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43)
가짜 용사 이야기-43화(43/310)
제43화
“오늘부터는 ‘붉은 여름’ 전쟁사의 가장 큰 분기점으로 유명한 <아우렐리노플> 공략을 다룰 것이다.”
<아우렐리노플>.
옛 구공화국 영토를 분할하여 통치하던 칠대도시(七大都市) 중 하나.
지리적으로, 도시는 적색산맥이 끝나고 벨리소르 대하가 양쪽으로 갈라지는 분수령에 견고히 들어앉아 있었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아우렐리노플>의 지리적 가치는 인류와 심연 양측에게 막대한 것이었다.”
벨리소르 대하는 <아우렐리노플>에서 양쪽으로 갈라져 대륙 남부를 관통하고 또 연결했다.
육지와 바다가, 물길을 통해 <아우렐리노플>에서 이어졌으므로 도시는 인류 번영의 역사를 책임져 왔었다.
옛 인페르노 라인의 중심을 차지했던 것도 바로 이 <아우렐리노플>이었다.
“마족에게, <아우렐리노플>은 북진의 거점이었다. 거꾸로 인류에게는 남진의 거점이었지.”
양측 진영에게 모두 전진의 거점이었으므로, 이곳에서 벌어질 전투는 총력전(總力戰)의 양상을 띨 수밖에 없었다.
“1698년 2월, 인류는 아인과의 전선을 연결하기 위하여 <아우렐리노플> 공략전의 초석을 다지기 시작한다.”
그 초석의 과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본대의 앞길을 닦는 것이었다.
명료하게 설명하자면, <아우렐리노플>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그 상공에 깔린 화산재를 걷어내야만 했던 것이다.
청성은 최정예 인력으로 정찰 분견대를 편성, 산맥 이남으로 내려보내기로 결정한다.
“카이센 알터 아라다만텔이 바로 이 정찰조에 비대칭 전력으로 배치된다. 이렇게 1698년 2월, <아우렐리노플> 공략전의 전초전이 시작된다.”
총력전(總力戰),
아우렐리노플 공략 (1)
정찰 임무는 그 시작부터 뒤숭숭했고 심장이 요란하게 뛰었다.
[여기는 알리도나. 정찰조, 산맥 결계 밖으로 나간 걸 확인했어.]적색산맥의 산허리를 벗어나자, 모든 것이 암흑 속에서 희끄무레한 윤곽으로 변했다.
[이제 산맥 밖으로 나갔지? 슬슬 화산재 때문에 앞이 안 보이기 시작할 거야.]화산재는 옛 왕의 권능이었다.
단순히 시각적 교란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지각을 교란시키는 왕의 힘은 청성의 통찰력도 마찬가지로 차단해냈다.
이러한 까닭으로 부유성 총사령부는 산맥 이남의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메른입니다. 화산재도 화산재지만 모래 폭풍 때문에 눈을 뜨기가 힘든데요.”
지금까지는 방어전이었기에 해당 정보가 필요하지 않았으나, 남진이 예고되었으므로 이제는 상황이 바뀌게 되었다.
[모래 폭풍이라, 도마뱀 군주 네이갈라스의 힘이 깨어나고 있는 거야.]“보고하는 내내 혀 위에 모래성이 쌓아질 정도입니다. 투구를 써야겠어요.”
[마족의 요새가 확인될 때 보고해. 너희들이 해결해줘야 할 수도 있어.]메른은 계보가 끊겨가는 궁술 명가, 취중사(醉中射)의 정통 계승자였다.
활이 총과 비교해서 여러 한계가 부각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하지만 일류 궁사들이 지니는 감각 증폭, 은폐 능력 및 원거리 암살 실력이란 포수들은 결코 지닐 수 없는 자질이었다.
[아, 그리고 결계석 박는 거 잊지 말고.]총사령부는 메른을 필두로 정예 궁사 열다섯 명을 정찰대로 편성, 여기에 카이센 알터 아라다만텔이 비대칭 전력으로 소속된다.
“네, 알고 있습니다.”
메른이 내부가 은은히 빛나는 가죽 꾸러미를 카이센에게 건넸다.
“결계석을 보는 건 처음이지? 자, 받아. 쐐기형 결계석이야.”
쐐기의 표면에서 용언(龍言)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문자를 새겼다기보다는 문자가 쐐기의 형태로 결집된 느낌이었다.
“반경 삼십 리의 화산재를 모조리 걷어낼 수 있어. 청성께서 고안하신 걸 알리도나 님이 양산해낸 거지.”
