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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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신(鬪神)
” 소강상태란 말인가?”
약 40리 정도 떨어진 산중에서 도성(刀聖)은 침중하게 읊조렸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시간이 남아있었다. 사실 부랴부랴 하후가의 무인들을 이끌고 출발할 때도 이미 늦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팔왕쯤 되는 자들이 구파일방 하나를 멸망시키는데 그리 소홀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다고 해도 상황은 달라진 게 없다. 도리어 계속해서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현재 종남파에 진을 치고 있는 건 팔왕의 절반이나 된다. 천무삼성이 모두 달려와도 승산을 장담할 수 없다. 게다가 ‘그’ 동방지존(東方之尊) 하은천마저 있다면 되려 패색이 짙을 것이다.
현 무림에 존재하는 어떤 방파든 일거에 쓸어버릴 수 있는 미증유의 전력이 종남파에 집결해 있는 것이다. 어쩌면 도성이 도착한다 해도 의미없이 개죽음을 할지도 모른다. 생각에 잠겨있는 도성에게 강남신의 하후신이 말했다.
” 가주. 검성과 검후께서 종남파 현장에 도착하는데 앞으로 반나절은 걸리실 겁니다. 연락은 간 듯 싶습니다만…”
” 후회스럽군.”
” 네?”
도성은 힐끔 하늘을 바라보았다.
” 이런 상황이 되어서까지, 사왕비전(邪王秘傳) 따위를 생각하는 내 자신이 한심스럽네. 내게 좀 더 힘이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말이지.”
” … 그건.”
하후신은 주변의 이목을 잠시 살폈다. 다행히도 근처에 엿들은 사람은 없는 듯 했다.
‘ 맞는 말이지.’
도성이 만일 젊은 시절부터 색혼탈백신공(索魂奪魄神功)을 꾸준히 익혔다면, 어쩌면 ‘그’와도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후가에서는 가문의 치부(恥部)로 여기고 있지만 위력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마신(魔神)조차 넘어설 수 있다는 천지아래 모든 마공의 정점(頂點). 만일에 세상 사람들이 색혼탈백신공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눈이 뒤집혀서 하후가문을 멸망시키려 할 것이다.
마교(魔敎)조차도 경원시한 불세출의 마공. 하후가의 역대 가주들은 맥이 끊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본경지만을 연마했지만, 지속적으로 색혼탈백신공의 유혹을 받았다. 익히면 단번에 천하제일의 마인이 될 수 있다는데 힘들여 도법을 익힐 필요를 못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 유혹을 이겨내야만 진정한 하후가의 가주가 되어서 색혼탈백신공의 개량판을 익힐 권리가 주어졌다.
사십팔로지극요.
다만 위력은 원판의 1할에도 미치지 못한다. 사술사와 마술에 극성이 되는 능력을 갖출 뿐이다.
하후신은 하후가에서 색혼탈백신공의 비밀을 알고 있는 3명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조심스레 도성에게 진언했다.
” 팔왕이 4명이나 몰려올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흑천맹에 심어 둔 우리 간자들도 알아내지 못한 정보인 걸로 보아, 아마 팔왕은 천겁령과도 완전히 단절된 세력이라고 추측됩니다.”
사실 정천맹과 흑천맹은 대충이나마 천겁령의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다. 무림 최고의 두뇌들은 모략과 지혜를 짜내어서 이중간첩을 통해 천겁령의 존재를 감지했다. 그래서 천겁령이 어떤 짓을 하려는지 기본적인 윤곽은 파악하고 있는 단계였다.
하지만 팔왕은 마치 무림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완전히 정보망을 무시하고 떡하니 중원대륙의 중심부에 있는 종남파에 나타났다. 이건 팔왕이 천겁령과도 연계하지 않고 움직인다는 뜻이었다.
‘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하후신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팔왕과 천겁령은 공동전선인 줄 알았는데 별개로 움직인다.
하지만 무인(武人)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중원에서 활동하려면 돈과 인맥이 필요하다. 천겁령조차도 비밀리에 몇몇 장원을 통해서 자금줄을 제공받기에 겨우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중원무림에서 정천맹, 흑천맹, 천겁령 모든 세력의 이목을 무시하고 자금줄을 댈 수 있는 방법 따윈 들어본 적도 없었다.
” 가주. 그렇다면 빨리 무신마 어르신께 도움을…”
” 어르신께선 앞으로 반 년간 움직이지 못하시네.”
도성의 말에 하후신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 아니 왜 그렇습니까? 팔왕이 본격적으로 발호한 상황에서 흑백양도는 의미가 없고, 팔왕급 고수를 억제할 수 있는 건 무신마 어르신 뿐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 … 분명 어르신께서 당장 활발하게 움직이게 되면 전황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이끌 수 있겠지. 팔왕의 서열 1,2위를 제외하고 세상천지에 그 분을 감당할 자는 없어.”
도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 허나 우리 적은 팔왕만이 아니야. 천겁령의 고수들도 팔왕이 전면에서 헤집는 틈을 노려서 우리의 거점을 공격하려고 이빨을 갈고 있네. 싸움이 길게 가면 갈수록 중원무림이 불리해져.”
” ……”
” 우리에겐 지금 희망이 필요하다네. 그래서 화운산에서 친히 후기지수들을 훈련시키고 계신 거고.”
하후신은 그제야 무신마와 천무삼성들의 뜻을 알 것 같았다. 당장 무신마와 천무삼성이 몰려다니면서 팔왕을 때려잡으면 유리해지겠지만, 적들이 작정하고 장기전을 유도하면 결국 질 수밖에 없다. 차라리 초반에 조금 밀리는 한이 있어도 나중에 초절정고수가 될만한 인재들을 빠르게 키워내는 게 방법이다.
” 그럼 종남산은…”
” ‘정명(精明)’의 도움을 받는 수밖에.”
” 결국 그렇게 되는군요…”
하후신의 얼굴이 침울하게 변했다. 도성도 기분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장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고 해도 ‘정명’은 천겁혈신만큼이나 기분나쁘고 가까이하기 싫은 자들이다. 무신과 무신마 또한 ‘정명’의 간섭을 견제한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을 정도이다.
도성은 수염을 매만졌다.
” 정명의 염도중(炎刀衆)이 오면 어쨌든 팔왕은 몰아낼 수 있을 걸세. 욕은 먹겠지만.”
” 그들은 무엇입니까?”
” 무림의 종말.”
” 네?”
하후신의 반문에 도성이 떫은 표정을 지었다. 진심으로 그는 염도중에게까진 도움을 청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팔왕이 적이라고 해도 같은 무림인이다. 설마 ‘무림인이 아닌 자’들에게까지 손을 벌릴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