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54)
가짜 용사 이야기-54화(54/310)
제54화
[여기는 수송 차량, F882! 지금 즉시 출발해야 한다! 정체불명의 적이 내려오고 있다!]억제기의 핀을 뽑으려는데 세이라가 어깨를 붙잡았다.
“지금 뽑아봐야 아무것도 안 돼!”
“뭐?”
“냉정하게 상황을 봐!”
골공왕의 두 번째 명령.
원시인 군대의 절반은 산의 사면을 타고 내려가고 절반은 철성 병단의 정면으로 대공세를 개시했다.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3분 안에 저걸 다 베고, 저 녀석에게로 나아갈 수 있을까?
아니, 불가능할 것이다…….
어째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초월의 힘에는 제약이 이렇게도 큰 건지…….
[기관장, 최대한 시간을 벌어보겠다. 거기 모인 모든 피난민을 태워주길 바란다!] [여기는 제2기갑여단, 원시인의 공격을 받고…… 끄아아아아!]참극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그 숨 막히던 일순간, 하늘이 황금빛으로 밝게 빛났다.
칼로 베어내듯이 모래의 폭풍을 훑어내는 낙뢰가, 협곡 사면을 맹렬하게 훑었다.
“뇌향 각하……!”
그 효과는 대단했다.
사면을 내달리던 원시인들은 새까맣게 탄 폐기물이 되어 지면 위로 추락했다.
그뿐인가, 협로를 가득 메우던 하이르칸과 적들도 그 지반 붕괴에 휩쓸려 아래로 쓸려 내려갔다.
“대단해, 싹 쓸어버렸어!”
“아니, 저기에는 승강장이 있어. 좋지 않아! 바로 내려가야 해!”
“하지만 어떻게…….”
그때 공중을 맴돌던 빛의 용이 그들 앞으로 내려앉은 뒤에야 알 수 있었다.
뇌향의 세츠넨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크고, 위엄차고, 더 친숙한 존재였다. 그 친숙함은 아마도 분리된 영혼으로부터 비롯된 친밀감이 아니었을까.
「빛의 칼날들아, 그대들과 다시 만날 수 있게 한 빛의 인도에 지극한 감사를 올린다.」
추기경 요슈하르.
광룡 하라데리만을 섬기는 다섯 기둥 중 하나.
「사태가 화급하다. 어서 나의 몸 위로 올라타라. 골공왕의 원시 군세의 외호로부터 분리된 지금을 노려야 할지니.」
즉시 그 등 위로 뛰어올랐다.
중무장했기에 동작이 비교적 불편한 세이라의 팔을 붙잡아 위로 끌어 올려주며 물었다.
“각하, 그렇다면 창명검을 가져오셨습니까? 창명검이 없이는 옛 귀족을 봉인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길에는 다 샛길이 있는 법이니라. 그러나 그 길을 위해서는 카이센, 네가 내 영혼을 더 취해야만 한다.」
“예?”
요슈하르가 큰 날갯짓 한 번으로 그 거대한 몸체를 하늘로 띄웠다.
「내 몸은 이미 쇠락하였으므로 더는 옛 귀족과의 분쟁에 나설 수 없다. 골공왕을 네가 무력화시키면 그다음은 내가 처리하겠다.」
“요슈하르 각하.”
「그날 네가 취한 곧고 높은 혼은 광룡의 혼이다. 광룡은 모든 황룡들의 혼의 아버지이다. 모든 혼이 그 혼으로부터 비롯되었으니, 되찾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리될 수 있다.」
대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이미 말도 안 되는 선물을 받았는데, 그걸 더 가져가라고?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못 합니다! 그러기보다는 함께 싸우면 되는─”
「─예를 세우는 것도 좋으나 용사란 무릇 시세를 읽어야 한다. 내 혼을 모두 가져가라는 뜻이 아니다. 네가 능히 골공왕과 맞설 수 있고 나는 하늘에서 빛을 뿜어낼 수 있을 균형을 사료하여 맞추어라.」
누런 비룡 여섯 마리가 요슈하르 옆으로 날아와 용 군단 편대를 구성했다.
비룡들이 토해내는 벼락이 빛의 장막을 만들어 원시인들의 진군을 일시적으로 차단하고 있었다.
저 힘이라면, 저들보다 더 강한 진룡의 힘이라면, 굳이 내가 또 힘을 받지 않아도 될 터.
