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81)
가짜 용사 이야기-81화(81/310)
제81화
후세에 ‘신성 엘리미네 기사단’이라 기록된 부대에 배치되는 것으로 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우주세기 4세대 – 635년 4월 4일.]에누엘, 즉 나는 ‘D36-CC급 수직이착륙 수송기 : 켈토로스’에 탑승하여 실험실을 떠났다.
수송기(輸送機).
이 낯선 물체는 금속 판자들이 새의 형상으로 조합된 것이었는데, 이 육중한 질량으로 어떻게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할바론이 <온 것들>은 기술력이 몇천 년은 앞선 문명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이게 과연 몇천 년을 앞섰을지, 아니면 몇만 년을 앞선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행성 좌표 : 발라돈.]둔하게 웅웅거리는 엔진 가동음. 하늘을 미끄러지듯 활강하는 동체의 흔들림.
기압 차이로 인한 고막의 통증, 기름의 냄새, 그리고…….
어깨에 기대진 채, 찬란한 은광으로 명멸하는 진성검 샤릴리온. 그 슬픈 광휘.
– 약속,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
이별의 슬픔을 기댈 곳이 없어서, 다만 샤릴리온의 칼자루를 몸 깊숙이 끌어안고 숨죽여 울었다.
고도를 낮추는 수송선의 창문, 그 너머로 비치는 세계의 경치는 진실로 참담했다.
심연(深淵)에 침식돼 썩어가는 대지와 바다의 악취는 이 수송기 내부에까지 끼쳐왔다.
‘낯익은 냄새, 죽음의 악취…….’
이 세계의 모든 피조물을 삼키고 부수고 썩히는 그 악취가 의식의 스위치를 전투용으로 전환시켰다.
샤릴리온을 쥐고 일어서며, 내릴 준비를 했다.
샤릴리온에게는 칼집이 없었으나 그걸 패용하기 위한 검대라거나 붕대(쉬르팽처럼)가 필요 없었다.
‘대충 이렇게 등 쪽으로 가져다 대면…….’
갑주에서 딱딱한 기계음이 일면서, 등갑이 샤릴리온의 칼날을 자기력으로 끌어당겨 고정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수송기가 이착륙장에 내려서며 미세한 충격이 전해졌다.
초대형 개구부(開口部)가 천천히 내려가는 압력에 착륙장을 검푸르게 뒤덮고 있던 안개가 회오리치며 흩어졌다.
[새로운 지역 : 렐타론.]<렐타론>은 요정의 땅, 이데아 반도의 중남부에 위치한 신비의 고장이었다.
– 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래.
여행서를 읽으며 타르시요는 그렇게 눈을 반짝였었다.
– <온 것들>이 최초로 강림한 성역.
그러나 이 시대에는 아름다움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군사적 전진기지라는 느낌이 강했다.
유년기 때부터 전장에서 살아왔음에도, <렐타론>은 너무나도 낯선 곳이었다.
<온 것들>의 손길이 닿은 땅을 목도한 건 이게 처음이었기에 넋을 잃고 발길을 멈추길 반복했다.
구조물들은 신비 그 자체였다.
내 시대에는 나무나 흙, 벽돌 따위로 구조물을 세우는데 여기서는 재질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토대를 이루었다.
‘한눈에 봐도 수백 배는 견고하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라니.’
도로도 신비롭긴 마찬가지였다.
양쪽으로 늘어선 등불이 구역 전체를 대낮처럼 환히 밝혔는데, 내 시대의 가스등과는 비교도 안 되는 밝기였다.
무엇보다도 경이로웠던 건 바로 병사들이었다.
[보병 개체 : 크라엘.]ㆍ 식별 번호 – KA82-1114.
ㆍ 크라엘 개체는 ‘처연한 달, 테르시아’의 유전적 정보를 복제하여 만든 클론 군대입니다.
무장도 신체도 일률적이었다.
강인한 철갑으로 전신을 뒤덮고, 기이하도록 긴 창과 방패를 쥐고 발을 맞추어 행군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 주위로 수송선들이나 구륜 구동 차량들이 끝도 없이 지나가며 먼지를 날렸다.
“루-엘라(천사들이시여).”
“루-엘라(천사들이시여).”
“루-엘라(천사들이시여).”
지저분한 행색에 뼈가 드러나도록 야윈 인간들이, 그 길 위로 엎드려 절하는 것도 보였다.
