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4)
가짜 용사 이야기-4화(4/310)
제4화
전후 정비로 카밀라 병단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온 천지가 시체투성이였다.
머리통이 깨진 우루크의 사체를 지나, 사람의 뇌를 쪼아 먹던 까마귀를 쫓아내며 카이센이 살육의 벌판으로 걸어 들어왔다.
“하, 이 많은 시체들을 또 언제 다 태우고 앉았냐…… 엉? 저 꼬맹이, 엥?”
“우루크 슬레이어 아냐?”
“어라라, 잠깐, 점마 저거 일주일 만에 제법 남자가 된 얼굴인데? 얘, 누나한테 좀 와봐. 귀여워 해 줄게.”
용병들의 목소리들은 무시했다.
흑발의 소년은 다만 걸었다.
베어 죽인 우루크 족장의 시체 위에 걸터앉아 있던 카밀라 앞에 설 때까지.
“한 번이라도 공격에 성공하면 검법 가르쳐 준다고 약속했지?”
아라다만텔의 칼날을 처연히 들여다보던 페이쿼리어가 황금의 용안을 들어 카이센을 노려보았다.
“어디까지나 네가 안 뒤진다면 말이지만.”
“아직 유효하단 거지?”
“울프랑 뭘 꼼지락댔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번엔 내 변덕으로 안 뒤진 거야, 새캬. 두 번은 없어. 뒤지기 싫으면 알아서 꺼져.”
그 한마디에 살기를 느꼈을까.
순간 카이센 뒤쪽의 숲에서 새들이 푸드덕 날아올랐다.
짐마차를 끄는 말들이 뒷발로 일어서서 앞발로 허공을 긁으며 울부짖었다. 짐승조차도 몸을 떠는 살기였건만 소년은 의연했다.
더 나아가 태연하게 등허리에서 어머니의 소검을 발검해 카밀라를 똑바로 겨누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이게 내 대답이다.”
날카로운 정적이 깔렸다.
그러나 싶더니, 어느새 카밀라와 카이센을 둥그렇게 둘러싼 용병들이 격렬한 환호성을 터뜨렸다.
“와, 저놈 지금 뭐랬냐?”
“나 방금 소름 돋았어.”
“패기 하나는 일품일세!”
이 사태의 공범이라고도 볼 수 있는 울프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넌지시 도발했다.
“왜 그래, 혹시 검술을 가르쳐주게 될까 봐 겁이라도 난 거야?”
그 장난스러운 도발에 용병대장 엘토람과 그 부하 수인병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울프를 흘끗 노려본 카밀라가 짜증 섞인 한숨을 뱉으며 일어섰다.
이 상황이 못마땅하다는 기색이 역력했으나, 결투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이 담긴 몸짓이었다. 용병들이 격렬하게 환호했다.
“좋아, 덤벼. 뒤지는 게 소원이라면야 들어줘야지.”
유년기,
여름의 서막 (3)
아주 잠깐.
시간은 엿새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힘들지 않니? 좀 쉬어가면서 해도…….
하루, 하루.
시간이 몸에 새겨지듯이.
난해한 발동작들이 카이센의 몸에 익숙해지다 못해 노련해지기 시작했다.
– 아무 문제 없어.
카이센은 실로 필사적이었다.
굶주린 아이처럼, 게걸스럽게 훈련했다.
병단을 따라 이동했고, 울프가 챙겨주는 밥을 먹었고, 밥을 먹은 다음에는 카밀라가 수련하는 장소로 나왔다. 카밀라가 나오는 시간만 교묘히 피했다.
– 이제 다음 환영을 보여줘. 이건 충분해.
– 정말 놀랍구나. 이제 사흘밖에 안 됐는데…….
사흘 차부터는 라미네아의 소검을 쥐고 환영의 손동작까지 모방하기 시작할 정도였다.
– 하지만 카이센, 이렇게 따라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 어떻게든 인정을 받아야 한단 거지?
– 그래, 정식적으로 배우는 것과 훔쳐 배우는 데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거든.
그렇게 다시 하루, 또 하루.
