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5)
가짜 용사 이야기-5화(5/310)
제5화
“내가 사용하는 검법은 십문자도(十文字刀)라고 한다.”
화산재가 나부껴 햇살이 붉게 왜곡되어 비치는 아침에, 카밀라의 교육이 시작되었다.
전장에서는, 남방에서는 언제나 이랬다.
심연에게 넘어간 천지는 지형적으로 기괴한 변이가 일어나, 산들이 화산이 되어 연기와 재를 창공으로 끝없이 토해냈다. 비가 온 뒤가 아니라면 옛 시대와 같은 창공을 볼 수 없었다.
“칼과 칼집을 모두 사용하는 공방일체의 검술이지.”
오른손으로는 칼을.
왼손으로는 칼집을.
이 둘을 서로 교차시키는 카밀라의 자세에는 형언하기 어려운 기품 같은 것이 있었다.
“십문자도? 거 이름 참 구리네.”
칼과 칼집을 교차할 때 열십자가 생겨나는 데서 유래한 것인가.
“야, 이 개새야. 아라다만텔의 계승자는 모두 이 검법을 사용해 왔거든? 존경심 정도는 보여라.”
“흠.”
“흠? 흐음? 흐으음? 느그 아버지가 존경심을 표할 때 팔짱 끼고 흠, 이라고 하라고 하든?”
돌이켜보면, 카밀라는 패륜적 발언을 할 때 절대 어머니를 들먹이지 않았다.
“머리 때리지 말라고! 아빠 얘기가 왜 나와?”
“가정교육을 너처럼 개판으로 받은 놈은 이렇게 주기적으로 패서 인성을 주입시켜 줘야 해. 느그 애비 면상이 궁금한데, 어떻게 생겼냐?”
“잘생겼어! 엄청나게!”
“네 박살난 면상을 보면 전혀 아닐 것 같은데?”
카밀라가 카이센을 지도하는 모습을 들여다볼 때마다 용병들은 속으로 신기해했다.
‘카밀라 나리가 저렇게 말이 많아지신 건 또 처음인데.’
‘누굴 가르치는 건 또 어떻고.’
‘다른 꼬맹이들은 죽빵을 때려서 기절시킨 뒤 쫓아냈으면서 말야.’
요한 울프 프로스트에게 오는 감회는 더 남다를 수밖에 없었으나, 그는 그때 이 이유를 몰랐다.
어딘가 흐뭇하면서도 서글펐다.
그것이, 옛 단장의 아들이 가지고 온 슬픔의 무게란 걸 알지 못했으므로.
“귀 파고 잘 들어. 이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마력 통제법을 2개 배워야 해.”
“마력 통제?”
“우선 오른손, 즉 칼을 다룰 때는 쇄(鎖; 마나체인)를 쓴다. 몸 전체에 뿌리를 뻗은 마력의 사슬을 쓰는 거지.”
느닷없이, 칼의 끝단이 카이센의 눈앞으로 짓쳐들면서 식은땀이 송골거리며 맺혔다.
‘칼이 닿을 수 없는 거리인데?’
칼날을 붉게 휘감으며 뻗어 나온 귀기가 이를 가능케 했다.
‘그래, 그때 어머니가 사용하시던 게 이거였구나…….’
비탄이 심장으로 뜨겁게 스밀 때 이는 분(忿)이 되고 노(怒)가 된다. 소년은 이를 겨우 추슬렀다.
“대부분의 검사들은 마나체인을 사용하지. 십문자도의 주력 검법들도 마나체인에서 비롯되지만 우루크 족치는데 그걸로 되겠냐?”
“그럼?”
“넌 심(心; 마나하트)도 다룰 수 있어야 해. 야, 울프!”
울프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진 수학 연산이 세계의 섭리 한구석에 이변을 일으킨다.
불현듯 그 손바닥 위에서 냉기가 빚어지고 고드름으로 합쳐졌다.
그 고드름이 쏜살같이 날아왔는데, 카밀라가 내뻗은 칼집에서 솟아난 핏빛 결계에 튕겨 나갔다.
“칼은 공격, 칼집은 수비?”
“둘 다 가능해야지 뭔. 세상 참 편하게 살려 하네…… 라고 말하고 싶지만, 넌 남자라서 정통 십문자도를 쓸 수 없을 거야.”
“왜?”
“남자는 여자보다 마나체인을 정밀하게 쓰지 못해. 비교하는 것조차 민망할 정도로 개같이 못 쓰지.”
