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76)
가짜 용사 이야기-76화(76/310)
제76화
“이, 이, 이런 미, 미친! 그레이엄조차도 일격에 죽었어! 저놈은 무려 3회차 플레이어였는데!”
<설령장성>은 제국령 북단의 끝이다.
거기서부터 영원한 죽음의 땅, 하르바도니아가 시작되며 인기척은 끊어진다.
<설령장성>은 하나의 본부와 4개의 지부로 구성되어 그 고대의 지옥으로부터 문명 세계를 분리시킨다.
“극위성검 네 자루를 자유자재로 쓰는 저 또라이 자식은 대체 뭐냐고! 엘리트 나이트는 왜 저딴 놈이 있다고 한마디도 안 해준 거고!”
“그분께서도 몰랐을 수도 있어.”
“모르긴 뭘 몰라! 시, 십! 이제 다 뒤지게 생겼다고! 그놈은 우릴 버리고 도망친 거야!”
“이 새끼가, 어디서 감히 페르비아스 님께 그딴 말버릇을!”
“우리가 전멸 직전인데 지원도 안 보내는 놈이 님은 무슨 염병할 님이냐! 그놈이 남겨두고 간 얼음 소환수들도 다 뒤졌고!”
그러나 <설령장성>은 장벽 이북의 심연을 막기 위해 축성되었지, 장벽 이남에서 벌어지는 내전을 위한 설계는 없었다.
즉, 공성전이라지만 공성전이 아니었고 다만 북부군과 하얀 늑대들은 장벽 위로 올라가 최후의 항전을 벌일 뿐이었다.
그 장벽조차도 아쉬론 사변 때 격파되어 서부군에게 허점이 오롯이 노출되어 있었다.
“그분께서는 저놈을 <설령장성>에 붙잡아 두라고 명령했다! 닥치고 따라! 그분의 계획이 성공하면 우리 모두 소원을 이룰 수 있───!”
그 허점을 앞장서서 돌파하던 낙인자들의 목덜미 위로 붉게 그어지는 일선(一線).
북부의 추위는 차고 거칠었다.
선혈을 쏟아내며 치솟던 머리통은 자유낙하가 끝날 때쯤에는 절단면이 얼어붙어 더는 핏물을 내지 않았다.
“각하, 들으셨습니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순식간에 빙결된 머리통을 짓밟아 으스러뜨리는 군홧발.
그 군화 옆에서 형형한 광휘를 토해내는 아라다만텔의 칼날의 피 고랑으로 피가 흐르며 허연 김을 내뿜었다.
세상은 그 백발의 검사를 외경심을 담아 인류 최강의 병사라고 불렀다.
“엘리트 나이트가 이미 장벽을 통과해 북방 관제실로 이동한 것 같습니다. 전선을 이탈해 추격하는 걸 허가해 주십시오.”
[안 된다, 카이센. 하르바도니아는 더없이 광대하며 그 지리는 잔혹하기 짝이 없단다. 맨몸으로 가는 건 자살행위다. 공군을 수배해서 보낼 때까지 기다리거라.] [각하, 제가 페이쿼리어를 보좌하는 걸 허락해 주십시오.]카이센의 눈썹이 꿈틀 흔들렸다.
아…….
저 목소리를 들은 것만으로 일순 가슴이 노곤하게 풀어지는 걸 느꼈다.
[따로 생각해둔 방책이라도 있느냐, 요한?] [귀한 몸으로 북부까지 왔으니 돌아가기 전에 명물 썰매를 한 번쯤은 타게 해 줘야죠.]요한의 계략은 기상천외했다.
북방 관제소로 이어지는 경사로를 빙벽으로 만들어서 썰매를 타고 이동한단 것이었다.
<설령장성> 위에서라면 고도는 충분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도착한 뒤에 각하께서 차원문을 여실 수 있도록 일대를 정돈하겠습니다. 하얀 늑대들 1개 연대를 데려가겠습니다.] [허가하겠다. 요한, 그대를 카이센 곁으로 보내주마. 황금의 아이들 1개 대대를 보내겠다. 둘 다 절대 무리는 하지 말거라.]곧 황금의 광휘가 타원형의 차원 균열을 일으켰고, 그 너머에서 연하늘색 꽁지머리의 사내가 나왔다.
옛 목소리들이…….
유년기의 모든 기억들이 일순간 뇌리에서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이지적인 말투로 미친 전술만 골라서 쓰시는 건 여전하시군요.”
“십수 년을 누구 곁에 있다 보니 이렇게 되어 버렸구나. 별로 내키지 않나 보지?”
“제가 바로 그 누구 밑에서 자랐는걸요. 이런 미친 방식을 늘 그리워했습니다.”
