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55)
가짜 용사 이야기-55화(55/310)
제55화
이슬라의 움직임을 떠올려본다.
이슬라는 끌어낸 용령의 힘을 한 번의 참격에 모조리 담아서 폭발시키는 방식으로 가우므리스를 사용했다.
용의 육신이기에, 용령을 무한정 끌어낼 수 있기에 가능했던 힘의 무식한 사용법.
지금은 그 단순무식한 힘의 사용법을 똑같이 쓸 수 있다.
‘그 이미지를.’
이 영혼에 깃들인 신룡과 진룡의 힘 전부와, 육신의 근력과 탄력과 관성과 그 모든 힘의 흐름을 하나로 휘감아 이 끝에 담는 이미지.
일격필살(一擊必殺).
진성검 아이자이야는 검주의 외력과 내력을 3.3배 증강시켜서 광압(光壓)으로 폭발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아이자이야의 아류작인 가우므리스와 토오엘은 이러한 힘을 부분적으로나마 계승하고 있었다.
내부에서 증폭시킨 신룡과 광룡의 힘을 가우므리스가 다음 순간 최대의 파괴력으로 작동시켰다.
“쯔아아아────!”
가우므리스와 영혼검의 격돌.
두개골을 깰 듯한 굉음.
그 타격면에서 번지는 빛무리, 그리고 빛의 광대한 폭발.
“─────아아아아아아아아!”
타격면을 넘어 전방으로 쏟아져 나간 광선은, 끝까지 나아가 산 중턱에 격돌하여 동굴을 뚫어냈고.
“각하──!”
뛰어내리기 직전 들이마셨던 숨이, 거대한 숨 덩어리로 뭉친 지금에서야 터져 나왔으며.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게 다급하게 물었고.
시간 한계가 분명한 힘을 집중해서 폭발시켰기 때문일까.
‘시간이 없어. 벌써 한쪽 무릎이 꺾였다.’
눈과 코에서 핏물이 쏟아진 것은 약과다. 온몸이 차갑게 식으며 그 기력이 빠져나가고 있었으며.
‘초월적 힘의 반동에서 오는 한기? 아니, 그것뿐이 아냐.’
동시에, 절대적 공포에서 오는 오한이었다.
‘빨라도 너무 빠르잖아…….’
가우므리스의 격류에 상반신 전체가 날아갔던 하이르칸…….
그 상반신의 빈자리에서 회오리치며 일어난 모래가 육신을 일시에 재생시킨다.
[끝났습니다! 승강장 방어 병력 전멸……!]이놈은…….
이놈은 정말 괴물인가…….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열차 문을 닫아! 빨리!]뇌가 있었던 위치에서 소름 끼치게 생긴 씨앗이 공허하게 떠다니고 있었다.
혼의 핵이다.
하지만 창명검이 없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지금은 요슈하르와 세이라 덕분에 허를 찔렀기에 이게 가능했지만, 다음번에는 이런 운이 따를 리가 없어.’
영원처럼 긴 찰나가 시작되었다.
몸을 완전히 재생시키지도 않은 상태에서 하이르칸은 영혼검을 앞으로 내찔렀고.
칼날에서 울부짖는 영혼의 소용돌이에 육신이 삼켜지기 직전, 솔랑의 방패가 그 일격을 튕겨냈고.
튕겨낸 즉시 세이라가 카이센을 덮쳐서 저 멀리 밀쳐냈으며.
가우므리스를 놓치며 지면을 뒹굴던 그때.
상공을 맴돌며 원시인들에게 낙뢰를 쏟아내던 요슈하르가 급강하해 양발로 하이르칸을 내리찍었다.
그리고 잠시.
정말 아주 잠시.
이쪽을 똑바로 쳐다보며 눈웃음 지었다.
「카이센, 기적의 아이야. 너는 너의 길을 마저 가거라. 내 순종(順從)의 경주는 이제 여기에서 마치니.」
동시다발 전선,
골공왕 하이르칸 저지 (4)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물을 틈도 없이, 저 말이 작별 인사란 걸 깨달을 틈도 없이.
허물을 벗듯이.
전신을 뒤덮던 황금빛 용린이 광입자로 흩어지고 용의 골격이 도드라졌고.
“……각하!”
그 골격들은, 수십 개의 쐐기처럼 하이르칸의 육신 위로 내리꽂혀 그 움직임을 봉했으며.
영혼의 광입자들은.
혼의 핵이 위치한 곳에서 다시 하나로 뭉쳐서, 핵을 빛의 장막 속에 싸매 단단히 가두었다.
[뭐지? 원시인들이 모두 쓰러지기 시작한다!]그래, 그것은 불멸의 무덤.
자신을 죽여서 세상의 어둠을 가두는 희생의 언덕.
