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78)
가짜 용사 이야기-78화(78/310)
제78화
“제국을────?!”
베였다.
용골창을 빙그르르 회전시킴으로써 절대적 서리 폭풍을 일으키던 페르비아스의 어깨부터 허리까지, 그 궤도 위에 놓인 심장도.
또 베였다.
중앙 통로에서부터 관제실에 이르기까지, 그 궤적 위에 있는 모든 유ㆍ무기물의 집합이.
그리고 또 베였다.
관제실의 관문과 그 너머 타르시요의 육신을 휘감으며 찢어발기던 진성검…… 요니울란의 칼날이.
‘이 애송이…….’
그 찰나의 순간에, 요니울란을 거두어 제 몸에 두른 뤼카엘의 몸은 온전했다.
‘이백 보가 넘는 거리를 한순간에 좁혔어.’
그리고…… 뤼카엘은 자신의 볼에 엷게 그어지는 일선을 느꼈다.
그 찢어진 체조직의 틈새로 뜨거운 선혈이 흘러내리기도 전에.
그 오랜만에 느끼는 베임의 감각 속에서, 포박하고 있던 사냥감을 놓쳤단 걸 깨달으려던 그때.
퍼어어어어어엉───!
그것은 섭리에 얽매인 존재가 감히 섭리를 침범했을 때, 섭리가 규칙을 회복하는 반향.
음속 폭음(音速爆音).
한 박자 늦게 터진 폭음은 관제실 내부에 강대한 회오리를 몰고 왔다.
“미안.”
그 회오리의 주인은 빛바랜 광휘를 토해내는 용의 갑주, 용린갑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그 등갑의 양쪽으로 눈부시게 펼쳐져 명멸하는 것은 검의 날개, 뇌향령어검.
극도로 응축된 초월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박살 난 붉은 수갑, 억제기는 바로 방금 전까지 서 있던 먼 곳을 나뒹굴고 있었다.
“뽑아버렸어.”
바로 저 모습이, 저토록 초라한 마지막 몰골이야말로.
이제는 돌아갈 길 없고, 비빌 데 없는, 가짜 용사로서의 운명의 마지막 지표처럼 느껴져서일까.
바로 등 뒤로 다가와 손을 얹은 죽음 앞에서, 심신이 고요하게 가라앉는 걸 느꼈다.
“아,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그날의 그 순간이.
처음이었고, 마지막일 거야.
네가 그렇게나 슬프게 흐느끼는 모습을 본 것은.
“왜 뽑았냐고는 묻지 마.”
예전에, 왜 날 구했느냐고 물었을 때, 시선을 내리깔면서 대답했던 네 모습이 떠올라.
그때 너는 알고 있었을까.
내가 지금 이 순간, 너와 똑같은 대답을 하게 되리라는 걸.
“남자한테도 그런 질문 하는 거 아니니까. 특히나 자기를 좋아하는 것 같은 남자한테.”
프롤로그의 에필로그,
가짜 용사 여기 잠들다 (4)
단 세 걸음으로 족했다.
관제실과 중앙 통로를 빠져나와 4층으로 이르는 계단에 도착하기까지.
이렇게 될 확률까지 계산했는지, 거기에서 카듀엘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가십시오. 엘디아 뮤(04)로부터 작은 주인님을 구해내신 건 기적에 가까운 전과입니다.]“카듀엘, 너는……?”
[작은 주인님, 저는 탈출할 수 없습니다. 이미 이킬라스로 이어지는 차원문이 열렸습니다. 걷잡을 수 없게 되기 전에 시설을 통제해야 합니다. 그게 수호자의 의무입니다.]촤르르르륵, 사슬이 감기는 듯한 쇳소리와 함께 계단 자체를 잡아 찢으며 서슬들이 날아들었다.
터어어어엉……!
돌아서면서, 솔랑의 방패로 막아낼 작정이었고 실제 성공했을 것이다.
‘무슨……?’
상대가 표적의 분자 구조에까지 침투하여 붙들어 찢는다는 진성검, 요니울란이 아니었더라면.
맹렬한 불 싸라기가 튀었다.
길게 늘어났다가 다시 검의 형태로 집속되는 요니울란의 칼날에게 저만치까지 끌려가던 솔랑의 방패가 지면을 나뒹굴었다.
「분수에 맞지도 않는 검을 용케 네 자루나 들고 다니고 있군, 페이쿼리어. 아니, 네 주제에는 저것들이 맞겠지.」
페이쿼리어.
