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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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지회
희미하게 죽음의 기운을 느끼며 빠르게 영혼이 육체에서 떠나려 할 때였다.
내 영령이 육신으로부터 벗어나서 어둠속으로 사라지려는 순간, 팔다리가 옥죄이는 듯한 느낌에 견딜 수가 없었다. 이미 반쯤 죽었으니 아마 육신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 아…’
마치 내 몸이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 같다.
이것은 미련도 악몽도 아니다.
난 포기하지 않았지만, 죽음의 신관으로써 깨달은 죽음이란 그런 게 아니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있는 생명은 없는 것처럼.
다가오는 최후의 순간을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이 섭리는 개인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다.
애초부터 죽음에 접해있었던 존재가 아니라면, 그 운명을 뒤틀수 있을 뿐 정면으로 항거할 수는 없다.
‘ 어떻게 된 건가.’
이게 어찌된 일인지 혼란스러울 때 희미하게 붙어있는 목숨줄을 통해서 내 등에 감각이 느껴졌다. 그 곳에는 누가 내 등에 손을 댄 채로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 온기가 내 영혼을 붙잡아두고 있는 것이다.
월승혼의 비웃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 으하하하!! 그건 이제 시체야. 대체 뭘 할 생각인 거지?] [ ……]내 등에 손을 댄 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단지 한 순간순간 가공할 진력과 생명력을 내게 쏟아붓고 있었다. 그 기세가 너무나 엄청나서, 즉사할 지경이었던 내 목숨을 붙여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먼저 걱정부터 되었다. 설령 내 전성기의 내공을 총동원해도 이런 기세라면 채 일각도 버틸 수 없다. 말 그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퍼부어대는 듯한 가공할 격체전공(激體傳功)이었다.
한 순간에 십 년도 더 늙어버린 듯한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 …지 않네.] [ 뭐?]목소리의 주인, 태월하의 얼굴에는 이미 검버섯이 가득 피어 있었다. 전신의 노화를 막고 있던 내공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급속히 몸이 삐그덕거리는 것이다. 태월하는 피를 토하면서 중얼거렸다.
[ 동문(同門)을 포기하는 사조는 종남에 존재하지 않네.] [ ……]태월하에게 일격을 가하려던 월승혼은 멈칫거렸다.
그리고는 피식 비웃음을 짓더니 이내 장내에서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결코 일말의 인정때문에 가버린 건 아니다.
이대로 태월하가 다시 목숨을 걸고 궁기식 무상으로 덤벼들면 공연히 귀찮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세로 내공을 퍼부어대면 태월하는 반드시 죽고 말 것이다.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으려 한 것이다.
쿠우우우 –
격체전공이 과도기를 지나면서 황금빛 격류가 눈에 보일 정도로 흘렀다.
” ……”
점차 몸에 생기가 돌아오면서 희미하게 현실의 인식이 틔였다.
다시 반 각을 회생할 수 있지만, 어차피 심장이 으깨진 이상 나는 또다시 죽을 것이다.
그 사실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 후 – ”
어째서.
나는 죽더라도 당신이 이렇게 목숨을 버릴 이유는 없는데.
차마 몸 상태 때문에 그 말을 잇지 못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을 또다시 살리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태월하의 눈과 마주쳤다.
순간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의 눈에는 처음 보는 자애가 깃들어 있었다.
마치 부모에게서나 느낄 수 있었던 온기였다.
그의 장심을 타고 가공할 내공이 전신에 흐르면서 위험하다는 감각이 쭈뼛 섰다.
태월하가 피로 물든 수염 사이로 입을 열었다.
” 우린 둘 다 죽을 것이다.”
익히 예상했던 소리다.
이어진 말까지 예상하진 못했지만.
” .. 종남산의 봄이여 오라終南之春來.
하나씩 하나씩 짙은 향기 피어나네一輝香成魅…
그것은 하늘을 넘어서 이윽고 마중나오네從天卽訪來.”
이 건…
” 아무리 세월이 흘러가도 언제나 기다리고 있네如何世流流 如何待春來.”
아니, 이 노래는.
” 아직 오지 않은 봄이여 방황이 끝나는 날稚春米荒終.”
내가 놀라건말건, 종남의 노검객은 어린아이처럼 조용히 그 노래를 읊었다.
종남에서 수행한 수십년동안 귀에 박히게 들은 노래다.
