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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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일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손을 한 번 움켜쥐었다.
우둑
근접해서 공격이 닿을 거리에서 공격을 한다 – 모든 검사(劍士)의 전제조건은 그것이다. 갈수록 돌격은 줄어들지만, 그것은 검강이나 어검술처럼 원거리 공격수단이 생길 뿐. 공격범위 내에서 공격을 한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허나 지금은 혼원을 성취한 상태.
내 의지에 따라서 월승혼이 서 있던 공간이 칠흑같은 힘에 의해 우격다짐으로 말려들어갔다. 차라리 중력이나 압력으로 봐야 할 정도의 파괴력!
우두두둑
” 크으으… 이건… 숙(肅)?”
월승혼은 용안과 사륜안의 힘으로 그 압력에 저항하던 월승혼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녀석은 압력때문에 전신에서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바둥거리며 빠져나오려 했다.
” 아니, 달라 이건… 결계술이 아냐. 네, 네 녀석은.”
혼자서 중얼거리기를 얼마나. 이윽고 월승혼이 경악해서 외쳤다.
” 다른 세계의 힘을 쓰지 않는다는 말이냐?!”
” ……”
놈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사실 알아들을 수 있다 해도 그리 관심 없겠지만. 그저 내 모든 신경은, 놈이 나불대는 동안에 어떻게든 치명적인 일격을 더 꽂아넣는 일에 집중되어 있다.
파칵, 하고 월승혼의 왼쪽 팔이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렸다.
” 큽… 미친. 그런 진입자 따윈 있을 수가 없어.”
놈은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면서도 억지로 자신의 팔을 끼워맞췄다. 놀라움이 고통을 초월해 있는 것이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자신의 독백을 주절거리면서 늘어놓았다.
” 마음있는 존재가 생각한 모든 것이, 세계의 힘이 되어서 구동되는 수태세계… 삼천세계의 흉행(凶行)과 신비(神秘)를 용납하는 이 곳에서 맨몸으로 어떻게 버텼단 말이냐… 진입자의 특권은 오로지 수태세계에서밖에 쓰일 수 없는데!”
나는 대답하지 않고 한층 강하게 공간을 옥죄었다. 월승혼은 점차 괴로운 표정이 되더니 안광이 더욱 거세게 변했다. 놈도 이제 말을 할 정도의 여유는 없는 것이다. 대신에 놈은 무기무래를 써서 이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우웅
시간이 삭제되는 공간이 발현되었다. 나는 이전처럼 의식은 있어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나 자신도 놀랄 정도로 자연스럽게 –
” 크으?!”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움직이는 것은 미래의 잔영조차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무기무래의 공간을 무시하고 사용자와 동일한 조건에 놓인 것이다. 월승혼은 내가 자신을 따라붙어서 면전 앞에 들어닥치자 목 졸린 오리같은 목소리를 내었다.
육합귀진신공(六合歸盡神功)
혼원(混元)
팔권구각(八拳九脚)
” 으헉!”
동시에 초식이고 뭐고 없는, 마구잡이로 내려친 열일곱 번의 공격이 월승혼의 전신에 쐐기처럼 틀어박혔다. 놈은 용안으로 피했어야 정상이지만, 무기무래를 펼치는 동안에는 다른 능력을 쓸 수 없는 모양이었다.
휘청하면서 월승혼의 몸이 허공에서 뒤틀리는 사이에 나는 놈의 목을 잡고 땅에 패대기쳤다. 눈동자가 크게 뒤흔들리는 게 보였다. 보통 인간이라면 죽었을지도 모르는 공격이지만 이 놈은 그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
” 쿨럭! 쿨럭…”
월승혼은 피를 토하면서도 재차 사륜안을 발동했다.
사륜안(寫輪眼)
스사노오(須佐能乎)
‘ 음.’
마치 귀신과도 같은 형상의 투명한 것이 놈의 전신을 감싸면서 내 손을 물러서게 했다. 내 전력을 다해서 목을 잡고 있었는데도 밀어낸 걸 보면, 저것이 아마 방어용의 능력일 것이다.
