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49)
가짜 용사 이야기-49화(49/310)
제49화
“춘분을 앞둔 1698년 3월, 네이갈라스 토벌전을 준비하기 위해서 여섯 명의 페이쿼리어는 세 갈래로 찢어졌다.”
로베리스 알터 쉬르팽은 산맥 방어전을 수행하던 세이라 알터 솔랑과 합류 후 잔존 병력을 규합하기 위해 산맥 중심부로.
고르고티아 알터 지에르다는 <아우렐리노플> 원정의 병참 확보를 위해 산맥 동부로.
그리고 리아 알터 솔랑은 이슬라 알터 가우므리스와 합류한 다음, 장갑 열차를 확보하기 위해 서부 해안으로.
“이때, 세 지역 모두 전략의 요충지였으므로 렙틸리언 주력들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렙틸리언 주력을 통솔하는 존재들은 당연히 최고위 위계에 속하는 세 명의 ‘옛 귀족’.
골공왕(骨空王), 하이르칸.
폭식공(暴食公), 베헤─리크.
음희백(淫戱伯), 살티라’스.
이때, 옛 귀족 중 최대 크기를 자랑하는 폭식공이 북침 최고의 거점을 뚫기 위해 평원 지대로 향한다.
“이 전투는 실로 아슬아슬한 시간 싸움이 된다. 인류는 폭식공이 해안 지대를 삼키기 전에 장갑 열차를 빼내야만 했으니까.”
그리고 이때.
카이센 알터 아라다만텔은 청성 미른가디아의 명령으로 흑장미 병단으로 재배치.
격전지가 된 서부 평원 지대를 통과하여, 장갑 열차가 대기 중인 해안 승강장으로 급히 향한다.
“네이갈라스 토벌전의 핵심 단초가 되는 이 해안 지대 격전은 1698년 3월 14일, 그 어떤 여름보다 뜨거웠던 3월 중순에 시작되었다.”
반격의 향방,
베헤─리크 토벌전 (2)
용추 병단의 거신 10기가 평원 지대 제49지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왔는가! 미천한 카이센과 리아! 위대한 용 이슬라의 부하가 된 걸 환영하는 것이다!”
우측 어깨에 숫자 [701]이 각인된(01기는 대장기다. 용추 병단은 서류상 제11독립기갑중대다) 거신 위에서 날계란을 까먹던 이슬라가 외쳤다.
무사했구나…….
<아우렐리노플>에서 뿔뿔이 흩어진 이후 최초의 해후였건만, 그 해후의 감정을 나눌 틈은 없었다.
“이슬라, 여기에서 해안 승강 기지까지 얼마나 걸리지?”
왼쪽으로 길게 펼쳐지는 장벽 위에서는 전투의 피비린내와 소음이 몰아치고 있었으므로.
“바보 카이센은 미천해서 바다 냄새도 못 맡는 것인가! 반나절만 걸어도 바다다!”
“…….”
“뭐냐, 그 눈빛은…… 이 계란, 훔친 거 아니다! 용은 아무것도 훔치지 않는다! 미천한 농민이 이슬라한테 공물로 바친 거다! ……빤히 쳐다보긴 했지만, 아무튼 줬다! 빼앗지도 훔치지도 않았다!”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도둑이 제 발 저린다던데. 그나저나 반나절이라, 아직도 좀 남았군.”
머리통을 깨물려 달려드는 이슬라를 밀어내며 한숨을 내쉬자, 리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철도를 이용하기에는 너무 위험해. 그리고 16식 거신 10기의 속도면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어. 바로 해안으로 가자.”
흑장미 병단의 경기병들이 대열의 선두를 이끌었다.
그 뒤를 따라서, 거신들이 육중한 강철로 지축을 흔들며 걸음을 옮겼다.
이슬라가 하도 성화를 부린 탓에 카이센도 701기의 어깨에 올라타 있었다.
“어떤가?”
이슬라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용들은 모두 선천적으로 이렇게나 맑은 눈을 가질 수 있는 것인가 싶었다.
문득, 어린 날 자신을 보며 웃던 가족들의 미소가 떠올랐다.
“탑승감이 죽이지 않는가? 잠이 솔솔 오는 것이다.”
“잘 모르겠는데.”
“뭘 모르는가! 이런 미천한! 잘 봐라! 이렇게나 잠이 잘 온단 말이다!”
