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79)
가짜 용사 이야기-79화(79/310)
제79화
「……육신이 없으면 그 차가운 껍데기에 영혼이 갇힌 채로, 죽지도 못한 채 오직 노예로 부려지기 위해 우리는 창조된 건가……?」
뤼카엘이 절규하듯 토해내는 소리는, 벽에 둘러쳐진 곳에서의 울림처럼 웅웅거리며 들렸다.
「……그러면 우리들의 의지는? 우리는 하나의 생명답게 살아갈 자격조차 없느냐고……!」
분명하게 그 형체가 보이고 또 음성이 들리는 건 오직 앞에 서 있는 한 사람.
삶에서, 단 하나뿐이었던 사람.
그 하나뿐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너무나도 늦어서, 줄곧 그리워해왔던 사람.
《스승님은 무슨 염병. 평소대로 해. 와, 오글거리네. 여기 소름 돋은 것 보이냐?》
그것은 카밀라 알터 아라다만텔의 잔류 사념이었다.
극위성검 아라다만텔, 그 내부에 남아 있던 혼백의 잔여물.
어쩌면, 남아 있던 게 아니라 제자가 이렇게 한심해지는 순간을 위해 남겨두셨던 건지도 모른다.
[……엘디아 뮤(04)는 완전히 타락했습니다, 작은 주인님. 당신께서 한 가닥 희망에 걸어보자 하셨지만, 당신만이라도 탈출하십시오……!]일어설 수가 없었다.
기력이 없는 건 둘째 치고, 일어선다고 해도 어떻게 대적하는가.
모든 게,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검술들이 상대방의 손바닥 위에 있는데.
《야, 정말 모든 게 저년의 손바닥 위에 있다고 생각해? 진짜? 대충 눈대중으로 베꼈을 뿐인 절원들이라 안 통한 건 아니고?》
스승님이 말했다.
더없이 고결한 순혈의 칼, 아라다만텔의 칼날을 어느새 그 손으로 붙든 채.
「……그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이제 모두 다 끝난다. 약자는 게으르고 의존적이고 자기 개선의 의지조차 없는 쓰레기들이야…….」
그 순혈의 칼날이 순백의 칼집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저 애틋하던 어린 날.
처음으로 십문자도를 가르쳐줄 때 보여주었던 동작 그대로.
「……그런 약자들을 위해 희생해야만 하는 세계라면 이대로 멸망하는 게 옳겠지…….」
스승님께서 가르치신 건 십문자도의 사도(邪道).
오직 4식 발(發)로 시작되어, 단 한 번의 참격에 모든 위력을 집중시키는 검.
오직, 제자를 위해 고안하고 그 제자의 손에서 완성된 그 검, 뤼카엘은 그 검을 모른다.
「……내가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리겠다. 인간의 역사, 그건 강자에게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해온 위선적 세계에 불과해……!」
꿈틀…….
피 웅덩이 속에 쓰러져 있던 손가락이 움직였다.
「……카듀엘, 너와 나는 지배할 수 있는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 지배하지 않아도 원하는 대로 살아도 된다고……!」
쿨럭…….
목구멍에서 메말라 눌어붙어 가던 새까만 핏덩이를 토해낸다.
주먹으로 땅을 밀어내며 상반신을 일으킨다.
「……생각만 해도 황홀하지 않나? 그런 삶은 매순간 얼마나 환희에 찰까? 그런데, 그런 너와 내가 오직 죽기 위해서 태어나 죽기까지 싸워야 한다니, 넌 어떻게 그걸 따를 수 있는 거냐……!」
신체 수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재생력에 사용할 수명이 더는 남아 있지 않다는 증거.
「……저 넓은 우주에 누구보다 큰 관심을 갖고 있던 너였잖아! 그런데 왜 그렇게나 집요하게 카렌덴을 따르는 거지? 그 작자는 우리에게는 어떤 애정도 관심도 없는데……!」
손발이 미친 듯이 떨린다.
죽어서, 이제 뇌로부터 신호를 받지 않던 모든 체세포들이 움직이게 되는 반동일까.
「……나와 같이 가자, 카듀엘. 알카이오스와 같은 전철을 밟지 마. 그렇게만 해준다면 너도 새 육신을 받을 수 있게 내가 요토스에게 중개해줄…….」
양손을 공손히 내밀어 아라다만텔을 받들었다.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칼을 받아드는 순간, 그 무게 때문에 관절이 빠지는 듯한 격통이 솟구치며 자세가 흔들렸다.
