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89)
가짜 용사 이야기-89화(89/310)
제89화
[카렌덴 : 차원 역장을 통제하는 산맥의 혈맥 여섯 곳을 찾았다. 아마 이곳들이 역장을 뒤틀어버린 것 같다.]그런 악몽 같은 상황 속에서도 카렌덴은 언제나 냉철했다. 차가운 이성으로 반드시 돌파구를 찾아냈다.
자신 또한 혈투 중일 텐데.
곧 지도상에 목표물의 좌표가 떠올랐다. 동시에 시야 위에 포개져 반투명하게 명멸했다.
[알카이오스 : 권속 토벌 완료, 제가 1번 역장을 막겠습니다. 뤼카엘, 2번으로 가라.] [뤼카엘 : 맡겨주시죠.] [메이안 : 그러면 난 3번을!] [테르벨 : 내가 5번을 맡지. 카듀엘, 에누엘, 나란히 붙어 있는 4번과 6번은 너희들이 해결해라.]그 이후의 30분은 황잡한 꿈속을 헤엄치는 듯했다.
발작적으로 이어지던 황급하고도 혼란스러운 교신들, 시공간이 뒤틀려 일그러지는 광경과 사냥개들이 울부짖는 소리만이 기억난다.
이런 곳이 미래에는 영산(靈山)으로서 인류의 천혜가 되다니 도무지 믿기질 않았다.
[병참 모니터 : 5번 좌표에서 제2.5등급 심연이 탐지되었습니다. 주의를 요합니다.] [테르벨 : 이상하군. 어쩐지 권속들이 상당히 강해서, 세 놈한테 권능을 집중해서 나눠준 것이라 생각했건만. 어째서 다른 권속들이 이렇게나 많은 거지?] [뤼카엘 : 나머지는 대략 2.5등급의 떨거지들입니다. 생각한 게 맞으실 것 같은데요.] [메이안 : 아니, 아냐! 이런 식이면 삼중현이 그렇게 강해선 안 됐어. 단순히 수학적인 계산만 해봐도 답이 나오잖아.]그 교신에 직접적으로 참가하지 못하고 듣기만 했던 건, 당시 다른 권속에게 쫓기고 있어서였다.
[카듀엘 : 표적을 놓쳤습니다!]현재, 과거, 미래 따위에 간섭하는 힘은 없었으나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힘은 그 자체로 위협적이었다.
[병참 모니터 : 경고, 2.5등급 심연 접근 중. 거리 30, 20, 15, 1……!]무지갯빛으로 일그러지는 공간에서 튀어나오는 누리끼리한 악마, 그 이름이 두갸나라 했다.
[카듀엘 : 수송기 엔진을 노립니다! 주변 공간을 제압해 전이 가능 좌표를 줄여 보겠습니다!]두갸나가 튀어나오려던 차원이 히스기비드에 꿰뚫렸다.
찢어지던 차원이 역으로 일그러지면서, 그 섬뜩한 육신이 시공간을 빠져나오지 못한 채 고통스럽게 버둥거렸다.
바로 그 육신을, 차원과 영혼의 핵을 통째로 꿰찌르는 샤릴리온의 은백색 일섬(一閃).
「끄으으아아아아아──!」
그 빛의 포화 속으로 두갸나의 육신이 사라져갈 때에도 통신은 계속해서 오고 있었다.
[알카이오스 : 역장 제거 임무를 마쳤습니다.] [카렌덴 : 잘했다, 알카이오스. 역장이 상당히 안정됐어.] [뤼카엘 : 개자식들, 지옥을 맛봐라!] [카렌덴 : 뤼카엘도 끝냈다.] [테르벨 : 와 봐라! 벼락은 너희 모두에게 나눠주고도 남을 정도로 있으니까.] [카렌덴 : 테르벨과 메이안도 끝냈다. 카듀엘, 에누엘. 서둘러라.] [메이안 : 어서 저것 좀 치워봐!] [카듀엘 : 역장을 발생시키는 목표물을 발견했습니다! 배제 절차에 들어갑니다.]인간의 해골로 쌓은 탑이 히스기비드의 주황색 섬광에 꿰뚫렸다.
그 순간.
산맥 상공에서 수증기가 괴기스럽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던 석조물들이 불가해한 윤곽을 이루며 새롭게 드러났다.