몸소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걸까.
이슬라는 곧 카이센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졸기 시작했다.
“…….”
세이라의 말대로, 이슬라는 정말 아기였다.
이슬라는 이제 세 살이라 했다.
용의 유전자 덕분에 육체적 성장이 빠르긴 했으나, 정신연령이 높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칼의 길 위에서는 본래 나이의 구분 따위는 없었고, 이슬라는 그 길의 한가운데를 걸어야 할 페이쿼리어였다.
[정면에 승강 기지가 보여요. 슬슬 준비하세요.]빛의 나비가 눈앞으로 날아와, 빛의 입자를 묶어서 정보를 전달했다.
흑장미 병단 소속 마법사, 아르테의 루디옌이었다.
루디옌이 오기 직전에 이슬라의 눈은 게슴츠레 열렸다. 그 절대적 후각으로, 해안의 물비린내와 피비린내를 맡은 모양이었다.
“도착인 것인가.”
“그래.”
“미천한 카이센은 설마 겁이 나는 건가!”
입가의 침을 닦은 이슬라가 폴짝 뛰어오르더니 팔짱을 꼈다.
“이슬라는 두렵지 않다! 이슬라는 최강! 그 무엇 하나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슬라, 알고 있겠지? 내가 하루에 쓸 수 있는 용령은 3분이 안 돼.”
“잊지 않았다! 이슬라를 바보로 아는 건가! 카이센은 약골! 그래서 이슬라가 카이센을 지킨다!”
이슬라가 주먹을 붕붕 휘두르던 손으로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반드시 지키겠다는 약속일까,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하자, 이슬라가 손목을 움켜잡아 강제로 손가락을 펴내고는 자신의 손가락을 걸었다.
“약속! 이제 걱정하지 마라! 용은 인간과 달리 반드시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서부 해안 승강 기지는 렙틸리언 주력의 침략을 받고 있었다.
아인들이 5,024문의 지상 고정포 및 3척의 전함이 지휘하는 144척의 순양함, 구축함들의 원거리 포격으로 기지를 방어 중이었다.
승강 기지 사방으로, 인류 수비대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네이갈라스 출현 이후 기온에도 사악한 변화가 깃들어, 1698년 3월의 여름은 끔찍하게 더웠다.
더워서, 시체들이 빨리 썩었다.
군복을 입은 시체는 질퍽하게 썩고 뭉개져서 액즙처럼 부서졌다.
그 부서지는 시체들 위로, 모래바람이 휘몰아쳤고 그 바람 속에서 누런 악마들이 쉭쉭거렸다.
“렙틸리언이다!”
“최소 20만은 넘겠는데요.”
“돌파해야 해!”
렙틸리언.
<잊혀진 왕들>을 불경한 우상으로 섬기는 마족 따위가 아니라, 그 왕의 직할 심복들이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렙틸리언들은 기원전의 역사 때부터 곡선을 병적으로 선호했다.
그렇기에 그 문명의 요소들뿐만 아니라 병장기들조차도 곡도가 주류를 이루었다.
굽은 날들은 인육을 훑어서 썰어내기에 좋게 개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신관들은 불타는 사막의 힘, 용암의 힘을 다루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용추 병단 가즈앗! 미천한 도마뱀 놈들을 쥐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닷!”
가우므리스는 망치형 성검.
현존하는 그 어떤 성검보다 면(面)을 제압하는 능력에 특화된 성검이었다.
극위성검 가우므리스의 특수 능력은 광압(光壓).
타격면에서 빛과 공기를 폭발시키는 것으로 전방의 적들을 광범위하게 불살라버릴 수 있었다.
퍼어어엉───!
지금, 이슬라가 휘두른 망치의 끝에서 수십의 렙틸리언들이 단번에 일소(一掃)된 것처럼.
“캬캬캬캬캬캿! 최강!”
이슬라를 따라, 거신들이 저 누런 악몽들을 하나하나 짓밟으며 길을 만들었다.
카모폴라쥬, 은신 상태로 가까이 다가와 거신의 기체를 기어오르는 것들도 있었다.
그걸 거신병들이 눈치챘을 때 놈들은 이미 조종석을 겨누고 있었는데, 바로 그 순간.
일섬(一閃).
