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72)
가짜 용사 이야기-72화(72/310)
제72화
중부군 주력을 궤멸시킨 대승, ‘영원산맥 결전’ 이후 남부군은 개선의 찬가를 울리지 않았다.
뇌향의 세츠넨은 산맥의 격전지에 충혼탑을 세우고, 그들을 위한 영결식을 손수 이끌었다.
충혼탑에는 중부군 사상자의 이름까지 올라 있었다. 양측 사상자의 숫자가 20만 명이 넘었다.
산맥의 능선과 봉우리마다 시체가 널렸는데, 그해 11월은 더워서 그 시체들이 빠르게 썩어갔다.
– 각하, 우리가 왜 적들의 시체를 거두어야 합니까? 이놈들은 우리 원수인데!
– 이 세상에 슬프지 않은 죽음은 없다. 울지 않아도 좋다. 그저, 가엾이 여겨주어라. 그래야 한다.
세츠넨은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세츠넨은 혼자서 그 시체들을 모두 수습하려 했다. 아무에게도 그 일을 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병사들이 자원하여 그런 세츠넨을 도왔다. 그 주검을 모두 거두는 데에만 사흘이 걸렸다.
세츠넨이 충혼비 앞에 도라지꽃 한 송이를 바치고 그들의 넋을 위해 양손을 모아 기도하자, 의장대가 예포를 세 발 쐈다.
“들으셨습니까? 럭셰리아 루드윅 이야기?”
“예. 용현의 후손이 사실 낙인자(烙印者)였다니…….”
“아직도 믿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오. 희망의 재림으로 여겨졌었는데 설마…….”
“하늘을 보시오. 태양과 달이 2개씩이나 떨어졌지 않소. 그렇게나 확고한 증거가 있건만…….”
“중부군 잔당은 태양과 달을 떨어뜨린 게 우리의 조작으로 알고 있습니다…….”
“홀려도 단단히 홀렸군! 선제후부터가 낙인자한테 휘둘리던 이단 아니랄까 봐…….”
“용사님께서도 크게 다친 걸 보셨소? 인류 최강의 병사가 우리 편이 아니었더라면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됐을지…….”
귀족들과 장교들이 수런거렸다.
수군거리는 목소리의 골들이, 하나둘 솟아올랐다가 뇌향의 눈치를 보면서 잠잠해지기를 반복했다.
뇌향은 감은 눈꺼풀 속에서, 분명히 기억하는 럭셰리아 루드윅과의 날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언젠가, 카이센과 다른 날 다른 방식으로 만나게 해줄 수 있었더라면…….
그건 분명, 조카들이 만나서 이야기하는 걸 지켜보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함께, 각자의 어머니들에 대한 기억을 나누며 웃고, 함께 싸우고, 또 함께…….
‘그런데 이러한 기억과 감정마저 모두 외우주에 의해 조작된 것이었단 말인가.’
산맥의 독수리 한 마리가 충혼탑 상공을 맴돌며 울었다.
독수리 울음이 외로이 울리는 산맥은 고요히 내려앉아 있었다. 뇌향은 그 울음 속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 영결식에 타르시요 예레 샤릴리온은 목발을 짚어 가면서까지 참석했고, 카이센 알터 아라다만텔은 참석하지 않았다.
이계(異界)의 메아리,
종교 혁신의 진면 (7)
적색산맥 회전 이후로,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이 꿈을 꾼다.
불타는 사막.
열기가 들끓어 아지랑이가 수평선 가득 어지러이 일렁이는 땅.
그 땅을 많은 이들이 똑바로 쳐다보며 지나간다. 대열의 앞에 선 세 사람은 늘 똑같다.
로베리스 알터 쉬르팽.
세이라 알터 솔랑.
이슬라 알터 가우므리스.
손을 뻗으며, 그쪽으로 가면 안 된다고 울면서 외쳐도 소리는 소리로 맺히지 않고 다만 흩어졌다.
다만…….
그저 다만…….
늘, 뒤늦게 맺힌 외침과 함께 끝나는 꿈이었다.
그 꿈은 죽음의 슬픔이 삶 위로 포개어지는 영결식에서는 현실에 덧입혀지기까지 했다.
그래서 카이센은 어떤 영결식이든 참석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처럼 극위성검들을 휘두르며 잡념을 날릴 뿐.
“안녕.”
그때 달빛이 찾아왔다.
아마, 달빛이 사람의 형상으로 곁에 있다면 이런 느낌일 거야.
분명, 달빛이 목소리를 내고 환히 웃을 수 있다면 이런 느낌일 거야.
“……타르시요.”
타르시요는 묻는 법이 없었다.
왜 영결식에 안 왔어?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 조금 이야기해 줘도 괜찮잖아?
