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69)
가짜 용사 이야기-69화(69/310)
제69화
차원문은 동부의 영산, 영원산맥(永遠山脈) 위로 연결되었다.
영원산맥.
동부를 크게 외호하며 펼쳐져 제국 북부와 중부를 구분하고, 요정의 이데아 반도까지 이어져 내려가는 산맥이다.
[뇌향심공명진을 집중 전개하여 낙인자(烙印者)들의 마음의 장막을 들추고 영혼을 엿보았는데, 서로를 ‘플레이어’라고 부르는구나.]쫓아온 남부군에 의해 전선이 길게 형성되며 능선은 불바다가 되었다.
산맥에서, 중부군은 20만 병력과 중화기와 마법으로 진지를 구축해 두었다.
중부군은 산맥에 살던 동부의 원주민들을 유린하다시피 하여 내쫓아놓은 지 오래였다.
[플레이어?]그리핀 1개 편대가 그 능선 위 상공을 빠르게 내달렸다.
[각하, 무슨 도박판도 아니고 이상한 이름이군요.]남부의 유명한 배틀메이지이자 샤릴리온 병단의 일원인 도란디스 슬레이드의 발언이었다.
“검성은 저를 ‘데이터 더미’라고 불렀습니다. 어떤 은어인지 감도 안 오더군요.”
그뿐인가.
그보다도 더 잡스러운 언어까지 써가며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당황스러워했다.
타르시요가 말했다.
“아버지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낙인자…… 즉 ‘플레이어’들은 외우주로부터 축복을 받은 이계인들이야. 심연과의 계약을 통해 이 세계로 오게 된 이들이지.”
“이계인이라고? 이계? 다른 세계?”
“응. ‘플레이어’는 소원을 위해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한대. 그 숫자는 총 666명. 그중 상상을 초월하는 강함을 부여받은 존재가 다섯 명 있대. ‘엘리트 플레이어’라는 이름이랬어.”
‘엘리트 플레이어’는 각기의 재능에 따라 클래스를 부여받는다고도 했다.
검술, 엘리트 나이트.
마법, 엘리트 소서러.
암살, 엘리트 어쌔신.
궁술, 엘리트 아처.
만능, 엘리트 헌터.
타르시요의 언어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소리가 같기만 할 뿐 뜻이 다른 언어처럼 느껴졌다.
‘이계, 플레이어, 외우주……?’
그런 광인의 망상 같은 걸 다 아는 아버지라니.
대체 어떤 아버지지?
유리우스 페이지는 그 뜻을 얼추 이해하였는지 심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설이 사실이었군요. 세계의 파멸이 시작될 때, 심연의 사자 666인이 우주의 축복을 받기 위해 이 땅에 내려와 난세를 펼친다더니…….] [이제 알겠구나. 낙인자들의 마음속에서 ‘엘리트 소서러’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는데, 지금까지는 정예 마법사를 뜻하는 줄 알았다. 그게 엘리트 플레이어를 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 [안 좋은 소식이군요. 전설대로라면 이계인들의 최종 목표는 세계의 파멸입니다. 거기서 ‘엘리트 소서러’가 시나리오 핵심 열쇠를 찾았다면 분명 멸망과 깊숙이 관여돼 있는 걸 겁니다.]그리핀의 등 위에서, 새까만 연기와 불길에 휘감긴 첩첩 산봉을 바라보았다.
‘도박?’
빛과 아지랑이의 진용이 산맥 이편저편에서 어지러이 뒤엉키며 고함과 비명을 쏟아내고 있었다.
빛의 진용은 보병대의 백병전.
아지랑이의 대열은 각 총병대들의 총탄이 교차할 때의 증기와 피 안개였다.
뇌향과 타르시요는 낙인이 없는 자들은 누구건 죽지 않기를 바랐다.
물론, 비현실적인 백일몽이다.
전장에서 본래 불살(不殺)이란 한 가닥의 사치에 불과했으므로.
‘이 모든 참극이, 다 자기들의 소원을 위해 벌인 일이라고?’
머리가, 머릿속이 간지러웠다.