[최초의 해방민들.]– 이데아 반도에 위치한 이들은 가장 먼저 빛의 회복을 경험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 그들은 크라엘 부대가 궤멸되어갈 무렵 자원하여 해방전선에 동참합니다.
– 그들은 그 헌신의 징표를 받기를 원했고, 카렌덴으로부터 귀를 길쭉하게 만드는 할례(割禮)의 축복을 받아 인류와 구별되게 됩니다.
할례? 할례라고? 그렇다면 이들이 요정의 선조란 말인가?
인간과 요정의 오랜 갈등이 어디에서 시작됐던가.
요정들이 자신들을 ‘첫 번째 자손’이라고 부르며 다른 종족 모두를 깔보고 더럽게 여기는 역사에서 기인하지 않았던가.
‘이게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일부로군…….’
그걸 쳐다보고 있자니, 해방민들이 하나둘씩 이쪽을 바라보며 더 크게 절하기 시작했다.
“루-사엘라.”
“루-사엘라.”
“루-사엘라.”
루-사엘라.
대천사(大天使)라는 뜻이란다.
<온 것들>은 해방민들에게 신이었으니, 그들을 돕는 전사들은 천사로 여겨진 것일까.
「엘디아 카타(05).」
그러나 그러한 모든 신비조차도, 다음 순간 마주한 인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망연히, 입이 벌어졌다.
세상의 그 누군가가 이렇게나 신성한 빛을 전신으로 뿜어낼 수 있단 말인가.
[새로운 인물 : 카렌덴.]신화시대(神話時代),
타르혜 론델ㆍ엘디아ㆍ거듭남 (2)
[새로운 인물 : 카렌덴.]– 후세에 ‘검은 태양’이라고 기록되는 카렌덴은 창세시편의 첫 번째 계승자입니다.
– 카렌덴은 자신이 거느리는 빛을 부담스러워하여, 검은 안개를 만들어서 이를 숨겼습니다. 그것이 검은 태양이라는 별호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강렬한 성령과는 대조적으로 외형은 놀라울 정도로 평범했다.
「조금 늦긴 했지만 아주 완벽한 게 나왔군.」
갈색 더벅머리 아래로 주근깨 덮인 얼굴.
복장 또한 간단한 무장 위에 새하얀 백의를 걸친 것이 전부였기에 빛의 군주라기보다는 기술자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아인들처럼(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지만), 신장이 왜소한 축에 속했다.
「네 이름은 이제부터 에누엘이다. ‘광야에 외치는 소리’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 얼굴에…….
그 얼굴 어딘가에 타르시요의 얼굴이 섞여 있어서 심장이 부서질 듯 아파왔다.
주먹으로 가슴을 누르며 숨을 헐떡대자, 카렌덴의 눈이 가늘어졌다.
「엘디아 프라이모아와 그 육체와의 호환성에 문제라도 있나? 오류가 발생할 리가 없는데.」
고개를 가로저어 무례를 사죄하려는데, 저 의견에 반박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오류인 것이다!”
“오류인 거예요.”
“오류일지도 몰라요, 아버지.”
그때 처음 보았다.
어떤 화염보다도 맹렬하고, 어떤 햇살보다도 눈부시고, 어떤 바다보다도 청아한, 그 경이의 존재들을.
그들의 정보를 뇌로 인식하기 전부터, 영혼에 깃든 광룡 하라데리만의 파편이 슬프도록 뜨겁게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삼두룡 아수라.]– 아수라는 카렌덴이 심연의 주인 요토스의 외형을 본떠서 만든 생물 병기, 용족의 원형입니다.
– 화염의 위엄, 벨’다키둔. 여명의 관능, 하라데리만. 고요의 색채, 예리세리카.
– 후세에 그들은 삼신룡(三神龍)이라는 이름으로 <온 것들>이 사라진 세계를 지켜 왔습니다.
카렌덴 주위에서 꼼지락대고 날아다니며 순수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새끼 용들.
‘이게 그 삼신룡이라고……?’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 삼영룡보다도 더 위대한 업적을 이룬 존재들 아닌가.
저도 모르게 그 거룩한 존재들의 유년기에 진심 어린 경외를 바치고 있었다.
[대사 동기화 : 에누엘입니다.]「에누엘입니다.」
문자열이 제시한 대사와 함께 고개를 숙여 묵례한 그 순간이었다.
