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71)
가짜 용사 이야기-71화(71/310)
제71화
빛의 칼날이 어둠을 베었다.
어둠의 용도, 그 아래의 엘리트 소서러도. 그리고 그 발치의 땅도.
빛의 폭주 속에서 먼저 명암(明暗)을 빼앗긴 이후에 소멸한다.
그리고 한 박자 뒤에야, 고막이 찢어지는 폭음이 맹렬히 터졌다.
‘해냈다…….’
폭발의 대류가 관제실을 뒤흔들 때 그렇게 자신했다.
그때, 신체의 시간 감각이 정지했다. 아니, 신체가 아니라 세계의 시간이 멈추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먼지를 머금고 휘몰아치던 폭풍이 바람결 그대로 멈춰 있는 게 눈앞에 보이니까.
‘뭐가 어떻게 된……?’
고개를 들려고 했던 것까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움직일 수 있는 건 눈동자뿐이었다.
「하, 나 진짜…….」
섭리 자체가 멈추어버린 세계 속으로 웬 우산을 든 소녀가 걸어 들어왔다.
타르시요와 같은 은발이었다.
그러나 타르시요와 달리, 그 머리는 달빛이 아니라 별빛을 품고 있었다. 그 빛은 음험했다. 검푸르게 보이기도 했다.
「이제 막 VVIP랑 계약한 년을 죽여 버리면 어쩌란 거야! 너 때문에 썅, 우리만 지랄 바가지로 처먹고 있잖아!」
유전자 깊숙이 새겨진 원초적 공포 속에서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어가는 절망감.
이걸 언제 느껴봤더라?
폐가 터질 듯한 호흡의 광란.
그래, 그때야. 어머니가 죽던 그날 밤, 그때 하늘에서 웃던 별들과 똑같은 음기(陰氣)…….
「그래, 인정은 해줄게.」
우주의 별빛 같은 안개 속에서, 그 육신이 끄르르륵 소리를 내며 흉측하게 뒤틀리고 비틀린다.
「네가 처음이거든. 절대신이랑 계약한 엘리트를 이렇게나 간단히 죽인 인간은.」
도저히 눈을 뜨고 쳐다볼 수 없이 끔찍한 형상…….
무수히 꿈틀거리는 더듬이와 촉수와 꽃잎은 수천만 명의 망자들의 얼굴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원초적 절망감은…… 똑같아…… 도마뱀 군주 네이갈라스와 맞서 싸울 때와 같은…….
「벌써 수백 번이나 반복된 죽임과 죽음의 유흥 속에서!」
그렇게 말할 때, 그 악마의 입에서 검푸르게 떨어진 액체가 세상을 통째로 녹이고 있었다.
그것이 첫 대면이었다.
이 세계를, 창세의 세계 전체를 외우주의 유희로 전락시켜 버린 존재들과의 최초의 조우.
밤의 암흑보다도 더 농밀하고 짙은, 인간의 지각이 닿지 못하는 세계 저 너머 외우주의 어둠…….
「그러니까 이 일등 관리자(一等-管理者) 샬류안 님께서 개입할 수밖에!」
이계(異界)의 메아리,
종교 혁신의 진면 (6)
‘이게.’
그것은 절망(絶望).
우주적 절망의 현신이었다.
‘이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어.’
옛 왕이, 갑자기 등장한다고?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지금, 청성과 철십자 같은 존재들이 없는 지금?
‘억제기를…….’
답답할 정도로 느릿느릿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손가락이 억제기의 핀으로 이동했다.
– 명심하거라. 그걸 다시 뽑는 순간이, 그리고 그 초월이 다하는 순간이, 네가 죽게 되는 순간이라는 걸.
그때 시야에서 억제기가 사라지고, 대신 수라장이 된 관제실의 풍경이 마구 회전했다.
촉수에 직격된 것이다.
지면을 나뒹굴며 핏물을 쏟아낼 때 이미 늑골의 절반 이상이 으스러진 것을 감지했다.
「흐하하하하하! 재미 하나 없잖아! 겨우 이 정도야? 뭐 해, 이 새끼야! 더 힘내서 싸워보라고!」
칼을 휘둘러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억제기의 핀을 뽑아야 한단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멈췄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느릿느릿해진 시간…….
