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84)
가짜 용사 이야기-84화(84/310)
제84화
신화시대(神話時代),
타르혜 론델ㆍ엘디아ㆍ거듭남 (5)
수런거리는 광기, 슈’율큘라와의 싸움은 네이갈라스와 달랐다.
힘 대 힘의 싸움이 아닌, 환각과의 싸움이었다.
슈’율큘라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과 느껴지는 모든 것을 뒤바꾸는 것으로 싸움에 임했다.
Sya……….
…Raia…………….
………Pataros…………….
뇌리를, 영혼을 끝없이 울리는 사악한 속삭임…… 공간의 기하학적 구조가 변형된다.
달리고 있다 싶으면 추락하고 있었고, 뛰어올랐다 싶으면 벽에 몸을 처박고 있었다.
그런 허점을 파고들듯, 석조물들과 문어발이 난데없이 솟구쳐서 치명상을 입고…….
[뤼카엘 : 의식 단절 중…… 이런, 꿈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왠지 모르게 대장님이 저 문어 대가리로 보이는데 환각이죠?]사실, 그런 문제는 약과에 불과했다.
인지 능력의 퇴락이 가장 큰 문제였다. 아군이 적으로 보이고 적이 아군으로 보였다.
요니울란과 아이자이야가 격하게 맞부딪치며 불 싸라기가 날렸다.
[슈르비엘 : 왜, 왜 그래? 아군이야, 뤼카엘!] [테르시아 : 슈르비엘, 우린 됐으니 넌 뤼카엘을 지켜!] [뤼카엘 : 아뇨!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쓰고 꿈나라 여행 좀 다녀오겠습니다!]요니울란이 보랏빛으로 공간을 제압하며 문어발 2개를 끊어내더니, 뤼카엘이 자신의 경추를 주먹으로 내려찍어서 스스로를 혼절시켰다.
[알카이오스 : 슈르비엘, 넌 뤼카엘 곁을 지켜라. 에누엘, 나아가라! 지원하겠다!]알카이오스의 허리춤에서 진성검 갈라디엘이 미끄러져 나오며 찬란하게 빛났다.
솔직히 말하자면…….
에누엘의 각인참을 쓸 때보다 더 무인(武人)으로서의 피가 끓어오른 순간이었다.
[전용 무장 : 갈라디엘.]– 갈라디엘의 특수 능력은 ‘위상 전환’이며, 해방 명령은 ‘내달려라’입니다.
갈라디엘이 내뿜는 혈광 속에서 알카이오스의 몸이 한 줄기 벼락으로 변했다.
벼락‘처럼’ 보인단 게 아니다.
그 속도가 벼락‘처럼’ 빠르다는 것도 아니다.
정말 육신이 벼락‘으로’ 변하더니…… 맹렬한 힘의 격류로 이리저리 내달리는 것이다.
‘저것이…… 아라다만텔이 절원으로 겨우 모방한 힘의 원형.’
슈’율큘라가 공간이나 중력 따위를 왜곡시킬 여유도 없었다.
그야말로 초광속.
낙뢰의 열기와 속도를 가진 섬광이 모든 문어발과 석조물 따위를 삼키며 길을 열어내고, 슈’율큘라에게 치명상을 입힌다.
[알카이오스 : 에누엘!]가슴팍에 붉게 타오르는 구멍을 뚫고 뒤로 나간 알카이오스가 다시 엘디아의 형상으로 돌아왔다.
「이동 중.」
그러자마자 왕의 문어발이 짓쳐들었으나, 알카이오스가 몸을 다시 벼락으로 변형시키며 손쉽게 회피했다.
「Kerukarudom……! 본좌는 바다의 지배자, 이 바다가 모두 본좌의 영지다!」
알카이오스가 만든 길을 따라 도약하려던 그 순간.
「본좌의 바다에는 빛도 없고 소리도 없고.」
불현듯 바다가 전율하더니 양쪽으로 물러섰다가 다시 강렬한 해류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오직 어둠과 적막만이 있을지니!」
심해의 어둠과 공포…….
양쪽에서 절벽으로 조여오는 바다에는 고대의 해저 괴물들이 포효하며 입맛을 다신다.
[슈르비엘 : 에, 에누엘! 오른쪽으로!]오른쪽의 파도가 빛의 폭압에 가로막혀 그 기세를 잃고, 허공에서 힘겨루기에 들어섰다.
그렇게 만들어진 건 찰나.
찰나라는 이름의 기회.
그 기회 위를 테르시아와 함께 고속으로 내달려 슈’율큘라에게로 쇄도했다.
[테르시아 : 알카이오스, 에누엘, 딱 한 번이면 되니 기회를 만들어줘.]그러자 알카이오스가 착지했다.
