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97)
가짜 용사 이야기-97화(97/310)
제97화
기함 테리토스는 강과 바다가 합쳐지는 어귀에서 그 웅대한 위용을 뽐내며 출렁거리고 있었다.
2천 년 전의 모습과 똑같았다, 표면이 검푸른 심연으로 뒤덮여 있지 않았더라면.
표면에 눌어붙은 심연 개체는 심해목(深海木), 놈들이 표면에 종양처럼 뿌리를 넓게 펼치고 꿈틀대고 있었다. 바로 그 위로.
뇌명(雷鳴).
매섭게 내리꽂히는 핏빛 벼락.
벼락의 파장이 갑판 위로 퍼졌는데, 그 파장에 노출된 심해목들의 육신이 부서지며 비명을 질렀다.
끽…….
……끼긱…….
…………끼기긱, 끼기기긱…….
심해의 번견들이 반응할 순간도 없었다. 섬광이 번뜩였을 때는 이미 그 육신이 불살라지고 있었으므로.
─ 내달려라, 갈라디엘.
납도 자세에서의 일순간 발검이, 육신의 위상(位相)을 선홍의 벼락으로 뒤바꿔 천지를 초광속으로 가로지르게 만든다.
한순간.
정말로 한순간.
수천 마리의 심해목이 낙뢰의 칼날에 도륙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시간이라고 할 수도 없는 한순간에 끝났다.
[이야, 엄청나긴 한데, 엄청난 만큼 요란하구만.]리드워즈가 휘파람을 불었다.
지금 이 다섯 명을 잇는 뇌향심공명진은 카이센이 발동시킨 것이었다.
네이갈라스를 토벌할 때, 뇌향의 영혼을 받은 힘을 응용한 것이라고나 할까.
[내 벌레들을 혹사시켜 죽이려고 작정이라도 했나? 이것들이 파업이라도 일으키면 어떡하려고…….]그 학살 속에서, <테르베노플> 적정에서의 이렇다 할 반응은 없었다.
공허의 사도, 리드워즈 덕분에.
공허충(空虛蟲) 수천만 마리가 수평선을 오로라처럼 가득 메우며 위장 미채의 역할을 수행했다.
공허의 권능은 소리도 없고 기척도 없이 원하는 모든 것을 공허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멸한다.
시각도, 청각도, 그리고 냄새도.
덕분에 오감(五感)으로는 테리토스에서 일어나는 이변을 감지할 수 없을 것이었다.
[리암, 베르켄시아를 전개해.] [이미 전개해둔 상태입니다.]전설적인 환술사 슈’율큘라가 역장의 떨림을 감지할 가능성도 극도로 낮았다.
베르켄시아의 힘이 그 역장을 교란하고 있을 것이므로.
물론 그 시간은 촌각을 다툴 수밖에 없었다. 5분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이었다. 그 5분이 승패의 기로였다.
‘청성 밑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하더니만…….’
심장이 떨릴 정도로 아슬아슬한 한 끗 차이의 승부수는 청성에게서 배운 것이려나…….
[시렌, 상황은?]시렌의 연녹색 불길이 선내의 복도를 휩쓸고 지나가자, 심연의 종양들이 순식간에 불태워졌다.
삼미호 종족은 불의 지배자였다.
인류가 사용하는 불꽃과 달리, 여우불이라는 이름의 연녹색 불꽃을 사용했는데 그 위력이 두 배 가까이 강했다.
거기에다가 시렌은 불꽃보다도 붉은 머리칼, 즉 불의 축복을 받아 태어났다.
화염의 위세가 초월에 이르도록 강하고, 술식의 발동에 필요한 영창과 계산에 찰나도 필요 없었다.
그저 양손을 합장하는 것만으로 불꽃을 일으켰다.
그래서 그 위명이, 무영창 화염 술사라 했다.
불꽃 그 자체인 홍염의 아키레아를 제외하면, 시렌은 역사 속에서 존재해온 모든 화염 술사 중에 으뜸 중의 으뜸이란 소리가 된다.
[함교에 도착했어.]화염이 작렬하는 소리.
그 불길에 불살라지는 심연의 마물들의 고통이 흐릿하게 들렸다.
그 사이사이로 시렌의 단조롭고 또 무감정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서둘러, 할바론.] [재촉하지 마라. 어디 보자, 그래, 홈이 분명 있을 텐데…… 아, 여기에 있군. 흑양린 장착. 이건 정말 대단한 유물이로군. 이게 2천 년 전의 물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날이 올까 봐 신들의 언어를 어린 시절부터 공부했지. 걱정 마라.]황금함대의 기함으로서 심연과의 끝없는 전쟁 속에서 선봉을 맡았던 군함이 깨어났다.