“엄청난 물건이군요.”
“잘 알면 조심히 다뤄. 이동할 때마다 박아. 우린 너와 달리 그걸 박다가 공격을 받으면 바로 저세상이라서. 그럼 가자.”
메른의 지휘하에 궁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산비탈을 내려갔다.
정적, 정적, 정적…….
금방이라도 깨질 듯한 소름 끼치는 정적이, 화산재와 검은 안개로 뒤덮인 땅을 뒤덮고 있었다.
그때, 별빛은 희끄무레한 유령처럼 화산재 틈 속에서 일렁거렸다.
꼭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소름 끼치는 시선처럼 등줄기를 훑었다.
“여기쯤이야. 우선 하나 박아.”
지면에 쐐기를 박았다.
빛무리가 하늘로 솟구치며 화산재를 불살라 걷어냈다.
화산재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밤하늘이 청명하게 열리자, 오히려 별빛이 약해진 느낌마저 받았다.
[청성의 미른가디아다. 화산재의 교란 신호가 사라진 걸로 결계석 설치를 확인했다.]“계속 이동하겠습니다.”
[화산재 내부에서 투아키의 반응이 확인되었으니 주의하라. 좌표는 정확하지 않다.]투아키, 궁수들의 시선에서 희끄무레한 공포가 일렁였다.
다시, 화산재 속으로 들어섰다.
실상 사방이 트여 있음에도 폐쇄된 공간에 갇힌 듯한 느낌이었다.
“앞에 적이다. 내가 처리하지. 고블린 열둘. 야간에는 역시 저 작은 마귀들을 배치하는군.”
호흡이 뒤틀린다.
체온 조절 마법을 뚫고 숨 막히는 열풍이 이글거렸다.
땀방울이 전신에 맺혀서, 기분 나쁜 습기를 남기며 몸의 윤곽을 따라 흘러내렸다.
“어떻게 이 자욱한 화산재 속에서도 별빛이 보이는지 의문입니다.”
“저건 다 왕들의 눈동자야. 사악한 별들이지. 알리도나 님의 말씀인데, 왕들은 다른 별에서 왔대.”
“진짭니까?”
“무녀가 거짓말을 하겠어? 대단한 골초긴 해도 거짓말은 안 해.”
산세가 온순해지는 틈새나 강줄기가 굽이치는 언저리마다 마을이 돋아났는데, 모두 황폐하게 메말라 버려져 있었다.
삐걱, 삐걱, 삐걱…….
마을의 폐허에서, 그 버려진 폐가들의 경첩들이 섬뜩하게 수군거리고 있었다.
‘내 고향은 지금쯤…….’
잠시 고향이 어떤 상태일지 생각했으나, 기억 속의 고향에는 그저 어둠만이 보였다.
아버지와 어머니, 누이도 죽어서 없고 어린 날의 나도 없는 그 땅을 이제 고향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리는 안개 속을 얼마나 헤집고 나아갔을까, 문득 메른이 자세를 낮추었다.
“알리도나 님, 정찰조입니다. 산기슭 정면으로 나가려는 시점에 요새가 하나 포착되었습니다.”
[크기는?]“4층 높이에 삼백 명은 거뜬히 수용할 크기인데요. 어떻게 할까요?”
[병력이 증원되면 귀찮아질 규모겠는데. 아직 화산재 심층에 도착하지 않았으니 교전해도 좋아. 화력이 충분하다면.]“차고 넘칩니다.”
[흐음, 데몬 토벌로 콧대가 하늘을 뚫는 귀염둥이 막내에게 선배로서 실력을 과시하고 싶단 말처럼 들리네.]“담배나 피우십쇼.”
백창궁 세르웨본의 활대 위에서 마력의 빛이 찬란하게 얽히며 하나의 화살로 엮였다.
그것은 화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하여, 꼭 성전의 기둥처럼 보였다.
그 과정에는 30초조차 소요되지 않았고, 그 화살이 요새의 누각을 꿰뚫는 데에는 3초도 걸리지 않았다.
취중사 극의, 천앵살(千鶯殺).
천 마리의 새가 울부짖는 듯한 소음을 이끌고, 화산재를 찢어발기며 날아가는 청광.
12세기의 동란기를 평정한 전설적인 궁성 키에스가 개발한 이 기술은 표적을 꿰뚫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표적을 꿰뚫을 때, 화살에서 무수한 줄기가 돋아나 그 내부 구조를 찢고 허물어뜨린다.