붉은 벼락이 번뜩이더니, 렙틸리언들의 모가지가 일시에 허공으로 솟구쳤다.
“훌륭한 솜씨입니다, 페이쿼리어!”
여유가, 무어라 대답할 심리적 여유가 하나도 없었다.
용추와 흑장미는 일직선으로 포위망을 뚫고 나가야만 했다.
그리고 그 일직선의 사방에서 렙틸리언들이 베어도 또 베어도 조금도 줄지 않고 들이닥쳐 왔다.
소리가…….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참격의 음향과 피가 고막에서 쿵쿵거리는 음향과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음향이 끝없이 잇달았다.
“캿! 계속 덤벼볼 테냐! 용의 힘을 보게 해주마!”
“정면에 정문이 보입니다!”
“좌측방 렙틸리언 신관이다! 용암에 주의해!”
“정문 양측에 거대형 렙틸리언과 트롤이 다수 포진해 있습니다!”
“내가 뚫겠어. 그 뒤를 따라와.”
“카이센, 나도 같이 가겠어!”
승강 기지 정문을 누런 짐승들이 두들기며 울부짖고 있었다.
두 명의 페이쿼리어가 그 배후를 겨누고 단숨에 내달렸고…….
다음 순간 각각의 성검에서 솟구친 푸른빛과 붉은빛이 흐드러지며 교차했다.
십문자도 제6식.
극주검법 제8식.
붉은빛은 하나의 선(線)으로 악몽들의 경추를 끊어낸다.
푸른빛은 5개의 점(點)을 정확히 꿰뚫었는데, 그 칼끝에서 악마들의 심장이 찢어졌다.
빛이 흩어지면서 괴물들이 쓰러지자, 철문이 삐걱거리며 열렸고 성문 확성기로 누군가가 말했다.
[누추한 곳에 어서들 와라, 페이쿼리어. 저 도마뱀 자식들이 안쪽으로 오기 전에 어서.]어라?
리아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해안 승강 기지를 방어하던 아인군 총책임자는 무려 만병기장 할바론이던 것이다.
“아인 황제가 직접 이 작전에 참가하다니. 강철함대와 근위대 모두 여기 와 있단 소리잖아.”
“청성께서 당연히 부르셨겠지.”
“내 작전에 이렇게까지…….”
“그만큼 훌륭했단 소리야. 자신감을 가져도 돼.”
“할바론은 용은 아니지만 쓸 만하다! 이슬라가 인정한다!”
“아니, 할바론 말고 리아가 훌륭하다고…….”
여기에서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으나 오판이었다.
물론 성문은 건재했다.
그래, 성문은…… 그뿐이었다.
은신하여 성벽을 타 넘어온 렙틸리언들이 떼거리였으므로, 아인 총병들이 성내 전역에서 교전을 펼치고 있었다.
“승강장은 이쪽이다.”
기지를 가로지를 때, 아인 장교와 병사들이 방향을 안내했다.
아인들은 요정들만큼은 아니어도 종족적 자부심이 강한 이들이었으므로 페이쿼리어들을 존대하지 않았다.
그런 안내 속에서 렙틸리언 수백 마리를 베어내며 나아가자 마침내 승강장의 남쪽 끝에 도달했다.
“이제야 왔군. 조금만 더 늦었어도 엄마 아빠 없이 우리끼리만 여행을 떠날 뻔했다.”
인상적인 크기의 포신, 비현실적으로 거대한 기관실, 시야 끝까지 잇닿는 차량들.
할바론이 설계한 신병기였다.
장갑 열차라는 이름으로, 철도 위를 달리는 강철의 성채였다.
‘실제로 보니 더 엄청난데…….’
문득,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그 어마어마한 위엄은 처음 인페르노 라인을 봤던 순간을 연상케 했다.
‘이건 열차가 아니야. 이건, 철도 위의 성채다.’
그러고 보니 인페르노 라인을 설계한 것도 할바론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정말, 세기의 위인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다.
황제의 전투 예장을 위엄차게 갖춘 만병기장 할바론이 근위대를 거느리고 그들을 맞았다.
“내 힘만으로 빼내고 싶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불가능했어. 지키는 게 고작이었다. 이제 이걸 어서 청성께 가지고 가라고. 특별히 기관사들을 빌려주지.”
맞았단 표현은 뭔가 이상했다.
