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86)
가짜 용사 이야기-86화(86/310)
제86화
[카렌덴 : 메이안, 시작해라.]메이안이 그 유명한 월광검을 쳐들고 아름다운 춤을 추기 시작하자, 창공의 달빛이 옛 원시림 위로 유성우처럼 쏟아졌다.
저 아래, 섬뜩한 적막에 잠겨 있는 원시림(原始林) 위로.
아무것도 없는 부재에서 생기는 적막이 아니라, 무언가가 숨어 있을 때 생기는 적막이었다.
[Chapter : 02 – 옛 원시림.]숲은 숲이라기보다는 숲의 형상을 갖춘 늪지대로 보였다.
수송기 켈토로스들의 조명이 내부에 일절 비쳐들지 못했다.
돌풍 속에서 나무들이 술렁거렸는데, 나뭇잎이 쓸리는 소리가 질퍽했다.
[뤼카엘 : 역시, 여기 오고 나서부터 통신 상태가 불안정한데.]그 초월적 그림자 속에 숨어서, 수많은 망자들이 춤을 추며 형체도 눈동자도 목소리도 없는 악신을 숭배하며 깔깔대고 있었다.
[수룡 예리세리카 : 제4ㆍ5등급 심연 개체들의 위치가 식별되었어요. 현재 342,364기입니다만, 그 숫자가 빠르게 증가합니다.]켈렉─샼은 자신의 땅을 은둔의 마경으로 만들었다.
자신을 섬기는 이들에게 벌레의 축복을 내려 벌레 인간으로 만들었다. 이들을 고대어로 킨웨(Kinwae; 구더기 인간)라고 한다.
킨웨들은 변태를 통해 다른 진왕들의 망자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다양성을 자랑했다.
[카렌덴 : 엘디아, 강하 준비 30초 전.]킨웨는 변태를 통해 세 가지 형태로 진화한다.
하나는 날벌레 형태의 ‘살킬레’로 가장 성가신 적이었다.
또 하나는 ‘루사트쿠’라는 잠복형 개체로 늪 속에 숨어 있다가 공격해왔다.
마지막 하나는 ‘카토론’이라는 인간형 개체로 우루크보다 단단한 체격에 인간의 몸을 단숨에 찢는 악력을 가졌다.
그런 놈들이 광기의 북소리가 메아리치는 숲속에서 끝도 없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온 것들>의 상식에서도 그런 놈들이 도사리고 있는 숲속으로 들어가는 건 미친 짓인 듯했다.
– 테라포밍을 먼저 해야겠군.
그것이 카렌덴의 결론이었다.
적의 안마당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 적의 안마당을 박살 내면 되지 않는가.
<온 것들>이기에 할 법한 전술이었고 가능한 전략이었다.
「강하 명령 떨어졌다. 대기.」
더 이상의 클론 군대 양성이 불가능했으므로, 다른 엘디아들과 달리 에누엘에게는 클론 병대 대신 해방민 중에서 최정예 전사들이 맡겨지게 되었다.
모든 전투의 선봉을 달려, 후세에 ‘에누엘 돌격대’로 전해지는 역전의 전사들이다.
물론 이들은 클론에 상응하는 신체 개조와 무장을 부여받았다.
[바라니예 : 흐흐, 이번에도 우리가 선봉입니까.] [그리피소른 : 건방 떨지 마라, 올렌. 우리가 아니라 에누엘 대장님이 선봉이신 거다.] [올렌 : 뭐, 엄밀히 따져서 틀린 말은 아니니 그냥 넘어가 주죠.]심연의 치하에 놓여 있던 이데아 반도에서, 최상위 전사 계급에 위치해 있던 세 명.
서열 1위, 그리피소른.
서열 2위, 바라니예.
서열 3위, 올렌(다섯 선제후 중 하나, 듀렌 대공가의 선조).
그 셋의 지휘 아래 돌격대 천 명이 각자의 중장비를 들고 절도 있게 시립했다.
전열의 베테랑들은 목에서부터 발밑까지 모두 가려지는 대방패 ‘레이른’을, 후열 병사들은 다섯 명이서 사용하는 ‘타케논’ 장창을 쥐었다.
모두 제5위계 장비들로 오늘날의 극위성검들과 고작 두 단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장비들이다.
카렌덴이 시간이 모자라 양산형 스펙으로밖에 만들지 못했다고 투덜댄 게 이상할 정도였다.