“각하, 부탁드리오니─”
요슈하르는 잠시 눈을 감았다.
1692년에 죽은 라미네아와 1696년에 죽은 카밀라의 얼굴이 저 얼굴 위에 포개져 있었다.
살아서, 둘은 같은 성검을 쥐고 이 세상의 마지막 불꽃을 밝혔다.
그 아이들은 피로 이어져 있지 않았음에도, 혈육처럼 똑같은 향기를 풍겼고 똑같은 길을 갔다.
그 같아짐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요슈하르는 늘 궁금했다.
용은 생육하지 않으므로 육아의 사랑을 알 수 없었으나, 어느 날인가부터 저절로 알게 되었다.
동란기의 영웅, 리스타 알터 쉬르팽이 그 편애를 알려주었다.
리스타는 새로이 태어나 용사가 아닌 몸으로 자식을 낳았는데, 그 먼 자손이 라미네아였다.
라미네아는 카밀라를 마음으로 낳았고 카이센을 몸으로 낳았다.
두 자식은 제 어미를 닮아서, 칼의 길 위에서 칼로 이 세상을 밝히고 있었다.
리스타와 라미네아와 카밀라는 요슈하르보다 먼저 죽었다.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마음에 묻는다고, 순간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이 울면서 말하던 게 떠올랐다…….
아마, 같은 마음에서였을까.
아니면 스스로의 한계를 직감한 것에 불과하였을까.
분명, 둘 다였을 것이었다.
요슈하르는 카이센만큼은 죽기를 원치 않았다.
살아서, 이 아이가 더욱 부강해져서, 이 끝없는 장난을 끝내고 살아서 행복해지기를 바랐다.
그 어미와 스승이 손에 넣었으나 끝내 영원히 잃어버리고 만 그것을 영원히 얻길 바랐다.
아비가 자식에게 선물을 줄 때 아비는 그 선물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아마 그런 것이리라.
– 요슈하르 아저씨, 이거 봐요. 제 아들이에요. 귀엽죠?
이루어지지 않는 세계의 지평.
그 속에서 라미네아와 카밀라가 살아서 아기 카이센을 자신의 앞으로 데려오는 꿈을 꾸었다.
그 세상에는 심연이 없었고 악도 없었고 용사도 없었다.
– 네 맑음이 이 아이의 얼굴에서 그대로 배어나는구나.
그 속에서 요슈하르는 지극한 기쁨으로 축복을 내렸고 아기 카이센은 맑게 웃고 라미네아와 카밀라가 덩달아 웃고 있었다.
이루어지지 않는 시간선의 지평.
소중한 것을 잃는 순간들 속에서 필멸의 존재는 늘 이러한 꿈을 꾸는 것일까 싶었다.
그런 꿈이 있었기에 자신은 이러한 결정에 다다를 수 있던 걸지도 모른다.
「─해야 한다. 방도는 그것밖에 없다. 라미네아가 널 낳아 기적의 씨앗을 뿌렸고 카밀라가 그런 널 가르쳐 기적의 열매를 거두었다. 그러니 너다. 네가 해야 한다.」
상황이 화급했으므로, 말은 거기서 마쳐져야 했으나 마쳐지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미소 속에서 그저 그렇게 되었다.
「아느냐? 너라는 존재가 곧 이 세상의 기적이다.」
동시다발 전선,
골공왕 하이르칸 저지 (3)
[더는 안 된다, 출발하겠다!]요슈하르의 등 위에서 들은 이야기도, 그리고 전황 모두 황잡하기 그지없었으나 진정해야만 했다.
서둘러야 하나 차분해져야 한다.
눈앞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산맥 전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싸움이 패배로 끝나게 된다.
[기다려라, 기관장! 피난민을 태운 다수의 궤도차들이 그쪽으로 이동 중이다! 함께 탈출시켜야 한다!]요슈하르가 산기슭으로 급강하할 때, 하이르칸이 붕괴의 잔해를 떨쳐내며 일어서는 것이 보였다.
하…….
낙뢰에 직격되었던 그 육신은 벌써 완전히 수복되어 있었다.
「빛의 칼날들아, 상공에서 원시의 군세를 걷어내겠다. 준비가 끝나면 바로 고하거라.」
“알겠습니다, 각하!”
“첫 번째 공격은 내가 막아줄게! 그때 너는 직격타를 노려!”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다음 순간, 요슈하르의 등을 박차고 저 먼 발치의 표적을 향해 뛰어내렸다.