“그래서 어쩌란 건데?”
“대신 크고 강하게 쓸 수는 있어서, 고수의 반열에 든 남자 검사들은 강대한 마력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중무기를 사용하지.”
“나도 무기를 바꾸라고?”
“그건 조금 지켜봐야겠지만, 십문자도에서도 그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마력의 크기를 사용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그게…… 뭔데?”
“발도술이다.”
“발도술?”
“그래, 발도술. 넌 고추 달고 태어난 죄로, 정통 십문자도를 그대로 배우기보다는 발도술을 주력으로 쓰는 십문자도를 써야 해. 내 판단으로는 그래. 역사적으로 남자는 페이쿼리어가 된 적도 없고 십문자도를 익힌 적이 없으니.”
“발도술은 그냥 허세용 기술이잖아. 암살이거나 암살을 막는 용도로나 쓰이고. 난 그런 거 싫어.”
“이 한심한 멍청아, 십문자도의 발도술은 모든 발도술과 궤를 달리해.”
일순간.
카밀라가 왼손으로 칼집을 붙잡고 오른손으로는 칼자루를 쥐자 근방의 대기가 변하였다.
숨이 막힐 듯 무겁고, 날카롭게.
“내가 뭐라고 했냐? 왼손으로는 마나하트를 다룬다고 했지?”
손바닥을 통해 터져 나온 마력의 폭류가 칼집 속으로 흘러갔다.
“가죽 부대에 물을 계속 채워 넣으면 어떻게 되냐?”
“터져.”
“십문자도의 발도술도 그것과 같은 원리야.”
칼집 안쪽에 산더미처럼 쌓이고 또 쌓인 마력의 열기가, 이내 폭발적으로 들끓기 시작하며 칼자루를 붙잡은 카밀라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칼집 안쪽에 한계의 한계까지 마나하트로 마력을 채워 넣은 다음, 응축된 힘을 마나체인으로 한순간 엮어서 폭발시킨다.”
그리고 카밀라가 칼을 뽑았다.
참격의 궤도를 그리는 과정은 보지 못하였고 오직 칼을 뽑아 휘둘렀다는 결과만 볼 수 있었다.
아마, 검무의 한복판 속에 들어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칼로 이루어낼 수 있는 하나의 예술.
칼날이 햇살을 튕겨낸 순간, 서걱, 등 뒤 숲에서 바람에 흔들리던 거목 세 그루가 두 동강이 나서 쓰러졌다.
치기 어린 감동 때문일까, 몸이 전율로 부르르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쓰는지 알려줘.”
“이렇게.”
어라……?
불현듯 심장이 터진 듯한 통증에 눈앞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그 고통을 느낀 뒤에야, 카밀라가 칼집으로 자신의 심장부를 꿰찔렀다는 사실을 겨우 인지했다.
힘의 진동이 전신의 혈관을 찢어발기며 온몸을 잠식하는 감각 속에서 핏물이 쏟아졌다.
입으로, 눈으로, 코로.
“숨 쉬어, 숨 쉬어, 인마! 의식 잃으면 뒤지는 거야.”
세상이 검붉게 물들다 일그러지는 가운데, 몸의 균형이 무너지며 수평선이 뒤집혀 이울어진다.
“원래 이 힘을 쓰려면 최소 몇 년의 수행이 필요하거든? 근데 내가 미쳤냐? 네가 몇 년 동안 어울려주게?”
“……?”
“네 몸의 마나체인과 마나하트의 혈(穴)을 강제로 뚫었어. 못 버티면 역류 현상에 죽을 거고. 버티면, 흠, 어디 두고 보자고.”
피가 웃자란 벌판에 고꾸라진 채 버둥거리는 꼴이 꽤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용병들이 당연히 저러실 줄 알았다며 혀를 내둘렀으나 요한과 엘토람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그런 요한을 카밀라가 스치듯 지나갈 때, 눈꽃의 눈동자를 지닌 마법사가 말했다.
“설마 카이센을 저렇게까지 편애할 줄은 몰랐는데.”
“뭐가.”
“혈을 뚫어준 게 아니라 지금 네 내력(內力)을 나눠준 거잖아. 괜찮겠어? 저렇게나 많은 양을…….”
“흥, 어차피 받은 걸 돌려주는 것뿐이야.”
“받은 걸 돌려줘? 뭔 소리야?”