그렇게 길고도 짧았던, 필사적으로 보낸 엿새의 시간을 딛고 이렇게 카밀라와 마주 섰던 것이었다.
“왜 그렇게 뒤지고 싶어서 환장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래, 뒤지는 게 소원이라면야.”
카밀라의 무기는…… 맨손이었다.
이번엔 나뭇가지를 쓸 가치조차 없다는 듯, 짜증스럽게 카이센을 내려다보며 어서 오라고 손가락을 까딱까딱 흔든다.
긴장되는 호흡.
조용히 치솟는 심박.
숨을 깊이 들이마신 다음…….
카이센이 지면을 박차고 돌진했다. 용병들에게서 환호와 야유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그래! 남자는 선빵 필승이지!”
“에잇, 멍청아! 저번이랑 똑같은 꼴 당한다!”
하지만 아니었다.
뭔가, 뭔가가 달랐다.
용병들은 다음 순간 펼쳐진 광경에 멍하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엇……?!”
복부를 겨누고 발을 휘돌려 찬 카밀라야말로 카이센의 행동에 제일 당혹스러워했다.
공격을 감지한 일순, 소년이 발로 지면을 내리쳐 몸에 제동을 거는 것이 아닌가.
관성을 억제하는 제동의 힘으로 몸을 비틀어, 회전의 힘이 실린 칼을 휘두른다.
“어이, 저 동작은……?”
“어어……?”
“카밀라 나리의 발동작과 비슷한 것 같은데……?”
뭐야.
<십문자도(十文字刀)>의 보법?
카밀라는 혼란 속에서 카이센의 혼신의 참격을 피하며 주춤했다.
“하아! 하아아! 하아아앗!”
귀엽기까지 한 기합성.
그것과는 달리 거세게 몰아쳐오는 참격.
예상했던 공방이 뒤집혔기 때문일까, 용병들의 응원이 절정에 달했다.
“한 방 먹여드려!”
“옳지, 오오옳지! 밀어붙이고 있어!”
당혹감에 물든 표정으로 참격을 가볍게 피하던 카밀라의 눈동자에서 살기가 번득였다.
‘승산은 첫 합 때뿐이었어.’
카밀라는 십문자도의 정통 계승자다.
스승님께서 아들에게 이 부분만 장난으로 가르쳐줬든, 울프가 이상한 술수를 부렸든, 모든 품세가 내 손바닥 위에 있다.
“이게 사람 놀라게 하네.”
그렇기에 다음 순간 몸을 살짝 뒤틀며 그 회전력을 그대로 실어 발을 휘돌렸다.
‘머리가 뒤흔들릴 정도의 위력. 대충 고통에 겁을 먹고 도망갈 정도면 되겠지.’
끝을 내겠다고 생각한 그 한순간, 카이센의 눈이 날카롭게 번득였다.
‘아니?’
카밀라는 그 순간, 카이센이 펼친 일련의 초식에 헛숨까지 뱉고 말았다.
“허……?”
검대째로 칼집을 꺼낸다.
칼과 칼집을 교차시키며, 공격의 궤적에 들이민다.
‘이 자식이 어떻게……?’
칼과 칼집을 모두 사용하는 특이한 검법인 <십문자도>의 기초이자 핵심인 제1형, 십자 막기 자세인 원(圓)이었다.
────터엉!
충격.
뼈에 균열이 이는 듯한 격통.
온몸을 덮쳐오는 반향 속에서 카이센은 방어 자세를 필사적으로 유지했다.
‘막았어. 그런데도 몸이 밀려난다고……?’
정말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그러나 발이 지면에 깊숙이 박히며 한 뼘쯤 밀려났을 때쯤에는 충격이 누그러지는 동시에 자세가 안정되었다.
반면.
카밀라는 공세를 수습하지 못했다. 용병들은 숨조차 쉬지 못하다가 소리쳤다.
“이건?!”
“기회, 기회닷!”
“나리의 허점이 그대로 열려 있다, 꼬맹아!”
카이센 또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몸을 튕기듯이 쏘아 올려 카밀라에게로 쇄도시켰다.