‘대단하군…….’
천앵살이 2층과 3층 누각을 비스듬히 꿰뚫고 지나가면서, 그 구조물과 그 안에 위치한 적들을 핏덩이로 찢어발겼다.
화살은 탄착면에 5뼘쯤 될 법한 원형 구멍을 만들었고, 빠져나가는 곳에는 그 두 배가 넘는 균열을 만들어냈다.
요새가 층층이 기울다 붕괴하자, 1층에 있었을 존재들에게로 잔해물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
그때 잿빛 형체들이 그 붕괴의 잔해들을 정면으로 뚫고 나왔다.
“GUAAAAAAAAAAAAAAA!”
6대 마족 중 하나로 마족의 기갑 전력을 담당하는 세력.
트롤.
그 지성은 대단히 낮으나, 그 낮은 지성이 육신의 힘으로 치환되었다고 인간들은 믿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비현실적인 규격의 힘과 체격으로 인류를 짓밟아대지 않았을 테니까.
지금도.
궁사들이 마구잡이로 쏘아대는 화살을 아무렇지도 않게 튕겨내며 달려오고 있지 않은가.
꼽추처럼 등이 굽었고 거대한 팔로 지면을 박차며 달리는 트롤들은 심지어 인육 먹기도 즐겼다.
“트롤이 두 마리라. 중요한 요새이긴 한가 본데.”
오의 사용의 반동일까.
손바닥에서 뜨겁게 피어오르는 마력의 안개를 연신 털어내던 메른이 카이센을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저놈들 꽤 화가 난 것 같은데, 네가 처리해. 잔챙이들은 우리들에게 맡겨두고.”
휘몰아치는 화산재 속으로 내달리는 동시에 착검(着劍).
칼이 사납게 울고 있었다.
칼집 내부의 마력이 고열을 띤 순간, 고막을 찢는 울음을 내지르는 표적에게로 높이 도약.
일명뇌성(一明雷聲).
붉은 벼락이, 하늘에 그 빛의 무늬를 올곧게 수놓을 때.
그 무늬 위로, 피육(皮肉)이 잡아 찢기고 경추가 절단되는 것으로 무수히 흩뿌려지는 선혈이 죽음의 무늬를 더했다.
단호할 정도로 확실하게, 두 적의 목을 끊어내어 살(殺)을 취하는 거합 발도.
탁.
지면에 고요하게 내려앉아 칼집에 칼을 집어넣는 소리는, 그 맑은 청음은.
폭풍우 속의 뇌성처럼, 육중한 거구가 고꾸라지며 터뜨리는 폭음 속에서조차도 귀가 시릴 만큼 선명했다.
그 선명함 너머, 목을 잃고 쓰러지는 시체들이 반파된 요새를 덮치면서 완파(完破)의 먼지구름이 자욱했다.
“햐, 트롤 두 마리가 한 방에.”
“불쌍한 놈들. 상대가 데몬을 난도질하던 괴물인 줄도 모르고 덤볐으니.”
메른에 요새 붕괴를 보고한 이후 다시 전진이 개시되었다.
메른은 이따금 느닷없이 어둠 속으로 활시위를 당기곤 했는데, 그러면 꼭 비명이 들렸고 고블린 몇 마리가 쓰러져 있었다.
또다시 활시위를 당기던 메른이 멈칫한 건 열일곱 번째 결계석을 박을 때였다.
“폭발음…… 이건 하급 주술 같은데. 무녀님, 저희 말고도 정찰조가 있습니까?”
[아니, 없어. 왜?]“두 번째 요새를 발견했습니다. 미확인 인원이 보이는데, 모험가 같습니다. 요새의 적들과 교전 중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모험가들이란……. 죽게 놔두는 것보단 낫겠지. 도와줘. 물론 여유가 된다면. 무리하지 마.]한참은 더 이동한 뒤에야 비로소, 메른이 들었다는 폭발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들리는 울부짖음 같은 비명…….
그 비명의 파도에 맞서, 큰 방패를 들고 싸우는 자와 주술을 읊는 자들이 보였다.
“개자식들, 우리 고향에서 꺼져!”
메른과 그 휘하 궁사들이 화살을 쏟아내 그들을 지원했다.
한 여자에게로 펄쩍 뛰어올라 그 목에 칼을 박아 넣으려던 고블린 십장(什長)의 머리통이 아라다만텔의 칼날에 찢어발겨졌다.
일전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전투가 끝나자, 열두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모험가들이었다.