바다의 압력에 밀려 점점 사그라지던 광압 위쪽에.
그러고 나서 태도 갈라디엘을 납도하고 대신 왼쪽 허리춤에서 장검 리벨덴을 발검한다.
[알카이오스 : 뒤바꿔라, 리벨덴.]그 순간, 리벨덴의 칼끝으로 그 광압의 힘이 빨려 들어갔다.
2천 년 후 뤼카엘의 말대로다.
알카이오스는 솔랑의 흡수 능력을 정말 방패라는 촉매제가 없이 사용할 수 있었구나.
[알카이오스 : 가자, 에누엘.]갈라디엘의 칼자루에 손을 얹은 순간, 알카이오스의 몸이 다시 벼락으로 일변했다.
동시에 에누엘이 지면을 박찼다.
슈’율큘라의 목전에 나타난 알카이오스가 리벨덴에 응축시킨 광압의 힘을 폭발시켰다.
「GAAAAAAAAAAAAAA!」
찰나 안에 초고속 재생이 있다고는 하나 거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단 것은 주지의 사실.
슈’율큘라의 시각이 마비됐다.
주어진 건 그 찰나조차 안 되는 순간이지만, 에누엘의 힘으로는 충분했다.
– 룬 베기, Benekom.
은빛 섬광을 길게 끌며.
슈’율큘라의 몸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리 가른 샤릴리온의 칼날.
그 칼날의 궤적에 새겨지는 창세의 문자를 매개로 삼아, 창조주의 명령이 하달되었다.
『깨져라.』
공간에 균열을 퍼뜨리는 것으로 천명시편의 힘이 해방되었다.
말을 통해 섭리를 창조했던 창세신의 권능은 또 말을 통해 섭리를 뒤바꾸는 것이 가능했다.
극위성검 쉬르팽의 절원은 모든 극위성검의 절원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그건 차원을 베는 것이란 한계를 가진다.
룬 새기기에는 그 한계가 없다.
차원을 가르는 게 아니라, 그 차원 위에 놓인 섭리 자체를 깨지게 만드는 것이므로.
섭리를 초월하는 공격은 아무리 신적인 존재라도 한동안 원형을 되찾을 수 없는 타격을 입힌다.
────채애애애애애앵!
섭리가 구슬피 흐느끼는 청음과 함께 슈’율큘라의 육신이 양쪽으로 찢어진다.
찢어진 육신의 틈새로 보인다.
검푸르게 맥동하며 대기를 침식하는 추악한 보석…… 오롯이 노출된 영혼의 핵(核)이었다.
‘네이갈라스에게서 핵(核)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검을 수천 번은 휘둘러야 했었는데…….’
어이가 없군.
힘줄이 끊어지는 고통으로 쓰러질 뻔한 몸을 땅에 박은 샤릴리온에 기대며 생각했다.
그래, 물론 그때는 혼자였고 지금은 엘디아가 다섯 명이나 있긴 하지만, 이 힘은…….
‘이게 곧 내 힘이 된다고?’
주먹이 쥐어진다. 이 힘만 있다면, 지금 악몽과도 같은 현대의 전황을 뒤바꿀 수 있을지도 몰라.
[에누엘 : 테르시아 성하.]테르시아의 손에서 베르켄시아가 봉의 형태로 뒤바뀌었다.
테르시아는 누군가를 베고 찔러서 죽이는 무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계승자의 그러한 마음을 읽는지, 테르시아가 싸울 때 베르켄시아는 장봉의 형태를 가졌다.
「이 하찮은……!」
빛의 선율이 시작되었다.
「……찰나의 골계조차도 주지 못할 하등한 것들이!」
나아가는 궤적 자체를 빛으로 물들이는 베르켄시아, 소리조차도 아침의 고요함으로 물든다.
슈’율큘라는 물론 강적이었다.
육신이 붕괴된 상태에서도 공간의 중력을 뒤바꾸고 수백 개의 문어발로 그 진격을 막으려 했다.
[알카이오스 : 슈르비엘, 한 번 더다! 바다가 못 밀려들게 막아!]그러나.
테르시아의 양손에서 우아하게 춤을 추는 베르켄시아 앞에서 무력한 저항에 불과했다.
성서에 기록된 대로.
『빛이 비치매.
어둠이 이기지 못하더라.』
모든 반격을 아름답게 무너뜨리며 순식간에 핵(核)까지 나아간 테르시아가 소리쳤다.
[테르시아 : 오빠, 지금이야!]베르켄시아는 자체적인 빛의 역장을 뿜어내 모든 심연의 영향으로부터 계승자를 지킨다.
심연의 군주들이 일으키는 역장 변질도 마찬가지다.
그 빛의 역장에서 생겨난 균열은 카렌덴의 권능.
