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70)
가짜 용사 이야기-70화(70/310)
제70화
– 나는 이 세계를 원래 모습으로 회복시킬 거야.
<위용검전>에서의 어느 날인가, 타르시요는 그렇게 말했다.
– 그리고 그 이후에 여행을 떠날 거야.
모두가 이미 체념해서, 감히 농담으로도 꺼내지도 못하는 꿈을 그렇게나 확고하게.
– 그날, 너도 같이 갈래?
세상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줄곧 들어온 이야기처럼 납득되는 것이 신기했다.
[작은 주인님께서는 7세에 ‘CODE : 737’, 즉 방주에서 냉동 수면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외우주의 침략을 예비하기 위해 주인님께서 내리신 결정이었죠.]“그때, 네가 법황청으로 가져온 그 캡슐 속에 내가 있었단 소리야. 2천 년 동안 줄곧. 네가 날 구해준 거야.”
“아니, 그건…….”
광룡의 알이라고 했는데.
다 이런 엄청난 기밀을 은폐하기 위해서 했던 건가?
늘, 어딘가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느껴지더니…… 단지 재림 용사여서가 아니었었구나.
“그러니까 타르시요, 네가 <온 것들>의 딸이었었다고.”
막센시아는 창백한 달, 즉 네 명의 달 여신 중 하나…… 그래, 태양과 달의 딸이라.
신분부터가 다르다.
태어날 때부터의 격이 다른가.
타르시요가 변명하려는 듯, 설명하려는 듯, 입을 급히 열었다.
“카이센, 나는…….”
그 깨달음의 향연은 단지 전주곡이었을 뿐이었다.
우주적 악몽을 전주곡…….
타르시요가 말을 이어 나가려던 그때, 날카롭고 시끄러운 울림들이 뇌리를 때렸다.
[뇌향 각하! 이, 이 무슨……!] [어찌 그러느냐?] [그림자입니다…… 그, 그림자가 달려든다! 모, 모, 몸속으로 들어온다! 아냐, 안 돼! 나가! 내, 내 몸에서어아아아아악……!]“무슨 일이지? 각하, 제 말이 들립니까? 각하!”
연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른침이 뜨겁게 넘어갔다.
이곳이 지하 공간이라서?
아니, 엘리트 소서러가 만들어내는 역장 때문인가?
“안 좋은 예감이 들어. 잡담은 나중에 하자.”
그 악몽의 기척은, 청각에 이어 후각으로도 엄습해왔다.
카듀엘이 세 번째 문을 개방했을 때 문득 내달려온 후덥지근한 열기로.
피비린내와 고름의 악취가 섞인 이건…… 그 열기 속에서 누군가가 터덜터덜 걸어왔는데, 칼을 뽑기도 전에 털썩 쓰러졌다.
“배신…… 엘리트 소서러, 그년이…… 우리 모두를…….”
전신의 솜털을 곤두서게 만드는 오한이 일었다.
저 등은 뭐냐…….
몸속에서 무언가가 폭발하며 튀어 나가기라도 한 듯, 끔찍하게 찢어발겨져 내장과 뼈가 오롯이 드러나 있었다.
“암흑성?”
“외우주의 권좌에 앉은 다섯 절대신 중 하나, 롸쟈귤이 통치하는 세계야.”
잠시, 침묵했다.
아까부터 타르시요가 꼭 다른 세상의 사람처럼 느껴졌다.
[라이브러리의 정보에 따르면, 류이니옌의 그림자는 구조적 섭리 자체를 변이시켜 붕괴시킨다 합니다.]돌연 머릿속이 차가워진다.
이질적인 어둠이, 그림자가 저 앞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찰나조차 되지 않는 순간에 타르시요의 앞으로 나서며 휘두른 아라다만텔.
“!”
그러나 반으로 잘린 그림자는 꿈틀거리더니 다시 엉겨 붙었다.
‘아라다만텔이 베어내지 못한다고……?’
직감이 위기를 명령한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물러서려던 그 순간.
다시 하나로 엮인 그림자가 눈앞으로 내달려들던 그 일순간.
웅…….
가우므리스가 빛을 발했다.
그 빛은 머릿속의 빛으로도 반짝였다.
‘널 쓰라는 거냐, 가우므리스?’
그래, 가우므리스의 특수 능력은 광압 소멸이잖아…….
형체가 분명하지 않은 적들조차도 면(面)을 제압하는 것으로 배제할 수 있는 힘, 지금은 그 힘이 필요했다.