극위성검은 성검이 인정한 대리자에게 한해서는 일반적인 검보다 더 가벼운 검인데도 불구하고.
《이것 봐라? 이제 나보다 키가 머리 하나도 아니고 둘은 더 커졌네.》
쓰러질 뻔했다.
아니, 쓰러졌을 것이다.
당신이 뒤로 다가와 몸을 받쳐주지 않았더라면.
「이미 심장은 멈췄을 텐데…… 어떻게 일어난 거지?」
훈련용 태도의 칼끝을 세우는 것조차 제대로 못 하고 그저 파르르 떨기만 하던 저 어린 날처럼.
그때 당신께선 웃지 않았어.
장총 진도 웃고 엘토람도 웃고 다른 용병들도 마구 웃을 때, 당신께서는 단 한 번도.
「발악해봤자 소용없다. 넌 뭘 해도 나를, 내 요니울란을 못 이겨.」
그저 그 두 손으로.
내 손목을 감싸고 무릎과 발을 움직여 주어서 자세를 하나하나 친절히 교정해 주셨을 뿐. 그렇게 웃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손도 커졌고.》
사실 지금처럼.
속으로는 웃고 계셨던 거군요.
《하하.》
그 손길의 상냥한 온도로부터 세세하게 전해져온다, 이 칼을 어떻게 뻗어서 휘두르고 다시 거두어야 하는지.
「대체 왜 싸우는 거냐. 무엇 때문에 죽어서도 싸우냔 말이다. 이길 희망이라도 있나?」
그렇게 갖추어진 한 줄기 세(勢)는 다만, 양발을 넓게 벌리며 무게중심을 낮추는 자세.
상체를 왼쪽으로 크게 비틀어, 칼집 쥔 왼손을 등 뒤에 둔 자세.
그리고 오른손을 그 칼자루 위에 포개듯 얹은 자세.
그래…….
그것은 발도의 기본자세…….
어떠한 겉치레도 과장도 없다.
단순할 정도로 간단하게, 오직 한 가지 동작…… 즉 발도에 전심과 전념을 쏟을 뿐인 자세.
“이길 수 있어서…… 싸운 적은…… 한 번도 없어…….”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답한다.
내 삶의 증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봐온 용기의 선진들의 발자취를 말하기 위해.
“싸워야 하니까…… 싸워서 이겨야만 하니까, 그러니까 계속 싸워온 것뿐이지…….”
스승님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선배님들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세이라나 이슬라가 나 대신 여기 있었더라면, 이렇게 했을 테니까.
“나는, 우리들은, 용사(勇士)니까…….”
프롤로그의 에필로그,
가짜 용사 여기 잠들다 (5)
「용사? 네까짓 게?」
요니울란이 격노하며 44개의 쇳조각으로 분열하는 걸 보고, 호흡을 멈추고 모든 걸 담는다.
이게 내 삶의 마지막 호흡.
이게 내 삶의 마지막 휘두름, 이게 내 삶의 마지막 발도, 내 삶의 마지막 일섬.
‘스승님.’
손가락 하나에.
어머니와 함께 풀밭을 구르던 날의 웃음을.
‘단 한 번도…….’
손가락 하나에.
그 장맛비 내리던 날 스승님이 지으셨던 미소를.
‘……부끄러워서 말로 표현한 적은 없었지만.’
또 손가락 하나에.
복숭아 향기가 코끝을 살랑이던 산맥에서의 날 로베리스 선배님께서 주셨던 책의 종이 냄새를.
‘저 말입니다…….’
그리고 또 손가락 하나에.
새끼손가락을 걸고 활짝 웃던 이슬라의 약속의 온기를.
마지막 손가락 하나에.
우리는 혼자가 아니잖아, 라고 말하며 손을 내밀던 세이라의 목소리를.
‘……항상.’
그리고 칼집 쥔 왼손에는 지금까지의 모든 인연을…….
저 먼 고향 땅에서 물비늘 위로 가득 깔린 황혼의 수평선, 그 황혼을 보며 함께 손잡고 걷던 부모님과 누나의 목소리를.
장맛비가 끝없이 쏟아지던 <아리스타포>, 그 공방전에서의 카밀라, 울프, 엘토람, 진, 뇌향, 샤론, 리아의 유혈과 주검과.
