른가디아 대신 마우나 로아와 맞섰고 서류상으로 죽었다.
그래, 서류 위에서는…….
딸을 낳고 아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다 아들을 지키다 정말로 죽었다는, 그 아이의 마음과 영혼은 하늘에 닿았을까.
– 미르, 오늘 라미네아를 보고 왔어. 딸도 아들도 모두 제 엄마를 빼닮아서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너도 직접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용현을 닮아서.
다른 누구를 사지로 내몰기보다.
자신이 늘 직접 사지로 나아가던 그 아이는 이제 여기가 아닌 곳에서 용현과 만났을까.
만나서, 너는 한 점의 부끄럼 없이 어깨를 펼 수 있었느냐.
카밀라는 너를 만나서 어깨를 펼 수 있었을 것이다. 너처럼, 남을 위해서 스스로 사지로 나아가는 사명을 마치고 갔으니.
‘미안하구나…….’
내 지혜가 더 깊었더라면, 용현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을 정도로 강인하였더라면.
너를 그렇게나 고통스럽게 했던 그 슬픈 사명의 길로 너를 끌어들이지 않았을 텐데.
옛 기억을 떠올리는 미른가디아의 잠든 육신, 그 눈꺼풀 위로 이슬이 비어져 나왔다.
‘그래, 그리고 네 아들은 진실로 그런 너를 닮았구나…….’
총력전의 서막,
적색산맥 공방 (6)
끝없이 잇닿는 초식이 섬광의 사선으로 허공에서 무수히 교차하던 어느 순간.
마우나 로아의 꼬리가 순식간에 공간을 돌파해 카이센의 심장을 겨누었다.
그러나 그 순간, 흑광이 둔탁하게 일더니 그 꼬리가 허공에서 붙들렸다.
“하, 덩치는 산만 한 놈이──”
한마디로 비상식적인 괴력…….
“──힘에 매가리가 없구나! 내 죽은 마누라보다 약해!”
트발이 양손으로 그 꼬리를 붙잡아 세웠는데, 양쪽 발이 균열을 일으키며 지면 깊숙이 파묻혔다.
“트발 씨……!”
데몬이 꼬리를 들어 올려 트발을 내리찍으려 한 순간, 꼬리가 소속된 공간 위로 균열이 퍼졌다.
쩍, 쩌저저적, 채애애애앵!
시공섬.
균열이 퍼진 차원이 쪼개지면서 그 틈새로 꼬리가 절단되어 빨려 나갔다.
“멈추지 마!”
그 외침에, 입매가 경련했다.
초월적 힘이 담긴 초식의 무한한 연속 속에서 칼과 몸이 부서질 듯이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입으로 피를 쏟으며 멈추지 마, 라고 외친 로베리스의 말이 다시 몸을 채찍질하는 듯했다.
이 고통과 시련 너머.
오직 칼 한 자루로 개척해 나가야 하는 칼의 운명 앞으로…….
카이센은 다시 칼자루를 붙들었다.
다시, 집중했다.
반동이 뼈를 흔들 때 칼이 제대로 휘둘러졌음을 알았을 정도로.
─ 발(發) – 뇌격단.
참격의 사이사이.
납도와 발도 동작에서 필연적으로 열리게 되는 찰나의 허점마다.
─ 발(發) – 뇌염검무.
부자연스럽도록 예리한 궤도를 그리면서 데몬의 반격이 쳐들어왔는데.
─ 발(發) – 영멸섬.
트발의 용창과 메른의 화살과 알리도나의 주술이 그 공격으로부터 카이센을 떼어냈다.
「Pu Hasas!」
마우나 로아가 발로 땅을 내리찍자, 그 내부 지맥에서부터 용암이 들끓기 시작했다.
용암은 도마뱀 군주의 권위.
용암의 숨결이 적색산맥의 산세를 따라 흘러들어 갔는데…… 카이센의 양팔에서 솜털이 곤두섰다.
‘이 자식, 설마…….’
혈류를 따라 독이 퍼지듯.
지맥에 스며든 용암은 고지대를 휘도는 3개의 봉우리들을 붉게 물들이며 상승하고 있었다.
세 줄기의 빛은 이제 고지대의 상공에서 완전한 하나로 엮이기 직전이었다.
– 모든 죽음을 개죽음이 아닌 숭고한 희생으로 바꾸는 것, 그게 우리들의 사명이다.
막아야 해.
여기서 저놈을 놓친다면.
모든 죽음이 수포로 돌아간다.
“기다려, 너무 성급해!”
용암에 의해 발판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화급한 도약은 돌진 궤도를 크게 제약시켰다.
그 움직임을 확실히 읽었을까.
아니, 분명 그렇게 되도록 유도했을 것이다.
마우나 로아의 손아귀가 이미 전진 궤도에 새까맣고도 거대하게 펼쳐져 있었다.
거기서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그 손아귀에 몸이 붙잡혔고…….
‘이게…….’
시야에서 벼락이 치면서 머리를 제외한 전신의 모든 뼈가 가루로 바스러지는…….
‘이렇게…….’