그 시간 속에서 초월의 힘이 없이 몸을 마음껏 움직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뽑기만, 뽑기만 하면 되는데……!’
몇 번의 일격에 직격되었을까.
현기증과 함께 머리가 붕 뜨기 시작했고 시야는 이미 시뻘겋게 젖었다.
덩굴 같은 촉수가 육신을 휘감아 허공으로 높이 들어 올려, 저 소름 끼치고 거대한 눈알들 앞으로 끌고 갔다.
「흐흐, 이 새끼야. 겨우 이 정도야? 내 ‘시간 둔화’에 저항하는 걸 보면 인간치고는 제법이긴 한데, 네이갈라스를 베었단 건 아무리 봐도 구라 같은데?」
“…….”
「뭐 어때. 이 우주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죽는 방법이 뭔지 알아? 내 힘은 말이야. 모든 걸 개념째로 녹여버려. 죽기 직전까지 자기 몸과 영혼이 녹아서 사라지는 걸 느끼면서 죽는 거지! 엄청 고통스럽다고!」
촉수에서 점액질이 스르륵 흘러나왔다…….
눈앞이 샛노랗게 번뜩거렸다.
분명 목소리를 낼 힘이 없다고 생각했건만, 그토록 강렬한 비명을 내지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멈춰.”
찬연한 섬광의 폭발.
촉수가 잘려 나가며 지면에 처박힐 뻔했다.
그러나 어느 틈엔가 나타난 부유형 기계, 카듀엘의 빛이 카이센 아래에서 중력을 발생시켜 그런 참사를 막았다.
‘저걸 베었다니, 어떻게…….’
곧, 이 기적의 해답이 몸을 질질 끌며 나타났다.
진성검 샤릴리온의 광채가 주인의 육신을 둥글게 감싸고 있었다.
그 빛이, 세계를 멈추는 힘으로부터 주인의 행동권을 보장해주고 있는 것일까.
타르시요.
타르시요 예레 샤릴리온.
<온 것들>의 후손.
그런데 타르시요는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베인 건 저 괴물 쪽인데…….
이상하게도, 갑주의 틈새로 핏물을 비처럼 흘리는 건 타르시요 쪽이었던 것이다.
「흥, 그러고 보니 네년도 인과율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고 있었지…… 그딴 괴행도 이놈의 영향이겠지?」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듯, 아무렇게나 휘두른 촉수 다발 앞에서 새하얀 광선이 폭주했다.
일순간 세계를 새하얗게 수놓는 용기의 빛. 일등 관리자 샬류안이 비명을 내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공격에 성공한 건 타르시요였는데, 이번에도 무릎이 꺾인 건 타르시요였으며 핏물을 덩어리째 쏟아내는 것도 타르시요였다.
“카듀엘…… 카이센을 데리고 여기서 빠져나가……!”
뭐…… 저 바보가 지금 저런 몰골로 뭐라고…….
카듀엘은 망설이는 듯했다.
그러나 타르시요에게 주어진 명령권은 절대적 권한이었고 거기에 불복할 여지는 없었다.
‘아니야, 뽑아줘. 대신, 이 핀을 뽑아달라고.’
카듀엘에게 왼손을 들어 보였다.
손목에 붉게 둘러쳐진 힘의 제약, 억제기를, 그 제약을 부수는 열쇠를.
[명령을 따르겠습니다.]그러나 카듀엘은 빛의 사슬로 카이센의 몸을 휘감더니, 출입구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 나랑 장난해, 이 새끼야? 그렇게 놔둘 줄 알고!」
질질 발을 끌면서, 일등 관리자의 앞을 막아선 타르시요의 손에서 다시 한번 섬광이 폭발했다.
신격조차 겨누는 힘.
일등 관리자가 비명을 내지를 때, 그 강대한 힘을 억지로 사용한 반향(反響)이 다시 타르시요를 덮쳤다.
「역시, 뭔가 했더니 그거, 쓸 수도 없는데 어떤 편법으로 쓰고 있던 거였네?」
타르시요의 다리가 비틀리며 자세가 꺾인다.
미처 파훼하지 못한 단 하나의 촉수가 그 허점을 파고들었다.