화룡 벨’다키둔이 머리 위로 날아와 앉아 깍깍 짖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 몸의 온기가 정말, 너무, 너무나도…… 따스했다.
“에누엘은 오류인 것이다! 오류! 오류!”
겨울날의 장작과 같은 향기…….
낯익다.
그래, 이건 홍염의 아키레아께서 거느리시던 그 향기와 똑같아. 아니, 더 강해.
「까불지 말고 이리 와.」
“와, 와, 와, 이리 와아아아!”
「미안하군. 너와 달리 실패작들이라 그런지 말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파란 놈만 그나마 얌전하고 다른 두 놈은 천방지축이라 속만 썩이지. 조만간 폐기 처분할 작정이다.」
말만 그렇게 했을 뿐, 장난을 치고 돌아온 벨’다키둔에게 손찌검 하나 하지 않았다.
말로 표현하지만 않을 뿐, 저 마음속에는 타르시요와 똑같은 상냥함이 있는 것일까.
부녀로서 몸도 마음도 자연스레 닮아가는, 그 닮음의 빛은 진실로 반갑고도 슬펐다.
「이제 따라와라, 에누엘. 조금만 늦었어도 두고 갈 뻔했다. 네 힘이 필요하다.」
그 목소리는 감정의 빛 하나 찾아볼 수 없이 싸늘했으며 표정은 무미건조했다.
그러나…….
새끼 용 세 마리가 그 양쪽 어깨와 정수리에 앉아서 짖어대고 있어서일까?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거느렸음에도 카렌덴은 우스꽝스럽고도 친근하게 보였다.
‘아, 타르시요.’
네가 이 모습을 함께 볼 수 있었더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아니, 지금 여기서 나 대신 볼 수 있었더라면…….’
카렌덴을 따라 <렐타론> 중심부의 초거대 사령부로 향하면서 몇 번이고 그렇게 생각했으나.
「저게 새로 완성시키신 카타(05)입니까? 아슬아슬했네요.」
그 슬프기에 아프고.
아프기에 고통스러운 생각은.
사령부 내부로 들어간 순간, 머리로 쏠리는 혈기 때문에 시뻘겋게 부서졌다.
뤼카엘.
호흡이 가빠지면서 손이 솟구쳐 샤릴리온의 칼자루를 움켜잡으려 했다.
움켜잡고 바로 휘둘렀을 것이다.
세계가 멈추더니, 경고문이 시야 전체를 잠식하지 않았더라면.
[경고 : 동기화율 급락, 에누엘이 수행하지 않은 행동을 반복 시 적합도 재심사가 진행됩니다.]깊은 몸속 증오의 칼이 울면서 칼자루 쥔 손이 경련을 일으켰다.
베자, 베어야 한다.
여기서 다시 베어서, 베어야…….
[경고 : 동기화율 급락, 에누엘이 수행하지 않은 행동을 반복 시 적합도 재심사가 진행됩니다.]보이지 않는 사슬에 붙들린 듯,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었다.
여기서 부적합 판정을 받으면…… 엘디아가 되지 못한 채 다시 저편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무엇 때문에…… 타르시요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죽은 거란 말인가…….
[경고 : 동기화율 급락, 에누엘이 수행하지 않은 행동을 반복 시 적합도 재심사가 진행됩니다.]뜨거운 침을 고통스럽게 넘겼다.
격분을 진정시키자마자 회색으로 멈추었던 세계가 다시 색과 동력을 되찾았다.
숨을 허덕이던 그때 작달막한 무언가가 손목을 꼬옥 잡았다. 수줍은 말투로 더듬더듬 말했다.
「마, 많이, 히, 힘들어 보여. 저기, 저기에 앉아.」
숨이 막혔다.
일순 이슬라? 라고 말할 뻔했다.
꼭 껴안으면 부서질 듯 작은 소녀였다. 자기 몸집만 한 대망치를 등에 차고 다니는 전사였다.
이슬라와 성격은 달랐다.
책처럼 생긴 데이터 단말기로 눈 아래의 얼굴을 가리고 눈동자를 조심스럽게 굴리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누구지?’
이 아이는 대체 누구인가.
누구이기에 또 죽은 전우를 이렇게나 선명하게 떠올리게 하는가.
그 의문을 품자마자, 저 머리 위로 떠오르는 설명문이 있었다.