‘부하들, 이라…….’
하나의 병단에 소속되어 싸운다는 일은 왜 늘 이토록 깊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꼭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카렌덴 : 10초.]그 순간, 천명(天明)의 힘을 휘몬 월광의 빛줄기들이 원시림을 때렸다.
첫 번째 파장이 찬란한 폐열로 지축을 휩쓸었다. 원시의 거목들이 불타고 녹아내리고 늪들이 수증기로 산화했다.
찢어지는 비명을 터뜨리며 킨웨들이 몰려나왔으나 그들 또한 눈부신 월광의 회오리 속에서 불살라졌다.
[카렌덴 : 5초.]두 번째 파장은 엔트(Ent)라고 불리는 거목인들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켈렉─샼이 거느리는 최상위 옛것으로, 슈’율큘라의 큘륜과 마찬가지로 제3등급 심연으로 숲의 관리인들이었다.
이데아 북부에만 엔트가 5천 기도 넘게 있었다. 엔트들이 심연의 숨결을 내뱉어 결계를 펼치기 시작했다.
카렌덴이 고안한 작전대로였다.
사방에서 유성우처럼 휘몰아치던 월광의 빛줄기들이 일순 하나로 집약되어, 결계를 단숨에 깨트리고 지축에 내리꽂혔다.
범위를 좁게 축약시키는 것으로 위력을 극대화시킨 빛줄기였다.
지축을 불태우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땅속 깊숙이 파고들 수 있도록.
[카렌덴 : 3초.]그 결과로 깊이 124미터에 달하는 구멍이 생겨났다.
[카렌덴 : 1초.]그렇게 길이 열렸다.
인간의 이성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악마적 황량함과 원초적 불경함이 꿈틀거리는 지하 도시.
‘퇴락의 도시, 케슈렌다크’로 가는 길이.
[카렌덴 : 토벌 작전 개시.]신화시대(神話時代),
타르혜 론델ㆍ엘디아ㆍ거듭남 (7)
「토벌전이라고 하셨습니까? 누굴 말입니까?」
작전 시작으로부터 4시간 32분 전, 635년 4월 12일.
뤼카엘이 물었다.
카렌덴의 기함, ‘린(Rin; 봄바람)’호의 작전실에 반도에 남아 있던 전투 중역이 모두 소집됐다.
「이데아 반도 이북으로 내보냈던 라세핀 13개 편대와 크라엘 3개 부대의 좌표 신호가 일시에 끊어졌다. 프라이모아와 글람도 2기씩 있었는데.」
카렌덴이 대답했다.
팔짱을 낀 채 껌을 짝짝거리던 메이안의 입술에서 풍선껌이라는 물건이 터졌다.
「세 번째 진왕이야?」
메이안은 <온 것들> 중에서 가장 어렸고 치기가 어린 만큼 입도 걸걸한 무희(舞姬)였다.
신성한 춤을 추는 것으로 월광의 힘을 끌어냈는데, 제2계 창세신인 아브렘의 편린으로 만들어진 월광검의 주인이었다.
참고로 월광검은 소검으로 길이가 통상 장검의 반도 되지 않는데, 그 칼날에서 달빛이 흘렀다.
「물증은 없다. 다만 해방민들은 그 땅을 ‘벌레의 땅’이라 부르며 두려워하더군. 인신공양이 횡행하게 이루어졌는데, 사람들이 벌레에 파먹히며 죽어갔다고 한다. 이 정도면 심증은 확실하지.」
「지층 스캔 데이터를 확인하셨겠지만, 반도 이북은 울창한 숲 지대로 대규모 작전을 수행하기에 부적합한데요.」
「마, 맞아요. 지, 지도도 불완전하고요…….」
뤼카엘과 슈르비엘이 각각 그런 우려를 전했는데, 미래를 아는 나에게는 현 상황이 더 심각하게 와 닿았다.
‘이데아 반도 북부…….’
벌레 군주, 켈렉─샼의 영지였던 곳이었고 지금은 봉인되어 있는 땅이었다.
수룡 예리세리카를 섬기는 흑요정들이 숲을 경외심과 사랑으로 가꾸고 또 일구어서 오늘날에는 아주 아름다운 숲이었다.
그 땅이 원래 썩어 문드러지던 부패의 숲인 줄 누가 상상이나 해볼 수 있겠는가.