어깨 위로 뻗어 나온 가우므리스의 칼자루를 움켜잡은 순간.
일발일축(一發一蹴).
광휘의 폭발이, 어둠에 집어삼켜 가던 통로 저편 끝까지를 눈부시게 밝힌다.
그 빛의 격랑, 빛의 폭주.
강대한 힘의 흐름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는 빛에 의해 그림자들이 일소되자 카듀엘이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 저급한 무기로 절대신의 힘을 격멸시키다니, 경이로운 실력이시군요.]“그렇지? 카이센은 엄청 대단해. 방금 이건 맛보기도 안 된다고. 더 보고 나서 평가해.”
타르시요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왜 네가 신났냐?
[그렇다고는 하나, 현 상황에서는 작은 주인님이 착용하신 샤릴리온 같은 11위계의 병기를 사용하시는 것이 적합합니다.]“11위계?”
[당신이 장비하신 병기들은 모두 7위계로 절대신의 힘을 정면으로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그러니까 저 말을 해석하면…… 7위계의 병기는 극위성검이고, 11위계의 병기는 진성검인가?
자조적인 냉소가 지어진다. 같은 성검인데, 그 사이에 존재하는 등급 차이가 무려 4단계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나는 가짜, 저 녀석은 진짜니까.
“내 주제에는 이게 맞아.”
이미, 이것들로도 분에 넘치는 힘을 쓰고 있는 거야.
그리고 다른 것들을 쓸 생각도 없다. 몸을 누르는 극위성검들의 무게가 좋았다.
그들의 꿈을, 의지를 대신 앞으로 견인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어째서지?”
[작은 주인님께서는 막센시아 님의 유전적 형질을 그대로 물려받아 많이 연약하십니다. 그러니 당신의 힘이 온전해야 합니다.]“그게 뭔 소리야.”
“말하지 마, 카듀엘.”
[알겠습니다. 그러면 라세핀들이 전투를 보좌하게 하겠습니다.]라세핀?
내벽의 틈새가 열리더니, 강철과 빛으로 전사의 형체를 갖춘 존재들이 나타나 부복했다.
그 경이로운 풍경이, 신들의 시대 신들을 섬겨 심연과 싸웠다는 천사(天使)들과 처음으로 대면한 순간이었다.
[라세핀들이 그림자들을 상대로 시간을 벌어줄 겁니다. 서둘러서 관제실로 향하시죠.]이계(異界)의 메아리,
종교 혁신의 진면 (5)
[다른 세계에서 당신처럼 유망한 소질을 가진 자가 ‘엘리트 플레이어’로 선발됩니다. 잠재적 위험 요소라고 볼 수 있죠.]지하 시설은 갱도와도 같았으나, 동력원을 알 수 없는 빛으로 희끄무레하게 빛나고 있었다.
빛이 환한 곳은 안전한 반면 조명이 망가져서 불길하게 명멸하는 곳은 그림자가 있는 곳이었다.
빛을 보지 않아도, 난도질당한 사체들의 악취로 놈들의 존재 유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다른 구별법도 있었다. 고함과 비명이 들려오는 곳에도 그림자가 있었다.
플레이어와 라세핀과 그림자들이 삼파전을 이루고 있었는데, 플레이어들은 모두 엄청난 실력자였으므로 상황을 잘 이용한다면 별다른 전투 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나는 그 엘리트 플레이어라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 가. 뭐지? 그저 강하다고 선발되는 건가?”
성검의 빛줄기로, 어둠 속 그림자들을 찢어발기며 전진한다.
[적당한 예시를 들어보자면…… 당신이 한 권의 책을 읽는다고 가정합시다.]책…….
책에 대하여 이야기하던 로베리스의 모습이 떠올라 슬퍼졌다.
[그 책에 심취하여 수백 번을 넘게 읽으며 이야기의 모든 흐름을 외울 정도가 되었다고 가정합니다. 근데 만약 그 책의 내용이 다른 세계의 전말이었다면?]“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그러면 당신은 한 책을 외운 게 아니라, 한 세계의 운명과 인과에 통달한 게 됩니다. 세계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자, 그런 자들이 엘리트 플레이어로 선발됩니다.]그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기괴한 조화였다.
한 책에 그토록 심취하였더라면, 그 책의 내용을, 인물들을, 좋아했다는 뜻 아닌가?
“그랬을 텐데 이제는 멸망시키는 데 앞장선다고?”