[새로운 인물 : 슈르비엘.]– 슈르비엘은 세 번째 엘디아로 식별 번호는 델(03)입니다.
– 무장은 11위계 장비인 아이자이야이며 특수 능력은 ‘광압 파쇄’입니다.
망연한 신음.
아니, 이렇게 작은 아이가……?
「알카이오스, 에누엘은 이제 너에게 맡긴다. 3분 뒤 출격이니 분대 편성은 이동하면서 하도록.」
「예, 주인님.」
카렌덴의 몸이 검은 안개에 휩싸이나 싶더니, 별안간 삼신룡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눈이 크게 뜨였다.
차원 전이 마법을 뇌향 각하보다도 간단하고 빠르게 쓰는 존재가 있다니…….
「엘디아 카타(05), 이동하면서 이야기하지. 나는 엘디아 알마(01) 알카이오스다. 주인님에게 받은 이름은?」
목소리에조차 무(武)의 위엄이 살아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한 자루의 칼날처럼 벼려진 살기.
고고하고, 깊고, 드높다.
2천 년 뒤의 뤼카엘의 거친 살기와는 달랐다. 이 살기에는 가늠치 못할 품격조차 어려 있었다.
[새로운 인물 : 알카이오스.]– 알카이오스, 필두 엘디아.
– 알카이오스는 엘디아 프로토타입으로 항쟁 초기부터 <온 것들>을 위해 종군해 왔습니다.
– 제11위계 무장을 두 자루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엘디아입니다.
– 그가 다루던 무장 갈라디엘은 태도형 극위성검 르노드와 아라다만텔의 원형이, 리벨덴은 장검형 극위성검 솔랑과 타스알포의 원형이 됩니다.
알카이오스의 키는 나보다도 머리가 한 개 이상은 컸는데, 그 어떤 엘디아보다도 강골이었다.
왼쪽 허리에 찬 태도 갈라디엘은 평범한 길이의 칼로 보였고, 장검 리벨덴은 소검으로 보일 정도로.
그래, 그렇군…… 아라다만텔은 애초에 태도가 아니었어.
그냥 알카이오스 전용으로 만들어진 크기의 외날검이었던 거야.
「에누엘입니다.」
대사 동기화 지문을 읊었다.
그러자 헬멧을 옆구리에 낀 채 밖으로 나가던 잿빛 머리카락의 여걸, 뤼카엘이 빙그레 웃었다.
「좋은 이름이네. 카렌덴 주인님은 시적인 이름 참 잘 짓거든. 창세시편인가 그걸 달달 외워야 하니 당연한 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 2천 년 뒤에는 카렌덴을 그렇게나 증오하고 있었으면서…….
「나는 엘디아 뮤(04) 뤼카엘. 내 옆에서 손가락을 꼼지락대는 건 델(03) 슈르비엘. 부끄러움이 많지만 싸울 때는 누구보다 무서운 애니 조심해.」
「아, 아니야…….」
그 밝은 표정에, 눈에 핏대가 떨렸다. 저토록, 순수하고 아름다운 얼굴로 말할 수 있었단 말인가.
왜, 천 년이 두 번 지난 후의 당신은 그렇게나 잔혹한 눈과 살기를 풍기고 있단 말인가.
대체 왜, 그런 당신에게 타르시요가 죽어야만 했는가.
「대장, 수송선이 준비되었고 출격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최우선 작전목표로 제1등급 심연 토벌입니다.」
그 낯섦의 고통 속에는 낯익은 존재와의 재회도 있었다.
[새로운 인물 : 카듀엘.]– 카듀엘은 두 번째 엘디아로 식별 번호는 베테(02)입니다.
– 그는 엘리미네 기사단의 지성을 담당했습니다.
– 고유 무장은 히스기비드, 차원을 통제하는 무장이며 이는 후세에 궁검형 극위성검 지에르다와 볼비에르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이 시대, 카듀엘은 고철에 영혼이 묶인 채 빛으로 이야기하는 존재 따위가 아니었다.
이지적인 인상에 날렵한 체격을 가진 미청년, 그 잿빛 머리 아래에 착용한 보안경은 지적인 빛을 발했고 목소리는 사무적인 듯하나 상냥했다.
시선이 맞닿자 카듀엘이 먼저 목례로 인사했다. 알카이오스가 이착륙장 쪽으로 걸으며 말했다.