[이용자 등록, 완료. 신원 확인 절차 생략…… 전지구측위(全地球測位) 시스템을 발동시켜 함내 상태를 파악해 주시기 바랍니다…….]빛이, 빛의 파문이 전함 전체로 퍼진다. 다섯 번 퍼진 파문에 의해, 선체를 붙들고 있던 심연이 모두 나가떨어졌다.
[제1등급 위험 상황으로 상향 조정. 군규 18조 3항에 따라 병참 모니터의 판단에 따라 본 함을 전투태세로 전환시킵니다.]테리토스 내부에 남아 있던 광명의 힘, 테르벨의 힘이 아직 온전한 포신(砲身)들로 퍼졌다.
포문들이 개방되면서, 곧 황금의 낙뢰들이 수평선을 눈부시고도 위압적인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바닷속까지 겨누는 빛의 위엄.
빛이 바다를 맹독으로 뒤덮은 심연을 걷어내고, 저 해저에 도사리던 나가 종족과 어인들까지 단숨에 일소시킨다.
“여기는 샤릴리온. 뇌향 각하,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명의 물비늘이 찬란하게 도드라지는 바다의 수평선을 가득 메우는 강철의 색채.
삼군 연합군이 탑승한 강철함대.
이 기습적 상륙작전이 성공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3분조차 채 되지 않았다.
[장관이로군. 사진으로 남겨놓으면 아름다운 숙녀들을 꼬실 때 아주 큰 도움이 될 텐데.]이것이, 역사적 승리 중 하나로 기록되는 <테르베노플> 상륙작전의 서막이었다.
저 모든 이야기의 종장,
유리 하 겔디나 (3)
삼군 연합의 불길이 해안 누벽을 넘어, 황금의 성지 <테르베노플>의 심연을 정화시키며 전진했다.
먼저 화염의 날개를 펼친 적룡, 홍염의 아키레아가 길을 만들었다.
악(惡)을 잿더미로 불사르는 업화의 불길이 시가지를 침식한 심연을 불사르면, 연합 군대가 그 불길을 따라 전진했다.
“첫 번째 자손에게 영광 있으리!”
요정들은 전통을 고수했다.
전통이란 예법 따위의 무형적인 측면에서부터 환경 보존 따위의 유형적인 측면을 모두 망라했다.
여기에는 전투 방식도 포함된다.
요정들은 과거 신화시대의 홀트란크스 진영을 아직까지도 고수하고 있었다.
“당겨!”
요정병들은 모두 창과 방패를 다루었다. 요정들에게 검이란 지휘관의 무기였지, 전사의 무기가 아니었다.
엘디아들이 모두 검을 다루었던 걸 생각하면, 전통이 이상하게 검에 대한 천시로 계승되어온 것 같긴 하다만…….
“찔러!”
페이쿼리어의 배다른 형제 격으로 성창(聖槍)을 다루는 팔라딘들이 진용을 지휘했다.
고대의 홀트란크스와 비교하여 부족함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항중력 방어구나 제5위계 무기 따위의 장비에서 비롯되는 기술력의 차이였다.
그런 차이만 빼면 요정병들은 고대의 홀트란크스를 선조들과 놀랍도록 유사하게 구사할 수 있던 것이다.
과도하도록 길고 두꺼운 창이 마족들과 어인들의 가슴과 심장을 꿰찌르며 나아갔다.
“제1열, 장전!”
이 홀트란크스 진영은 종족간의 긴밀한 연계 속에서 강화되었다. 리아가 제안한 인류 총병대의 철새진과의 결합이었다.
“제2열, 제3열, 쏴!”
총병들이 3열로 도열한 귀갑차들이 홀트란크스 사이사이마다 배치되었다.
증기가 솟구치는 십자포화가 마족들의 배를 찢고 늑골을 부순다.
슈’율큘라의 장마, 즉 산성비에 의해 스팀코어가 망가져서 총병대가 무력화되는 사태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 이놈은 탄피형 탄환이라는 것들이다.
만병기장, 할바론의 발명품.
스팀코어를 사용하던 시절에는 탄두를 따로 넣고 장약을 공급하기 위해 증기기관을 등에 짊어져야 했다.