타르시요가 어딘가 처연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인간성의 상실. 외우주의 절대신들은 인간에게서 창세의 흔적이 사라지는 걸 보면서 기뻐해.”
[모든 <잊혀진 왕들>은 저것과 같은 유희에서 마지막까지 생존한 엘리트 플레이어들입니다.]“뭐?”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으나, 문답을 길게 이어 나갈 수 있는 형편이 못 되었다.
시설에 둔중한 진동이 일면서, 무언가가 커다랗게 쏘아지는 충격파가 일었다.
그러더니 뇌향심공명진을 통해 절망적인 탄식들이 울렸다.
[어떻게 이런, 맙소사…….] [태, 태양이……?] [뇌향 각하, 태양이 떨어지고 있습니다……!]태양이 떨어지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아니,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 행성을 비추는 3개의 태양과 4개의 달은 모두 주인님께서 제작하신 인공위성입니다. 스타링크가 손실되어 공전궤도에서 이탈한 것입니다.]다음 순간, 격렬한 진동이 터널 내부를 덮치면서 흙먼지가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겠어.
“늦기 전에 엘리트 소서러를 찾아야 한다 이거군.”
[경고, Maks-227과의 스타링크도 연결 해제 중.]“무슨 소리인지 모르니까 그냥 서두르라고만 말해!”
관제실은 17개의 통로가 하나로 합쳐지는 곳에 위치했다.
[뭐야, 이번엔 또 뭐가 떨어지는 건데?]천체관측도가 빛의 선율로 커다랗게 펼쳐져 너울거리고, 그 중심부에 세 사람이 있었다.
[달이다! 달이 떨어지고 있어!]한 사람은 태양이었다.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었는데, 뇌향 세츠넨보다도 더 찬란한 광휘를 거느리고 있었다.
[카이센, 들리느냐? 지상은 현재 아수라장이다! 두 번째 태양이 추락하고 있다! 카이센, 카이센?]다른 한 사람은 소년이었다.
페이지 가문의 연보라색 머리칼을 갖고 있었는데, 그림자에 결박되어 있었다.
한쪽 팔이 절단되어 거기서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은…….’
잠시, 어머니 또는 라텔이 눈앞에 서 있는 것만 같은 환각을 느꼈다.
우아한 흑발에 붉은 눈.
그러나 닮은 것은 외형뿐…… 저토록 소름 끼치고 흉측한 존재감은 그 누구와도 달랐다.
“에오스!”
타르시요가 소리쳤다.
어떠한 열쇠를 쥔 채, 관제 설비에 강제로 떠밀려 있던 에오스가 고개를 돌렸다.
“타르시요…… 어쩔 수 없었다…… 내 제자를 구하려면…….”
에오스, 저 태양의 사내가 바로 시나리오 스킵의 열쇠였다.
카듀엘이 말하길, 에오스는 핏비 태양 슈리간과 고상한 달 막센시아 사이에서 나온 아들이라 했다.
현재 타르혜 론델 시스템을 통제할 수 있는 단 두 명이 바로 에오스와 타르시요라고도.
[저 소년을 인질로 삼아 에오스 님을 협박한 것으로 보입니다. 스타링크 조작은 오직 두 분만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그러자 흑발의 마법사, 럭셰리아 루드윅이 킥, 하고 웃었다.
“맞아. 저 녀석을 이용해서 암흑시대를 만들면 순식간에 시나리오가 최종 국면으로 들어서거든.”
“……?”
“그리고 내 힘은 그림자. 어둠뿐인 세계가 되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게 강력해지지. 잘됐어. 여기서 저 버그 더미랑 기존 시나리오에서 벗어난 너까지 잡아 죽이면 딱이겠는걸!”
머릿속에서 응어리지던 무언가가 싸늘하게 굳었다.
시나리오, 시나리오라고…….
그 말은 절대 언어가 아니었다. 이 세계의 운명을 멀찍이서 비웃는 목소리였다. 그날, 어머니가 죽던 날, 하늘에서 깔깔거리던 별들의 웃음소리였다.
“내가 알던 모든 사람의 죽음이 너에게는 시나리오일 뿐이라고?”
“그래, 몰랐나 보지? 너도 원래 데이터 더미에 불과했어! 그냥 게임 속 데이터 입자였다고! 버그 주제에 갑자기 나타나서 왜 날 방해하는 거지? 왜 나야? 왜 하필 나냐고! 다른 엘리트들도 있는데! 너 때문에 내 공대원들을 죄다 제물로 바쳐야 됐다고! VVIP의 힘을 받기 위해!”
