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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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지회
다음 날부터는 최소한의 정보를 알기 위해서 움직이기로 했다.
일단 대공자의 계획에 정면으로 간섭하진 않기로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이야기가 된다. 내가 가장 간단하고 쉽게 택한 방법은 다름아니라 안명후를 납치하는 것이었다.
슈슛
내가 저번에 갔던 시간보다 반시진 정도 일찍 7조가 기거하는 동굴으로 향했다. 그러자 혼자 남아있던 장홍이 의외라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장홍이 동굴 입구에 걸터앉은 채로 내게 물어 왔다.
” 3조의 유천영이군. 무슨 일로 우리 조에 찾아왔는가?”
” ……”
나는 침묵한 채로 조용히 버티고 섰다. 그러자 장홍의 눈매가 점차 날카로워졌다.
” … 자네.”
장홍이 잘 되었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 평소부터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지.
마침 적적한 참이니 질문에 대답해 줬으면 좋겠어.”
” 말해 보시오.”
” 자네가 화산지회 후 종남파 장문인으로 낙점되다시피 하단 사실을 알고 있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내게는 과분한 일이라고 생각하오.”
” 과분한 일이라! 딱히 그렇지도 않겠지만.”
약간 쓴웃음을 지은 장홍이 말을 이었다.
” 하지만 내가 듣기로 자네의 무공은 순수한 종남파의 그것이라고 하기엔 다른 모양이더군. 물론 경지가 너무 차이나서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비뢰쌍마를 쓰러뜨릴 때 사용했던 것은 익히 알려진 육합귀진신공의 화후와는 상이했어.”
그건 그럴 것이다. 태을신공을 극성으로 터득한 후 다른 육합귀진신공도 그에 영향을 받아서 조금씩 변화했다. 나쁜 변화는 아니지만 겉으로 나타나는 기운은 단순한 하나의 기공을 익혔을 때와는 차이가 있다.
” 무엇을 말하고 싶소.”
” 혹자는 자네가 종남파 선조의 기연을 찾아냈다거나 다른 절세무공을 접목시켰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지. 다만 나는 약간 견해가 다르네. 어쩌면 자네야말로 [진짜] 종남파의 정통을 이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팔짱을 낀 채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장홍의 말이 맞다. 종남파의 무공도 도가에서 일순위를 다툴 정도로 박대정심한 것이다. 지금까지 뛰어난 경지에 이른 자가 드물 뿐이라서 그 진면목이 나타나는 경우가 드물었을 뿐이다.
말하자면 나는 가지로부터 줄기를 타서 뿌리를 향해서 걸어가는 여정을 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흔히 알려진 커다란 길의 세맥을 파헤쳐서 숨겨진 활로를 개척하는 것이다. 이 상태로 20년만 지난다면 육합귀진신공의 원류를 그릇이나마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
” 그렇기에 더욱 궁금하다. 지금 자네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 내가 무림에 뭔가 할 게 있기야 하겠소? 어차피 허수아비 장문이 되어서 조용히 검의 수련이나 하고 지낼 것을.”
내가 신랄하게 말하자 장홍이 고개를 저었다.
” … 곧 난세가 다가올 걸세. 자네 정도의 실력과 명성이 있으면 그 난세에서 피해갈래야 피해갈 수가 없지. 그 때 자네가 어떤 선택을 할 지 궁금한 걸세.
묻겠네. 자네의 목표는 무엇인가?”
빙 돌려서 말하고 있지만 내가 혹여 천겁령에 붙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다. 나는 물론 그럴 생각은 없지만 장홍의 안목에 놀랐다. 보통 사람이라면 사문의 어른들이 모조리 천겁령에 살해당한 상황에서 천겁령에 붙을 리는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장홍은 중용적인 내 성향을 잘 꿰뚫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전장을 찾아다니는 검귀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내가 천겁령에 협력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파악한 것이다.
붙어있지 않고 행적을 관찰한 것만으로 이 정도로 상세하게 파악하는 건 범인(凡人)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새삼 장홍이란 인간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이 아저씨도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다.
” 내 목표는…”
나는 무미건조한 눈으로 천공을 바라보았다.
” 천년검로(千年劍路).”
” ……!!”
장홍이 놀라워했다. 의외의 답변을 들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 때였다.
” 어라? 네가 여기엔 무슨 일이야.”
힐끔 뒤를 돌아보니 같은 3조의 임성진이 무언가를 메고서 걸어오고 있었다. 의외의 상황에 장홍은 임성진을 주시했다. 임성진이 메고 있는 것은 후줄근해져 있었지만 틀림없는 ‘사람’이었다.
” 그건 또 뭔가?”