갑주의 파편과 살점으로 지면을 어지럽히며 내동댕이쳐졌다.
「카듀엘! 이걸 봐! 육체가 있던 시절의 너희들보다 수십 배는 약한 년을 주인으로 섬기는 꼴이 아주 비참해, 응?」
일등 관리자가 깔깔거리며 다시 카듀엘에게로 촉수를 내뻗을 때.
그 고통과 조소 속에서.
또다시 빛의 격류가 솟구치면서 그 촉수들이 일제히 소멸하며 관리자가 비명을 질렀다.
“내 이름은 타르시요……! 이 땅의 모든 인연을 지키는 뜻으로 어머니께서 주신 이름……! 카이센한테는, 손가락 하나 댈 생각 하지 마……!”
숨을 헐떡이면서.
덩어리로 뭉쳐진 피를 뱉으며.
타르시요가 진성검을 지팡이처럼 삼아 몸을 일으킨다.
「그래, 맞아, 막센시아! 아하하하하하하! 전투적 소질 하나 없이 쓸모없던 건 느그 어미랑 똑같네! 어미처럼 뒤에 처박혀 있어야지, 그러게 왜 앞으로 처나와!」
한 번, 또 한 번, 몇 번이고 관리자의 공격을 받아냈을까.
“사, 삼켜줘, 샤릴리온…… 으, 으, 으으으으으으으으으읍…… 아아아아아아아아……!”
관리자가 전력으로 쏟아낸 힘의 폭주를 샤릴리온으로 삼켜내다가 끝내 타르시요의 힘이 결국 한계에 달했다.
샤릴리온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통곡하는 망자들의 몸으로 이루어진 촉수에 휘감긴 채, 타르시요가 관리자에게 붙잡혔다.
「이거 안 되겠는걸? 이렇게까지 바뀌어 버렸으면 이 세계선에서는 그냥 폐기 처분하는 게 낫겠어. 네가 없어져도 저기 대체재가 하나 있으니 뭐. 나머지들은 엘리트들이 알아서 하겠지. 오히려 이야기가 더 재밌어질지도?」
관리자가 아가리를 벌리자, 악취가 들끓는 지옥의 문이 열렸다.
뭔가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고,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지금이면.’
지금이라면 아슬아슬하게 늦지 않을 자신이 있다.
이 핀을 뽑기만 한다면.
그래서 마지막 초월을 이룰 수 있게만 된다면, 네이갈라스를 벤 것과 똑같이 저 녀석을 벨 수 있으니까.
‘그러니 제발…….’
그런 간청을 비웃듯, 이쪽을 응시하는 관리자의 수백 개의 눈동자가 휘어졌다.
그리고 타르시요를.
그 아가리 속으로 천천히, 확실하게, 똑바로 집어넣으려던 바로 그 순간에.
시간(時間)이 멈췄다.
시간이라는 우주의 질서조차 초월한 규칙, 그 초침이 부서진 소리를 필멸의 몸으로도 들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멈춘 시간 속으로.
옛 왕조차도 뛰어넘는 절대적 심연이…… 그리고 그 심연만큼이나 절대적인 광휘가 나타났다.
‘뭐…….’
믿을 수가 없었다.
저렇게나 강대한 빛과 심연이 하나의 몸에서 공존할 수 있다니.
하지만 저 존재의 등장에 더 경악한 건, 몸을 겨우 가누는 것이 고작인 관리자 쪽인 듯했다.
「이, 이건…… ‘시간 정지’라니…… 이 힘은, 절대 심연(絶對深淵)……?」
거미줄에 붙들려 발버둥 치는 것이 고작인 날벌레처럼, 관리자는 겨우 입만 떠듬거리고 있었다.
「요토스 오빠의 힘을…… 말도 안 돼…… 썅, 썅, 썅…… 어떻게 네가 다루고 있는 거지……?」
그런 관리자에게로 똑바로 걸어간 빛과 심연의 집합체의 손에서 칼이 빚어졌다.
거룩하고 창대한 빛.
이 세계를 빚었다면 창세의 빛이 칼날의 형태로 집약된다면 저런 형상일까?
「세계선의 기억이…… 아니, 그래, 뭐야, 너, 네가 감히 나를, 우리를 배신해……?!」
청성이 만든 창명검조차도 의식 자체가 따스하고도 새하얗게 물드는 저런 빛을 지니진 못했다.