섭리를 아뜩히 뛰어넘는 중량과 고열에 압살당하며 의식은 끊어질 듯 가물거리기 시작하고…….
‘끝난다고……?’
극한까지 증폭된 오감이.
소름 끼치도록 허무하게 닥쳐오는 죽음의 과정과…….
그 고통의 유형과 크기를 너무나도 분명하게 뇌리에 설명해주는…….
‘여기서……?’
그 분명함은 너무나도 두려웠고 또 허망해서…….
「이제 되었다.」
그 분명한 죽음의 자각 속으로, 짝…… 양손을 맞잡는 합장의 울림이 들어왔다.
그러자 빛이.
태양보다도 따스한 광휘가.
차갑고 싸늘한 죽음의 감각으로부터 조심스럽게 끄집어내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고생했구나.」
그때, <아리스타포>에서 탈출할 때 느꼈던 것과 똑같은 빛…… 시공을 새로이 엮는 뇌향의 힘이다.
새까맣고도 새하얗게 명멸하는 시야 너머로, 고귀한 태양빛 금발과 십자 무늬 눈동자가 보였다.
카이센은 피를 껄떡이면서 마음을 말하려 했으나, 폐부가 짓뭉개져 말로 엮이질 않았다.
아직…….
베어야 할 것이…….
저기 저렇게 남아 있는데…….
그러나 세츠넨은 카이센의 그 마음을 선명하게 들여다보고 지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뇌향의 힘, 세츠넨의 권위로.
세츠넨 또한 제2방면군의 패잔병들을 지켜내느라 온몸이 만신창이였는데, 그 입매에 고요한 미소의 자취가 떠올랐다.
「쉬어라. 네 덕에 모두 이루어졌으니.」
상공에서 소용돌이치며 집약된 청광의 폭풍이, 그 순간 낙뢰처럼 지면 위로 급강하했다.
눈이 시릴 정도로 새파란 광휘.
대마법사 린이 고안했던 불사(不死)의 봉인이 발동되었다.
그 이름, 주여소계대반(主濾小計袋反).
술사가 치명상을 입었을 경우 회복이 끝날 때까지 그 신체를 완전히 얼려버리는 고위 술식.
[대(大)주여소계대반, 명중……!]본래 술사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고안되었던 그 마법은, 린의 제자 무녀 투레이나의 손을 거쳐 봉인식으로 개량되었다.
[데몬의 육신 전반에 빙결화 진행 중, 수치 환산 35%!]대상을 완전하게 빙결시켜 강제적으로 휴면(休眠) 상태로 만드는 그 힘은, ‘왕들의 화신’조차 한정적인 영면 상태로 만든다.
「KAAAAAAAAAsssssEEEEEEEEEEEEEEEEEEEEEEEEE!」
날개를 휘돌려 산맥으로부터 벗어나 마우나 로아가, 카이센을 품은 세츠넨에게로 돌진했다.
찰나의 한순간.
찰나밖에 남지 않은 이 한순간.
하나의 목숨이라도 더 취하겠다는 듯, 집요하게.
“카이센!”
“뇌향 각하!”
“메른, 알리도나! 원호해!”
모든 반응이 한 박자 늦은 그때.
별안간 코앞까지 들이닥친 마우나 로아에게로 손을 내뻗으며 세츠넨은 이렇게 속삭였다.
「네가 취한 목숨이 아직도 부족하더냐.」
그러자 뇌향의 손이 그 이마에 닿은 순간, 천공을 찢으며 낙뢰가 내리꽂히더니.
마우나 로아를 절벽 아래로 내리꽂았다.
그 절대적 살기와 증오를 찢어지는 포효로 터뜨리며 마우나 로아는 추락했다.
그 포효가 마지막이었을까.
주여소계대반의 봉인이 극에 달했다.
마우나 로아의 거대한 육신은.
육신을 세포 단위로 얼리는 힘에 뒤덮이며 순식간에 하나의 빙석(氷石)으로 변해갔다. 그 아래 땅 밑에서 들끓던 용암과 함께.
[68%!]이곳의 세 봉우리는 270년 전, 옛 무녀 투레이나가 옛 귀족을 잠재우기 위해 주여소계대반의 봉인식을 만들어 두었던 장소.
미른가디아는 그 힘을 그대로, 아니, 자신의 총명으로 몇 배로 증강시켜 예비해 두었다.
마우나 로아가 계속 되살아난다면, 죽이지 않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잠재우면 될 터…….
[82%!]그것이, 미른가디아의 판단이었다.
그 판단을 공적으로 세우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주검이 산맥의 거름이 되어 스러져야만 했다.
그래서 미른가디아는, 삶이 다하는 날까지 그러한 승리들을 승리라고 말하지 않았다.
[97%!]그것이, 세츠넨이 카이센에게 뇌향 공명으로 전달해준 이번 일의 전말이었다.
어째서…….
일개 페이쿼리어인 저한테…….
그러한 속사정을 친히 다 설명해 주시는 것인지…….
의식이 끊기던 그 순간, 흑요정 수종자들이 안도의 환성으로 숨을 헐떡이며 외쳤다.
[100%…… 완전 빙결! 화신급 데몬, 봉인에 서, 성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