” 아, 이거? 임시 보관 물품이야.”
” 내가 보기엔 아무래도 사람 같은데?”
” 사람 맞아.”
” 죽었나?”
축 늘어져 대롱대롱 들려 있는 게 보기에도 애처로웠다.
” 아니, 아직 살아 있어.”
건성으로 대답하는 임성진에게 장홍이 짜증을 냈다.
” 은가면을 쓴 정체불명의 암습자 때문에 안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데, 그런 짐까지 더맡아서 어쩌겠다는 건가?”
” 글쎄? 검성님이 부탁했다고 하니 별 수 없잖아.”
” 거, 검성님이!!!”
” 어, 그렇다는구만.”
나도 약간 눈에 이채를 띄고 봤다. 전후관계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검성을 비롯한 천무삼성들이 안명후의 명줄을 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좀 더 앞으로 가서 임성진을 따라가면 천무삼성을 만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임성진이 동굴 안에 안명후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이마의 땀을 닦으며 내게 말했다.
” 그나저나 유천영 자네는 무슨 일로 와있는 거야?”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 … 비슷한 목적이지.”
” 뭐라고.”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꼈는지 임성진이 흠칫했다. 동굴에 걸터앉아 있던 장홍도 움찔했다. 내가 고의적으로 패도적인 기세를 전신에서 뿜어내었기 때문이다. 장홍이 복잡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 자네… 설마…”
” 그 설마다.”
나는 가볍지만 확실한 말투로 대답했다.
” 그쪽의 안명후는 내가 데려가겠소. 그에게 위해를 가할 생각은 없으니 양해해 주시오.”
” 그렇겐 안 되지.”
임성진이 자신의 곤을 붕 돌리며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왔다. 평소의 진중하면서도 호탕한 성미가 그대로 표출되었다. 임성진도 눈에 띄지 않을 뿐 이미 강호의 절정고수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다.
” 못난 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사람이다.
아무리 너라고 해도 이렇게 어이없이 넘겨줄 순 없어!”
장홍이 급히 손을 저으며 나섰다.
” 성급하게 굴지 말게, 임성진.
아니 그것보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를 데려가려는 건가.
… 안명후라면 정천맹 섬서지부 특급 감찰조사관인 구척철심안 안명후를 말하는 건가!”
자신이 말하고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던 장홍이 전에 없이 날카롭게 나를 노려보았다.
” 그 사실은 어떻게 안 건가.”
장홍이 안명후의 직책까지 알고 있는 이유가 더 궁금하다.
나는 조용히 검을 뽑아들었다. 그와 동시에 장홍과 임성진도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그들은 전에 없이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동굴 밖에 있으며 장홍과 임성진은 동굴 안에 있다. 안명후도 안에 있으니 그들에게 유리한 조건이다. 경공의 고저차를 무시한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방어하면서 안명후를 데리고 도주할 수 있다.
” 말해줄 순 없소.
그에게 절대 위해를 가하진 않을 것이오. 나도 그가 죽기를 바라진 않소.
다만 그에게 알아볼 게 있다고만 알아 주시오.”
” 웃기는 소리 하지 마.”
꾸우웅!!
임성진이 곤을 회전시키며 직선으로 내리찍었다. 그것만으로도 사방 4장이 압력과 기세로 들끓었다. 저 나이에 저런 화후라니 대단하다. 그는 필사의 자세를 갖추며 나를 향해 외쳤다.
” 나는 목숨을 걸고 널 막겠다!”
” 일이 어쩌다 이리 된지는 모르지만…”
장홍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또한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 나도 막겠다.”
” ……”
일이 이렇게 될지 모른 건 아니다.
하지만 막상 그들이 나를 막는 모습을 보자 심정이 착잡해졌다.
다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팔짱을 꼈다. 내 입에서 냉엄한 목소리가 흘러나갔다.
” 제안을 하지. 나는 왼손과 오른발을 쓰지 않고 100초 내에 당신들 둘을 쓰러뜨리겠다.
그렇게 되면 내가 안명후를 데려가는걸 방해하지 말아 주시오.”
” 뭣!!”
임성진이 노갈을 터뜨렸지만 차마 내 말에 반박하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이 정도 조건이면 상대를 두 수 이하로 깔아보는 것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굴욕감을 느꼈지만 충분히 받아들일 만 하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임성진이 목숨을 걸고 나섰지만 나를 오래 막지 못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장홍이 잠시 생각하더니 침착하게 말했다.
” 임성진. 받아들이도록 하지… 지금 저 자는 진심이야.
우리는 매화검선 선배를 상대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 … 쳇, 할 수 없군! 제길!”
욕지기를 뱉어내면서도 임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대결의 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