그 울림이 지금처럼 지독할 만큼 부끄럽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눈앞의 상대가 바로 그 원본이기 때문일까. 너는 천생 가짜에 불과하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가짜 주제에 설치는 것도 괘씸한데 내 애제자의 기술에 갑주까지 훔쳐서 두르고 오다니, 죽여달라고 사정을 하는 건가?」
“그렇게 따지면 그쪽도 가짜 아닌가? 옛 용사들은 잿빛 머리카락을 갖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둔한 것. 용사인지 아닌지 결정하는 건 머리 색깔이 아니라 힘의 세기다.」
“그렇게 따지면 나도 용사겠군.”
「너 따위가? 말장난하자는 거라면 웃어주지. 알카이오스한테 아까 너에게 주어졌던 것과 똑같은 기회를 쥐여줬다면 나는 이미 죽었을 거다.」
억제기의 핀은 뽑았지만 상황은 최악이다. 설마, 이 존재를 여기에서 만나게 될 줄은…….
– 드래곤 슬레이어의 기억, 거기에서 나온 릴키우르라는 존재는 대체 누구입니까?
뇌향의 세츠넨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세츠넨의 안색이 그토록 창백하게 질린 걸 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흑교회의 첫 번째 기둥이자 옛 진용사라고 설명해야 하겠구나.
– 예?
– 어떻게 된 연유인지는 나도 미르도 모른다. 하지만 뤼카엘이 심연의 수족이 되었으며, 수백 년에 걸쳐 모든 마족을 다 통합시킨 존재라는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 마족의 통합을……?
– ‘검은 여름’ 당시, 나와 미르가 힘을 합쳐서 놈을 잠시 밀어내는 게 고작이었다…… 그 대가는 컸지. 미르를 저렇게 만든 것도 바로 그 뤼카엘이다.
미른가디아의 육신이 심연에 침식당하고 있는 이유가 <잊혀진 왕들>이 아니라 옛 진용사와의 싸움 때문이었다고?
– 나 또한 다시는 몸을 제대로 쓸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고.
세츠넨이 자신의 몸 곳곳에 있는 자상의 흔적을 보여주었다. 영혼의 이음새가 끊기기라도 했는지, 육신의 접합부마다 영혼의 빛이 부서져 나왔다.
– 아버지에게 봉술을, 어머니에게 검술을 배웠으나 이제는 모두 먼 날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함구하거라. 군의 사기가 염려된다.
옛 용사의 배신을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믿을 수도 없었고…….
아니, 그만하자. 이제 남은 수명은 대략 5분. 기억이나 되짚고 있을 시간적 여유는 없다.
“카듀엘 님, 타르시요를 데리고 도망가십시오.”
[하지만 차원문을─]“─관제실을 박살 내면 그만 아닙니까?”
저 숨 막히는 초월의 위압감.
대기가 보랏빛으로 찢어지고 격동하고 울부짖고 있다. 이것이…… 진정한 검의 정점.
극위성검들이 그 위엄과 투력에 전율하며 가냘프게 몸을 떨고 있었다. 아니면 내 떨림이거나.
[카이센, 차원문이 열렸다.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해…… 이렇게나 큰 차원문은 나조차도 처음 본다. 이킬라스의 마물들이 한도 끝도 없이 내려오고 있어.]광룡에게서 물려받은 초월의 권위가 신체 능력을 한계 그 너머로 증폭시킨다.
색채를 잃는 세계.
이 세계에서, 세계는 움직이는 하나의 연속적인 세계가 아니라 백 장이 넘는 단속적인 장면으로 구성된다.
─ 극 용검술, 용뢰선참.
아라다만텔의 칼날을 바닥 깊숙이 꽂는다.
지반의 틈새를 타고 지맥에 퍼져 나가는 뇌전(雷電), 들끓는 광휘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 틈새는 균열이 되어 내벽 전체로 퍼진다.
그 균열에서 눈부시게 폭주하는 빛과 전류의 물결, 네이갈라스의 육신조차 찢었던 이 광역 제압기로 연계기의 첫 단추를 꿴다.
─ 삼중절원(三重切願).
뇌명이라는 개념 자체를 비틀듯, 빛을 잡아 찢으며 날아드는 진성검 요니울란의 칼날.
괜찮다.
애초에 용뢰선참은 오감을 둔하게 만드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으니까. 본제는 지금부터다.