승강장 위에 방어선을 펼쳐둔 채 렙틸리언들로부터 장갑 열차를 지키다가 인계해 주었다고 표현해야 옳을 것이다.
“카이센, 이슬라. 저 도마뱀 놈들이 내 걸작을 망가뜨리기 전에 어서 가져가라.”
“폐하께서는요?”
“할바론은 어쩔 거냐!”
“페이쿼리어가 되면 눈알이 장식이라도 되는 건가? 바다 위에 떠 있는 강철함대를 봤을 것 아냐. 육로보다는 해로가 더 안락한 게 당연지사. 알았으면 빨리 가라.”
이런 이야기가 이토록 간단하게, 그리고 애틋하게 끝날 정도로 이 세계는 만만하지 않았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그 깨달음의 첫 징조는 문득 수평선이 멀어졌다가 다시 들이닥친 것으로 시작됐다.
‘지면이 제멋대로…… 아니, 내가 공중으로 떠올랐던 건가?’
그 뒤를 이어 세계가 무너지는 것만 같은 굉음이 고막을 찢으며 쇄도해 들었다.
붕괴의 파편들이 날아와, 승강장 외벽과 지붕을 부쉈는데 천운이게도 장갑 열차는 무사했다.
승강장 여기저기 설치된 전성관으로 절망적인 목소리들이 흘러나왔다.
[폐, 페하…… 서, 성벽이, 끄아아아아아!] [저게 대체 무, 무슨, 사, 산이 움직이는, 산이 움직이고 있다!] [페하, ‘옛 귀족’이 출현했습니다! 성벽을 깨부수고 폐하가 계신 곳까지 일직선 질주 중…… 폭식, 폭식공입니다!]원래, 이렇게 될 일이었을까.
청성께서 먼저 이런 미래를 내다보았기에 이곳으로 자신과 이슬라를 함께 파견한 것이었을까.
등 뒤로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는 운명의 전율에, 아라다만텔을 쥔 손가락이 파르르 떨렸다.
“장갑 열차를 출발시켜, 리아. 폭식공은 우리가 여기서 막겠어.”
“뭐? 아니, 아니야! 그러면 나도 여기에서 함께…….”
“임무를 우선시해. 잊었어? 너와 우리는 받은 임무가 달라. 넌 장갑 열차 인수 및 운반이었고, 우리는 호위였잖아. 원래 이렇게 될 작전이었던 거야.”
“미천한 인간! 여긴 짱 센 용과 나약한 카이센에게 맡기고 어서 가는 것이다.”
무어라 반박하고 싶었을까.
남아서, 같이 싸우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을까.
말로 뱉지 못하는 감정은 표정에 가득히 드리워졌으나, 리아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죽지 마, 카이센.”
곧, 장갑 열차 기관실의 배기구에서 매연이 폭발하듯 새까맣게 솟구쳤다.
뿌우우우우우우우……!
증기기관이 석탄과 목재로부터 힘을 얻어서 스스로를 불태우는 모습 속에, 카이센은 자신의 운명이 겹쳐지는 걸 느꼈다.
“폐하께서도 어서 가십시오. 저희들이 최대한 시간을 벌어 보겠습니다.”
할바론은 그 말이 우습다는 듯,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비죽였다.
“나에게 그런 말을 하려면 아직 100년은 이르다. 애송이 페이쿼리어 카이센.”
“……?”
“내가 여기에 와 있던 이유는 폭식공 토벌 때문이었어. 처음부터 그런 명령이었지. 이슬라나 너를 끌어들이지 않고 혼자 해결하려 했는데 말이야, 모든 게 청성의 말씀대로 되는 게 참.”
역시 이렇게 될 일이었던가, 피할 수 없는 미래였던가.
할바론이 왕관을 근위대장에게 넘기더니, 양쪽 어깨에 걸치고 있던 황제의 코트를 펄럭 내던졌다.
코트 아래에서 드러난 무장은, 거신병 조종사들이 입는 가죽 경갑이었다.
“근위대장, 초대형 거신을 꺼내라. 내 직접 조종하겠다.”
“예, 폐하.”
“옛 귀족이 날 만나고 싶다고 저리 애원하는데 황제로서 친히 맞아줘야지 않겠나? 왜, 내 인품에 반해서 무릎을 꿇고 싶단 걸지도 모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