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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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관음(血觀音)
검군을 쓰러뜨리자 그들은 내 말에 따르기로 했다.
실제로 군신(君臣)의 예라고도 볼 수 없는 어정쩡한 상태 – 말하자면 어쩔 수 없이 족쇄처럼 두고 있는 상관을 대하는 태도였다. 그런 만큼 경애(敬愛)따위는 바랄 수가 없었지만, 나는 이런 관계가 도리어 좋았다.
나도 그들과 친해질 생각이 없으니까.
일검은 내게 말했다.
” 우리는 모두 다섯 명입니다. 한 명은 현재 임무 중입니다.”
일검은 복종의 뜻인지 더 이상 내게 반말이나 몰상식한 하대를 하지 않았다. 내가 힐끔 눈을 떠서 일검을 바라보자, 그는 실눈을 뜨면서 말했다.
” 결과가 달라지는 일은 없으니 걱정 마시길. 그는 우리에게 모든 선택을 위임했고 결과에 복종하도록 무사의 맹세를 했습니다.”
” 그가 오검(五劍)인가?”
현재 내가 상대한 것은 일검, 이검, 삼검, 사검이다.
남은 숫자면 당연히 오검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 아니오. 그는 무검(無劍)입니다.”
” 무검이라.”
” 칠 주야 후에 복귀하니 그 때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는 난주에 있어서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 그의 실력은 어떻지?”
” 우리 중에서 제일 약합니다.”
일검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더니 연이서 말했다.
” 우리는 검귀가 되기 위해 키워졌고, 제각기 다른 곳에서 종남파의 암검으로 선발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저희 각자의 출신은 아마 짐작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연속해서 대련을 하면서 그들의 내력을 알아챈 것은 사실이다.
일검은 신주제일도가(神州第一道家) 무당파.
이검은 북악형산(北岳衡山).
삼검은 남해신녀문(南海神女門).
사검은 남궁세가(南宮世家).
제각기 다른 곳의 비전신공을 근본으로 해서 종남파의 무공을 개량해서 익힌 인재들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노리고 키워진 일재(逸材)다.
왜냐하면 저 녀석들의 무지막지한 내공은 모조리 격체전공으로 전수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종남파의 성세는 화산파에 비견할 정도였는데 당대에 매화검선이나 장로급에 필적할 최절정 검도고수는 종남파에 없다. 그래서 고수의 숫자만 많지 별거 아닌 문파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당연한 것이다.
당대에 매화검선에 비할만한 고수들은 모두 검군에게 내공과 유산을 물려주고 사망했으니까. 전력을 겉으로 드러낸 화산파와 달리 종남파는 철저히 어둠 속에서 싸워나가기로 작정한 것이다.
” 우리 네 명과 달리 무검은 처음부터 종남파 문인으로서 검군이 되었습니다. 격체전공도 받지 않았지요. 현재의 무검이 제 오백초지적이 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 흠.”
” 하지만… 그는 언제고 우리보다 더욱 강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일검의 눈에는 다소 우울함이 감돌고 있었다.
” ……”
검군 중에서 가장 탁월한 경지에 이른 일검은 깨닫고 있는 것이다. 타 문파의 절세비전무공을 육합귀진신공에 합쳐봐야 초월경지에 이르는 길이 멀어지기만 한다는 사실을. 검군은 나이답지 않게 엄청난 경지에 올랐지만 더 이상 강해지는 일은 없을 게 분명하다.
” 태월하의 부탁을 받았으니 일단 명령을 내려 두지.”
나는 자연스럽게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
” 말하십시오.”
” 더 이상 검군으로서 암전쟁투에 참여할 필요는 없다. 종남파 문인이 정천맹의 뒤를 닦아줘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 너희들에게 내려오는 정천맹주의 첩지는 오늘부터 내가 모두 파기하겠다.”
” ……!!”
흠칫
이 좁은 방에 모여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일검은 물론, 옆에 서 있던 종남파 장로들이 경악했다. 그들은 내가 검군의 수장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축하해 주러 이 자리에 모인 것이었다.
원래 내 사부뻘이 되고도 남는 연배의 사람들.
종남파 장로들 중에서 한 명이 당황해서 외쳤다.
” 유천영! 그게 무슨 말인가? 어찌 정천맹의 첩지를 자네 멋대로 파기하겠단 말인가!”
” 말도 안 되는 일일세.”
” 아무리 태월하 님께 전권을 물려받았다 해도 지나친 처사…”
나는 그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를 모두 이해했다.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자, 일검이 예의 실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말했다.
” 저희야 좋습니다만 괜찮겠습니까? 검군은 현재 정천맹 암부(暗部) 삼대전력의 하나로써 진천(震天)과 동급으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우리 다섯 명이 일선에서 물러나면, 지방에서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정파가 급증할 겁니다.”
삼대전력, 그것은 각 대문파의 수뇌부만 알고 있는 극비조직이었다.
진천(震天)
구객(九客)
검군(劍君)
삼대전력은 흑천맹의 십대고수나 무력단체에 대항하는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단칼에 상황을 정리했다.
” 상관없다!”
” 뭐… 뭐… 뭐라고.”