일단 상황을 보기로 하고 삼 장 밖으로 물러나자 월승혼이 기듯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놈의 눈은 아까보다 한층 냉정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놈도 사선(死線)을 넘은 경험 정도는 있는 모양이었다.
” 나와라, 토츠카의 검(十拳劍)… 야타의 거울(八咫鏡).”
우우우웅
그 괴이한 형상의 손에 불꽃같은 형상의 검이 한 자루 들렸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거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투명했다. 나는 저 검에 한 번 당하는 날에는 아까 흑염에 당했던 것 이상으로 치명적이라는 건 알아챘다.
그리고 방패.
공방(功防)을 확실히 나눈 모습은 무림에서 흔히 볼 수 없다. 공격용의 무기만 들고있는 게 다반사였다. 저 방패도 내 공격을 흡수하거나 반사하는 위력이 있으리라. 나는 신중하게 바라보다가 문답무용으로 이기어검을 시전했다.
쉬캉!
야타의 거울이라는 방패가 내 이기어검을 막아내었다. 나름대로 전력을 쏟았는데도 방패에는 흠도 나지 않았다. 저정도 공격으론 어림도 없어보인다. 연이어 월승혼은 토츠카의 검이란 걸 내게 찔러왔다.
후웅
공격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지만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일 것 같아서 크게 간격을 넓혔다. 월승혼은 내가 더 이상 돌진할 수 없는 걸 알았는지 잠시 몸을 추스렸다. 그러더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 넌, 왜 이렇게 나를 죽이려 드는 거냐?”
” ……”
나는 잠시 멈칫했다.
” 그 눈과 팔은 내가 그렇게 만든 것이겠지. 나도 어렴풋한 무의식으로는 그 기억이 남아 있다. 네 능력이 열배의 하루인가… 아니면 열흘의 하루인가 그런 거라서… 그런 거겠지.”
그렇게 말하더니 월승혼이 한 번 피를 토해냈다.
” 쿨럭. 그런데… 지금의 ‘나’는 네게 아무런 감정도 없었단 말이다.”
나는 그 말에서야 처음으로 놈의 진심을 읽어냈다.
그 말대로 월승혼 입장에서는 날벼락맞은 느낌일 것이다. 꿈에서나 잠깐 나타나는 기억만 있을 뿐 놈은 나를 제대로 대면한 적도 없다. 그런데 알지도 못하는 원한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으니 황당할 수밖에 없다.
나도 어렴풋이 생각하던 거라 잠시 생각을 거듭했다.
그리고는 대답했다.
” 쓸데없는 소리 마라. 난 빚은 받아야 겠으니까.”
” 크크, 빚이라… 이봐, 네 능력이 열흘의 하루라고 치고. 오늘은 며칠째지?”
” 마지막 날은 아니다.”
내 대답에 월승혼은 뭐가 웃긴지 고개를 숙인채 큭큭대었다. 그 웃음은 진짜로 웃겨서 웃는다기 보다는, 허탈함과 짜증마저 섞여 있었다.
” 크크, 크… 이봐이봐. 내가 만약에 네게 저항도 못할 정도로 약했다고 하더라도 너는 그대로 복수했을까?”
월승혼의 감정이 갑자기 격해졌다.
” 남은 시간동안 네놈이 나보다 강해지면, 남은 시간동안 학살당하다가 – 그대로 죽음이라는 결과밖에 남지 않는다는 뜻이냐! 네놈은 나란 인간을 한번도 모자라서 몇 번이고 죽여도 성이 차지 않는다는 거냐?!”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 성이 차고 안차고의 문제는 아니다. 받은 만큼 돌려줄 뿐이다.”