─ 절원, 광열파란(光熱波瀾).
모든 어둠을 빛의 압력 가운데 새하얗게 증발시켜 버리는 포악한 힘의 파도.
이는 가우므리스의 절원.
그 힘의 격랑이 여러 갈래로 쏟아져 나가며 요니울란의 칼날조차도 밀어내고.
─ 절원, 시공섬(時空殲).
그 뇌광의 광휘와 새하얀 백광으로 뒤덮인 세계의 시상을 베어 찢는 이는 쉬르팽의 절원.
이때 뇌향령어검, 즉 검의 날개들이 지금까지 이루어진 동작을 정확히 열 번씩 반복한다.
즉 시공 자체를 갈라버리는 참격은 무려 열 번, 모두 다른 궤도로 그어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쏟아부은 힘을 모두 빨아들였을 솔랑의 힘을──
「찢어발겨라, 요니울란.」
──광란의 춤을 추던 모든 빛이, 삐뚤빼뚤한 보랏빛의 일선 속으로 뒤틀리며 빨려 들어간다.
공격, 공격이 온다…….
그 판단 속에서, 모든 빛이 사라져가는 가운데 몸을 회피 동작으로 전환시키려고 했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푸하아아아악…………!
총합 44개로 이루어진 쇳조각들이 광포하게 포효한다.
그 서슬들이 갑주를 부수고 살가죽을 찢고 내장과 늑골을 뜯어내며 피 보라가 사방으로 폭발한다.
동시에 영혼을, 심연의 침식 속에서 겨우 지탱해가던 영혼의 파편들도 무자비하게 찢겼다.
「내 요니울란의 특수 능력은 혼백 파열이다. 물질의 외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내적인 부분까지도 찢어버리지.」
맑은 쇠의 파편들이 보인다…….
그것은 쉬르팽의 거대한 칼날이 산산이 쪼개지며 흩날리는 잔해.
「무기물이건 유기물이건, 술식 같은 이능 따위도 마찬가지지.」
이미 얼굴 전체가 피로 뒤덮인 것일까, 시야가 붉게 물들어 세계 전체가 아득했다.
방금 목도한 것은 힘이었다.
하늘을 나는 독수리가 하늘을 기는 지렁이를 비웃는 듯한, 모든 불리한 상황 자체를 단번에 뒤집어 버리는 힘.
「인정해주지. 네이갈라스도 샬류안도 쓰러뜨렸을 만한 실력이야. 하지만 상대가 나빴다.」
눈앞으로 무언가가 날아와 꽂혔다. 낯익은 광휘, 낯익은 냄새, 극위성검 솔랑의 방패.
「그걸로 힘을 빨아들여서 결정타를 먹일 작정이었지?」
촤르르르륵…….
육신의 피와 영혼의 파편으로 더럽혀진 44개의 서슬이 칼날의 형태로 합쳐진다.
「첫 일격을 방패로 막아서 내 앞에 놔둔 것도 사실 다 계산된 거였겠지. 내가 모를 줄 알았나?」
카이센은, 붕괴하는 바닥 위를 튕기는 용혈 혈청 주사기를 유리째 씹어서 몸을 재생시킨다…….
「그리고 슈르비엘의 망치는 이렇게 쓰는 거다.」
그러기 무섭게, 시야가 포악한 순백으로 물든다. 전신이 그 순백의 초고열 속에서 타들어간다.
「내가 이런 기술들을 대체 몇백, 아니 몇천 번 봤다고 생각하냐, ‘가짜’? ‘진짜’들이 쓰던 원조 격 기술로!」
그 섬광 속에서, 몸이 일순간 허공으로 떠올랐다.
숨, 숨이…….
뼈를 으스러뜨리는 악력과 중력이 목에 집중되어 숨이 막혔다.
「패인이 궁금하냐? 네 힘들을 저 방패로 빨아들이고 그걸 요니울란에 넘겨서 폭발시킨 것뿐이다. 네 개수작을 그대로 돌려줬지. 이 힘의 본래 이름이 뭔지는 아냐? ‘파장 전환’이라고 한다.」
그게 무슨…….
촉매인 방패만 있으면, 솔랑의 절원을 사용할 수 있단 소리인가?
「알카이오스가 봤더라면 비웃었을 정도로 초보적인 모방에 불과한 이걸 무슨 비기라도 되는 양 받드는 너희 같은 쓰레기가 뭐? 용사? 웃기지도─」
그때, 빛의 파장이 하나의 쐐기로 집약되어 날아들었다.