손가락으로 두개골을 부수고 그 안쪽을 긁고 싶은 충동까지 느낄 정도였다.
[카이센, 적진을 돌파하여 사이온 공작을 포획하거라. 종교 혁신의 소용돌이의 중심에 서 있던 그 사내가 ‘엘리트 플레이어’일 가능성이 높으니.]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이곳에 있는 ‘엘리트 플레이어’가 엘리트 소서러라면, 사이온 공작보다는 럭셰리아 루드윅이 더 가능성이 높을 것인데…….
“목표 좌표 도달까지 30초 남았습니다!”
그리핀 기수가 그렇게 소리친 그 순간, 문득 산봉우리가 생명을 입고 일어섰다.
“이런 미친!”
정확히는 산이 아니었다.
근골이 암벽으로 구성된 초거대 생명체…… 마법사들이 다루는 고위 소환수 골렘이었다.
하지만 그 규격이 통상의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크기만 따지면 마우나 로아와 맞먹을까.
[7성 마법으로 구축한 골렘이라니…… 긴급 상황입니다. 용사님, 정면 항로는 너무 위험합니다!]“유리우스 각하의 말씀대로입니다! 기수를 꺾겠습니다!”
“아니, 그대로 진행해.”
웅…… 카이센이 등 뒤로 팔을 뻗으며 몸을 일으켰다.
극위성검 쉬르팽이 대리자의 부름에 눈부신 광휘로 응답한다.
칼자루를 움켜쥔 순간, 육중한 칼날 위에서 물결무늬로 빛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내가 처리한다.”
이계(異界)의 메아리,
종교 혁신의 진면 (4)
극위성검 쉬르팽의 절원(切願)이 어떤 이치로 설계되었는지는 지금으로서도 불분명하다.
확실한 정보는 단 하나.
동란기를 평정한 영웅, 리스타 알터 쉬르팽이 만들어내고 또 계승되어온 그 절기는 차원조차도 베어낼 수 있다는 것뿐.
─ 절원, 시공섬(時空閃).
칼끝이 긴 획을 그었다.
칼날이 지나간 그 획을 따라 차원에 통째로 균열이 일었다. 균열은 거미줄처럼 커져가다가 일순간 깨어진다.
강제로 찢어진 차원의 틈새는 그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섭리가 그 틈새를 다급히 닫기 직전까지.
쩌저저저적…… 채애애애앵!
참격의 궤도 위에 놓여 있던 모든 것, 산봉우리 하나와 골렘의 상반신과 하반신이 절단시킨다.
[와, 이 무슨 말도 안 되는…….]마력 중추가 분쇄된 골렘은 그 육신이 무수한 돌 더미로 분리되며 산사태로 무너져 내렸다.
이건 단순한 힘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절대적인 힘.
초월에 이르지 않고도 초월에 가까운 힘을 사용한 것의 반발일까, 칼을 휘둘렀던 모든 근섬유들이 찢어질 듯한 격통에 휩싸였다.
“카이센, 많이 아파?”
폐의 공기가 전부 빠져나가는 통증 속에서 오른손 손목을 움켜쥐고 숨을 헐떡였다.
그 헐떡임은 슬펐다.
이런 엄청난 고통을, 선배님, 당신께서는 그 마지막 순간 대체 몇 번이고 그 죽어가던 몸에…….
“어라?”
그 통증과 회상이 치명적이었다.
골렘 붕괴의 흙먼지를 똑바로 통과한다고 생각했건만.
분명 마력 중추가 끊어졌을 골렘이 어떻게인가 손을 뻗어 그리핀의 다리를 움켜잡았다.
“추, 추락한다! 으, 으아아아!”
그리핀의 다리가 분쇄되었다.
그 막대한 고통으로 날갯짓이 괴팍해지고 항로가 일그러질 때 다급히 타르시요를 끌어안았다.
그리핀이 산맥 위로 곤두박질치면서 수평선이 미친 듯이 회전하다가 새하얗게 사라졌다.
만년설이 해일처럼 일어서고.
부서진 짐승과 인간의 뼛조각이 사방으로 튀었고.