[골공왕이 토벌된 거다! 페이쿼리어들이 해냈어!]겨우 눈을 한 번 깜빡일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주위의 세상은 적막으로 고요했다.
섬뜩하게 요동치던 심연의 기척도, 상공에서 거룩한 빛을 뿌리던 진룡의 기척도 없었다.
분명하게 보이는 건 그저, 용의 뼈로 이루어진 능묘…….
[각하, 살았습니다! 궤도차 12개가 갈 수 있는 철도를 확보했습니다!] [882호! 궤도차를 모두 수용한 뒤 출발해라!] [그대들 덕분에 수백만 명이 살았다, 페이쿼리어. 그대들에게 경의를.]그리고 저 수많은 사람들에게 내일이라는 새날을 가져다준 희망과 희생의 징표.
함께 긴 시간을 보낸 적도 없었건만, 그 무덤을 보자니 마음속 구멍이 공허하게 아파왔다.
이건 그저 혼에 스며든 영혼이 느끼는 떨림인가.
‘나를 편애한다고 했어. 난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머니를 편애했다고 했다.
스승님도 편애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아들과 제자인 나까지 편애해서, 여의주를 내주었고 장인이 될 미래에서 지금의 미래로 이끌어 주었다.
‘만약 시대가 달랐더라면…….’
무어라 이야기할 시간이 있지 않았을까? 어머니에 대해, 그리고 카밀라에 대해서.
알 수 없었다.
항상, 알 수 없었다.
왜 항상, 모든 게 돌이킬 수 없어진 순간에 영원히 알 수 없게 된 질문들은 떠오르는 것일까.
“예전에 들어본 적이 있어.”
카이센의 몸 위에서 몸을 일으킨 세이라가 중얼거렸다.
“진룡들은 모두 스스로의 육신과 혼을 이용해 옛 귀족을 봉인할 수 있댔어.”
“뭐……?”
“그러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도 했던 것 같은데…….”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인 세이라의 손을 붙잡고 일어서려 했으나…….
의식은 점차 혼몽해져 갔다.
부축이 없이는 설 수가 없어서, 세이라의 어깨에 무력하게 기대서 있었다.
“그나저나 흐음, 그랬단 말이지. 네가 라미네아 님의 자식이었다고? 어머, 어머어머어머.”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하지 마.”
“너, 보기보다 표정 관리를 엄청 잘하는 것 같다?”
“뭔 소리야?”
“장난치지 말고 내 머리를 봐.”
“머리?”
잘 보라는 듯, 세이라가 제 어깨에 매달린 카이센에게 자기의 머리를 들이댔다.
이상했다.
피와 먼지로 가득한데…… 왜 꽃향기가 나는 것 같은지, 바로 고개를 돌렸다.
“뭔지 그냥 빨리 말해. 나 의식이 점점…….”
“시치미 떼긴. 라미네아 님 머리 스타일이잖아! 이게 당시 사교회에서 얼마나 유행했는데.”
내 어머니의 머리라고……?
다시 고개를 돌려, 그 유려하게 땋아 내린 머리를 들여다보았으나 그건 어머니의 머리가 아니었다.
기억 속 어머니는 검은 머리로 염색하고 계셨고, 머리 또한 길게 풀어 헤쳤으니까.
“모르겠는데.”
“모르긴 뭘 몰라? 내가 널 오늘 몇 번이나 구해줬는데 이럴래?”
“그래, 맞는 것 같다.”
“아니, 아냐아냐아냐. 그런 성의 없는 대답을 바라는 게 아니야. 똑바로 보라고. 이슬라처럼.”
슬픔의 침묵이 다시 내려앉았다.
이슬라라는 이름 하나로.
그 침묵 속으로 의식이 침몰하려던 즈음, 뇌향의 주인이 머리에 직접적으로 향기를 불어 넣었다.
[뇌향의 세츠넨이 말하노라. 카이센, 세이라, 응답해 주거라.]“카이센입니다. 말씀하십시오.”
[전황이 다급하여 네 목소리를 뇌향 공명 속으로 들일 수가 없었다. 대신 요슈하르 어르신께서 마지막 비룡 여섯 마리와 함께 그곳으로 향하셨다. 어찌 되었느냐?]입을 다물었다.
가슴의 구멍이 넓어지는 고통과 함께 입이 제멋대로 다물어졌다.
세이라가 대신 보고했다.
“여기는 세이라, 골공왕 하이르칸 토벌에 성공했습니다. 카이센이 또 멋 낸다고 까부는 걸 보조하느라 고생했어요.”
[그래, 고생했다. 요슈하르 각하께서는 어떻게 되었느냐? 그분의 기척이 심히 약해지셨는데 연락이 닿지 않는다.]“그분께서는 하이르칸을 봉인시키시기 위해, 그, 몸으로…….”