“끝났군…….”
모두의 환성이 절정에 달한 그때 엘토람만이 한숨과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카밀라 나리는 페이쿼리어다.’
인체 개조를 통해 수인조차도 능가하는 신체 능력을 손에 넣었을뿐더러 격투술조차 완벽하게 익힌 인류 최고의 병사.
“어……?”
승리를 확신한 한순간.
칼끝이 카밀라를 찔렀다고 생각한 순간.
터엉!
불현듯 카밀라의 손등이 칼등을 올려쳤고, 칼이 손아귀에서 빠져나갔고, 카밀라가 뻗은 발에 다리가 걸려 몸의 중심이 무너졌다.
‘어?’
시야 가득 새까맣게 펼쳐지는 화산재의 하늘, 그 하늘이 빙글빙글 도나 싶더니 어느새 지면에 널브러져 있었다.
‘어라?’
반짝, 무언가가 번뜩였다.
핑그르르 돌던 어머니의 칼이 얼굴 바로 옆에 꽂히면서 머리털이 곤두섰다.
‘졌어……?’
죽음의 그림자가 위압적으로 드리워졌다. 카밀라가 카이센의 머리맡에 와서 섰을까.
새하얀 백발.
황금빛 용의 눈동자.
그늘진 얼굴에서 번득이는 눈동자는 어머니와 똑같았으나 표정은 완전히 달랐다.
“잘 가시고.”
카밀라가 진흙 밭에서 어머니의 칼을 뽑아들었다.
순식간이었다. 소검을 역수로 바꿔 잡더니 카이센의 얼굴에 내리찍은 건…….
온몸을 엄습해오는 죽음의 공포에도 굴하지 않고 카이센은 카밀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먼저 당황했다.
“왜……?”
1초, 2초, 3초…….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 흘렀건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카밀라는 대신 바닥을 나뒹굴던 칼집을 찾아내더니 어머니의 소검을 그대로 납검했다.
“마음이 바뀌었어. 이 쓰레기는 제법 쓸모가 있을 것 같아. 아직 쓰레기지만, 6일 만에 이 정도면 나중에 첨병 정도는 맡길 만하겠어. 안 그래, 엘토람?”
엘토람이 하핫,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럭저럭.”
“뭐야, 첨병이라니? 싫어. 그딴 거 안 해. 검술을 가르쳐줄 때까지 계속 덤빌 거야!”
카이센이 미약하게 항변했으나, 카밀라에게서 같잖다는 시선을 받았을 뿐이었다.
“넌 목숨을 빚졌다, 이딴 상식도 모르나? 그리고 상식적으로 너 같은 좆밥 꼬맹이가 날 이기는 날이 올 것 같아?”
“어! 다시 해! 할 수 있거든!”
그 천하의 카밀라를 상대로 하는 당찬 대답에 용병들이 배를 잡고 웃어젖혔다. 물론 카밀라의 섬뜩한 눈초리를 받자마자 휘파람을 불며 달아나야 했지만.
“꼴 받게 하지 말고 들어. 보다시피 이 병단엔 쓰레기뿐이거든. 쓸모 있는 버러지들이 아주 부족한 형편이야.”
“힝, 그렇게 말씀하시니 너무 섭섭합니다요, 나리.”
“옳소!”
“닥쳐, 이 쓰레기들아.”
“옙.”
“봤지? 저런 놈들뿐이야. 그런데 네가 내 충실한 따까리가 되겠다고 약속한다면 그 깜찍한 억지를 못 들어줄 것도 없지. 쓸모 있는 따까리가 마침 필요하던 참이니.”
“?”
“눈깔 끔뻑이지 마, 먹물을 확 뽑아버릴라. 못 알아들었어? 내가 우루크 누구를 족치라고 하면 족치는 거고, 어디를 정찰하라고 하면 정찰하는 거고, 누구한테 전언을 전하라고 하면 전하는 거야.”
아니 뭔…….
용병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딴 꼬맹이가 우루크 목을 어떻게 따?’
하지만 카이센의 반응은 달랐다.