” 그것은 하늘을 넘어서 이윽고 마중나오네從天卽訪來…”
마지막 구절을 듣는 순간 나는 나 스스로도 격정을 이기지 못해서 눈물을 왈칵 흘리고 말았다. 나나 태월하의 죽음은 이미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일말의 슬픔도 느끼지 못했다. 단지 허무함 뿐이었다.
그러나 종남파 문인 사이에 전해져 오는 그 짧고 간결한 노래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억눌러 두었던 무언가가 터져버렸다. 그것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눈물이었다. 내게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미혹까지 함께 씻겨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눈물이 피에 젖은 뺨을 타고 흘렀다.
땅이 점차 축축해졌다.
등을 타고 태월하의 마음이 전해져 왔다.
종남파의 문인은 결코 동문을 포기하지 않는다.
한없이 고지식하고 우둔한 삶의 자세.
바로 이게 종남의 문인이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것과 별다를 게 없는 상념과 가치관. 나는 태월하에게서 백 년 전의 나 자신을 느꼈고, 태월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서로 시대를 다르게 타고났을 뿐, 문파를 생각하는 마음과 무의 극한을 궁구하는 마음은 서로 같았던 것이다. 그만큼 서로를 인정하기 싫어서 지금까지 서로를 배척해 온 것이다.
희망이 없다는 걸 알고 있어도,
절대적으로 멍청하다는 짓이란 걸 알고 있어도,
태월하는 이성보다 자신의 느낌대로 행하기를 원한 것이다.
그것은 백 년간 종남의 어둠으로써 짊어진 무게가 시킨 것이 아니다.
무언가 나를 살려야 종남파를 위해서 더 좋다고 생각한 게 아니다.
어떻게든 눈 앞의 어린 동문을 살리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움직인 것이다.
단지 그것 뿐이었다.
심지어 궁기식 무상을 썼을 때 조차도, 나는 죽지 않았던 것이다.
휘몰아치는 안타까움과 슬픔때문에 그저 목이 터져라 울었다.
곧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울부짖었다.
” 으아아아….”
정말로 죽기 싫다.
살고 싶다.
미친듯이 살고 싶다.
헝클어지고 엉망이 되어도 살고 싶다.
이걸… 죽음이라고 한다면 인정하기 싫다.
” 아아아아아아!!!!”
아니, 나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내 몸 속에서 무언가 새까만 것이 꿈틀거리며 제멋대로 맞춰져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전신에 산산히 조각나서 분해되어 있던 내단의 조각들이 명치까지 올라와서 서로 뭉쳤다.
내 몸속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가 억지로 몸의 활류를 돌게 했다.
나는 입에서 끊임없이 피를 토하면서도 허공을 바라보며 자리에 앉았다.
인간은 심장이 없어도 잠깐은 살 수 있다.
하물며 지금 같으면 생명을 연장시키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것이 바로 천하에서 가장 완벽한 기공, 육합귀진신공(六合歸盡神功)의 힘이다.
내 전신에서 흐르는 기가 회로처럼 변해서 세밀하게 응축되어갔다. 그 모든 것이 혈류를 생존에 적합한 방향으로 이끌며 유동했다. 그러자 점차 상반신의 살점이 눈에 보일 정도로 선홍색을 띄며 활력을 찾아갔다.
우두둑
조금씩 심장혈관 조각이 모이며 조그마한 덩어리를 만들어 내었고, 그것이 임시적으로 심장을 대체했다. 내 들숨과 날숨마저도 모조리 육합귀진신공에 맡겨버린 채로 그저 기공만을 운용했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사대공력이 바뀌어버린 육체에 적응하며 또아리를 틀었다.
그 움직임은 마치 완성형이 육각인 것처럼 기민했다.
나는 허무 속에서 그 움직임을 관조하며 내 생명의 조각을 계속해서 맞춰나갔다.
그 때쯤 등 뒤에서 온기가 사라졌다.
누군가의 상반신이 차가운 땅에 몸을 뉘였다.
나는 텅빈 눈에서 계속 눈물만 흐르는 것을 느꼈다.
” ……”
몸은 계속해서 움직인다. 이성도 활력을 되찾고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감정은 텅 비어버려서 무미건조하게 눈물샘에서 눈물을 짜내었다.
그 사실을 못내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이 더욱 나를 기공의 활류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곧 살아남은 ‘나’는…
진정한 괴물이 되어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