어린 날, 처음 만났던 그때와 똑같은 미소가 요한의 입에 맺혔다.
요한이 품에서 반쪽으로 쪼갠 눈 결정 목걸이를 꺼냈다. 카이센도 그 반쪽을 꺼내 보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1년 전 그날 약속을 나누고 헤어진 본인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목걸이를 하나로 맞춰본 요한의 미소가 서서히 일그러지더니 그 말끝에서 울음이 터졌다.
“아, 그때 그 꼬맹이가 언제 이렇게 장성해서, 아, 정말이지…….”
눈물은 이미 메마른 줄 알았건만, 카이센의 눈가도 뜨거워졌다.
이는 평범한 재회가 아니었다.
1년 만에 누군가와 다시 만났을 뿐인, 그런 간단한 재회가 아닌 것이다.
요한은 이제는 잃어버려서 다시는 되찾을 길 없는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무이한 통로였다.
그 세계에서는 카밀라가 까탈스럽게 욕설을 내뱉으며 머리를 쥐어박고 있고 백곰 엘토람이 껄껄거리며 등을 두들겨주며 장총 진이 특유의 음담패설을 내뱉는 세계였다.
그 세계에서는 모두가 살아 있었고, 또 모두가 웃고 있었고, 또, 또, 또, 모두와 함께…….
“보고 싶었습니다, 울프.”
그 재회의 인사로, 어린 날의 풍경을 칼로 끊어낸다.
이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짧은 해후를 끝마칠 때쯤, 합류해온 카듀엘이 말했다.
[야만적이지만 대단히 효율적인 이동 방식이겠군요. 그런데 실패하면 어쩌죠? 눈보라 속에서 제가 인도하는 방향으로 계속 빙판길을 만든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카이센이 대답했다.
“걱정 마십시오. 울프는 실패 같은 거 안 하니까.”
프롤로그의 에필로그,
가짜 용사 여기 잠들다 (2)
「이미 비상 관리 프로토콜을 3개나 발동시켰는데도 해당 세계선에 대한 간섭이 불가능하네요. 귀찮아졌는데요.」
이등 관리자, 쟈렌키가 말했다.
그 앞에는 수많은 상(相)들이 떠올라서, 여러 멸망한 세계를 비추고 있었다.
멀고 높은 심연의 옥좌에서, 별빛이 흐느껴 떨고 우주가 침묵하는 절대(絶對)의 음성이 들렸다.
「샬리는 어떻게 됐습니까?」
「신호조차 잡을 수 없어요. 어떻게 하죠? 시청자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한 세계의 멸망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의 숫자는 예로부터 늘 666명이었다.
여기서 추가로 엘리트 플레이어 다섯이 선발되는데, 절대신들은 이들을 종복으로 만들려고 온갖 경쟁을 벌였다.
배틀로얄에서 승리한 엘리트는 해당 절대신으로부터 신격을 받아 신이 되었고 그 군벌들은 권속으로 승격되었다.
심연의 절대신과 계약해 승리한 <잊혀진 왕들>, 그리고 그들을 섬기는 권속들과 같은 전철을 밟는 것이다.
그런 멸망 속에서 이 유희는 온 외우주가 즐기는 유흥으로 발전했는데, 지금까지 이렇게나 문제가 많이 생긴 적은…….
‘이게 두 번째인가?’
<온 것들>이라는 이름으로 심연의 모성 발라돈을 점거하고 그의 권속들을 모두 봉인한 벌레들이 그 시작이었는데, 이제 또 이 세계에서…….
「더 이상 흥미를 위한 변수로 관망만 할 수는 없겠군요. 카이센, 저 피조의 짐승을 방치해 놨다가는 극이 더 망가지기만 할 테니.」
「네이갈라스와 샬류안 선배까지 베었는데…… 지금 저 녀석은 등급을 매길 수 없이 위험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몸으로 그런 힘을 휘두른 대가로 수명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으니 자연사하게 기다리는 게 어떨지요?」
「이킬라스의 절대자는 류이니옌과 달리 아주 성가시고 예절이라곤 없는 존재입니다. 이킬라스의 사도를 죽게 놔두었다가 또 어떤 난장판을 피울지 상상해 보시죠.」
「그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대체 누구를?」
「가짜라는 존재가 언제 그 빛을 잃는지 아십니까?」
「……?」
「진짜와 나란히 서게 될 때입니다.」
「진짜라 하심은…… 설마?」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지만 소름 끼치도록 거대한 입매가 찢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네, 뤼카엘입니다.」
「엘디아 뮤(04)…… 괜찮겠습니까? 위험 요소를 제거하려다 더 큰 위험을 만드는 건 아닌지.」
「이미 릴키우르라는 이름으로 내 명을 2천 년 동안이나 충실하게 따라왔습니다. 호출에도 바로 응했지요.」
페이쿼리어들이 다루는 극위성검은 모두 엘디아 기사들을 위해 제작된 진성검의 모조판.