“그렇게 하면 뭘 해줄 건데?”
“뭘 해주긴 해줘? 검술을 배우고 싶다며? 가르쳐 준다고.”
그 대답에, 몸도 영혼도 피로 젖고 피로 적셔지는 칼의 길로 끌어들이겠다는 그 한마디 말에.
증오와 절망으로 물들어 있던 소년의 눈동자가 환해졌다.
그 얼굴에 스승님의 얼굴이 일순 겹쳐지면서, 견딜 수 없이 쓰라린 통증이 카밀라의 가슴을 때렸다.
‘스승님.’
저더러 당신의 아들을 가르쳐 주라고 이 칼을 맡긴 건가요? 그런 건가요?
하지만 칼의 세계에서 달아나신 당신께서는 분명 그걸 원하지 않을 텐데…….
하지만 이대로 돌려보냈다가는 벽지에서 굶어 죽거나, 이상한 놈한테 가르침을 구걸했다가 맞아 죽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선택은 네가 해.”
카밀라가 한숨과 함께 카이센에게 스승님의 소검을 내밀었다. 칼집에 꽂아서 칼자루 쪽으로.
‘스스로 선택하게 하죠.’
당신께서 제게 그러셨듯이, 당신의 아들에게도.
그러면 되겠죠?
아무도 모르는 먼 변방 땅 어딘가에서, 자식을 낳고 행복하게 살다가 끝내 진정 죽었다는 스승의 소식을 진심으로 슬퍼하며 카밀라는 말을 맺었다.
“그냥 돌아갈 건지, 아니면 검술을 다 배울 때까지 이 냄새나는 쓰레기들이랑 같이 다닐 건지.”
어머니의 유품을 골똘히 내려다보던 카이센은 한참 머뭇거리는 듯했으나 끝내 그걸 받아들지 않았다.
“이걸 안 돌려받으면…… 검법이란 걸 가르쳐주는 거지?”
“그렇다니까? 네가 도망치지 않겠단 담보로 맡아놓지. 밥만 축내다가 도망가면 놔둘 순 없으니.”
“진짜?”
“속고만 살았냐? 아, 그리고 무릎 꿇고 빌면 혹시 모르지. 좆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당장 오늘부터 기초 초식을 좀 가르쳐줄지.”
카이센은.
카밀라에게 기묘한 감정이 들게 만드는 스승의 아들은.
용병들의 웃음 섞인 아우성 속에서 고요한 얼굴로 곧장 무릎을 꿇었다.
“넌 자존심도 없냐?”
그거, 먹을 수 있는 건가?
그런 눈빛으로 카이센이 이렇게 말했다.
“자존심 같은 거 필요 없어. 칼만 배울 수 있으면, 그래서 우루크만 죽일 수만 있으면, 다른 건 아무것도.”
그때 소년의 목소리는 울먹거리는 것 같기도 했고, 울분에 이빨을 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 그때 너는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피를 무수히 뿌려야 하고 또 그런 피에 끝없이 젖어야 하며 끝내 그 피에 가라앉아 죽게 되는, 이 칼의 세계에 들어오기를.
‘하…….’
용의 눈동자로 그런 스승의 아들을 응시하던 카밀라는, 속으로 깊은 한탄을 뱉으며 스승의 칼을 검대에 꽂았다.
“야, 엘토람. 어디서 외날검 한 자루 구해 가지고 와.”
“외날검은 왜요?”
“상놈아, 그걸 질문이라고 해? 이 얼라한테 칼 쓰는 법 가르쳐줘야 될 거 아냐.”
카이센의 진심 어린 패기에 감동했던 것일까? 카밀라의 결정에 병단의 병사들이 격한 환호성을 터뜨렸다.
“캬, 저런 상남자라면 꼬맹이라도 괜찮지. 환영한다, 꼬맹아!”
“오랜만에 가슴이 다 뜨거워지더군.”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던 울프는 걱정과 기대감이 섞인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저 어린 나이에 이 전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온 게 과연 축복일지, 저주일지…….’
그건 오직, 신들만이 아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