이런 질문들이 없이 그저 달빛처럼, 고요하게 다가와 일상처럼 따스하게 머무를 뿐.
아라다만텔을 위시한 극위성검들이 진성검의 위엄에 낮게 엎드리는 숨결을 토했다. 진성검 샤릴리온은 눈부신 명멸 한 번으로 그 절에 답했다.
“응응, 다들 잘 있었어?”
타르시요가 곁의 난간에 앉았다.
앉아서, 극위성검 하나하나에게 말을 건네는 그 목소리에서는 달빛의 향기가 났다.
예전에는 그 까닭을 몰랐는데, 지금은…….
“가우므리스, 그렇게 고집부린다고 좋을 거 하나 없어. 솔랑, 너도 마찬가지야. 과묵한 척한다고 멋지게 보이는 줄 알아?”
둘이 나란히 앉아 있는 이 상황이 단지 어색하게 느껴져서, 그 묻지 않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먼저 꺼냈다.
“어차피 나는 가짜 용사야. 그런 자리에 어울리지 않아.”
달빛의 향기가 나는 너와는 달리, 나에게는 오직 피비린내만이 날 뿐이다.
그리고 어울리고 싶지 않아.
이제 인연의 단절은…… 가슴이 부서질 만큼 무서워.
“가짜 용사가 뭔데?”
그것은 단순한 질문이었을까.
분명 알고 있는 지식인데, 아니,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분명하기 짝이 없는 상식인데.
저렇게 직접 물으니 오히려 그 질문의 날이 무섭게 느껴졌다.
“진짜 용사가 아닌 가짜…….”
“그럼 용사란 뭔데?”
무엇일까.
그것은 평생의 의문이었다.
아키레아는 용사란 그저 이정표라고 명료히 풀어 주었으나 오히려 더 난해해지기만 했다.
“너 같은 사람.”
“나 같은 사람은 없어. 너 같은 사람도 없고. 나와 너만 있을 뿐이지.”
“…….”
“신기하지 않아? 이름이 같아도, 살아온 삶의 행적들은 대부분 다르거든? 근데 용사들은 대체로 비슷해. 너처럼.”
“내가 뭘 했는데?”
어딘가, 내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하는 너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난다.
“첫 출전에 삼천 명을 벤 용사.”
“…….”
“두 번째 출전에 마우나 로아를 토벌하고, 그 이후 모든 출전에서 옛 귀족을 베었으며 적색산맥 전선의 마지막 싸움에서는 네이갈라스를 쓰러뜨린 용사.”
“…….”
“그래서 붙은 별명이 우루크 슬레이어, 데몬 슬레이어, 인류 최강의 병사, 인류제일검(人類第一劍), 역사상 최강의 페이쿼리어 등.”
그 겸연쩍은 칭호들의 연속에 눈가의 힘이 풀린다. 눈매가 길게 펴지며 자조적 미소를 지었다.
“너무 자세히 아는 거 아니야?”
“내가 아직 <하랄도니키>에 있을 때, 이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 너는 그때,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의 동경을 받는 용사였거든.”
“뭐?”
“카이센 알터 아라다만텔이 데몬을 베었대, 라거나…… 이러다가 정말 전쟁이 끝나는 거 아니야, 라거나…… 그러면 여보, 우리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라거나…… 그 사람들이 흘리던 눈물이 지금도 다 생각이 날 정돈걸.”
“그걸 다 기억한다고?”
“응. 너에 대한 이야기였으니까. 다 외워버렸어.”
타르시요가 빙그레 웃었다.
그 웃음 위로, 그날 함께 보지 못했던 세계의 풍경과 속삭임들이 마음속에 펼쳐졌다.
“너는 그저 임무를 수행한 것뿐이라 말하지만 말이야. 네가 해온 일들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마음에 희망으로 비추어진 거야.”
그 배시시, 맑고도 새하얀 미소가 대자연만큼이나 신비해서.
타르시요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가 다시 땅 밑으로 고개를 돌렸다.
웃음과 울음이 섞인 표정이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나 혼자서 한 일이 아니야…….”
어둠 속에서, 또 적막 속에서.
늘 나를 지켜보는 죽은 이들의 눈동자가 느껴진다.
지금도 꿈속에서, 먼저 저 악몽의 한복판으로 걸어가는 이들의 뒷모습이 보인다.
“난 그저, 먼저 죽어간 동료들의 업적과 의무를 대신 짊어지고 있을 뿐…….”
그들의 공적도, 눈물도, 아픔도.
그 모든 것들을…….
쓰라린 미소 앞에서 타르시요가 문득, 아라다만텔의 칼날을 빼들더니 하늘 높이 비추었다.
“용사란 게 원래 그런 거 아닐까?”
“……?”