“역시 제국의 잘나신 궁성과 페이쿼리어가 있으니 마족 놈들도 별것 아니군.”
모험가는 12세기 첫 동란의 시기에 출현한 민병 전력이었다.
독자적으로 조합을 운영하면서 마물을 토벌하고 미궁을 정복하던 도전자들로, 국가가 개입하기 힘든 일들도 해결해왔다.
총기가 도입되고 과학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그 세력이 옛 시대보다 크게 위축되긴 했지만.
“지금은 궁성이 아니야. 근데 뭐지? 폭염 주의보가 산맥의 민간인 출입을 엄격히 금지했을 텐데.”
“내 고향 되찾는 일을 남들 손에 맡겨두라고?”
“그건 또 어디서 알았지?”
“이미 소문이 쫙 퍼졌어. 남벌이 시작된다고.”
“지금 이게 불법행위인 건 알고 있겠지.”
“불법? 댁도 잘 알면서 왜 그래. 모험가한테 적용되는 법은 하나밖에 없어. 낭만. 낭만만 충족하면 뭐든 합법이지.”
“말이 안 통하네, 진짜.”
메른이 한숨과 함께 고개를 털었고 카이센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우린 청성의 명령으로 <아우렐리노플>로 가는 길을 찾고 있다. 안내가 가능한가?”
“물론이지. 평지는 위험하니 산줄기를 끼면서 가자고. 근데…… 댁이 혹시 그 유명한 데몬 슬레이어인가?”
“…….”
“미친, 진짜라고? 길 안내는 이따 해도 되니 사인이나 좀 해줘 봐.”
“여긴 전장이다.”
“딱딱하게 굴기는. 이따가 해주면 된다고 하면 되잖아.”
천생 위아래라고는 없이 살아온 모험가들은 버릇없이 굴기는 했으나 길 안내는 확실했다.
적들이 잘 알지 못하는 길을 안내하였으며, 도중에 마주치는 여러 지리도 설명해 주었다.
“이 엄청난 크기의 구덩이는 뭐지?”
“구덩이가 아니야. 원래 호수였던 곳이지. 알케이브 호수.”
“여기가 알케이브 호수라고?”
“그래. 어린 시절에는 여기에서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하곤 했었단 게 믿어져?”
궁사들과 모험가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면서, 무심코 지난날 아버지와 함께하던 나날을 떠올렸다.
이미 죽은 세계의 기억…….
그러한 기억을 추억한다고 무엇이 남을까, 눈을 질끈 감아 환상을 몰아냈다.
“알케이브 호수가 메말라 버리다니, 상상 이상인데.”
“<아우렐리노플>이 함락되고 1년, 쪄 죽을 것 같은 이 날씨가 1년 가까이 계속됐으니 뭐.”
그때 백창궁에 화살을 건 채 선두에 섰던 메른이 대열을 정지시키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황야가 내다보이는데 예전엔 못 봤던 곳이야. 지금 이 길은 무슨 길이지?”
“이 지역 사람들은 다 아는 길이야. 적총목 덕분에 공기가 아주 맑았었지. 그 나무들이 다 말라비틀어졌으니 모를 만도─”
“─잠깐, 투아키다, 엄폐해!”
광인의 악몽에서 튀어나온 듯, 창백한 피부에 아가리가 여섯 갈래로 찢어지는 도마뱀이 화산재 위로 날갯짓하며 비명을 질렀다.
투아키…….
옛것이라 불리는 마물…….
등판에서 식은땀이 흠뻑 솟는 것을 느끼며 모두 그 자리에 죽은 듯 엎어져 있었다.
“좋아, 갔다. 이제…… 음?”
메른이 눈을 가늘게 뜨고 화산재 너머를 노려보나 싶더니, 귀에 손을 얹었다.
“알리도나 님, 정체불명의 괴식물이 커다랗게 자라나 있습니다. 그 주위로 우루크들이 경비를 삼엄하게 서고 있는데요.”
[괴식물? 간략하게 외향을 묘사해봐.]“숨이 막힐 만큼 건조한 숨을 내뱉습니다. 가지가 굵고 잎은 가시덤불입니다. 계란 썩는, 유황 냄새를 뿜어요. 근본은 덩굴식물인 것 같습니다.”
[설마……. 내 지식과 네 말이 일치한다면 그건 원시 식물이야.]“원시 식물이요?”
[정식 명칭은 루쿤가돈. 일대의 수분을 모조리 빼앗아 사막으로 바꿔버리는 놈이지. 그게 <아우렐리노플>에 있다고?]“위험한 놈이군요. 우회하겠습니다.”