“이제는 나한테 필요 없어서 준 거라고. 이제 피곤하니까 말 시키지 마.”
그래.
어차피 스승님께 받은 거야.
당신의 뒤를 이어서 멋진 용사가 되었을 때, 제자에게 넘겨주라고 하셨지요.
‘나중에 절 탓하지 마세요. 칼의 길은 저 녀석이 선택해서 들어온 거니까.’
유년기,
여름의 서막 (4)
카이센이 내혈에서 회복하는 동안 배정되었던 분대는 3반이었다.
“회복될 때까지 이놈들 똥이나 치워. 전투의 기본 정도는 배워서 날 귀찮게 만들지 말라고.”
분대원들은 카이센을 꺼리는 건 아니었지만, 아니, 귀여운 막내가 굴러들어 왔다며 처음에는 크게 좋아했지만.
“난 뭘 하면 되지?”
“뭘 해? 뭐 하려고 하지 마.”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전투에 대해서는 엄격할 정도로 까다롭게 카이센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뭔가를 해주고 싶으면 내 침대나 좀 덥혀놔라. 예쁘장하게 생겼으니 눈만 딱 감으면 여자처럼 보이겠어.”
“우하하하하하!”
심심하면 음담패설이나 늘어놓는 저 병장의 이름은 ‘장총’ 진.
장총은 증기총의 여러 종류들 가운데 위력이 제일이었으나 사격 및 장전 난이도부터 가격까지, 무엇 하나 만만치 않았다.
장총을 쓴다는 건 베테랑 중의 베테랑임을 뜻했는데(그만큼 돈을 벌 때까지 살아남았단 소리니), 진은 그런 장총을 쓴 게 15년이 다 되어간다고 했다.
카이센은 무려 200미터 거리에서 진이 우루크 전투 대장의 머리를 정확히 쏘아 넘어뜨리는 것도 본 적이 있었다.
“닥치고 보고 배우셔요, 우루크 슬레이어 형씨. 우리는 우루크가 아니거든. 한 명 잘났다고 다 잘나는 게 아니라 이거야. 너, 분대가 뭔지도 모를 것 아냐.”
이 시기, 분대는 철새진(陣)이라는 전술 교리 위에 세워진 운명 공동체였다.
창병 둘.
총병 넷.
병장 하나.
이렇게 일곱 명이 분대의 단위.
철새진이라 이름이 붙은 이유는, 철새들이 이동할 때처럼 V자 형태로 진형을 형성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분대가 10개 모이면 소대, 다섯 소대가 모이면 중대, 중대 3개가 모이면 대대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분대가 모일수록 V자 진형도 커다래진다.
“창병 둘이 앞에 서고, 총병들은 그 양쪽으로 날개를 펼치듯 늘어서지.”
“음.”
“창병은 2미터짜리 장창을 들고 우루크들을 막아주고. 총병은 열심히 쏴 재끼다 창병 뒤에 숨어서 장전하지.”
“그럼 난?”
“넌 뒤에서 손가락이나 빨고 있어, 인마. 언제 봤던 이상형 생각 하면서 시간 때워도 좋고. 저기 카밀라 나리라든가.”
“너 그러다 뒤지는 수가 있어.”
“죄송합니다요, 나리. 근데 백 번 죽어도 거짓말은 못 하는 성격인 걸 어쩝니까.”
진은 카이센에게도 총포술을 가르쳐주려 했다.
어떻게 생각해 보아도 이런 꼬맹이가 우루크 전사를 상대로 칼질을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므로.
하지만 아무리 배우려고 해도 카이센의 눈에는 총포술의 한계만이 부각돼 보였다.
“무거워.”
일단은 스팀코어(SteamCore)라고도 불리는 ‘프리스비아 코어’를 장착해야 한다.
프리스비아는 증기기관 발명자의 이름이다.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등에 증기기관을 가방처럼 매달고 다녀야 증기총을 쓸 수 있었다.
프리스비아 코어와 총을 연결하는 열 가닥의 튜브가 증기총 발포의 동력을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기에 군장도 가운데에 구멍이 뻥 뚫린 비효율적인 방식을 쓸 수밖에 없었고.
“이걸 메고 어떻게 싸워?”
짜증스레 투덜거리자, 진을 시작으로 용병들이 피식거리다가 이내 웃어대기 시작했다.
“크, 크크크크!”
“힛, 와하하하하하!”
문화 차이인 건가?