“슬픔, 고통, 눈물. 다른 사람들이 지지 못하는 모든 걸 대신 짊어져주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용사란 그렇게 완성되는 이름이라고 생각하거든.”
신기하다.
이 녀석과 같이 있으면, 어머니와 함께했던 나날들이 하나둘씩 떠올라.
스승님이나 선배님이나 삼영룡, 더 나아가 어머니와 함께했던 나날까지도.
“친구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도 용사고, 가족을 위해 일하는 부모도 용사고, 사실은 모두가 용사인 거지.”
그 사람들처럼 빛이 나.
자기 자신의 빛으로 다른 이들을 밝히는 빛을 가지고 있어.
평생 싸우고 베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나는 이런 빛을 낼 수 없겠지.
“그런 점에서 보면, 카이센? 너는 그 누구보다도 용사야. 아라다만텔과 함께하게 된 날부터 계속 슬퍼하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싸워주고 있잖아.”
그러한 마음속의 자조의 그림자에 눈부시게 빛이 비치듯.
그러한 마음속의 비탄의 구덩이에 선명하게 빛이 들어오듯.
발치로 다가와, 사랑스럽게 쪼그려 앉는 너의 미소가 내리 떨궜던 나의 시선과 맞닿는다.
“그러니 다시는 자신이 가짜 용사일 뿐이라느니, 그런 나쁜 말은 하지 말아줘. 약속.”
달빛에 부푼 억새밭을 바람이 고요하게 어루만지며 스쳐 지나가던 그 순간,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여행을…….’
달빛보다도 찬란한 머릿결 한 올 한 올이 그 미소 위에서 나부끼던 순간, 불현듯 그런 생각을 했다.
‘스승님, 저는 지금…….’
너랑 같이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그 체온.
그 숨결.
그 목소리를 단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저는 지금, 여행을 떠나고 있습니다…….’
이곳이 아닌, 칼을 쥐지 않아도 되고 피에 절여지지 않아도 되는 어딘가로.
어린 날, 스승님께서 꿈꾸셨고 타르시요와 약속했던 그 어딘가의 세상으로.
너와 함께하던 모든 순간, 나는 평생 가보지 못했던 그 세계들로 몇 번이고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너와 함께.
그것은 말할 수 없는 진심.
결코 닿을 수 없는 미래를 향한 백일몽.
“……어째서 날 구하려 했지?”
그 순간을 평생 누리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결코 그리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 망상을 내치기 위해 화제를 돌린다.
“네가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너와 나에게는 가치적 차이가 엄청나게 커.”
“커? 왜?”
“커. 넌 <온 것들>의 딸이고─”
“─넌 라미네아 님의 아들이지.”
연인들이 서로의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처럼, 사랑스러운 어조로 그렇게 대답을 한다.
“우리 어머니도 위대한 영웅이셨다지만, <온 것들>이랑은 비교할 수 없어. 너와 나처럼.”
“나도 너와 같은 사람이야.”
“아니, 너와 난 달라. 그런데 왜 그런 거야. 어째서 그때 날 살리고 대신 죽으려 했냐고.”
“…….”
“아무리 생각해도 그딴 판단은 납득이 안 돼. 다시는 그러지 마. 알겠어? 너와 난 가치부터가 다른 존재란 말이야. 왜 그런 판단을 내리는 거냐고. 네가 모두를 지키는 진짜 용사라서?”
먼저 죽은 동료들은 모두 네가 되기를 꿈꾸었단 말이다. 내가 아니라.
네가 되지 못한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아서, 그 대신 네가 오는 날만을 꿈꾸었는데…… 그런 네가 나 때문에 죽는다니.
나중에 죽었을 때 그 녀석들 얼굴을 대체 어떻게 보란 거냐.
“…….”
타르시요가 잠시 새하얀 눈꺼풀에 덮인 시선을 내리깔더니 처연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여자한테는 그런 질문 하는 거 아니야.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은 여자한테는 더더욱.”
앞으로 무슨 말이 이어질지 몰랐건만, 아니, 몰랐으므로, 조용히 그 미소만을 응시했다.
이유는 아직 알지 못한 채.
심박의 고동이, 쏴아아, 하고 달빛이 어루만지는 벌판 위 단풍들의 박자를 앞질러간다.
밤하늘을 흘러가는 구름 속에서는 달 2개가 만월을 이루며 세상에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그날.
그 어느 만월 밤의 기억.
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밤의 기억을, 카이센은 죽는 날까지 잊지 못했고 또 잊지 않았다.
“내가 용사라서가 아니야. 음, 어렵네. 꼭 이렇게 말로 설명해야만 하는 걸까……? 그때 나는 너를, 거기에 있던 게 바로 너라서…… 내가 좋아하는 너를 지키고 싶었던 것뿐이야,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