「테르벨의 창천 부대가 아드리온 대륙에서 ‘사막의 왕국’ 공략에 들어갔다. 곧 대륙 정화에 성공할 거야.」
「그거 좋은 소식이군요. 알카이오스 대장과 카듀엘은 무사하다던가요?」
「아직까지는. 그 이후에 아크라드 대륙으로 진출할 작정인데, 슈리간이 보내온 정보에 따르면 해안선 결계가 아주 강력하단 모양이다. 양쪽에서 협공해서 무력화하는 수밖에 없다. 반도를 통한 육로를 반드시 개척해야 해.」
고상한 달, 졔안니르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다.
「하지만…… 지금 여기 남겨진 전력으로 진왕 토벌이 될까? 알잖아. 나는 전투를 조금밖에 돕지 못하고, 막센시아 언니는 아예 돕지 못한다는 걸.」
「촉각을 다투는 시간 싸움이다. 요티아토스가 개입하기 전에 모든 진왕을 봉인시켜 놔야 해.」
「주, 주인님이 지, 직접 전투에 참전하신다면…… 총지휘는 누, 누가 하죠?」
「이 녀석들이 도울 거다.」
카렌덴의 말에, 작전실로 들어와 고개를 숙이는 존재들을 보고 모두 눈이 커졌다.
삼신룡(三神龍).
전후 검은 태양 카렌덴이 사라진 후 대신 이 세계의 질서를 수호해온 존재들.
“장녀 예리세리카예요.”
“차남 하라데리만입니다.”
“삼남 벨’다키둔임다!”
슈’율큘라 토벌전 당시에는 갓난아기에 불과했던 것들이 부쩍 장성해 있었다.
용족은 정신의 성장이 곧 육신의 성장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철없던 아이의 모습은 사라지고 어느새 청소년이 되어 있던 것이다.
특히 수룡 예리세리카는 벌써부터 처녀티가 났는데, 연청색의 머리 아래 이지적인 눈빛을 지닌 여장부가 되어 있었다.
미래에서는 신룡으로 떠받들리는 세 용이 공손하게 절을 올리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당혹스러웠다.
‘인간은 진룡들에게조차도 깍듯이 대하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건, 그 진룡을 부리던 신룡들의 유년기.
그 신룡들이 이렇게 예의를 보이는 걸 보면 엘디아들의 위상이 어떠했는지 알 만했다.
예리세리카가 동생들을 대신해서 발언했다.
“이 작전은 완전하지 않은 토대 위에 세워졌으므로 많은 변수를 내포합니다. 그리고…… 다들 저보다 훨씬 잘 아시겠지만, 지금 이쪽에는 진왕을 상대로 섬멸전을 개시할 전력도 없습니다.”
「그럼 어쩌잔 말이지?」
뤼카엘이 물었다.
수룡 예리세리카보다는 아직 성숙이 덜 이루어진 광룡 하라데리만이 대답했다.
“왕의 심연이 봉인되면 그 막하의 심연들도 봉인되죠. 섬멸전인 척하고 진왕을 직접 타격해서 쓰러뜨리는 단기전 방식으로…….”
「뭐어? 안 그래도 인력이 적은데 또 분산시킨다고?」
“저희들이 돕겠슴다!”
화룡 벨’다키둔이 불꽃같이 타오르는 열정을 담아 외쳤다. 이때, 붉은 신룡은 소년의 앳됨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이 출사표였다.
삼두룡 아수라라는 이름으로 신화에 이름을 새기게 되는, 카렌덴의 세 가지 기적들의.
그럼에도 그 전투는 악몽이었다.
또한 <온 것들>의 전력에 엄청난 피해를 입은 전투로 기록된다.
그리고 신성 엘리미네 기사단은 이 전투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을 잃게 된다.
* * *
월광이 지축에 구멍을 뚫자, 지층이 생물처럼 꾸물거리며 상처 부위를 핥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게 되기 전에 돌격대는 이미 지하 도시 내부로 진입한 뒤였다.
퇴락의 도시, 케슈렌다크는 벌집 구조의 미로였다.
[에누엘 : 들어라, 왕궁으로 이어지는 길목들을 지키는 것이 너희들의 임무다. 내가 진왕을 토벌할 때까지 버텨라.]불경한 태곳적 건축 양식…….
허벅지까지 차오른 구더기가 우글대는 구정물…….