삐이이이…… 고막이 찢어지는 이명 속에서 세상의 소리가 사라지고 오직 고통만이 전신을 지배하려던 그때.
……부우우우웅!
왼팔에 매달아 두었던 솔랑의 방패가 성광을 뿜어냈다.
모든 충격을 칼날의 공격력으로 치환시키는 그 힘이 대리자를 집어삼키는 낙하의 충격을 힘으로 뒤바꾸었다.
방패 앞으로 반원형으로 펼쳐지는 방벽, 그 방벽이 빨아들인 힘이 칼날로 이동하여 칼집 속에서 솔랑이 찬란히 빛났다.
“윽…….”
그럼에도 추락의 충격을 정면으로 받은 어깨에 둔탁한 아픔이 날뛰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육신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세이라…….’
지난날 먼저 죽은 전우가 떠올랐기에…… 비틀거리면서 겨우 몸을 일으켰다.
“타르시요…… 괜찮아? 타르시요…… 너 어디에 있어…….”
솔랑의 칼날에서 날뛰는 힘을 폭발시켜서, 불시착의 먼지 폭풍을 걷어냈다.
그 희뿌연 세계 저편에서, 타르시요는 몸 대부분을 다른 어딘가에 두고 온 기수 앞에 꿇어앉아 있었다.
진심으로 애통해하며 그 죽은 눈을 감겨주는 타르시요를 보고 있자니, 새삼 가짜로서의 정체성이 부각되는 느낌이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웃어줄 수도 울어줄 수도 있는 사람, 어쩌면 그 차이가…….’
그 눈부신 광경은 꼭 아직 아무도 발을 들이지 않은, 첫눈의 세계처럼 보였다.
더럽히고 싶지 않아서.
감히 더럽힐 수가 없어서.
그쪽으로 발을 내딛지 못하던 그때, 뇌리에서 뇌향의 울림이 울려 퍼졌다.
[카이센, 괜찮느냐? 현재 상황을 보고하거라.]“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리핀과 기수는 전사했습니다만…….”
[역장이 안정되는 대로 새로 공군 수송대를 보내겠다. 안전한 곳에서 대기하거라.]“아뇨, 능선을 타고 이동하겠습니다.”
그날, 영원산맥에서의 전투는 고대 유적을 겨누는 여정이었다.
고대, 그러니까 기원전의 시대, 이 땅의 어둠을 걷어내고 빛을 밝혔다는 <온 것들>의 유적.
산맥 곳곳에서 구조물들이 암초처럼 솟아올라 있었는데, 모두 고대 유적의 잔해들이라 했다.
옛 시대의 흔적들이 만년설 속에서 영원히 남아 있다고, 영원산맥이라 불려온 것일까.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낙인자들은 관제실이 산맥 지하에 있다고들 말하는구나. 엘리트 소서러가 이미 그곳에 가 있다고.] [관제실? 뭘 관제한단 말입니까, 각하?] [<온 것들>께서는 암흑뿐이었던 이 세계에 태양과 달을 만들어 빛의 시대를 열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게 아닐는지?]유리우스 페이지의 혜안은 놀라울 정도였다.
세츠넨이 전달하는 복잡한 정보를 확실하게 하나로 꿰어내 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 현명함은 로베리스를 닮은 것일까…….
유리우스는 로베리스의 지혜를 갖고 있었고 카이센은 로베리스의 칼을 갖고 있었으므로 둘은 서로를 볼 때 슬픔을 느꼈고 친해지지 못했다.
“그 말이 맞아요. 이 관제실의 정식 명칭은 ‘베테 론델’. 창세의 언어로 2번 봉화란 뜻이죠. 태양과 달의 운행을 조정할 수 있댔어요.”
타르시요가 말했다. 당혹스러운 말이었으나 아예 납득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기술이 아득히 뛰어나면 그건 곧 기적처럼 보이게 된다고, 할바론은 말하지 않았던가.
기술력을 숭배하는 아인들은 그렇기에 <온 것들>을 숭배했다. <온 것들>의 문명은 수천 년을 앞선 개화의 빛이라고들 했다.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시설을 아무나 작동할 수 있게 하지 않았을 겁니다.]그래, 그랬을 리가 없다.