‘당신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위용검전>에서의 올리에르 수석 교관, 오주 요슈하르, 세이라, 이슬라의 가르침과 배움을.
<케르크누드> 공방에서의 빛으로 온 청성과 적색산맥 회전에서의 로베리스, 메른, 트발, 알리도나, 철십자, 할바론, 홍염의 아키레아…….
지금까지의 삶을 지탱해오고 또 짊어져왔던 그들의 삶을, 지금 이 순간 이 칼날 위에 모두 담아서.
“절원(切願), 대홍견섬무참(大紅絹殲霧斬).”
그 일격에는 빛도 없었고 소리도 없었다.
세계조차, 만상의 법칙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찰나 그 너머의 시간대에서, 어떤 꽃이 피어났다가 저물었다.
그 꽃은 쇠가 나무를 긁으며 솟구칠 때의 꽃이자, 피육의 연결점을 정확하게 자르는 꽃이고, 다시 나무를 긁으며 저무는 꽃이었다.
그 꽃의 개화와 낙화를, 세계도 듣지 못했고 보지 못했다.
오직 세계의 법칙을 초월하는 자들만 간신히 인지할 수 있는 우주적 초읽기의 세계에서의 일섬.
그 발도는 ‘속도’라는 이름으로 모든 동작에 초자연적 규제를 거는 섭리 그 자체를 베었다.
반 박자 늦게.
세계의 법칙을 구현하는 방정식에 이상이 생긴 것을 감지한 섭리가 황급히 그 오차를 수정해 나가기 시작한다.
소용돌이치며 날아들던 보랏빛 파열(破裂)이 갈라졌다.
그 불꽃을 휘몰던, 진성검 요니울란의 뼈대에서 여러 파편으로 갈라진 칼날들이 기세를 잃고 헝클어졌다.
그렇게 벌어진 허점.
그러한 찰나의 틈새로.
뤼카엘의 흉갑이 부서지고 살가죽이 베이고 근육이 잘리고 뼈가 절단되고 심장이 터졌다.
그 참격의 증거물은 오직 하나.
마찰의 불티를 날리며 하늘로 솟아오르는 아라다만텔의 칼날. 진성검의 강도를 견디지 못하고 부서져버린 극위성검의 파편.
섬(閃).
뒤늦게 천지를 붉게 물들인다.
세계를 벤 발도의 섬광이.
챠아아앙!
빛보다 뒤늦게 산하를 울린다.
격살의 금속음이.
챙그랑.
부러진 칼날의 파편이 지반을 때리며 맑은 청음을 흘린 것과 반쯤 동시에.
퍼어어어엉!
음속 폭음이 격동, 그 격렬한 음파의 폭주 속에서 세계가 피를 흘리며 상하(上下)로 구분되었다.
‘칼을 못 뽑은 게 아니라.’
그 음파에 휩쓸리면서, 뤼카엘은 멍하니 가슴에 손을 얹었다.
‘이미 휘두른 다음 칼집에 꽂은 거라고? 이런 건 알카이오스도─’
그 순간 상반신이 참격의 압력 속에서 폭발하듯 소멸하고…… 사라진 육신 위로 영혼의 핵(核)이 오롯이 드러난다.
[작은 주인님!]그 핵이 정중앙을 꿰뚫는 샤릴리온의 칼날, 육신을 초고속으로 수복시키던 불멸의 힘이 정지된다.
“뤼카엘…….”
타르시요의 칼자루 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주인을 잃은 요니울란이 붕괴되는 지면에 내동댕이쳐지며 구슬피 울자 샤릴리온이 공명했다.
카듀엘은 가슴에서 사무치는 비탄이 냉정을 잠식하게 놔두지 않았다.
[지하 5층의 지층 분열을 확인, 관제실을 비롯한 모든 설비가 파괴되었습니다. 어서 탈출하셔야 합니다.]그 말이, 사명의 마지막 푯대를 통과한 것처럼 느껴졌을까.
털썩, 카이센의 무릎이 꺾였다.
초월의 힘이 사위어가는 빈자리로, 사각사각사각, 기다렸다는 듯 심연의 벌레들이 밀려들고 있었다.
[……뭐지? 뇌향 각하, 차원문이 닫혀갑니다……!] [……살았다! 살았습니다! 각하, 서리 괴물들이 닫히는 문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기적이다……!] [……기적이 아니다! 또 두 분께서 해내신 거다……!]대지가 진동하고 있었다.