「그, 그건…… 아, 안 돼, 아니, 아니야, 오빠, 요토스 오빠, 도와줘, 이, 이런, 미, 미────?!」
그 창세의 빛이.
창세의 위상 그 자체가.
서늘한 빛을 뿌리며 관리자의 핵(核)을 날카롭게 꿰뚫었다.
「────────끄으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칼날의 빛이 더욱 강대해지기 시작하더니, 도저히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시게 폭발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존재감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어.
저건 분명 네이갈라스와 같은 신(神)이었다. 다른 차원으로 날려버린 건가?
아니, 그게 아니야.
아예 소멸시켜 버렸다고.
이게 가능하다고? 이게 이렇게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이건 신살검(神殺劍) 유르벨뭉. 창세의 주신(主神) 유르벨이 당신의 신격으로 만든, 외우주를 벨 수 있는 검이다.」
그 의문을 읽기라도 했단 듯이, 빛과 심연의 존재가 답했다.
「방금 이 힘으로 샬류안의 신격을 베었다. 존재 자체가 사라져 버렸지. 다 너희 둘이 시선을 끌어준 덕이다.」
그는 지면에 추락하던 타르시요를 땅에 부드럽게 내려놓았다.
관리자의 시간 정지에서는 자유로웠던 카듀엘조차도, 지금은 고장 난 기계처럼 부자연스럽게 정지되어 있었다.
“너는 대체…….”
「길게 설명할 시간 없다. 이걸로 내가 이 세계선에 간섭할 수 있는 두 번의 기회를 모두 소진했거든.」
심연(深淵)…… 절대적 공포 속에서 이질감과 거부감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광명(光明).
세츠넨과 타르시요조차도 뛰어넘는 절대적 평화 속에서 경외감이 들었다. 이런 모순적인 존재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 걸까?
「명심해. 이 기회가 창세의 세계에게는 마지막 기회다. 심연을 완전히 끝장낼 수 있는 기회.」
빛과 심연의 존재가 이쪽으로 똑바로 다가왔다.
한 걸음, 한 걸음.
아마 움직일 수 있었더라면 그 걸음에 발맞춰서 뒷걸음질 쳤을 텐데, 그럴 기력이 없었다.
「심연의 주인, 요티아토스는 반드시 이 세계의 마지막 순간에 나타난다. 그때까지 넌 반드시 ‘그릇’으로서 완성이 되어야 해.」
지금 보니, 그 손에 들린 유르벨뭉이란 칼은 태도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그 아라다만텔보다도 날 길이가 훨씬 더 길었는데, 자세히 보면 신기하게도 칼 전체에 미세한 균열들이 거미줄처럼 퍼져 있었다.
검이 망가진 건가?
그렇다면 왜 수리를 하지 않는 거지?
「그때 네가 이 칼로 놈을, 요토스 욜레 요티아토스를 베어야만 한다. 실패는 용납되지 않아.」
그런데 그 검이 곁을 지나갈 때, 극위성검들은 물론이고 진성검 샤릴리온조차 빛을 발하며 엎드려 경배하는 게 아닌가.
멍하니 그걸 주시하던 순간.
그 칼끝이 카이센의 가슴에 겨누어지더니, 다음 순간 짓쳐들어 영혼의 핵을 정확히 꿰뚫었다.
「지금은 내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지. 그러나 점차 알게 될 거다. 내가 한 말들의 모든 의미를.」
여기서, 이렇게 죽는다고……?
아니었다.
칼집에 칼이 납도되듯, 창세의 칼은 카이센의 영혼의 테두리 속으로 들어왔다.
「이제, 다 너한테 맡긴다.」
그리고 온몸이, 아니, 영혼이 성화의 불길에 삼켜지는 감각 속에서 하나로 융화되기 시작했다.
그 융화의 감각 속에서 모든 것이 새하얗고 흐릿하게 변해갔다.
의식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기 직전에, 환각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자조적인 혼잣말이 들렸다.
「……샤릴리온, 비루하기 짝이 없던 삶의 마지막에 당신을 이렇게 만나 뵐 수 있어서 너무나도 큰 영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