아니, 정확히 말해야 한다.
헤아릴 수 없이 거대한 크기로 찢어진 차원 너머로, 저토록 기괴하고 도발적이며 광적인 공간이 나타난 것이다.
[메이안 : 좋았어! 차원이 다시 열렸다!] [테르벨 : 메이안, 신중하게 진입해!] [카렌덴 : 엘디아, 차원이 다시 닫히기 전에 모두 저곳으로 집결하라. 나는 놈이 그 차원을 통째로 부숴서 너희를 일망타진하지 못하게 막겠다.]‘안리달의 시공 정원’이라는 악몽 속으로 가는 길이 열린 것이다. 토벌전의 막을 내릴 시간이었다.
신화시대(神話時代),
타르혜 론델ㆍ엘디아ㆍ거듭남 (10)
[알카이오스 : 엘리미네, 엘디아 알마다. 진왕의 좌표로 가능한 빨리 집결하라.]안리달의 시공 정원은 악몽의 집합체로 보였다.
그렇게 기괴하고.
그렇게 다양하고
그렇게 이국적인.
카듀엘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수한 세계의 멸망의 흔적들이 이곳으로 흘러들어와 퇴적된 것처럼 보였다.
[카듀엘 : 이동 중입니다, 대장.]멸망한 세계의 기념관인 것처럼.
[카듀엘 : 상황은 어떻습니까?]균형 따위는 잡히지 않고 허공을 부유하는 계단들, 인간의 뼈로 만들어진 축대, 창공 가득 흩뿌려진 기둥과 샛길과 통로와 다리들.
[뤼카엘 : 또 늦는 거야, 에누엘? 장난이야. 너희들 빼고 다 도착했어.]눈에 비치는 모든 것이 변칙적으로 이동하고 얽히고 있었다.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계의 섭리의 통제를 받으며.
[테르시아 : 차원이 불안정하니 조심해! 저 녀석은 시공간을 마음대로 다뤄!] [메이안 : 무사했구나, 언니!] [알카이오스 : 카듀엘, 에누엘. 어서 돌아와라. 진왕과의 교전이 시작됐다!] [메이안 : 테르벨 오빠, 대체 어디다 쏘는 거야?!] [테르벨 : 나는 힘을 쓴 적이 없다. 뭐지?]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수송기를 쫓아오는 사냥개를 떨쳐내며 생각했다.
왜 고전하는 거지?
<온 것들> 최강인 테르벨과 테르시아, 거기에다 메이안과 엘디아 용사가 두 명이나 갔는데.
살인적으로 비좁은 협곡을 카듀엘이 차원을 일그러뜨림으로써 길로 뒤바꿨다.
[메이안 : 저게 무슨…… 나라고?] [카렌덴 : 안리달의 힘이다. 과거의 너희들을 끄집어낸 거다. 놈의 권능이지.] [메이안 : 알아. 저렇게 귀여운 여자가 나 말고 또 누가 있겠어? 공략법이나 알려줘!]마침내 차원의 균열 앞에 도착했을 때는 카렌덴이 기다리고 있었다.
양손을 기도하듯 맞잡은 채, 창백하게 질린 입가는 찢어져 있었다.
이 차원 균열이 닫히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카렌덴 : 카듀엘, 아수라와 함께 가라. 아수라, 엄호에 집중해.]삼두룡 아수라.
켈렉─샼 토벌전 때보다 더욱 장성하여, 신룡으로서의 위엄을 갖춰 나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테르벨 : 안리달이 테르시아를 공격하고 있다!]차원의 균열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 균열의 통로를 이동하는 내내, 공간이 고중력 공간에서 무중력 공간으로 미친 듯이 바뀌기를 반복하며 멀미가 치받쳤다.
그러기도 잠시, 마침내 하늘 너머 어딘가의 뒤틀린 공간으로 몸이 튀어 나갔다.
새로운 지역 : 안리달의 시공 정원.
이 머리통이 쪼개질 듯한 불가해한 장소보다 더 불가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곳에 있던 모두가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던 것이다.
이를테면 뤼카엘은 뤼카엘과, 테르벨은 테르벨과, 메이안은 메이안과.