하이르칸이 영혼검을 휘두르기 위해 몸을 옆으로 비트는 것이 보였다.
끄그그그그…… 칼날에서 엮인 망혼들이 통곡하며, 초절의 힘을 지닌 검풍이 쇄도해온다.
피하는 것도, 막아내는 것도 아라다만텔로도 불가능.
하지만.
“자, 첫 번째!”
세이라의 방패가 빛을 발했다.
심연의 육중한 질량과 열기가, 방패가 반원형으로 펼쳐낸 결계에 사방으로 비껴 나가며 흘려졌다.
타스알포의 자매검(姉妹劍)인 솔랑은 독특한 개성을 가진 성검으로 유명하다.
[방백 각하, 열차 출발을 윤허해 주십시오! 역사 밖까지 원시인 군대가 침입했습니다!]솔랑은 방패와 칼이 하나였다.
방패로 적의 힘을 흡수한 뒤, 그 흡수한 힘을 성검의 칼날에게 증폭시켜 전달한다.
말로만 들어서는 무적의 힘에 가깝지만, 적의 힘을 흡수하는 것에 조금의 오차만 있어도 그 힘에 삼켜져서 역으로 죽게 된다.
때문에 솔랑은 죽음을 튕겨내기 위해 누구보다 죽음에 가깝게 다가가는 검이라 불렸다.
[여기는 유리우스 페이지. 현장 지휘관의 판단에 따르기를 바라네, 기관장.]방패가 흡수한 힘이, 솔랑의 칼날 위에서 찬란하게 아롱지며 그 힘의 주인이었던 하이르칸에게로 반사되었다.
[골공왕 토벌을 기다리다가는 너무 늦습니다! 이 열차에는 이미 2천 명이 넘는 피난민이 타고 있습니다! 이 이상은 못 기다립니다!]전장에서 뒤엉키며 헝클어지는 그 모든 다급한 떨림들을 칼로 끊어내듯이.
팅──!
손끝에서 뽑혀 나온 억제기의 핀이 맑은 여운을 남기며 귓가에서 모든 소리를 앗아갔다.
‘이미지.’
본래 파편에 불과했던 진룡의 여의주(如意珠)가 지금 이 순간, 완성에 가깝게 합쳐졌다.
스스로의 육신이 발하는 풍압과 위압감에 사지의 근골이 부서질 듯 뒤흔들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위압감에 하이르칸의 동작에 일말의 제동이 걸리는 것을 확인한다.
‘그때, 그 순간의 이미지.’
하이르칸이 지면 깊숙이 영혼의 칼날을 꽂았다.
세상이 뒤흔들리는 아지랑이와 함께 수많은 원시인 군대가 지표를 헤집으며 기어 나왔다.
그 아지랑이는 낙뢰를 차단하고 망자의 군세의 진군을 보조한다.
‘마우나 로아를 토벌할 때의 그 힘의 이미지.’
그때, 손바닥 위로 결집되는 광휘의 폭풍(爆風).
그것은 여의주의 편린(片鱗).
필멸의 육신이 불멸의 힘을 온전히 사용하지 못하고, 영혼의 끄트머리에 남아 있던 파편(破片).
채애애앵────!
그 힘을 지금 이곳에, 이 손 위에 일으켜서 하나로 엮은 다음 깨부순다.
빛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날린다.
파편들은 일대에 빗발치듯 쏟아져 지반에 단단히 고정된 후 명멸하기 시작했다.
팅……
……팅……
…………팅………
…팅………
파편이 꽂힐 때, 그 소리가 더없이 맑았다. 마치, 영혼의 현을 튕기듯이.
맑은 소리를 흘리며 꽂힐 때, 도합 156개의 파편들은 칼날의 형상을 입어 빛의 칼날이 되었다.
골공왕 하이르칸이 딛고 선 지면을 반원으로 포위하는 칼날의 진용이었다.
「──?」
칼날은, 칼집에 씌워져 있었다.
칼날로 봉해진 칼집 내부에서, 힘이 들끓고 있었다.
저 칼날들은 모두 힘을 형상화한 것, 즉 폭발하는 힘에 아라다만텔의 형체를 입혀 구현화한 것이다.
─ 용검술(龍劍術).