절단된 시설 하부가 사방에서 전류를 튀기며 붕괴하고 있었다.
옆으로 기울며 미끄러지는 상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카이센, 전이 역장이 유적 안까지 닿지 않는다. 카이센, 지금 밖으로 나오고 있느냐? 대답해다오, 내 사랑하는 아이야…… 네 몸은, 타르시요께서는 무사하시더냐?]신기해.
육신은 검게 썩어 문드러지고.
의식은, 영혼은 새까맣게 침식되어 붕괴되어 가는 와중에도 네 빛만큼은 선명하게 보여.
“카이센.”
이 거칠게 날뛰는 붕괴의 진동 속에서도, 이마에 와 닿는 네 온기만은 분명하게 느껴져.
[작은 주인님, 그의 생명 신호는 이미…….]타르시요…… 몸은 괜찮냐?
너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냐?
뭐 해, 빨리 나가지 않고.
[……심장은 2분 전에 멈추었고 곧 뇌파도 정지합니다. 지금까지 움직인 게 기적입니다.]지금,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도달해서야, 먼저 죽은 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앎은 아프고 슬펐다.
걱정이다. 혼자 남겨진 이 녀석이 잘 싸워 나갈 수 있을지, 울지는 않을지, 슬픔에 무너지지는 않을지.
“나 말이야, 사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어. 그래서 이 순간이 최대한 늦게 오길 바랐는데…….”
이제야 알겠다. 이래서 다들, 웃으며 죽었다는 걸.
그 마지막 웃음 위에.
말할 힘이 없고, 말할 시간이 없는 말들을 담기 위해.
“아버지가 그러셨거든. 내가 샤릴리온을 쓰게 되면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될 거라고.”
타르시요, 있잖아.
만약에, 나중에 저 위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 먼저 말을 걸어줄래?
“그리고 있지? 그 남자 대신 죽어서 아버지가 있는 곳에 보내주게 될 거랬어.”
난 쑥스러움이 많고.
또 노인이 네가 날 기억하지 못할까 두려워.
“내 어머니한테는 타인의 심연을 당신의 몸으로 옮기는 특수한 힘이 있었대. 내가 그 힘을 조금 물려받았고. 아마, 아니, 분명,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그랬나 봐.”
붕괴가 끝난 뒤에, 내 시체를 거두어줘.
내 영혼에 있다는 유르벨뭉인지 하는 검을 어떻게든 빼낼 방법이 있을 거야.
나는 이제 끝─
“─끝이 아니야.”
뭔가, 슬플 정도로 따뜻한 것이, 그래, 생명의 꿈틀거림이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
반대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싸늘하고 질퍽거리던 것이, 육신의 죽음과 영혼을 파먹는 심연이, 들어온 통로를 따라서.
“네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야.”
육중한 문을 들어 올리는 것보다도 버거웠던 눈꺼풀이 서서히 올라갔다.
눈이 뜨이고 빛이 비쳐든다.
타르시요가 내 손을 움직여 진성검 샤릴리온의 칼자루 위에 얹어주고 있었다.
“다녀와, 카이센. 난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그것이, 마지막으로 본 네 미소.
심연이, 그 전신을 검푸르게 뒤덮으며 삼키기 전에.
지금껏 보아온 그 어떤 것보다도 더 맑고 아름다운 너의 미소.
“오는 길에 바람피우면 안 된다?”
그래, 그건 분명.
너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어렴풋이 느껴온…… 슬픈 운명의 예감을 완성시키는 미소였을 거야.
“여행 가자는 약속,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
그 마지막 말에, 마음이 완전히 엉망진창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아니, 바로 그렇기에.
입꼬리를 겨우 끌어올리는, 흐느낌을 억누르기 위해 만들어지는 미소로 대답할 수 있었다.
“야 이 바보야, 내가 해야 할 말을 네가 하면 어떡해…….”
진성검 샤릴리온의 빛이 극점에 달하며 눈앞에 기괴한 문자열이 펼쳐진다.
[적합성 심사 중…….]그리고 나는 떨어진다.
먼 고대, 이 땅 위에 벌어졌다는 빛의 군주들과 옛 왕들의 전쟁 속으로.
[적합성 심사 완료 : 1377%.] [엘디아 오메크(06) 프로젝트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