이 힘은…….
낯익고도 살벌한 기운을 느낀 뤼카엘이 비켜서자, 순백의 극점이 강풍을 일으키며 머리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카이센을, 놔줘…….”
엘디아 카타(05) 에누엘의 진성검, 샤릴리온.
그녀의 죽은 전우가 사용할 때의 샤릴리온은 옛 왕들조차도 두려워 떠는 위엄으로 천좌를 겨눴었다.
다 죽어가면서 호흡조차 깔딱대는 저 가증스러운 계집처럼 기세만 등등한 게 아니라.
「둘 다 사이좋게 죽여서 네 어머니 곁으로 보내줄 테니 보채지 마라.」
그 순간, 주황색 광촉(光鏃)이 뤼카엘의 어깨 위에서 돋아났다.
몸을 순간 비틀지 않았더라면, 심장을 꿰뚫려 절명했을 정도로 정확하고 날카로운 일격.
아니, 만약 진성검 히스기비드가 저 손에 들려 있었더라면 피했어도 치명상을 면치 못했을 테지.
주황빛이 카듀엘의 기체에서 폭발하듯 방출되고 있었다.
그 빛이, 활 쥔 인간의 윤곽을 이루고 있었다. 기계 부위는 자연스레 심층부가 되었다.
그 모습을, 그 비참한 모습을 쳐다보는 뤼카엘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제발, 그만, 좀, 해…….」
[……?]「제발 그만 좀 하라고! 너와 나, 우리들은 심연의 왕, 그 권속, 귀족을 수도 없이 베었잖아! 그런데 네 꼴을 봐! 고철덩어리 안에서 연명하는 그 꼴을 보란 말이다! 이게 정당한가?」
잠시, 맹렬한 적막이 흘렀다.
[뤼카엘, 토기가 토기장이에게 자신을 무슨 용도로 지었는지 따지고 드는 게 옳다고 봅니까?]촤르르르르륵!
다시 한번 44개의 쇳조각으로 분열된 칼날이 카듀엘을 어렵지 않게 붙잡았다.
「이게 옳다고? 이 애송이의 꼴을 봐라! 여태껏 그렇게나 남들을 위해 싸워왔는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곳으로 내몰린 꼴을! 우리랑 똑같이!」
[뤼카엘……!]「말해봐! 힘을 가졌단 이유만으로 무조건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그러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이딴 세상에, 대체 무슨 가치가 있는지!」
소리들이…….
저 모든 소리들이 점점 멀어져간다…….
[……모두 움직여라. 늑대들이 또 나타났다……!] [……반대쪽 방향에서 또 다른 적입니다……!] [……잘했다, 제군들……!] [……저, 저기서도 끝도 없이 몰려오잖아……!] [……너무 많고 또 눈보라가 너무 강해져서 이제는 일일이 셀 수도 없습니다……!] [……모, 몸이 얼어붙는다, 사, 살려줘……!] [……담대히 싸우자! 신들의 축복을 받은 우린 어떤 환란에도 물러서지 않으리니……!] [……여기는 제4기갑연대, 거신이 기동되지 않는다! 스팀코어가 파괴된다! 조종석의 문이 열리지를 않아! 어, 얼어버려서, 끄아아아아아악……!]그 소리의 장벽을…….
점차 흐릿해지면서도 또 넘어설 수는 없이 견고해지는 그 장벽을 뚫고…….
《팔자 뒤지게 좋네. 지금이 잘 때야?》
너무나도 선명하게.
또 너무나도 눈부시게.
《어휴, 몸뚱어리는 산만 해져놓고 질질 짜는 건 옛날 그대로면 어떡하냐?》
눈물겹도록 아련한 광채 속에서.
짧은 일평생.
유년기가 끝난 이후의 평생 동안,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당신이 눈앞에 와 있었다.
《지금은 울 때가 아니야. 아니라고, 자식아. 저 소리 안 들려? 모두 널, 용사를 찾고 있잖아.》
잠시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육신의 고통 때문이 아니라, 함부로 소리를 내려 했다가 이 마지막 꿈이 깨어지기라도 할까 봐.
《그러니 일어나. 일어나야 해, 카이센 알터 아라다만텔.》
그저 가슴 아픈 온기 속에서.
붉게 물들었던 세계가 희뿌연 빛 속에서 뭉클거리며 부서져갈 뿐.
“스승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