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68)
가짜 용사 이야기-68화(68/310)
제68화
황금의 광휘 속에서 빠져나왔을 때, 쫓고 도망가는 광란의 틈바구니 속에 들어와 있었다.
[럭셰리아, 그 아이의 차원 역장 때문에 내 힘이 닿는 범위는 거기까지구나. 미안하구나.]충분하다.
이미 말도 안 되는 거리를 순간적으로 이동했는데.
[현 상황은 긴급 상황이다. 성문을 사수하고 결계의 안전문을 닫아라.] [남문에 새로운 차원문 출현!]아직 뇌향의 힘으로 피난이 완료되지 못한 이들이 목숨을 건 폭주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 뒤를 쫓으며, 칼로 등을 베고 심장을 찌르는 이들은 같은 인간이었다.
하나의 인간이, 피비린내 속에서 짐승으로 변할 수 있다는 전쟁의 참상을 거기서 알게 되었다.
[카이센, 낙인이 없는 사람들은 죽이지 마. 부탁할게.]타르시요처럼, 이계의 낙인을 들추어내는 힘은 없었다.
하지만 분간할 수는 있었다.
무언가 기묘한…… 빛바랜 그림에 낀 한 올의 먼지처럼,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기운의 소유자들.
“알아.”
분명 겉보기에는 인간인데, 인간이 아니다.
신기했다.
그런 존재들은 어떠한 죄책감이 없이 베어낼 수 있었다.
[북쪽 성문 누각으로 적들이 올라오고 있다!]그저 길가의 쓰레기를 주워서 치우는 듯한 감각만이 들 뿐.
[막아라! 성문이 열리는 일만은 막아야 해!]그렇기에, 그런 낙인이 없는 자들이 이러한 살육을 벌이는 걸 보자면 기분이 심히 싱숭생숭했다.
“이렇게 잘 싸울 수 있으면서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너희들 중 절반만이라도…….
절반도 아니야…….
절반 중의 절반만, 산맥 이남으로 내려와 주었더라면…… 과연 지금 생존해 있는 페이쿼리어가 단 두 명뿐이었을까?
“다, 당신은……?”
낙인이 없는 자에게 칼을 휘두를 필요조차 없었다.
[카이센, 블란 아르휀이다!]의문은 증오 서린 울림이 되어 살기(殺氣)로 방출되었는데…….
대기가 격동하는 그 중압감 앞에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일반병은 없었다.
모두가 흰자위를 뒤집고, 입으로 게거품을 물며 쓰러질 뿐.
[즉시 북쪽 차원문을 닫아야 하네! 성문이 열리는 순간, 단순 방어전이 전면전으로 뒤바뀐다!]도시 전역에서 폭음이 울리고 있었다.
종탑이 거친 파열음을 내며 비스듬히 무너지는 것도 보였다.
먼지와 포연과 불길이 도시 전체를 어지러이 휘감고 있었는데도, 사방에서 울리는 비명만이 가장 선명하게 들렸다.
[서문 방어선에 원군이 필요합니다! 더는 못 버팁니다!] [유리우스 페이지다. 가장 가까운 제4보병연대가 이동 중이다.] [여기는 동문 결계 통제실, 공격받고 있다! 충격에 대비하라!] [제3보병여단이다. 그쪽으로 이동 중.] [여기는 북문 누각, 이미 적에게 돌파당했다! 결계마저 사라지면 성문이 완전히 개방된다!] [버텨라! 카이센 알터 아라다만텔이 그쪽으로 이동 중이다!]북문 근처에서는 폭음이 들리지 않았다.
다만 살점을 베고 저미는 쇳소리만이 몇 번이고 날카롭게 울려 퍼지고 있을 뿐.
그리고 그 쇳소리 사이사이를 울리는 웃음소리마저도.
“지금, 지금 한참 웃어둬라…… 카이센 님께서 오시면, 너희들은, 너희들은 모두……!”
“카이센? 카이센이라고?”
“이놈이 지금 카이센이랬냐?”
“하하하하하!”
“야, 이 등신 NPC 새끼야! 카이센 그건 그냥 데이터 더미야! 그냥 설정상 존재하는 그런 거라고! 그딴 게 오긴 뭘 어떻게 와?”
한 사내가 그렇게 외치며 칼을 휘두르려던 순간, 고막이 도려질 듯한 예리한 절삭음이 일었다.
“이렇게.”
소리가 닿은 뒤에야, 육신이 스스로의 신경세포들에 일어난 이변을 깨달은 듯했다.
머리끝에서 사타구니까지.
분명하게 그어진 하나의 일선.
그 일선을 따라 갑주가 쪼개지고, 피복이 잘라지고, 근골이 갈라지며 내장이 노출되고…… 그 내장조차 피를 토하며 찢어진다.
“어?”
그 황당한 울림이 유언이었을까.
혀까지도 정확히 반으로 잘린 검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제는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뭐, 뭐야, 이 새끼!”
“바라보르! 야, 바라보르!”
“설정상 존재하는 데이터 더미…… 그게 무슨 뜻이지?”