하지만 뇌향께서는 아까 분명 ‘시나리오 핵심 열쇠’를 찾았다는 말을 엿들었다고 했다.
“그게 파멸로 이어지는 열쇠라면…… 근데 대체 그게 뭐지?”
본대에서도 사태의 시급함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 시급함을 노리는 황급한 떨림들이, 포성과 총성 속에 뒤섞여 끝없이 메아리쳤다.
[적이 어느 지점에 집결 중이다! 지하로 연결되는 통로처럼 보인다! 이미 참호와 요새를 만들어 두었다!] [요상한 입구를 발견했습니다, 각하!] [격전지가 될 것 같다. 전원 전투준비! 작전을 개시하라!]본대로부터 고립되어서일까?
저 모든 난전이 멀리서 일어나는 꿈처럼 느껴졌다. 극위성검들이 피비린내에 구슬피 울고 있었다.
불현듯 타르시요가 손목을 잡아끈 건 그때였다.
“따라와, 카이센. 지름길을 통해서 가야겠어.”
“지름길?”
“산맥 아래에는 여러 개의 건물과 시설이 있어. 그것들은 모두 통로로 연결되고.”
“그게 그렇게 쉬울까? 길은 어떻게 알고?”
“나와 함께라면 쉬워.”
타르시요가 고대 설비의 잔해에 손을 얹은 순간, 요지경의 빛이 그 균열을 따라 퍼져 나갔다.
[●◎, ♣▨◀…….]알 수 없고 읽을 수 없는 문자들이 허공에 퍼지더니, 문득 둔중한 진동과 함께 땅이 양쪽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언어 동기화. CTT-01, 최고 등급 권한 확인. 입장 승인.]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경사로를 통해 저 밑까지 뻗어 들어간 시설은, 인간의 지각이 닿지 못하는 빛으로 빛났다.
그 빛 가운데에서, 주황빛에 휩싸인 강철 덩어리가 나타났다.
[어서 오십시오. 저는 엘디아 베테(02), 카듀엘입니다.]지적인 남성의 목소리였다.
금속이 말을 한다고? 마도구인가? 아니, 마력의 떨림은 감지되지 않는데.
그보다 더 당혹스러운 건 그 이름이었다.
“카듀엘……?”
그건 고대 5인의 어센시쿼리어 중 한 명의 이름이 아니었던가. 세이라가 가르쳐 주었던 것인지라 아직까지 선명히 기억나는데.
– 알아? 엘디아는 장작이란 뜻이래.
장작, 장작의 용사들…….
“오랜만이야, 카듀엘.”
기묘한 광경이었다.
저 괴이한 금속 물체에게 타르시요가 당연하다는 듯이 빙그레 웃으며 인사하고 있으니.
[다시 뵙게 되어 지극히 큰 영광입니다, 작은 주인님. 유감스럽게도 외우주의 침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알아. 에오스는? 이미 안으로 들어갔지?”
[예. CTT-02께서 발동시킨 비상 가동 대책 046-BB2에 의해 제 시스템이 재가동된 것입니다.]“막아야 해.”
[그걸 위해 제가 존재합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안내하겠습니다.]진실을 알지 못한 채, 망연히 그 뒤를 따라 걷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대체 뭔데? 타르시요, 네 정체는 뭐야? 자신을 카듀엘이라 자칭하는 이 고철은 또 뭐고?”
그러자 허공을 부유하던 기계가 눈앞으로 날아왔다.
[제 이름은 카렌덴께서 직접 내리신 겁니다. ‘명철의 빛’이라는 뜻이지요. 카듀엘이라는 이름을 지닌 인간이 있었다면 그건 제 이름을 모방한 자일 것입니다.]카렌덴?
검은 태양 카렌덴?
<온 것들> 중 하나, 세 명의 태양신 중 하나인 그 카렌덴?
“작은 주인님이란 말은……?”
[이분께서 바로 카렌덴 주인님과 막센시아 님의 유전적 결합으로 태어난 생명이시니, 작은 주인님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