도대체 이 세상은 언제까지.
누군가의 죽음을 이렇게 보고해야만 하는 세계인 것일까.
함께 살아서 함께 세상에 남아 있을 수는 없는 것인가. 왜 항상 누군가는 세상이 아닌 어딘가로 가야만 하는 것일까.
[그래, 그렇게 됐구나…… 그럼 지금 그 기척을 품고 있는 게 카이센이었구나.]“예…….”
[카이센, 그분께 받은 등불을 소중히 품되 눈물로 꺼트리지는 말거라. 내 너의 마음의 아픔이 느껴져 가슴이 찢어지는구나.]단순한 위로였다. 위로라기보다는 사명의 재확인에 가까웠다.
그렇게 생각하려 하였으나…….
품에 안아 손결로 보듬는 어머니 같은 뇌향의 어조와 탄식에 목이 아래로 꺾였다. 뇌향은 전장의 모든 병사들의 어머니였다.
[그만 쉬어라. 세이라, 중부 전선의 상황은 어떻더냐?]“피난민을 모두 탈출시켰으며 하이르칸이 토벌된 시각을 기준으로 원시인 군대가 힘을 잃고 무력화되었습니다.”
[잘해주었다. 정말 잘해주었어. 이제 다시 모든 용사들이 집결할 때다. 토벌전까지는 단 하나의 작전만 남았다. 산맥 이남으로 철도를 연결해야 한다.]세이라의 눈빛이 일변했다.
“네이갈라스의 목에 칼을 겨누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군요.”
[그래, 그러기 위해서는 네 도움이 필요하다. 카이센을 데리고 이곳으로 와주어라. 편히 올 수 있도록 궤도차를 보낼 테니.]* * *
지금은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는, 마우나 로아를 막 토벌했을 당시의 꿈을 꾸었다.
마우나 로아 토벌 이후 많은 게 바뀌었었다.
새로 서임된 페이쿼리어의 능력을 의심하던 중부 전선의 주력부대의 텃세가 일시에 사라졌다.
– 페이쿼리어.
오히려 존경심을 담은 경례를 받는 일이 부쩍 늘었다.
처음에는 일일이 답례하였으나 그 숫자가 너무 많다 보니, 팔이 떨어지기 전에 묵례로 바꾸었다.
그뿐인가. 철십자 기사단과의 사이에 존재했던, 보이지 않는 벽이 난데없이 사라진 듯했다.
‘왜지?’
피로연에서 험한 말을 털어놓은 기억밖에 없는데…….
재배치된 순간부터 경쟁의식을 불태웠던 트발과의 거리감은 더 극적으로 사라져 있었다.
그 일례로 어느 날인가 트발이 말했다.
– 나한텐 아들이 있었다. 겨우 열 살이었지. ‘검은 여름’ 때 심연이 창궐하면서 퍼진 역병에 걸려서 제 어미랑 같이 죽었지만.
– 예?
– 근데 만약 내가 대신 그 병에 걸릴 수 있었더라면, 그래서 아들과 마누라를 살릴 수 있었더라면 몇 번이고 기꺼이 그랬을 거다. 그렇게 해 달라고 밤낮 기도하기도 했어.
그러면서 카이센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내리찍다시피 때렸다. 고개는 저 멀리 돌리고 있어서 표정은 안 보였다.
– 근데 그렇게 살아난 아들이 맨날 나 때문이라고, 내 책임이라고 울고만 있다면 당장 천국에서 되살아나 그 면상을 박살 내러 내려왔을걸. 진심이다. 하!
– …….
– 부모 마음이란 게 누구건 대부분 비슷비슷하다. 그러니까 뭐냐, 내가 무슨 말을 하려 했더냐? 어? 그래. 야, 이 멍청한 놈아, 혼자 끙끙대는 건 이제 그만둬라.
내 삶의 내막을 알고 있는 걸까. 어떻게?
묻지는 않았다.
그저 저 말에 담긴 진심을 감사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게 신기했다.
‘마음 한구석이 편해졌어…….’
이유는 모른다.
가슴을 꿰뚫은 채, 누군가와 대화할 때마다, 이야기할 때마다 욱신거리던 비탄의 칼날들이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물론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통증이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나 잦아들 수 있단 게 신기했었다.
이제, 다시 만날 수 있구나…….
다시 만날 수 있고 만나러 갈 누군가가 있다는 게 이렇게나 눈물겨운 것인지를 그때서야 알았다.
딱히 알고 싶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책을 읽을 때, 견문이 쌓이는 것처럼.
그리고 책이란.
책장을 넘기며 그 즐거움을 탐독할수록, 더 빨리 마지막 장에 닿게 된단 것도 곧 알게 되었다.
알고 싶지 않았는데, 그 또한 어느 순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알게 되었다.
인생이란 책과도 같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