「엘디아 카타, 카렌덴께서 창세신의 파편과 창세시편을 결합시켜 우리를 만드신 건 알고 있겠지.」
이때서야 정확히 알게 되었다.
우주 곳곳에 흩어진 창세신의 파편을 창세시편과 엮어서 만들어진 생명체, 그게 옛 용사 엘디아들의 기원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그토록 강했구나.
그렇기에 이렇게나 완벽하구나.
그런 생각을 송두리째 박살 내는 말을 알카이오스가 곧 꺼냈다.
「너는 가장 많은 파편과 또 가장 강력한 시편, 천명시편(闡明詩篇)의 조합으로 태어났다. 그 힘은 으스대라고 받은 게 아니다, 알겠나? 우린 장작임을 늘 유념해라. 이 시대를 밝히는 빛을 지키는 존재.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넌 누구보다도 큰 책임을 갖고 태어난 거야.」
강하게 태어났기에 강한 게 아니구나.
알카이오스의 신념은 찬란했다.
그 빛의 세기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눈부셨다. 나는 결코 닿지 못했던 깨달음이 저 안에 있는 듯 보였다.
「예, 대장님.」
<렐타론>까지 나를 이송했던 수송선은 아직도 착륙장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 옆으로 수십 대의 수송선이 더 착륙해 있었으며 수백 대의 수송선이 이륙하고 있었다.
알카이오스와 카듀엘이 E-72호기에 탑승하였으며 나는 뤼카엘을 따라 K-102호기에 올랐다.
뤼카엘이 또 피식 웃었다.
뤼카엘은 정말로 잘 웃었다. 혼란스럽고, 또 증오스러울 정도로.
「네 검, 그게 샤릴리온이지? 우리들이 쓰는 것과는 스펙 자체가 아예 다른데? 대장님의 검 리벨덴의 최신예 버전이라? 해방 능력이 일곱 배 증폭 방출? 캬, 끝내주네.」
「…….」
「야, 나 혼자 떠들라 이거지? 방금 샤릴리온이랑 네 데이터를 확인해 봤는데 신체 스펙이 미쳤네? 기종 자체가 우리랑은 다르다더니 정말이네.」
에누엘과 샤릴리온은 아무래도, 가장 늦게 만들어진 존재로 모든 능력이 가장 뛰어난 모양이었다.
「우, 우리를, 다, 다섯 번 만들 수 있는 파편으로도, 에, 에누엘은 하나도 못 만든대.」
그때 슈르비엘이 입을 열었다.
막 우리 뒤를 따라 수송선 개구부의 경사로를 올라온 참이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쪼르르, 정말 그런 소리를 남기며 달리는 사람은 처음이었으므로.
이슬라는 다르다. 쾅쾅쾅, 일부러 뛰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강조하는 타입이었다.
「잘 부탁해. 물론 대장님을 제외하면 우리끼리 상하 관계는 없지만, 우리가 너보다 약하다고 까불고 무시하고 그러면 진심으로 가만 안 둬.」
「어떻게 말입니까?」
「정면 승부는 좀 무서우니 따돌리든가 해야지. 그게 좋겠다, 그치, 슈르비엘?」
「따, 따돌려? 그러면, 안 돼.」
뤼카엘이 킥킥거리며 슈르비엘을 번쩍 들어 제 무릎에 앉혔다.
그러고선 그 작고 여린 볼을 양쪽으로 쭉쭉 잡아당겨 댔는데 슈르비엘이 얼굴을 붉히며 몸부림을 쳤다.
혼란스러웠다.
저러한 모든 모습이, 역사나 동화로 읽던 모습과 너무나도 달랐으니까. 실제로 봤을 때와도 너무나도 달랐으니까.
‘저 모습은 그냥, 그때 우리들과 다를 바가 없잖아…….’
이제는 영원히 되찾을 수 없는, 이슬라와 세이라와의 일상이 겹쳐지는 가운데 눈가가 붉어졌다.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2천 년 전에 에누엘이 했다는 말을 대본 그대로.
「……네, 알겠습니다.」
수송기 켈토로스의 회전날개가 일제히 돌면서, 육중한 기체가 먼지를 휘몰며 이륙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역사의 시작이었다.
어떤 기록도 감히 온전히 담아낼 수 없었고 또 담아내지 못한, 무수한 슬픔과 유혈의 희생 위에 세계가 기원(起源)하기까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