여기 어디에 웃긴 점이 있었지?
“너무 오랜만에 듣는 말이라서 웃었다, 짜샤!”
“?”
“우리뿐만 아니라 페이쿼리어 병단은 실력깨나 있는 놈들만 뽑거든. 돈도 그만큼 많이 주지. 군장 무겁다는 애송이들은 못 만난 지 오래야. 그땐 몰랐는데 이렇게 다시 보니 귀엽기까지 하네.”
그들은 백골 병단.
해골이 돋을새김된 순백의 투구를 쓰고, 순백의 제복을 입고, 순백의 망토를 둘렀다.
그 복식은 적의 핏방울 하나 여기에 튈 리가 없다는 최강 병단으로서의 자신감과 자부심의 상징.
“볼 꼬집지 마.”
“핫하하하하하! 우루크 슬레이어의 볼을 꼬집고도 살아남은 남자로 나중에 역사책에 실리면 좋겠군.”
“아, 그러면 나도.”
“나도.”
“아, 하지 말라고!”
그때 몸만 멀쩡했어도 죄다 묵사발을 내줬을 것이다.
총포술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분대가 싸우는 방식은 익혀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훈련에는 재깍 참여했다.
카이센 스스로 그렇게 판단한 게 아니라 요한이 넌지시 일러준 덕분이었다.
카밀라가 굳이 널 분대에, 그것도 진이 있는 곳에 배정한 이유를 생각해봐, 라면서.
“지금 기술력으로는 탄창 하나에 총 다섯 발의 총탄이 삽탄돼. 이게 뭔 뜻인지 알아?”
다섯 발의 총탄을 모두 발포하고 나면 장전 절차에 들어가야 했는데, 이게 여간 숙련도를 요구하는 게 아니었다.
일반인들은 30초쯤 걸렸지만, 병단의 숙련자들은 10초 안팎으로 장전을 해냈다.
참고로 진은 6초(!)였다.
“발포, 장전, 모든 전투에는 리듬이란 게 있어. 이 전투 리듬을 깨닫는 게 곧 전쟁의 리듬을 깨치는 방향으로 이어져.”
서책의 탁상공론만으로 지휘관의 자리에 오른 자들은 절대 알지 못하는 전장의 열기.
“분대, 전열(戰列) 형성! 4대 철새진!”
진의 호령이 떨어지면, 우스꽝스럽기만 했던 분대원들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사라진다.
순식간에 V자 전열을 형성.
어떤 상황에서도 경거망동하지 않고 전열을 형성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생사를 가른다.
‘철새진인가.’
총포술을 제대로 익히진 않았어도 총포술 진형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휴식의 시간은 총포술뿐만 아니라 비련의 인연들과도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다.
병단의 주축을 이루는 건 이하 네 명의, 이른바 용사 파티.
페이쿼리어 카밀라.
눈꽃의 대마법사 요한.
백곰 엘토람.
장총 진.
본래 치유를 전담하는 마녀가 한 명 있어서 다섯 명의 파티였으나 지난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한다.
병단은 서로를 피를 나눈 형제처럼 여겼다.
엘토람과 진이 부대장으로서 병사들을 통솔하긴 했지만 수직적인 상하 관계라기보다는 다들 친밀한 친구처럼 지냈다.
예외는 카밀라와 요한이었다.
카밀라는 친구가 아니었고 그저 그들이 떠받드는 용사님이었다.
진 같은 고참들이 넌지시 장난을 걸 때도 있긴 했으나 모두 정중하게 선을 지켰다.
카밀라는 병단의 엄격한 아버지 같은 존재였고 요한은 자상한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 예시 성별이 서로 뒤바뀌긴 했지만 말이다.
엄격하다지만, 카밀라는 병단 병사를 단 한 명도(살아 있는 한) 버린 적이 없었기에, 그 확고한 믿음 아래 병사들도 전적으로 카밀라를 믿고 따른다고 했다.
단 한 명, 진은 그 한 명이란 말을 몇 번이고 강조했다.
무수한 전장의 수라장 속에서 단 한 명의 병사도 버리지 않았단 것이다.
“두 분 다 엄청난 분들이시지. 우리 병단은 지금 현존하는 페이쿼리어 병단 중 최강의 병단이야. 들어오고 싶은 놈들이 줄을 얼마나 섰는지 모른다.”
진이 새하얀 군복과 해골 무늬가 으스스하게 새겨진 투구를 자랑스레 가리켰다.