게다가 네놈은 살려둬서 좋을 것도 없다. 이미 놈때문에 희생된 여러 사람을 생각하면 없애지 않는게 도리어 이상하다. 어떻게든 결판을 내야하는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 ……”
월승혼은 내 말을 듣고 나서 왠지 모르게 우묵한 눈을 했다. 우울과 허탈감이 반반의 비율로 섞여있는 표정이었다. 놈은 허공을 쳐다보며 뭔가 중얼중얼거리더니, 힘겹게 상체를 똑바로 세웠다.
” 내가 예언 하나 할까?”
” 해라.”
” 너는 언젠가… 네 능력때문에 자멸하고 말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설득에 가까운 용안능력자의 예지.
그것이야말로 언젠가 내가 현실로 받아들이게 될 저주.
… 또한 그것이 나와 월승혼 사이에 오간 마지막 대화였다.
그 다음부터는 말도, 사상도, 설득도, 생각도, 관념도, 자비도, 연민도, 망설임도 없는 살육전이 시작되었다. 그 대화가 서로를 ‘인간’으로 생각했던 마지막 선이었다. 이제는 서로가 죽여야 할 고기인형에 불과했다.
부우웅
소용없단 걸 알면서도 월승혼은 다시금 무기무래를 전개했다. 나는 혼원의 경지에 이른 덕분에 무기무래의 세계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놈을 압박했다. 이미 불러낸 스사노오의 토츠카의 검과 야타의 거울이 내 공격을 막아냈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백안과 윤회안의 괴이한 공격이 틈날 때마다 나를 공격해 왔다. 윤회안의 능력은 여섯 개, 혹은 그 이상이었고 백안은 접촉할 때마다 내 경락을 봉인해버리려고 했다.
허나 백안은 지금의 내게는 절대 통하지 않았다. 혼원의 경지는 백안의 경락폐쇄를 무효화시키는 힘이 있는 것이다. 몸 속에서 휘도는 다섯 개의 힘이 회색 구체를 만들어서 그 압박을 없애버렸다.
놈은 내게 비해 딸리는 실력을 용안의 선행예지능력과 야타의 거울로 때웠다. 간간히 아마테라스의 불꽃이 날아들었지만 혼원의 힘을 집중하면 몇 초 내에 몸에서 떼어낼 수가 있었다.
콰과과광
수십 개의 검강이 의지 한 번에 내려꽂히면서 전신을 칭칭 두르듯이 회백색의 힘이 망토처럼 변했다. 마치 천조각처럼 뻗어나간 힘이 스사노오의 전신을 압박하며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오오
월승혼이 별안간 짐승같은 기성을 내지르며 오행혈마공을 끌어올렸다. 하루에 두 번이나 오행혈마공을 일으키는 것은 몸에 안 좋을텐데, 무리를 해서라도 나와 대등한 영역에서 싸우려는 시도였다.
화염천의 기운이 태풍처럼 휘몰아치고, 공령수의 기운이 내 발 밑을 늪지대처럼 만들어 버렸다. 공력이 크게 늘어나자 공격 하나하나의 위력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서 – 마치 조금 전과는 딴 사람을 상대하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나는 혼원의 힘이 점차 내 안에서 팽배해져서 터질 것만 같았다. 이 감각은 물풍선에 물이 가득 차오른 것과 비슷했다. 무한히 차오르는 힘을 밖으로 분출해내고 싶은 배출감이 이질적이었다.
구웅
손 끝에 회색 구체가 다섯 개 떠올랐다. 연이어 직선의 형태로 사출된 회색 구체는 오행지기의 폭풍을 꿰뚫고 월승혼의 정면을 때렸다.
야타의 거울로 방어하는 게 늦었는지 놈을 수호하는 스사노오가 크게 충격을 받아서 흔들렸다. 월승혼이 충격을 이겨내려고 눈을 부릅떴지만, 그 빈틈이 승패를 결정짓고 말았다. 나는 그 1초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어서 필생의 공력을 전개했다.