개처럼 짖어대는군.
사람의 말을 하고 있으나 앞에 있는 놈은 짐승 미만이었다. 들을 가치도 없다.
“뇌향 각하가 여기 오지 않은 게 네 삶의 최고 불행이다.”
웅…….
대리자의 분노에 공명한 네 자루의 성검이 일제히 광염을 발하며 폭발적인 살기를 뿜어낸다.
“내가 널 죽이는 걸 막을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그 살기, 대기가 전율할 정도로 크고 깊다.
위기를 감지한 럭셰리아 루드윅이 몸을 흠칫 움츠리며 양손을 움직였다.
“타르시요, 너는 저 둘을 지켜줘. 또 인질로 잡히지 않게.”
그때 타르시요가 앞으로 나섰다.
“당신은 속고 있어! 이건 단순히 놀이 속 이야기가 아니야. 하나의 실존하는 세계라고!”
“흥, 그래? 그래서 어쩌라고?”
“알고 있었어?”
“알 게 뭐야! 꺼져 버려! 너희들은 그저 제물에 불과해! 내 소원을 이루기 위한 제물! 게임이든 현실이든 내 알 바야?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무엇 하나 없다고!”
럭셰리아의 두 눈이 붉게 타오르더니, 꽃이 피어나듯 그 동공에 새하얗게 칠망성이 새겨졌다.
벨 퀴리어스.
루드윅 가문을 배틀메이지 중 최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가문의 비급.
벨 퀴리어스의 소유자는 세상의 섭리를 꿰뚫고 그 섭리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변형시킬 수 있었다.
지금, 럭셰리아의 시선이 닿은 허공이 일그러지더니 차원이 통째로 그림자에게 침식된 것처럼.
“하, 아하하하하하! 그래! 끝내줘, 끝내주는걸! 이제 벨 퀴리어스도 그림자의 힘으로 발동되는구나!”
뭐냐, 이건……?
어깨까지 길게 늘어졌던 머리칼은 가벼운 질량 때문에 필연적으로 머리가 회피하는 속도를 반 박자 늦게 따라온다.
뒤늦게 나부끼며 머리를 뒤쫓아온 머리카락이 그림자에 단숨에 파먹혔다.
“이걸 보고도 이게 어떤 게임인지 이해를 못 하겠어? 이 힘! 이 엄청난 힘이 다 어디에서 오는지 상상이 되기나 해? 절대신이야! VVIP, 절대적 존재가 다섯 명이나 있다고!”
슈르르르륵…… 다시, 그림자에 의해 차원이 통째로 찢어졌다.
이게 절대신의 힘인가.
카듀엘이 말하길 절대신의 힘은 일종의 독이라던데…… 과연, 접근할 수가 없다.
“마음만 먹으면 인간, 요정, 아인, 전부 다 쓸어버리고도 남아! 그것들 앞에서는 모두 다 먹이일 뿐이라고! 너희가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소용없단 말야!”
인간성을 제물로 바치고 그 대가로 엄청난 힘을 얻는, 그런 유형의 힘이라고.
“이 게임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은 너희 모두가 죽는 것 말고는 없어! 못 믿겠다고? 그럼 저 은발 년한테 한번 물어보든가!”
착각이었을까.
럭셰리아가 문득 우는 것처럼 보인 건.
[이론적으로, 절대신들의 신격은 창세의 세계에 닿지 못합니다. 그래서 심연의 주인, 요티아토스의 중계 능력이 필요하죠.]“그래, 요티아토스! 그 집행 관리자 말이야! 그놈도 원래는 절대신이었다고 하더만!”
[그러므로, 외우주의 다섯 절대신을 모두 쓰러뜨릴 필요는 없습니다. 요티아토스를 없애기만 하면 끝납니다.]기회는 한 번.
점점 정체를 알 수 없는 위압감이 강력해진다. 놈이 저 힘에 적응하면 적응할수록 승산은 옅어지는 것은 명백.
타르시요가 소리친다.
“당신은 진실을 듣고도 심경의 변화가 없는 거야?”
“그래! 바뀌는 건 없어! 절대신을 상대하는 것보단 너희들을 없애는 게 훨씬 나으니까! 훨씬 쉽지! 내가 그 결말을 몇 번이나 봤다고 생각해? 막아보려 해도 결코 막지 못했어! 그게 현실이라고!”