질문에 대한 대답은 듣지 못했다. 적들은 신중한 몸짓으로 칼을 겨누며 포위해왔다.
적의 숫자는 총 다섯.
모두 상당한 실력자이나 그 생명의 기운 자체에 위화감이 겉돈다.
‘마치 이물질처럼.’
시야를 조용히 돌렸다.
이쪽인가.
오직 위용을 뽐내기 위해 휘황찬란하게 설계된 갑주를 입은 저놈이 아마 검성이겠지.
“알면서 뭔 개소리야! 어떻게 남자로 페이쿼리어 루트를 탄 거지? 그 백발이며 극위성검은 다 뭐고? 너 설마 엘리트냐? 대체 무슨 버그를 쓴 거지?”
페이쿼리어 루트, 엘리트, 버그,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의 연속.
“나로스, 이놈이야! 베글렌이 죽은 것도 이놈 때문일 거라고!”
“!”
“생각해봐! 그 돼지 자식, 싸가지는 없어도 실력 하나는 확실했는데!”
계속 캐묻는다고 대답할까?
뇌리에서 울리는 뇌향심공명의 화급한 메아리들을 보면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는 없을 것 같다.
– 십문자도 제8식.
사각사각사각…….
힘을 일으키는 반동에 공명하여 혼을 갉아먹기 시작하는 심연.
표정을 살짝 일그러뜨리는 것으로 그 아픔을 억누르면서, 아라다만텔의 칼자루에 손을 얹는다.
– 뇌염검무(雷炎劍舞).
그 순간, 한 검사의 몸이 느닷없이 수직으로 찢어발겨졌다.
그 찢어진 단면에서 선혈이 튀기도 전에, 옆에 있던 검사의 목덜미도 비스듬히 절단되었다.
초월에 이르지 못하는 지각으로는 닿지 못하는 찰나 속에 그어진 살(殺)의 궤적은 총 열두 획.
“대체 뭔──”
그것조차도, 절정의 경지에 발을 들인 자들만이 겨우 볼 수 있는 상황의 편린들.
범인의 눈에는 이렇게 보였다.
카이센이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핏빛 섬광이 여러 갈래로 번뜩이고, 검성을 비롯한 다섯 명의 검사의 몸이 갑주째로 양단되어 고꾸라진다.
“──미친 버그를?”
그 초월의 경지를 목도하는 것이 허락된 건 오직 한순간뿐.
그것은, 초월을 원하는 검사라면 누구나 평생 한 번쯤은 꿈꾸는 백일몽의 일합.
제국 최고의 검조차도, 칼이 발도되었다가 다시 칼집에 납도되는 것만을 보는 게 전부였던 신기루의 일섬.
모든 것이 시작되려던 순간에 모든 것이 끝났다. 카이센이 말했다.
“여기는 카이센,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다음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이계(異界)의 메아리,
종교 혁신의 진면 (3)
[도시 내부로 침투한 적 부대 파악 중…… 그 숫자가 4만이 넘습니다!] [비상! 드발트람 성당에 적이 침입했습니다!] [인근의 전 병력, 성당으로 이동하라! 난민들을 지켜라!]격전지에는 반드시 낙인의 존재들이 존재했다.
낙인이 힘의 상징인 것인지…….
낙인을 가진 것들은 모두 통상적이지 않은 힘을 갖고 있었으며, 대체로 나이가 젊었다.
‘우습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따지면 나도 낙인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낙인을 갖고 나이가 어리다는 건 똑같군.
어쩌면 저들에게도 내가 이질적으로 느껴질까? 아마 그럴 것이다.
– 카이센? 카이센이라니?
– 그게 뭐야?
– 최고 등급 NPC야! 근데 너무 사기라서 미구현이라고…….
나더러 미구현 존재라 하던데.
마치 자기들이 이 세계를 창조한 신이라도 된 듯이…….
고문으로 캐물으려 하면 문득 질퍽한 심연이 솟구치며 그 육신이 붕괴되었다.
‘심연이 관계되어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의문 속에서 얼마나 적을 베고 또 내달렸을까.
저 멀리서, 문득 비쳐드는 빛 한 줄기에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그 빛은 너무나도…….
[모두, 제 뒤로 오세요!] [요, 용사님……!] [계속 밀어붙여라! 용사님을 믿고 용감히 전진하라!]내 발자취에는 오직 피비린내만이 남는데, 타르시요가 지나간 자리에는 달빛의 향기만이 남는다.
그 빛에 이끌린다.
그 향기에 이끌린다.
어둠 속에서는 갈 바를 알지 못하다가, 한 줌의 빛이 있으면 방향을 잡을 수 있듯이…….
– 카이, 넌 이 칼을 어떻게 쓰고 싶니?
그 차이를 알 것 같으면서도, 알 수가 없다. 간단하면서도 복잡한 격차가 있는 듯했다.
모든 기쁨에, 그 누구보다 맑고 상냥하게 웃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슬픔에, 그 누구보다 가슴 아프게 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된다면 칼을 휘두를 때도 향기가 나게 되는 걸까?