종남파 장로, 호연검(浩蓮劍)이 아연해했다. 그의 안색이 백짓장처럼 변하고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걸 보면 마음이 진탕된 게 분명했다. 나는 좌중을 한 번 둘러보고는 냉담하게 말했다.
” 어차피 천겁령이라는 공통의 적이 부상한 상황. 거기에 팔왕까지 덮쳐오는데 아직도 암전이나 하고 앉아 있겠나? 물밑작업을 하든 협약을 맺든 그건 우두머리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 천겁령이라니 그런 뜬구름잡는 소리를…”
나는 실소를 머금었다.
” 여러 장로분들. 그리고 장문인. 나는 직접 팔왕과 겨루었고 그들의 무위를 느꼈소. 팔왕 중에서 내가 아직 못 이기는 자가 셋이나 되고, 나머지도 목숨을 걸어야 대적할 수 있소. 팔왕에서 네 명만 출동해도 구파일방은 통째로 멸문당할지도 모르오.”
네 명도 과하다.
부하를 이끌고 온다면 셋이서 구파일방을 말아먹고도 남을 것이다.
” ……”
” 검군은 출신이 어찌되었든 종남파에서 키워낸 자들. 자파의 문인을 제멋대로 끌어쓰는 일은 원래 도의상 허용될 수 없는 것이오. 물론 나머지는 검군 스스로의 의지에 달려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종남파가 더 이상 어둠에 묻혀있는 걸 허용하고 싶지 않소.”
그제서야 가만히 듣고 있던 장문인이 입을 열었다.
그는 역대 장문인 중에서 무공은 다소 부족하지만, 정치감각과 판단력은 최고라는 평을 듣고 있는 곡인(谷寅) 장문이었다.
” 유천영 자네의 말은 정론이지만 현실적인 정천맹의 보복이 뒤따를걸세. 지금도 십삼대 대문파들이 구대문파에 들고자 경합을 벌이고 있는 상황… 우리 종남파는 구대문파 경쟁에서 크게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일세.
우선 구대문파 경쟁에서 떨려나가게 되고 종남파에 오는 지원까지 끊긴다면 제자들의 수가 큰 폭으로 감소하게 될 걸세. 그에 대한 대안이 있다는 말인가?”
” 대안이라고 할 것도 없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으니까.”
술렁…
내 말에 장로들이 당혹해하며 눈빛을 주고받았다. 말을 꺼냈던 곡인 장문도 눈망울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곡인 장문은 시퍼런 수염을 떨더니 간신히 말을 꺼냈다.
” 중요하지 않다고?”
” 그렇소. 중요한 것은 언제 키워낼지도 모르는 새파란 평제자의 모집정원 따위가 아니라고 생각하오. 백년대계란 말도 있지만 지금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란 거지.”
장로들이 어리둥절해 했지만, 두뇌가 비상한 곡인 장문이 빠르게 깨닫고는 말했다.
” 검군이 모두 종남파를 위해 싸우게 된다는 건가?”
” 그렇게 되겠지.”
장로들이 깜짝 놀라고, 일검은 애매모호한 미소를 지었다. 곡인 장문은 끄응하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생각에 잠기는 모습이었다.
검군은 지금까지 종남파 소속이되 종남파 문인이 아니었다. 형식상의 소속이었을 뿐이다. 실제로는 정천맹주 직속으로 일하는 어둠의 무인들이다.
하지만 검군이 종남파에 확실히 귀속될 것을 원하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염도나 빙검 등 천하오십대 고수에 맞먹는 초절정 강자가 4명이나 종남파에 보태지는 것이다!
그 때는 정천맹이 문제가 아니다.
종남파는 천하제일문을 노릴 수 있다.
일검이 말했다.
” 우리는 유천영의 말을 따를 뿐. 거취 문제나 사후문제는 그쪽에서 처리하시오.”
내 말에 동의한다는 뜻을 돌려서 말한 것이다.
한참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그러더니 실질적으로 종남파의 대표인 곡인 장문이 말했다.
” 팔왕이란 세력이 발호했다면 더더욱 검군의 존재는 정파 무림에 있어서 불가결한 것이네. 나로서도 정천맹이 어찌되든 알 바 아니네만… 구파와 팔가의 여론을 무시할 수가 없는 일일세.”
” ……”
” 하지만 자네 말대로 정말로, 검군이 종남파에 귀속하고 헌신할 뜻이 있다면… 나는 자네 말에 전적으로 찬성일세. 여론은 자네 말대로 신경쓸 게 아니야.”
장로들은 곡인 장문의 결정에 동의하는 기색이었다. 무공은 약해도 평생동안 종남파의 중심을 잘 잡아온 웃어른이기 때문에 그의 지혜와 판단력은 누구나 인정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 이제야 제대로 풀리는군.’
이미 여러 번 이야기를 했었다. 그 때마다 이야기가 꼬이고 공박당해서 제대로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없었는데, 아흐레째가 되어서야 곡인 장문을 설득할 실마리를 찾아낸 것이다.
이걸로 태월하가 내게 맡긴 일은 거의 다 처리했다.
나는 내일부터 제대로 수련에 전념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