총병들은 증기기관의 순간 압력으로 총탄을 발포해 왔는데, 탄피란 저 증기와 탄두를 일체형으로 만든 물건이었다.
– 프리스비아께서 집필한 연구서에서 알게 된 거지. <온 것들>이 광학 문명을 꽃피우기 전에 사용하던 방식이라더군.
증기총은 본래 증기기관을 착용해야 한다는 불편한 한계를 가졌었으나, 이 방식으로는 단지 공이가 탄피를 때리는 것으로 총탄이 발사될 수 있었다.
이 탄피형 탄환 덕분에 총병의 기동성 및 편의성이 비약적으로 증대됐다.
무엇보다도, 산성비에 노출되어 증기기관이 무력화되는 사태는 종식되었단 점에서 의의가 컸다.
[탄착 좌표 확인.]아인 부대는 둘로 나뉘었다.
육상에서 거신의 위상으로 선봉을 맡는 기갑부대와 해상에서 포격 지원을 맡는 해군 부대로.
[발포!]<테르베노플> 해상에 일자진으로 도열한 강철함대가 육상 좌표로 포탄을 쏘았다.
아인들의 거포는 그 작동 방식이며 관리 방법이 난해하여 오직 그들만이 다룰 수 있었다.
집중된 화력이 <테르베노플> 시가지들을 허물어뜨리며, 먼지와 파편과 피 분수를 거듭 펼쳐냈다.
「Ku…… dela…… aprais…….」
슈’율큘라를 상대로 한 일대다 전투는 매우 위험한 도박이었다.
그 광역 환각이, 동족상잔의 비극을 낳게 만들 수 있었으므로.
그러나 검푸른 촉수를 뻗어서 필멸자들의 의식을 범하려던 심연의 더듬이는 매번 황금의 파장에 꺾이며 바스러졌다.
뇌향심공명(雷響心共鳴).
진영의 중심부를 빛의 날개로 활공하는 황룡, 뇌향의 세츠넨의 빛에 의해 장병들의 마음이 빛으로 굳건히 엮였다.
[카이센.]북부의 대마법사, 요한이 진용을 붕괴시키려는 슈’율큘라의 문어발을 차단했다.
지면을 빙층으로 뒤바꾸는 방식이었는데, 그 힘을 막지는 못해도 지연시키고 좌표를 예측할 수는 있었다.
빙층의 붕괴를 파악한 요한이 그 좌표를 말해주면, 네 방위로 흩어진 리암의 ‘용사 파티’가 그 문어발을 처단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야, 이렇게 힘들게 들어갈 필요가 있었나 싶단 말이야.]리드워즈가 말했다.
[내가 말한 전략이 훨씬 좋았을걸. 이봐, 인류 최강. 오줌 묻은 팬티에 사인 몇 장 해주고 우루크 애새끼들 생일 파티 때 춤춰 주겠다고 약속만 해줬으면 얼마나 편하게 들어갔겠냐 이 말이야.] [그놈의 팬티, 작작 좀 해. 리드워즈는 진짜 변태야.] [시렌, 네가 아직 애라서 모르는 것 같다만 팬티는 남녀를 불문하고 신뢰의 징표 같은 거란다. 상대방에게 팬티를 벗어서 보여준다는 건…….] [리드워즈, 팬티 이야기는 그만하시죠. 전투 중입니다.]듣다 못한 샤릴리온이 자신의 별명에 대해 설명했다.
“우루크 슬레이어라는 별명은 내가 붙인 게 아니다. 애초에 선임병들이 놀리려고 붙였던 별명이란 말이지.”
그러자 리드워즈가 큭큭 웃었다.
[그 선임병들에게 평생 고마워하도록 하라고, 우루크 슬레이어. 안 그러면 자네의 지금 별명은 조무래기였을 테니.] [리드워즈가 샤릴리온보다 훨씬 약한 것 같은데.] [아, 그래서 내가 ‘월광의 음유시인’을 늘 자칭하고 다니잖냐. 안 그랬으면 내 별명은 조무래기는커녕 ‘조무’밖에 안 됐을 테니.] [조무는 무슨. 리드워즈는 잘해봐야 ‘조’였을 거야.] [이봐, 인류 최강. 지금 ‘조’도 너무 후한 거 같다는 생각을 했지? 솔직하게 자백하면 특별히 용서해주겠어.]낙뢰에서의 위상 변환, 슈’율큘라의 문어발 2개를 불태우던 카이센이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 웃음이, 얕았으나 맑았다.