검은 안개가 흘러나오는 균열에서 빛의 쐐기가 33개 튀어나와 막 재생을 끝마치던 슈’율큘라의 핵을 관통하고 묶었다.
「R, R, R, RuAAAAAAAAAAAAAAAAAAAAAAAAAAAAAAAAAAAAAAAAAAA─────!」
한계까지 팽창했던 부대가 터지는 굉음과 함께, 그 육신이 더러운 점액질 덩어리로 무너지며 사방으로 튀었다.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라…… 흐, 흐, 흐하하하하하하───!」
그 시큼한 액취…….
프라이모아 헬멧의 여과기조차도 뚫고 들어와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희노랗게 물들 정도로 끔찍했다.
「───인간의 도시가 타락하는 날, 심연을 꿈꾸는 자들이 나를 기다리게 되는 날, 본좌는 이 궁전과 다시 떠올라 광기의 축제를 벌일지니!」
거기까지였다.
핵을 관통했던 빛의 세기가 절정에 달한 순간, 매섭게 부글거리며 다시 하나로 결합되려는 덩어리들의 움직임조차 멎었다.
세상을 왜곡시키고 일그러뜨리던 존재감이 사라지면서, 공기 자체가 가벼워진 느낌마저 들었다.
[테르시아 : 여기는 테르시아. 모든 전투 부대에 전파한다. 슈’율큘라를 토벌하여 봉인에 성공하였고 아군의 피해 경미함.] [테르벨 : 알아. 놈의 종복들이 통제를 잃고 사라지거나 도망치고 있다.] [슈리간 : 아슬아슬한 상황이었어. 이번에 함대의 3할을 잃었지만 그래도 첫 승리의 전공은 큰걸.] [카렌덴 : 테르시아, 차원 역장을 열 테니 거기에서 빠져나와. 바다의 흐름을 막던 결계가 곧 무력화된다.]모두가 승리를 자축하는 가운데……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를 않고 있었다.
왜지?
도대체 어째서지?
빛의 쐐기에 꿰뚫린 채 슈율켈리스와 함께 해저 깊숙이 가라앉아 봉인되는 슈’율큘라의 육신을 바라보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어째서입니까? 제가 알기로는 그 검, 베르켄시아로는 신격을 멸할 수 있다고…….」
이야기 진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 질문이라서 그런 것일까?
동기화율 하락 경고문이 뜨기는 했으나, 뤼카엘에게 살기(殺氣)를 발할 때처럼 동작 자체가 금지되지는 않았다.
슈르비엘이 뤼카엘을 부축해오는 걸 기다려주던 테르시아가 쓴웃음을 지었다.
「진왕들은 왕이라 불리지만 사실 넓게 보면 대군주 요토스의 권속에 불과해. 권속만 잡는다고 왕이 끝장나지는 않잖아?」
「그렇습니다.」
「신격을 멸하면, 그 신격은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시 신격의 원래 주인에게로 돌아가. 요토스에게 말이야. 그러면 요토스는 권속을 잃었다지만 힘을 되찾는 거고, 그 힘으로 다시 권속을 만들 수 있어.」
신화시대 깊숙이 감추어져 있던 진실에 망연히 입이 벌어졌다.
그런…….
그래, 그런 건가…….
<온 것들>이 이토록 강력했음에도 어째서 진왕들을 <잊혀진 왕들>로 만드는 것에 그쳤는가에 대한 해답이 주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이 전쟁을, 이 끝없는 장난을 여기서 다 끝낼 거야. 그러기 위해서 여기 온 거고. 진왕들을 멸해선 안 돼. 봉인해서 요토스가 안달이 나서 여기 올 수밖에 없게 만들어야지.」
「정말 오겠습니까?」
「그 녀석은 겁이 엄청 많고 신중하거든. 이곳에 있는 진왕들은 모두 요토스의 최고 심복들이야. 이 녀석들을 모조리 봉인했을 때 요토스가 어떻게 행동할까?」
그 정체불명의 존재도 똑같이 말했던 것이 기억났다.
요토스는 반드시 이 세계의 마지막 날에 찾아올 거라고. 그게 자신의 권속들을 해방시키고, 그 힘을 되찾기 위해서였다니…….
그렇다면 진왕들은 놈을 불러들이기 위한 미끼로 봉인되었다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때 다 끝낼 거야. 자, 그만 가자.」
하지만 역사는 정해져 있었다.
이 싸움의 끝에서, <온 것들>은 요토스를 쓰러뜨리는 일에 실패했다는 것으로…… 그 내막을 곧 알게 될까.
그리고.
빛의 군주라 불리는 <온 것들>조차 실패했던 그 일을, 내가 과연 마무리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