어머니께서 마우나 로아를 쓰러뜨릴 때 십문자도의 검무를 추었더라면, 지금 내가 보이는 건 용의 검무.
즉, 용의 춤이다.
생각만 했다. 이론으로만 떠올렸었다. 용령의 힘이 모자라 이루어내지 못했던 힘이, 지금 이 순간 완성된다.
─ 진천뇌천(震天雷川).
제1참(斬).
호흡을 멈추고는 아라다만텔의 칼자루에 손을 얹은 한순간.
초광속(超光束).
몸이 빛의 윤곽으로 이울어지는 무시무시한 속도.
참격의 궤도 위로, 칼은 홍련의 검광을 남기고 몸은 황금의 신광을 남기었기에 그 이동 궤적에는 다만 붉은빛과 황금빛만이 남았다.
빛이 지나가고 나서 한참이 지나고서야, 그 위에 서 있던 원시인들의 몸이 여러 갈래로 도륙 나며 흩어졌다.
[원시 군대가 역사 내부에까지 침투했다!]참격과 함께 나아간 몸은, 첫 번째 파편 앞에서 멈추었다.
그 칼날의 파편이 아라다만텔에 흡수된 순간, 다시 그 몸이 빛의 잔상으로 사라지며 제2참(斬).
[기다려라! 진룡과 페이쿼리어들이 골공왕 토벌에 나섰다! 그리고 보병여단 2개가 곧 도착할 거다!]납도와 발도를 검무의 순간순간에 행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허점이 노출되고 만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는.
이 칼날의 파편들 속에서 그런 시간은 모두 불필요하다.
납도 동작도 필요 없다. 발도 동작도 필요 없다. 예열 동작도 필요 없다.
[적이 승강장 계단 바로 아래까지 들어섰다!]오직 베어내기만 하면 된다.
초월의 힘으로.
초월의 속도로.
힘없고 무력하게 죽어간 모든 이들의 애통과 분노를 이 칼날 위에 모두 담아서.
[진정해라! 지금 막 보병여단이 도착했다! 외부에서 렙틸리언을 걷어내고 있다!]그것은 무한한 빛의 섬광.
초월의 삶을 겨누는 칼의 폭풍.
인간의 나약한 몸을 입고 강림한 신룡의 분노.
“아름다워…….”
세이라는 전황의 다급함을 잊고 멍하니 그렇게 중얼거렸다.
용사의 눈으로도 좇을 수 없다.
쉴 새 없이 일선(一線)을 긋는 그 칼의 춤은 골공왕 하이르칸의 갑옷을 박살 내고 그 골격을 잘라내고 그 원시인 군대를 도륙하고 또 도륙했다.
[계단 방어선 돌파, 적이 승강장 위로 올라온다!]다만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왜 하이르칸은 적극적으로 힘으로 맞서지 않는가.
‘설마.’
그것은 하이르칸의 연륜(年輪).
마지막 파편을 입은 뇌격의 칼날이 세계의 어둠을 찢어발기며.
하이르칸의 혼을 겨누고 지근거리까지 단숨에 거리를 좁혀온 그 한순간의 필살을 위한 연륜.
“카이센!”
영혼의 칼날과의 격돌, 아라다만텔이 위로 솟구치며 양손으로 칼을 머리 위로 든 자세가 되었다.
잠시, 자세가 무너졌다.
횡격을 종격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자세뿐만 아니라 마나체인의 섬세한 조정이 필요하다.
[페이쿼리어, 어서!]그러나 심연의 존재에게는 그런 것이 필요하지 않다.
자세를 수습하기 전에, 영혼의 칼날이 소름 끼치게 울며 수직으로 내달려든다.
옛 귀족의 육신과 반사 신경은 빛의 속도조차 좇는다. 방어 동작으로의 전환은 불가능.
설사 기적적으로 방어에 성공한다 한들, 저 칼날에서 휘몰아치는 영혼의 폭풍에 휩쓸려 육신이 붕괴해 원시인이 될 터.
그렇기에.
그렇기에 지금은.
그렇기에 바로 지금은.
아라다만텔을 굳게 붙들어온 손가락에서 힘을 뺀다. 그 대신에.
‘이슬라.’
방어 동작으로 전환하는 대신, 자유로워진 손을 필사적으로 등 뒤로 뻗어 다른 검을 움켜잡았다.
‘힘을 보태줘.’
먼저 죽은 친구의 성검.
대망치형 극위성검, 가우므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