카이센의 그토록 맑은 웃음은 정말, 정말로 처음 듣는 것인지라 세츠넨은 가슴 떨리는 기쁨을 느끼고 말았다.
‘라미네아.’
오늘 카이센이 우루크 슬레이어란 별명을 두고 웃는 걸 봤단다. 얼마 전만 해도 생각지도 못할 일인데.
카이센은, 네 아들은…….
많은 사람들 속에 있어도 그 아이는 늘 외딴곳을 홀로 표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
‘신기하지?’
그 아이는 이제 스스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거야.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은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지.
“리암, 그래서 이다음은 어떻게 되지?”
샤릴리온이 말했다.
리암이 답했다.
“현재 슈’율큘라가 거느린 권속은 13기이며 곧 출현할 겁니다. 룰함레이를 통해 계속 원군도 올 거고요.”
이건 2천 년 전 슈율켈리스 공략전 때와 비슷한 흐름이었다.
“슈’율큘라는 어디에 있지?”
베르켄시아의 비취빛과 샤릴리온의 은광이 교차하며 심해의 악마들이 수백 마리씩 도륙되었다.
“동북쪽 절벽입니다.”
“내가 가지.”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할 작정이었지만.
“왜죠?”
“뭐?”
“당신은…… 왜 항상 불평 한번을 안 하시죠? 저는 모든 세계선에서 당신 홀로 사지(死地)로 내몰아 왔는데. 왜 저를 이기적이라 비난하지 않는 겁니까?”
그 한순간에, 알지 못하는 죽음의 기억들이 무수히 떠올랐다.
내 죽음 앞에서 눈물로 통곡하는 리암의 수많은 얼굴들이 비쳤다.
아무도 알아줄 수 없고, 아무도 공감해줄 수 없는 고독한 세계에서 이 녀석이 홀로 겪고 또 겪어야 했던 단절의 슬픔들.
왜일까.
단지 그 얼굴을 떠올린 것만으로, 그 알지 못하는 세계에서 쌓고 또 간직한 추억과 우정의 기쁨이 가슴속에서 뭉클거리며 솟아난 건.
“나 원, 무슨 그런 멍청한 질문을 다 하는 거냐.”
그래서 웃었다.
고요한 미소를 지었다.
스스로도 그런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것에 놀라면서.
“나는 엘디아, 너는 빛의 사도. 네 명령을 받아야 하는 위계질서를 타고났지. 군인이 명령을 따르는 게 뭐가 이상한데?”
2천 년 전, 에누엘로서 테르시아와 함께 쌓아온 유대감이 이 관계 위로 겹쳐지는 걸 떠올리며.
나는 장작.
너는 세상의 빛.
너를 빛나게 하는 것이, 너를 가장 낮고 어두운 곳까지 운반하는 것이 나의 사명.
“너는 편하게 명령하면 돼. 나는 언제든 그걸 따를 뿐이다.”
리암은 베르켄시아로 적 하나를 베어 넘기고는 소리 없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을 수십, 수백 번의 생애가 겹쳐지면서 쏟아지는 울음은 깊었다.
손바닥으로 녀석의 등갑을 힘껏 때려서 그 울음을 막았다.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 가자, 모든 걸 끝내러.”
그 모습을 우연히 지켜보게 된 요한이 미소를 지었다.
자신과 격(格)과 나이대가 맞는 동료와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며 앞으로 나아가는, 옛 병단 막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저 먼 날, 똑같은 나이에 다른 카밀라와 함께 전장으로 나아가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축하해, 카이센.’
드디어 너도 찾아냈구나.
평생을 함께 걸어갈 친구들을.
마지막까지 함께 싸워 나갈 동료들을.
* * *
[제3보병연대는 나를 따르라. 이곳에 고정 진지를 편성한다!]현 하이 쿤 타르크 서열 1위, 발크루쉬는 수수께끼의 우루크 부족이었다.
‘붉은 여름’ 초기 당시, 총사령부가 발크루쉬에 갖고 있는 정보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정보력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붉은 여름’ 당시에는 명성다운 명성 하나 없던 약소 부족이었기 때문이다.
[폴짝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발크루쉬다! 접근 중!] [여기는 나, 홍염의 아키레아가 맡겠다! 앞으로 나아가라!]놈들은 ‘검은 여름’ 개전 당시에 출현했다.
출현하자마자 순식간에 전통의 강호 키랄조차 제치고 하이 쿤 타르크 서열 1위로 등극했다.