“순백의 제복이란, 피 한 방울 묻히지 못할 거라는 자신감의 상징이지. 그리고 우리는 홍련 병단의 정당한 계승자다, 이 말이야.”
“홍련 병단?”
“모르냐? 라미네아 알터 아라다만텔이 이끌던 전설의 병단이지.”
카밀라와 요한이 지난여름 라미네아 알터 아라다만텔이 이끌던 홍련 병단 소속이었기 때문에, 홍련 병단은 자연스레 백골 병단의 전신으로 여겨졌다.
‘즉, 어머니를 알던 사람들.’
카밀라는 어머니의 직계 제자였다는데, 어머니는 과연 어떤 모습의 스승이었을지 궁금했다.
“어휴 등신,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쯧쯔쯔, 몇 번이고 말하지만 느그 아버지 얼굴이 궁금할 따름이다.”
일단 이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궁금했으나 묻지는 않았다. 스스로의 정체도 밝히지 않았다. 물어야 할 것은 따로 있었으므로.
그 이름, 검술.
살육의 방식이자 어머니의 제단 앞에 산 제물을 쌓기 위한 도구. 그걸 지금부터 배워야만 해.
[6대 마족 가운데 ‘거골(巨骨)’이라는 이름을 가진 야만스러운 종족이 있었으니, 곧 우루크다.]몸이 다 나을 때까지 검술을 배울 수 없었으므로, 요한이 집필 중인 역사 일지를 엿보며 복수심을 다졌다.
[우루크는 1692년 침공의 제1진이었다. 체고가 통상적으로 7척에 달하는 이 거한들에게 구공화국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갔다.]50일 만에 남방 요충지들을 깨트린 우루크들은 부대를 좌군ㆍ우군ㆍ중군으로 나누어 온 국토를 유린했는데, 그 기세가 허황될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이때 법황청은 페이쿼리어들을 급파, 이들의 임무는 피란민들이 인페르노 라인 뒤로 달아날 때까지 엄호하는 것이었다…….]기다려.
조금만 더 기다려.
내가 머지않아 너희들을 찾아갈 테니까.
“멍청아! 이것도 못 따라 해? 칼을 휙 휘둘러서 쌩 하고 소리가 나게 하라고.”
“?”
“하, 이 바보를 어떻게 해야 되냐. 휙, 하고 쌩. 휙, 쌩, 휙 쌩. 이게 어려워?”
“?”
“이걸 못 하겠다고? 장난해? 너 사실 나 빡 돌아서 뒤지게 하려고 이러는 거지?”
“!”
“해봐. 그냥 해보라고! 거봐! 하니까 되잖아.”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여정은 참으로 혹독해 보였다.
울프 또한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카이센의 유년기를 세세히 기록하던 일기에 이렇게 덧붙이며.
[이딴 교육조차 완벽하게 이수해 냈다는 점에서 카이센은 최고의 학생이 아니었을까.」그렇게 적을 때 울프는, 카이센과 카밀라를 바라보며 숨죽여 웃었다.
카이센을 가르칠 때, 늘 냉담하기 그지없던 카밀라의 표정은 평소보다 풍부하면서 넉넉해졌고 배우는 카이센 또한 그러했으므로.
“카밀라 녀석, 가르치는 게 그렇게 싫지만은 않은가 보네?”
그 옆에서 궐련을 꼬나물고 장총을 정성스레 손질하던 진이 입꼬리를 장난스레 치켰다.
“꼭 어릴 때 키우던 병아리를 보는 것 같군요.”
“병아리?”
“암탉이 뭘 하든 죄다 따라 하려고 얼마나 애를 쓰던지, 보는 내내 귀여워서 여동생이 미치려 하더군요. 제 열 살 생일에 밥상에 올라오긴 했지만.”
“마지막 말을 굳이 덧붙일 필요가 있었나, 진?”
“거짓말은 성미에 안 맞아서요. 여하튼 보는 사람 눈에도 그리 사랑스러웠는데 어미 입장에서는 어쨌겠습니까.”
어미와 자식이라…….
진의 말에 울프는 아련한 미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카밀라의 나이라면 지금쯤 아이 하나 있어도 이상하지 않지.”
하지만 카밀라는 페이쿼리어였고 페이쿼리어는 신체 개조로 불임의 몸이 된다.
‘그래. 하지만 만약 카밀라가 페이쿼리어가 아니었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