[이상합니다! 적들이 동문에서 물러납니다!] [동문의 현재 상황은?] [잘 모르겠습니다. 대체 왜 놈들이 후퇴하는지…….]그때 불현듯, 새까만 무언가가 동문 성벽 전체를 휘감더니 폭발적인 연소를 일으켰다.
광대한 폭발의 충격파.
검은 안개가 세계를 휘감으려 밀려들 때, 모두가 도망치던 흐름을 거슬러 앞으로 나아간 타르시요가 칼을 뻗었다.
[삼켜라, 샤릴리온!]모든 것을 삼키는 진성검 샤릴리온의 힘이 개방되었다.
죽음의 분진들이 고통스럽게 회오리치며 그 칼끝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적의 풍경.
기압이 뒤바뀐 것만 같은 강렬한 폭풍에 그 뒤에 선 병사들의 옷이 찢어질 듯이 펄럭였다.
[와, 와아아아아!] [용사님!]그때, 눈이 멍하니 열렸다.
똑같다, 그때랑 똑같이…… 핏물을 토해내면서 타르시요의 무릎이 꺾였기 때문이었다.
“타르시요……?”
그때는 모든 것이, 경황이 없이 그저 혼란스럽기만 했다.
진성검의 힘을 다루기 위해 타르시요가 어떤 것을 포기했는지 알 수 없었으니까.
다시, 나를 만나러 오기 위해서 어떤 삶의 길을 밟아왔는지 아직 모르고 있던 때니까.
“……저 바보가!”
그저, 무너진 성벽을 따라 들어올 적들로부터 타르시요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이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적은 오지 않았다.
심연의 고통을 억누르며 타르시요의 곁에 선 그 순간까지도.
[카이센, 여태껏 실패하기만 했던 낙인자(烙印者)들의 마음의 파편을 해독하는 데 간신히 성공했느니라.]“예……?”
[시나리오 진행의 핵심 열쇠를 확보했으니 이곳에서 이탈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요컨대 이것은 시간 끌기였다.
틈새를, 폭발한 성벽으로 병력과 이목이 집중되는 틈새를 만들기 위한 작전.
그사이, 중부군은 새롭게 열린 차원문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시나리오 핵심 열쇠라뇨?”
왜 그 언어를 듣고 있을 때, 문득 이 세상이 그토록 가엾게 느껴졌던 것일까.
그것은 정말 언어일까.
언어라기보다는, 그림자 속에 숨겨진 세계의 진실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적이, 적이 물러난다! 우리가 이겼다! 이 모두 용사님들 덕분입니다!]그때 타르시요가 헐떡이는 숨으로 입을 열었다.
“카이센, 가야 해…….”
“뭐라고? 너 지금 상태가…….”
“가야 해, 내가……!”
그 손으로, 내 손을 꼭 붙잡고.
일어서게 도와달라는 듯.
아니, 어쩌면, 함께 걸어가자는 듯이.
“여기는 카이센, 각하, 그 차원문으로 적들을 추격해서 그게 뭔지 알아내겠습니다.”
[가능하겠느냐?]“네. 하지만…….”
타르시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간청하듯이.
숨기라는 거냐?
지금 네 몸 상태를?
그 눈, 그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자니 짧은 고뇌는 곧 한숨으로 끝났다.
“제 몸 상태는 각하께서 아시다시피…… 뛰어서는 불가능합니다. 차원문으로 접근하려면 각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타르시요를 부축해 일으켰다.
걱정스레 다가온 병사들을 손짓으로 물리치려 한 그때.
방금 전까지 분명 일어설 힘조차 없던 타르시요가 밝게 웃으며 손사래를 쳐보였다.
‘타르시요, 이 자식…….’
설마 부축하게 만들려고 연기를 한 건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실감 나게 연기를 할 수 있을 리가. 그때 타르시요가 속삭였다.
“카이센, 나 엄청 기뻤어.”
“……?”
“내가 이렇게 되자마자 또 바로 달려와 준 게 너라는 사실이.”
그 순간, 심장에 아찔한 통증이 내달렸다. 심연이 영혼을 갉아먹을 때의 고통과는 무언가 다른 통증. 어딘가 따뜻하면서도…….
[여기는 유리우스 페이지, 가용 가능한 부대를 재정비 중입니다. 두 분을 따르는 걸 허가해 주십시오, 아르휀 전하.] [최종 결정권은 내가 아니라 뇌향 각하께 있다.] [적의 마지막 부대가 차원문으로 빠져나가는 중입니다, 각하! 곧 차원문이 닫힐 겁니다!] [차원문이 닫히면 좌표를 특정할 수 없게 됩니다. 각하, 용단을.]일순간의 침묵.
그 일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고뇌가 행해졌을까.
곧 뇌향의 떨림 속에서, 몸이 광휘에 휘감기더니 다른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분의 뜻이라면 그저 따를 뿐이니라. 남겨진 부상자들과 백성들을 추스르는 건 아르휀, 모두 그대에게 맡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