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166
0166 / 0343 ———————————————-
합일
당산은 내 말에 침묵을 지켰다. 그의 표정에는 약간 곤혹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그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 사과하겠다. 내가 너무 너를 얕봤던 것 같다.”
그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고 엉망이 된 상황이기에 더욱 그 말을 솔직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는 사과를 받아들이는 의미에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 ……”
” 아무튼, 내가 하고싶은 질문은 천년검로의 뜻같은 건 아니다. 그보다는 조금 더 원론적인 질문인데 – 방금 전에 한 말의 연장이지.”
나는 물끄러미 당산을 쳐다보았다.
당산은 진중한 눈으로 허공을 쳐다보았다.
” 검선(劍仙)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 무슨 말이지?]뜬금없는 소리다. 천년검로와 검선, 통하지 않는 바는 아니다. 비슷한 의미이긴 하다. 하지만 상대가 이런 곳까지 와서 뜬구름잡는 이야기만 줄창 할만한 위인은 아니다. 내가 당산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할 때 당산이 한쪽 손을 내쪽으로 내밀었다.
” 두 가지 해석이 있지.
검(劍)으로써 신선(仙)의 경지에 오른 자.
검(劍)을 다루는 신선(仙).”
아아.
그런 말인가.
” 의미라고 한다면 전자쪽이 맞겠지만 – 너는 조금 특이하다. 어느 쪽이든 될 수 있잖은가? 너만한 상황과 소질을 갖춘 것은 유사이래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일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그게 알고 싶었다.”
” 그건.”
나는 상당히 심오한 질문이 튀어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검으로써 신선에 이른다는 것 – 그것은 보통 생각하는 검선의 뜻이다. 실제로도 심오한 검도에 이른 자에게는 심심찮게 검선이 들어간 휘호나 별호를 붙이곤 했다. 칭호가 과장이 있다고 해도, 검사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찬사였다.
반면에 검을 다루는 신선이란 개념은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르다. 말 그대로 도가의 수련이 정점에 이르러서, 우화(羽化)할 정도에 이르렀다는 것. 그런 자가 단순히 주무기로 검을 쓴다는 의미일 뿐이다. 이미 무기술은 신외지물에 불과한 것이다.
당산이 질문을 한 의미를 정확히 알고서 전율했다.
‘ 내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
내게 남아있는 과제도 두 가지다.
하나는 천년검로, 또 하나는 육합귀진신공의 합일!
천년검로는 검술의 궁극이라고 할 수 있으며, 육합귀진신공은 기공의 궁극이다. 두 가지가 일맥상통하면 좋겠지만 둘 다 거대한 무맥(武脈)이다. 두 가지를 동시에 이루는 것은 인간에게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내게 가장 현실적인 수단은 어느 한 가지라도 궁극에 이른 후, 다른 하나를 남은 시간동안추구하는 것이다. 당산은 앞으로 내 수련이 어느 쪽에 중점에 둘 것인지를 묻고 있었다. 그는 단지 지금 마주친 것만으로도 거기까지 간파해버린 것이다.
” 아.”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새삼 어디에서나 배울 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생사의 기로에 놓인 상황에서도 하나의 깨달음과 화두를 얻었다면 – 그것만으로도 족한 것이다. 오늘 도를 얻는다면 내일 죽어도 좋다.
어쩌면 그 모든 삶과 수련에 대한 집착이 한 순간의 미망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여기자 지금까지 막혀있던 천둔의 깨달음이 둑이 터지듯이 흘러나왔다. 단지 종남파 검기를 망라한 것에 불과했던 천둔이 – 스스로 생명을 지니고 무의식에서 진화했다. 짧은 순간의 깨달음에서 하나의 법문이 떠올랐다.
[ 生死若爲論欲會箇生死
顚人說夢春 ]
그리고 그 의미를 해석했다.
[ 인간이 태어나고 죽음을 어찌 논하랴진정 나고 죽음을 알고자 하는가?
미친 사람 꿈속에서 꿈 이야기 함이로다.]
꿈…
이 세계의 생사는 한낱 꿈이나 미몽에 지나지 않는다는 – 절망적인 깨달음. 이 법문을 말했던 삿갓의 검사가 아직도 기억난다. 그는 아무것도 벨 수 없으며, 아무것도 찌를 수 없는 검 하나를 안은 채 보리수나무 밑에서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어쩌면 그 미소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체념의 미소였을까?
그게 아니라면 어쩌면 –
스스스스스
내 몸 주위에서 의기가 뭉쳐서 형상이 되었다. 그것은 잠시 푸른 빛을 내며 이지러지더니 달처럼 둥글게 되었다. 이윽고 담금질을 하듯 새하얗게 펴지더니, 한 자루 검(劍)의 형상을 했다.
투박하고 온결한 의지가 느껴지는 검이 내 손에 들려 있었다.
아무것도 벨 수도, 찌를 수도 없는 검이었다. 단지 영혼이 깃들어 있는 것처럼 알 수 없는 따뜻함이 느껴졌다.
‘ 익숙해.’
나는 왠지 이 검을 어디에선가 봤던 적이 있다.
” 그 검은 – 누구도 죽일 수 없겠군.”
당산이 눈에 이채를 띄었다.
” 네 결의와 깨달음이 한 자루의 검을 만들었구나. 아무리 내 능력 때문에 불안정해진 공간이라고 해도 – 설마 검을 소환할 줄이야. 나도 기이한 일을 많이 보았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투명한 검신을 바라보았다. 흡사 살기나 예기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투박하고 투명하다. 어떤 재료로, 어떤 공법으로 만들었는지도 파악할 수 없었다. 단지 아무리 기운을 흘려내어도 반응이 없어서, 기를 다루는 자에게는 훌륭한 무기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결정했다.
이 검의 이름은 명검(冥劍)으로 하자.
왠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유같은 건 상관없을 정도로…
주륵
” ……?”
나는 한쪽만 남은 팔을 들어서, 한쪽만 남은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아 냈다.
당산이 피식 웃었다.
” 검을 얻은 게 기쁜가 보군.”
아냐.
이상하다.
슬프지도 분하지도 않다. 깨달음에 가슴벅차긴 하지만 울 정도는 아니다. 이 눈물은 말 그대로 이유도 없이 나오는 눈물이다. 뇌에서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멋대로 눈물샘이 반응해서 짜내는 물이다.
나는 왜 울고 있는 걸까?
생각을 더 이어갈 여지도 없이 당산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 지금부터 얘기해 주지.”
그가 느릿하게 손을 거두며 바위에 걸터앉았다.
왠지 힘빠지고 피곤해보이는 모습이었다.
”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