구조물의 기괴한 비율, 사람과 짐승의 사체를 사용하는 건축 양식의 윤곽…….
[바라니예 : 대장님과 헤어진다니, 벌써부터 가슴이 외로움으로 사무치는데요.]모든 것에 우주의 숨결이 깊숙이 스며들어 있었다. 공포는 장식이 아니라 내부 구조였다.
방향도 목적지도 알 수 없는 복도와 방이 개미집 또는 벌집처럼 수없이 얽혀 있었다.
또한 생물체의 소화기관처럼 유동적이게 움직이기까지 했으므로 내부에서의 싸움은 악몽 속에서의 투쟁에 가까웠다.
[그리피소른 : 저놈 헛소리는 무시하시고 맡겨 주십시오.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이에 대한 카렌덴의 해결책은 봉쇄 돌파였다.
미로의 구조를 최대한 활용하자는 이야기였다. 정확히는 그 좁은 복도들을 말이다.
신화시대 보병들은 기본적으로 중장보병이었다.
항중력(抗重力) 전신 갑주를 입은 1열이 대방패의 척추 기둥을 지면에 꽂아 박는 것으로 하나의 철성을 만든다.
그 반동으로 지축이 흔들렸다.
이 지면 고정의 도움으로 순식간에 일개 보병 부대가 철성으로 뒤바뀐다.
[올렌 : 일선, 방패 박아!]틈은 오직 하나뿐이다.
오차 하나 존재하지 않는 정확한 규격으로 만들어진, 타케논 장창만이 통과할 수 크기의 구멍.
[올렌 : 셋, 둘, 하나, 찔러!]미로에서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밀려들던 킨웨들의 머리통을 타케논 장창이 뚫고 지나간다.
창극이 그 두개골과 뇌를 지저분하게 분쇄하고, 침을 질질 흘리던 입을 핏덩이로 만든다.
장창은 한 번 찌르면 열 마리가 넘는 킨웨들을 죽이고 다시 방패의 홈까지 되돌아왔다.
[바라니예 : 하하! 저것들 아주 넝마가 되어 버렸는걸!]찌를 때 일곱 명이 일제히 내질러야 하고, 당길 때는 밧줄을 당기듯 호흡을 맞춰 당겨야 한다.
운 좋게 창의 포화를 뚫고 방패벽 앞에 도착해봤자 효과적인 대항책은 없었다.
방패 표면을 좀 긁다가, 되돌아온 타케논 장창에 꿰찔려 동포들에게로 돌아가게 될 뿐.
[그리피소른 : 웃을 시간에 당겨! 계속 온다!]1파(波)를 무력화시킬 때마다 확보 영역이 비스듬하게 전진하며 넓어져간다.
1열의 우익부터 방패를 빼고 한 발 앞으로 전진, 다시 방패를 고정시키는 전술을 사용하기에.
이것이, 오늘날까지도 요정병들이 사용하는 홀트란크스(Holtrankas; 고슴도치) 진영.
[뤼카엘 : 여기는 뮤 특전대, 동쪽 어귀에서부터 통로를 개척 중입니다. 현재 순항 중.]하나의 격전지, 즉 요충지마다 백 명의 보병을 남겨 홀트란크스 진영을 구축시키는 것이 작전의 골조였다.
퇴락의 도시 사방에 퍼져 있던 킨웨들이 진왕 토벌전에 난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말이다.
그걸 위해 엘디아 델(03), 뮤(04) 카타(05)는 각기 세 방위로 침투해서 진왕의 왕궁으로 향하는 길을 찾아야 했다.
[슈르비엘 : 시, 심연 반응 확인…… 확인해줘!] [수룡 예리세리카 : 확인했어요. 제1등급 심연 반응입니다.] [메이안 : 좋아. 길을 뚫어줄 테니 좌표 불러!] [광룡 하라데리만 : 삼각 측위로 좌표 특정 중. 엘디아 델 님, 현재 위치를 유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그리고 다음 순간, 강대한 월광의 빛줄기가 벼락처럼 내리꽂히며 거대한 구멍을 만들었다.
……Shieeeeeekkkkkkk……!
도시가, 꼭 살아 있는 무언가처럼 소름 끼치는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비틀고 꾸무럭거렸다.