발크루쉬는 해상 부족이었고, 배를 이용한 기동력으로 벨리소르 대하를 타 넘으며 약탈과 살육을 자행하며 성장했다.
그 폭발적인 성장력과 힘의 원동력에 대한 많은 추측들이 있었다.
[고위 옛것 출현! 큘륜입니다!] [샤릴리온이다. 토벌 완료.] [정말 엄청나군. 큘륜 열 마리 모가지를 단번에 따버리다니. 큘륜 죽이기 콘테스트에 나가면 일등상은 자네일 거야.] [리드워즈, 조용히.]발크루쉬는 새로이 왕의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닐까.
<잊혀진 왕들> 중 하나의 축복을 받았다면, 힘이 순식간에 성장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실제로 하이 쿤 타르크들 대부분은 각자 섬기는 <잊혀진 왕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키랄은 네이갈라스, 타후프는 켈렉─샼을 섬기지 않았던가.
[아주 기를 쓰고 막는군.] [샤릴리온, 흩어져서 집결 지점으로 향하죠. 일단 의식을 막는 걸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난 혼자서도 충분하다.]그렇다면 청성이 생각하길, 발크루쉬를 축복했을 것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왕은 슈’율큘라였다.
‘검은 여름’에 라미네아 알터 아라다만텔에 의해 서열 1위 락트리그 클랜이 궤멸당한 이후 슈’율큘라의 축복은 늘 공석이었으므로.
그 추측은 확실하게 맞아떨어졌다. 확실의 수준을 넘어, 도가 지나치게 맞았다.
[흩어져서 찾아라! 절대 일식이 더욱 가속화되어 가고 있어! 전진하라! 모조리 해치워!]발크루쉬가 받은 축복은 다른 클랜들과 결을 달리했다.
“쿄로나 레나와프라 요티아토스 아세투룸 와르바르!”
“쿄로나 레나와프라 요티아토스 아세투룸 와르바르!”
“쿄로나 레나와프라 요티아토스 아세투룸 와르바르!”
옛 망자들처럼, 신체에도 변화가 깃들었다.
그래서 발크루쉬 전사들은 죄다 어인처럼 아가미가 돋아났고 두 눈은 튀어나올 듯 커다래져 있었다.
해상전에서 무적의 존재로 거듭난 이 괴물들이 <테르베노플>에 알 수 없는 이유로 뿌리를 내린 건 다행이었다.
[찾았다! 찾았습니다!]물론, 진실을 알기 전까진 말이다.
[발크루쉬의…… 끄아악!]발크루쉬는 고대의 의식으로 심해 깊숙이 가라앉은 슈율켈리스를 끌어올리려 하고 있었다. 천문의 운행을 재정립하기 위해서.
– 우리 카이.
상황은 촌각을 다투었다.
– 엄마의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보물.
<테르베노플>은 벨리소르 대하로 인해 남북으로 갈라진다.
서남쪽은 경제 특구로 모든 이들에게 열린 반면, 동북쪽은 <테르베노플> 순수 혈통의 시민권을 가진 이들만이 거주할 수 있었다.
발카로와 그 심복들은 <테르베노플> 바로 그 동북쪽 성역에서 고대의 의식을 거행하고 있었다.
– 미안해? 엄마가 더 잘해주지 못해서…….
광란의 춤을 추며, 빛과 어둠의 영역 너머 저 우주로부터의 축복을 갈구하는 발크루쉬의 무당들이 다음 순간 잿더미로 바스러졌다.
단 한 줄기, 벼락에 의해서.
<테르베노플> 상공에 핏빛 꼬리를 길게 끌며 내달린 벼락이 일순간 궤도를 변경, 의식의 제단을 쳐부수며 급강하해온 것이다.
“발카로.”
찬란하게 소용돌이치는 전류의 파편들 속에서, 벼락의 본체가 인간의 형상을 입었다.
빛바랜 용린의 금빛과 이 세계의 물질이 아닌 흑빛이 위엄의 조화를 이루는 갑주.
그 검사의 왼쪽 볼에 찍힌 기괴한 낙인에서 피가 끝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를 기억하고 있냐?”
그 핏물은, 이제는 흘릴 수 없는 눈물이 아니었을까.
저 어린 날, 마음속에서 태어났고 또 죽고 죽이던 피의 세월이 벼려낸 칼날.
그 칼날이 흐느껴 울면서 흘리는 눈물.
“너를 찾아서, 지옥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