무변무진광(無變無盡光)
의령수가 먼저 스사노오의 몸체를 뚜껑 따듯이 헤집었다. 의념으로 만들어진 의령수는 영체로 이루어진 스사노오에도 타격을 줄 수 있는듯, 스사노오가 고통스럽게 몸을 뒤틀었다. 그리고 뻥 뚫려있는 빈틈으로 [밀도]에 가까운 수십만 개의 검광소나기가 폭력적으로 파고들어 버린다.
빠지지직
월승혼의 상반신 한쪽이 피로 물들며 팔이 잘려나갔다. 월승혼은 그 고통을 어거지로 참아내면서 토츠카의 검을 내 의령수에 박아넣었다. 의령수가 토츠카의 검에 부숴지면서 츠쿠요미 때와 비슷한 정도의 격통이 몰려왔다.
이게 마지막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 짧은 순간에 월승혼과 내 눈이 마주쳤다. 월승혼은 자기의 죽음을 믿을 수 없는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약간이지만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과는 별개로 내 불살검이 소나기처럼 살초를 적의 맨몸에 퍼부었다.
찌직
피륙이 찢기는 소리가 귓가를 탁하게 파고들었다.
후두두둑
나는 공간을 그득하게 채우는 피과 죽음의 냄새, 그리고 피비를 맞으면서 검을 내뻗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살아날 가망없이 월승혼을 해치워버린 것이다. 사지와 목이 날아간 인간이 재생할 확률은 없었다.
죽였다.
성공했다.
” ……”
그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전에 없던 피로가 전신에 물먹은 솜처럼 밀려들어왔다. 이보다 더 힘든 일도 많았는데, 유독 지금은 쓰러져서 자고 싶은 기분이었다. 뭔가 해내긴 했는데 그리 기분좋지는 않았다.
” 후.”
끝난 건 끝난 거다. 정신을 차리고 어둠의 밤을 걸어서 나아갔다.
저벅
힘들군. 이상하게 힘들어.
명정의 새벽이 다가올 때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허무한 심정으로 열 걸음을 옮겼을 때 홀연히 내 앞에 한 백색 차림의 노인이 나타났다.
” 자네가, 그를 없애버렸군. 믿기지 않는 일이군.”
” 검성(劍聖).”
나는 검성 모용정천을 곁눈질로 일별하며 계속 걸음을 옮겼다. 내가 해야할 일을 다 했으니 더 이상 이곳에 남아있을 이유는 없다. 감상에 젖을 여유도 없다. 내일부터의 일정을 생각하는 게 먼저다.
검성이 뒤에서 말했다.
” 자네는 오늘 그냥 갈 수 없네.”
그 말과 동시에 내 앞에는 검후와 도성이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그들은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마도 검성에 이어서 천무삼성이 합세하자, 그 세검의 여인은 상대가 안되는걸 깨닫고 도주한 모양이다. 그리고 일찌감치 와서 나와 월승혼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었겠지.
나는 무미건조하게 입을 열었다.
” 목숨을 거시오.”
” 무슨 소리인가?”
도성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물론 그런 익살맞은 행동과는 별개로 셋 다 내 말뜻을 깨닫고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나는 알 수 없이 도전적인 감정이 속에서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불살검을 뽑았다.
” 날 혼자 두시오. 내게서 무언가를 듣고 싶다면 목숨을 걸란 말이외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 지금은 그리 할 필요가 없겠군요. 보내주도록 하죠.”
검후가 훗하고 웃으며 길을 열어주었다. 나머지 천무삼성도 마찬가지 의견으로 보였다. 천무삼성 치고는 너무 순순한 대응이었지만, 그들은 팔왕과 천겁령이라는 적이 산재한 상황에서 나를 자극하고 싶지 않아 보였다. 어차피 내가 구파일방 종남파에 속해있는 이상 언제라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테니까.
나는 그들을 뒤로 하고 계속 걸었다.
한도 끝도 없이 걸었다.
이제 자시(子時)가 멀지 않았으니 걷지 않아도 저절로 다음 날로 옮겨가련만, 나는 그저 걸었다. 이유도 생각도 없이 그냥 걸었다. 내가 왜 걷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저벅
저벅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나는 혼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