그 성검들의 특수한 힘도 다루는 검법도 모두 옛 엘디아들의 열화판에 불과하였으니…….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그 검술의 근본 자체를 완벽하게 간파당하고 있다면 칼의 세계에서는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습니까, 뤼카엘. 상대는 역대 현존했던 가짜들 중에 가장 강하다고 불린다는데.」
쟈렌키 앞으로 확장된 창 속에 나타난 한 여걸, 그 머리카락에 심연의 검푸른 색채가 그대로 묻어나고 있었다.
이는 심연의 종복의 상징…….
한때 그녀가 보랏빛 머리칼을 날리며, 신들의 전쟁 때 무수히 선봉에 섰던 그 뤼카엘이란 사실을 누가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장난하자는 거야? 그래봤자 진성검의 적성 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해서 하찮은 모조품에 기대는 가짜일 뿐.]「기대하지요. 아, 이킬라스의 사도는 살리려고 노력하는 척만 하고 죽게 놔두십시오. 그편이 여러모로 재밌으니까.」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넌 약속이나 똑바로 지켜.]「무슨 약속 말이죠? 하, 장난입니다. 당신의 동료들을 모두 되살려주겠다고 한 약속 말이지요? 후후후, 걱정 마십시오. 모든 게 끝나면 반드시 그리해드리죠.」
* * *
[목표 좌표……까지 쾌……속 접근 중…….]수백 갈래로 갈라지고 회오리치며 골수(骨髓)를 좀먹는 이계의 눈보라.
그 속을 내달리는 썰매들은 사위가 새하얗게 덮여 서로가 서로를 볼 수 없었다.
믿고 의지하는 이정표는, 이계의 파장 때문에 잡음으로 비벼지는 뇌향심공명진의 파장.
[좌표까지…… 16블릭…….]숫자가 작아질수록 눈보라는 더욱 강대해져 갔다. 소름 끼치는 백색의 소음이 팽팽하게 울었다.
알마 론델은 다른 관제소들과 달리 제1등급 관제소로, 그 위치나 설계조차 기밀이었다.
관제소들 중에 유일하게 스타링크의 회로를 개ㆍ보수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라 했다.
[3블릭, 관성 제어를 권장.]썰매들이 마법의 자갈밭 위로 들어섰다.
[여기는 요한 울프 프로스트, 전부 충격에 주의해.]수백 개의 돌멩이가 일으키는 마찰로 덜컹거리기도 잠시, 곧 관성 동력마저 잃은 썰매들이 하나둘씩 멈춰 서기 시작했다.
[뇌향 각하, 좌표에 도착했습니다.] [현……재…… 상황은……?] [주결의 마력을 모두 소진하여 이제 쓸모없는 마법사가 되었습니다만, 그러기 전에 어떻게 아슬아슬하게 도착했습니다.]카이센이 쐐기석을 지면에 박자, 빛줄기가 상공으로 솟구치며 눈보라의 기세가 약화되고 뇌향심공명진의 잡음이 개선되었다.
[훌륭하구나. 하지만 이킬라스의 눈보라를 완전히 걷어내지 않으면 내 힘이 닿지 않는다. 내가 부족하여 고단한 일을 시켰구나. 카이센, 괜찮느냐?]“괜찮습니다. 타르시요, 너는?”
“나도 괜찮아.”
눈보라가, 순백이 물러서는 수평선 위로 명암이 회복되며, 검은 산이 윤곽을 드러냈다.
“대마법사님, 전방에 미확인 시설입니다!”
바로 그 산의 표면에, 수천 년 동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형태로 관제소가 들어서 있었다.
모두가 멍하니 전율했다.
인간이 산이라는 자연에조차 돋을새김 장식을 하는 날이 온다면 이런 걸 세울 수 있을까?
“설마 저게……?”
[알마 론델입니다.]“태양과 달을 2개씩 추락시켰다는 유적이 저거로군…… <온 것들>이 남기신 유적들은 무적인 줄 알았는데.”
광대하고 예술적인 알마 론델의 출입구를 새파랗게 뒤덮고, 촉수처럼 꿈틀거리는 이계의 냉기.
[이상하군요. 알마 론델은 제7계 한파 방호 체계로 설계되어 이 정도 한파에는 정상적으로 작동되어야 합니다만, 내부 보안 시설이 전혀 작동되지 않고 있습니다.]카듀엘은 어떻게 설명해서 납득시킬 길이 없는 불안한 예감을 느꼈다.
그 예감은 옳았다.
그로부터 머지않아서, 옛 전우와의 최악의 재회로 증명되게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