[카듀엘 : 이럴 수가.]카듀엘의 멍한 중얼거림이 들렸다.
난폭하게 울부짖는 바람 속에서, 악몽적인 시각적 변화와 함께 그 눈앞에서 무언가가 일어섰다.
카듀엘과 똑같은 아머와 똑같은 히스기비드와 똑같은 신장을 가졌으나 심연에 검푸르게 침식된 무언가가.
「저는 엘디아 베테. 카듀엘입니다. 허가되지 않은 입장이 확인됩니다.」
그리고 여태껏 앞길을 열어주었던 히스기비드의 권능이 이쪽을 향한다.
[카듀엘 : 피하십시오!]그렇게 소리치며 카듀엘 또한 히스기비드의 권능을 발휘, 허공에서 두 섬광이 맞부딪치기 무섭게 시공이 고통스레 포효한다.
[카렌덴 : 에누엘, 위로 가서 테르시아를 도와라.] [에누엘 : 맡겨 주십시오.] [뤼카엘 : 그러면 에누엘의 과거는 어떻게 합니까?] [카렌덴 : 에누엘은 생후 40일이다. 과거다운 과거가 없어서 불러낼 수 없지. 아수라도 마찬가지일 거다.] [뤼카엘 : 끝내주는군요. 저도 좀 늦게 낳아주시지 그랬습니까.]실제로, 에누엘의 과거는 시험관 속에서 급속도로 기관을 성장시키던 유체 시절의 모습이 나왔다.
상대할 필요조차 없었다.
아수라의 과거 또한 불려 나왔는데, 아장거리며 걷는 세 마리의 새끼 용에 불과했다…….
[광룡 하라데리만 : 에누엘 각하, 저희들의 등 위에 올라타십시오!]멸망의 폐허들이 계속 뒤죽박죽으로 뒤엉키고 있어서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골목이 난잡하게 꺾어진다 싶으면 갑자기 바닥이 사라지는 식이었다.
그때마다 소름 끼치는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히 히히 하 하하 헤 헤 호. 정말재 미 있 다.」
안리달은 다섯 진왕 중 유일하게 인간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모든 진왕들은 미(美)의 축복을 받음으로써 세속에서 칭송하는 아름다움을 뛰어넘는, 즉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미색을 받는다고 한다.
안리달은 소녀의 모습이었는데, 뒤틀리는 나선형 골조의 가면을 썼으며 안달로스의 사냥개 위에 앉아서 섬뜩하게 키득거렸다.
[카렌덴 : 이대로는 내 힘이 먼저 다할 것 같다. 테르벨, 상황 어떻지?] [테르벨 : 과거의 나를 떨쳐낼 수가 없어. 뭘 해도 막상막하다!] [카렌덴 : 아수라, 과거를 해치워. 해치우진 못해도 막아라. 네가 최소한 두 명은 붙잡아야 해.]아수라가 테르벨과 메이안의 과거를 대신 상대하게 되면서, 두 군주의 거동이 자유로워졌다.
[테르벨 : 좋았어!] [메이안 : 언니!] [카렌덴 : 에누엘, 테르벨과 메이안과 함께 위로 올라가 테르시아를 도와라.] [뤼카엘 : 에누엘, 저년 모가지 따는 멋진 광경은 꼭 영상으로 송신하라고!]영겁조차 지배하는 안리달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공간을 부분적으로 초월하고 또 조종했다.
몇 번을 실패했을까.
몇 번을 나뒹굴었을까.
몇 번을 신체 재생했을까.
테르벨과 메이안의 낙뢰와 월광이 눈부시게 교차하며 안리달을 막아설 때 테르시아의 곁을 지켜야 했다.
안리달의 등에서 열여섯 쌍의 날개가 돋아났다.
그 날개가 장대비처럼 빈틈없이 흩뿌리는 깃털 속에서 미친 듯이 일그러지고 뒤바뀌는 전장.
그 깃털이 머리를 스친 순간,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머리 반쪽이 날아갔다.
피와 뇌수의 광란.
헬멧의 장갑과 머리카락과 살과 피부와 두개골과 뇌가 다른 차원으로 빨려 들어가며…….