[에누엘 : 앞으로의 현장 지휘는 네게 일임한다, 그리피소른.] [그리피소른 : 예, 대장.] [뤼카엘 : 여기는 엘디아 뮤, 좌표로 이동 중! 에누엘, 서둘러! 통로가 또 닫힌다!]샤릴리온의 검광으로 통로를 찢고, 메이안이 만들어놓은 종혈로 몸을 던졌다.
‘전투가 개시된 지 어느덧 40분…….’
정말 촉박한 시간 싸움이군…….
시간이 지날수록 적은 더욱 결집하여 강대해져 가는 반면.
<온 것들>에게는 메이안의 월광함대가 전부였고 예비대조차 없었다. 주력함대는 모두 네이갈라스 토벌전에 동원된 것이다.
[뤼카엘 : 에누엘, 어디야?] [에누엘 : 다 왔습니다.] [카렌덴 : 내가 합류하기 전까지는 직접 교전을 피해라. 알겠나?]최소한 35개 층을 급강하하여 제1등급 심연 발생지에 도달했다.
어전을 지키던 최고위 옛것들은 막 진성검 요니울란의 보랏빛 난격에 찢어발겨지던 참이었다.
궁전의 문 앞에서, 진성검 아이자이야의 빛을 극점까지 끌어올린 채 대기하던 슈르비엘에게 뤼카엘이 외쳤다.
[뤼카엘 : 좋아, 슈르비엘!]구더기 수만 마리가 한데 뒤엉켜 문의 형태를 이루어낸 대문이 광압(光壓)에 파쇄되고, 세 엘디아가 동시에 지면을 박찼다.
적막.
무언가 이상했다.
벌레가 사각거리는 소리가 심박보다 크게 들리는 암흑, 그 내부를 샤릴리온의 검광으로 비추며 진입했으나 무엇 하나 없었다.
[뤼카엘 : 뭐야, 이 기분 더러운 곳은……?] [에누엘 : 통신 신호가 끊겼습니다. 뭔가가 통신을 방해하고 있는데요.] [슈르비엘 : 뭐, 뭔가 움직이는데, 탐지기에 전혀 잡히질 않아.]삑…… 삑…… 삑…… 음파 탐지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 레이더에 표시되었다.
그런데 파장의 결이 이상했다.
이상하다기보다는 너무 커서, 그 형태를 다 잡지 못하는 듯하기도 했다.
[뤼카엘 : 맞아. 파장이 너무 커서 뭔지…… 제1등급 심연이 정말 여기 있는 거 맞아?] [슈르비엘 : 이, 일단 여기서 나가야──]등에서 까닭 모를 식은땀이 솟구치면서 호흡이 싸늘해진 것이 절망의 전조였을까.
삑, 삑, 삑………… 삑삑, 삑삑삑, 삑삑삑삑……………………삑삑삑삑삑삑삑삑삑삑삑삑삑삑……!
세 자루의 진성검의 검광이 미친 듯이 휘황찬란하게 물든 그 순간, 어둠이 거대하게 일어섰고.
[뤼카엘 : ───슈, 슈르비엘!]수만 마리의 파리 떼가 날아오르듯, 어둠이 흩어지며 그 너머로 흉악하게 비치는 혼돈의 왕관.
[경고, 광기 수치가 140%를 초과합니다.]그 왕관이 흩뿌리는 것은 타락의 신비, 자연을 초월하는 뒤로 아찔한 설렘과도 같은 광란의 신기루가 어지러이 일렁이고.
[뤼카엘 : 제기랄, 에누엘! 슈르비엘을 찾아! 어둠 속 어딘가로 사라졌어! 치명상이야!]대기가 공포에 떨며 요동치고, 오직 왕족만이 거하는 것이 허가된 고대의 밀실의 어둠이 서서히 걷히면서…….
모습을 드러낸다.
창세의 질서가 타락한 이후, 인간의 눈길이 닿은 적 없는 은밀한 왕국의 주인이…….
[경고, 광기 수치가 180%를 초과합니다.]멸망한 세계의 망혼들이 구더기의 형태로 비틀리면서 결속되어 이뤄낸 형상은 글자로 표현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외경, 공포, 반감, 광기, 혼돈.
인간이 감히 보아서도 묘사해서도 안 되는, 퇴폐의 악취로 창세의 섭리를 갉아먹는 심연의 군주…… 그 이름은 바로.
[Chapter – 02 : 옛 원시림.]– Chapter Boss : 벌레 군주, 켈렉─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