[아니, 그놈은 움직여서 사람을 잡아먹기까지 해. 대규모 병력 진군에 방해를 줄 가능성이 높아. 너희들이 처리해.]메른의 지시에 궁사들과 모험가들이 자리를 잡았다.
길은 하나였는데, 그 길 위에 카이센이 홀로 발을 딛고 서자 우루크 전사들이 함성을 터뜨렸다.
다시, 축제가 시작되었다…….
무한히 새겨지는 붉은 섬광 속에서, 핏물이 쏟아지는 소리와 죽기 직전의 흐느낌이 비벼지는…….
“고블린 사격대다. 엄청나게 많은걸. 너희들은 카이센을 지원해. 저건 나 혼자 해결하겠어.”
“이 개 같은 것들, 우리 땅에서 꺼져!”
“무녀님, 우루크와 고블린 대규모 병력을 처리 중입니다. 원군이 계속 오는 중!”
그때, 백창궁의 화살에 직격된 원시 식물이 발작을 일으키며 덩굴로 지면을 휩쓸기 시작했다.
거기에 붙잡힌 모든 것을…….
우루크나 고블린 따위를 걸레처럼 쥐어짜서 그 핏물을 삼켰는데, 그걸로 상처를 재생시켰다.
“그래, 재생하겠다 이거냐? 이거 재미있는데! 그 손으로 우루크를 다 죽일 때까지 멀리서 재미 좀 볼까!”
우루크 대열을 2줄, 4줄, 7줄 가까이 죽였을 무렵에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었다.
백창궁의 화살에 뚫린 대여섯 개의 구멍으로 기이한 액체를 줄줄 흘리며 원시 식물은 축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카이센이 죽이지 않은 적들이 무더기로 쓰러져 있었다.
‘이건 꼭…….’
식물이라기보다는 거대한 파충류의 사체처럼 보이는군…….
또 숨이 막힐 정도의 고열…….
식물이 죽으면서 쏟아낸 질척한 액체, 저건 용암 같은 성분인 건가? 사방에서 아지랑이가 작렬하고 있군.
“무녀님, 원시 식물을 파괴했습니다.”
[적의 반응은?]“우루크 삼백 마리쯤에 트롤이 다섯 마리 출현하긴 했으나 카이센이 처리했고 그 이외 특별한 적은 없었고요. 아주 소중하게 지키다가 역으로 잡아먹히던 꼴이 보기 좋았네요.”
[그럼 이제 화산재 심층으로 이동해. 도중에 결계석을 꼭 박아. 이제는 통신도 끊길 테니까. 지리적 정보를 완전히 알아내야 해.]“모험가들이 심층으로 이동하지 않아도 <아우렐리노플>을 내다볼 수 있는 길을 알고 있다는데, 어쩌죠?”
“이 길로 쭉 가면 바로 보여. 멀리 갈 것도 없다고.”
[그거 괜찮은데. 알았어. 누누이 말하지만 결계석 설치를 잊지 말고.]“알겠습니다, 이제 화산재 심층 구역으로 진입하겠습니다.”
임무 성공의 흥분으로 들떠 있던 메른의 목소리가 당혹감으로 일그러지는 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이런 개…… 저게 도대체 뭐야?”
[결계석 설치로 방금 통신이 재개됐다. 어떻게 됐지?]“지금 <아우렐리노플>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말씀드린다고 믿으실 수는 있을지 모르겠네요.”
[말해.]“원시 식물이 도시를 뒤덮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도시 일대 전체가 사막으로 변했고요. 벨리소르 대하가 말라붙어서 긴 굴처럼 보일 정도네요. 지금도 사막이 넓어지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통신 저 너머에서, 불안한 침묵이 흘렀다.
고향으로 돌아온 모험가들이, 서로 절망적인 시선을 주고받으며 공유하는 침묵과 어딘가 궤가 같은 침묵이었다.
알리도나가 다시 말했다. 메른이 아니라 청성에게.
[청성 각하, 알리도나입니다. 정찰조가 확인한 <아우렐리노플>의 상황을 보고하겠습니다.]청성의 침묵은 알리도나처럼 길지 않았다.
결단은 바로 내려졌다.
알리도나가 바로 그 결단을 명령으로 전파해 주었다.
[그 지점에 결계석 설치를 마무리한 다음 복귀해. 사령부에서 출정을 크게 앞당기기로 결정했어. 쉴 시간이 얼마 없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