[알카이오스 : ……최우선 목표의 타이머가 55초로 설정됐다. 에누엘, 서둘러라……!]……잠시 의식이 소멸했다가 초고속 재생 속에서 다시 돌아왔다. 초재생 능력이 없었더라면 즉사였다.
진실로, 악몽의 수라장이었다.
<온 것들> 둘이 뒤를 봐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시공이 과거의 심해로 바뀌거나, 과거의 원시림으로 바뀌기도 하였는데 최악은 과거의 화산으로 뒤바뀌었을 때였다.
[메이안 : 이번엔 시공을 화산으로 바꿨어!]과거일까, 현재일까.
그곳에서 몸을 회복하고 있던 핏빛 태양 슈리간이 발견되었다.
「좋 아찾 았 다.」
고막이 터질 듯이 날카롭고도 섬뜩한 깔깔거림 속에서, 슈리간의 과거가 앞을 가로막았다.
[메이안 : 저년이 슈리간 오빠의 과거를……?!] [테르벨 : 클론 군대의 과거까지 죄다 끄집어내고 있다!]클론 군대들이 고슴도치 진영을 이루며 벽을 만드는 걸 멍하니 지켜볼 때, 테르시아가 소리쳤다.
[테르시아 : 나를 도와줘, 에누엘. 다른 곳은 보지 마. 나만, 앞만, 내 뒤만 지켜줘.]그건 어둠 속으로 비쳐드는 한 줄기 빛이었다.
아니, 세상의 가장 낮은 곳을 비추며 새벽을 밝히는 여명의 섬광이었다.
그저 목소리를 들었을 뿐인데, 의식이 맑게 갠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정확히 알게 된다.
[에누엘 : 명을 따르겠습니다.]테르시아가 베르켄시아를 빙그르르 돌리더니 하늘 높이 쳐들었다.
[테르시아 : 은혜(恩惠).]빛이, 그 아래 집결한다.
하나, 하나, 흑암의 권세 아래 숨어 있던 빛들이 방울지며 솟아오르며 거대하게 결집한다.
[테르시아 : 평강(平康).]하나의 이정표 아래.
자신의 창조주의 품 아래.
[테르시아 : 진리(眞理).]베르켄시아 위로 모이고 또 모여들면서, 작고 보잘것없던 광입자들은 서서히 창대한 빛의 칼날이 되어 이 악몽의 시공간을 눈부시게 비춘다.
[테르시아 : 공의(公義).]전율감?
경외심?
아니면 망향감?
[테르시아 : 그 모든 걸 품으며 그들 중 가장 높은 것, 사랑.]이 떨림을 도대체 무어라 형용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껏 목도해온 그 어떤 <온 것들>의 기적도 이처럼 원초적인 가슴 떨림을 일으키진 못했다.
누가 말해준 것도 아닌데, 그 빛을 지키는 것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주어진 사명처럼 느껴졌다.
일기당천(一騎當千).
에누엘의 전투를 따라, 운석처럼 급강하해 오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차원들을 베어내고 튕겨내고 박살 낸다.
샤릴리온이 크게 울부짖는다.
아니, 칼이 무릎 꿇고 경배한다.
자기보다도 더 지고한 빛 앞에, 그 빛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른다, 하나의 장작으로서.
[메이안 : 에누엘, 쟤 진짜 대체 뭐야? 검의 잔상조차 안 보여!]마침내, 베르켄시아의 칼날이 완성되어 하늘에 닿았다.
여명(黎明)의 핏빛.
생명(生命)의 황금빛.
그 두 빛이 휘몰아치고 끌어안고 울면서 이루어내는, 태초의 빛의 색채…… 그 빛은 왜 보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눈물겨운 것일까.
[테르시아 : 이 땅에 새벽을 밝혀라.]그 눈물겨운 빛은 이 세상의 그 어떤 빛도 닮을 수 없는 빛이었는데, 비취빛이 그나마 제일 비슷한 색이었다.
[테르시아 : 타르혜 론델.]그 크게 휘둘러져 어둠을 베어내는 빛의 울림 속에서.
이 창조의 세계를 삼킨 악몽도, 이 가엾고 가여운 세계를 비웃던 별의 웃음소리조차 한순간 모두 걷히고.
오직, 은혜와 평강과 진리와 공의와 사랑으로 충만한 무언가가 밝았다.
그 무언가는 새벽이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