한 번.
단 한 번.
“만약, 정말 만약에, 너희가 정말 절실히 원하는 소원이 있는데, 그걸 이루기 위해 하나의 일을 끝내기만 하면 된다면, 지금까지 몇 번이고 해왔던 그 일을, 너희는 과연 주저할까?”
호흡을 멈춘 다음 순간, 솔랑의 방패를 럭셰리아에게로 내던졌다.
터어어엉───!
매섭게 회전하던 방패가 그림자에 의해 튕겨 나갈 때, 쉬르팽, 가우므리스, 솔랑을 차례로 머리 위로 집어 던진다.
시간 싸움이다.
그러던 사이, 사방에서 꾸물거리던 그림자의 마물들이 발밑까지 쇄도해 들었다.
“이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 관리자는 내게 물었지!”
그 그림자들이 장화를.
장화 안쪽의 발을.
발바닥의 피부와 뼈를 삼키는 것보다 두 배는 더 빠르게.
“‘만약 소원을 이룰 수 있다면,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겠어요?’라고!”
극위성검 아라다만텔.
그 칼자루에 오른손을 얹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대답은 똑같아! 선택지 따위가 어디에 있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데!”
뇌명발도(雷鳴拔刀).
폭풍처럼 휘몰아친 수십 번의 참격이 그 그림자들을 여러 갈래로 흩어내고.
“네가 순순히 죽어주지 않겠다면 고통스럽게 죽여줄 수밖에! 네 고통이 크면 클수록 VVIP가 날 더욱 총애해줄 테니까!”
그리고 곧장.
자유낙하가 진행 중이던 쉬르팽을 허공에서 낚아채서, 그 궤적 그대로 일섬.
벨 퀴리어스에 의해 오염되어 찢어발겨지던 공간을, 차원째로 베어 넘기는 시공의 참격.
“무──”
폭풍 같은 힘의 흐름이 오른팔의 근섬유를 모조리 찢어발기는 대가성 반발을 일으킨다.
눈앞이 새까맣게 물드는 고통.
그 격통을 억누르며 쉬르팽을 놓고 가우므리스를 움켜잡는 것으로 광압의 일격, 빛의 해일이 관제실 바닥에 균열을 새기며 럭셰리아를 덮친다.
“───슨?!”
그 일격에 죽어야만 했던, 죽기 직전 당혹의 비명을 내지르던 럭셰리아를 지켜낸 것은…… 그림자였다.
언뜻 머리가 3개 달린 용처럼 보이는 그림자였는데…… 9개의 팔로 럭셰리아를 품고 있었다.
그 힘이 자체적으로 거느린 풍압과 위압감은 공간 전체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본인 스스로도 놀라웠을까.
그 그림자를 올려다보는 럭셰리아의 만면에 당혹감은 사라지고 승리의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하, 하하, 앗하하하하하하하하핫! 뭐야, 절대신의 힘이 있으면 이것도 쓸 수 있는 거야? 마법사 클래스의 미구현 스킬인 아수라 실혼경까지?”
아수라 실혼경.
용현 레인 루드윅이 거미 군주 아쉬론을 봉인할 때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힘.
신들의 시대에 <잊혀진 왕들>과 정면으로 맞붙었던 검은 태양 카렌덴의 힘을 현대에 체현해낸 것이란 뜻이다.
아수라는 그 아홉 팔로 주인을 끝까지 보호하며, 먼저 아수라를 쓰러뜨리지 않는다면 주인에 대한 공격은 모두 무효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아직 형태가 갖춰지기 전에, 동시에 처리하면 그만.’
럭셰리아의 웃음이 끝나기도 전에, 마지막 성검이 손으로 내려와 잡힌다.
극위성검 솔랑.
그 칼자루를 경건히 양손으로 붙들고 머리 위로 높이 쳐들었다.
“아니.”
그 칼날은 거대하게 벼려져 초월적인 광염을 토해내고 있었다.
솔랑의 특수 능력, 충격의 치환으로 인해 칼날은 관제실의 저 드높은 천장에 닿도록 길었다.
해답은 아까 집어 던졌던 솔랑의 방패에 있다.
견제를 위해 던진 게 아니다.
거기에서 아라다만텔과 쉬르팽과 가우므리스의 힘을 정면으로 흡수하게 했을 뿐.
즉, 지금 솔랑은 세 성검의 힘을 모두 흡수해 하나로 엮어놓은 상태이다.
“이제 평생 못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