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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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신(鬪神)
회천(回天)을 방불케 하는 공세. 수백 개의 나래가 펼쳐지며 무(武)의 교과서보다 정확한 일격이 날아들었다. 나는 하은천과 마주하는 10여 초 동안에 말 그대로 지옥(地獄)을 헤매이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기분이 들었던 건 지금까지 딱 세 번… 무신마, 비류연, 연화 때 뿐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지금껏 만나본 강자들 중에서도 최강급에 속하는 게 틀림없다.
앞서 만났던 3인의 괴물과 하은천이 다른 점은 하나밖에 없다. 근거없을 정도의 강함을 내세워 이 쪽을 핍박하는 게 아니라, 내가 거쳐왔던 길과 알고있는 수법(手法)을 동원해서 정공법으로 나를 박살내고 있다. 단지 경지의 차이로 치부하기에는 내 노력을 송두리째 부정해버리는 느낌이다.
자색 섬광이 흩날리더니 마름모꼴의 강기가 두세 개 튀어나와서 내 팔쪽으로 빠르게 쇄도했다. 나는 의령수를 동원해서 하은천의 수법을 빠르게 막아내었지만 그조차도 노림수였는지, 어느 새 그의 왼팔이 공간을 접으면서 앞가슴을 밀어내고 있었다.
태극기공(太極氣功)
폭추결(爆推結)
꽈광!!
그 순간, 대전차지뢰가 몇 개나 터진 듯한 충격이 내 갈비뼈를 부숴버렸다. 순간적인 격통으로 눈 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이었다. 내 몸은 현재 합일된 육합귀진신공으로 인해 호신강기가 다섯 겹이나 둘러 싼 덩어리인데, 그걸 한번에 뚫고 치명상을 가할 수 있다니!
만일에 지금 행했던 폭추결이 조금만 강했다면 나는 즉사해버렸을지도 모른다.
‘ 이게, 천지 아래 다섯 손가락에 드는 자의 실력…!!’
나는 아찔해졌다.
하은천과 무신마의 실력은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하은천은 나를 죽일 수도 있다는 자세로 대결에 임하고 있다. 단순히 내 실력테스트를 하러 나섰던 화산지회 때의 무신마와는 경우가 다르다. ‘죽일 수도 있다’라는 마음가짐의 차이만으로 – 내가 강호최정상급 절대자들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이다.
주춤
어쨌든 태세를 정비해야 한다. 하은천은 폭추결을 맞고도 내가 비틀거리며 몇 걸음 물러나는데 그치자 진심으로 감탄했다.
” 정말 엄청난 방어력이군! 폭추결을 합쳐서 쓰는 건 일반적인 탄자결의 20여배에 이르는 위력… 사람이 맞고도 살아남을 줄은 몰랐네.”
… 봐주는 게 아니다.
하은천은 내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기세로 손을 쓰고 있다.
” 쿨룩…”
나는 대답하지 못하고 피섞인 기침을 뱉었다. 하은천의 말이 조롱이 아니라 순수한 감탄이란 걸 알고 있어서 더 괴롭다. 나조차도 감지하기 힘든 속도와 정확도로 탄자결 20배의 공격을 할 수 있는 상대를 어떻게 쓰러뜨려야 하는가? 만일에 우연히 합일의 경지를 얻지 못했다면 이번 일격에 즉사했을 것이다.
” … 오해하지 마시오. 내 공력이,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고 변명을 하고 싶소.”
” 흠. 진심인가?”
내 대답에 하은천이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예상외의 대답인 듯 했다.
” 방금 전에 자네의 재능을 폄하했네만 – 그것과 별개로 유천영 자네는 충분히 강해. 아마 현 강호에서 그대와 1대 1로 겨뤄서 이길만한 자는 숨겨진 강자까지 포함해서 채 스무 명이 되지 않을걸세. 외적인 강호서열로는 충분히 일대종사(一代宗師)라 할 만 하지.”
” ……”
” 자네의 몸은 천하의 기(氣)와 통하는 용맥(龍脈)이나 다름없게 진화해 있어. 솔직히 말해서 이론상으로나 가능한 경지야. 반쯤 인간을 벗어났다 볼 수 있지… 그런데 아직도 공력이 완전치 않다고?”
하은천은 고개를 저었다. 가당치 않다고 여기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약간 풀어지는 걸 느꼈다. 하은천이 내 말을 부정한다는 건, 그만큼 육합귀진신공이 합일된 경지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이상의 진경(進境)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 하지만 나는 하은천에게 거짓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아직 내가 가야 할 천년검로(千年劍路)는 멀기만 하고, 지금의 방어력도 완전치 않다. 온전한 수련을 통해서 육합귀진신공을 합일시켰다면 수백여 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겠지만 방어력은 지금의 수십 배까지 상승했으리라.
아쉽다.
적어도 10년… 아니 20년만 더 가다듬을 시간이 있었다면, 하은천과 그럭저럭 싸울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나는 몸을 추스리는 것조차도 벅차다. 열흘의 하루라는 짐이 이토록 무겁게 느껴지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 어떻게 하면 종남파를 지킬 수 있지?’
설마 단숨에 팔왕 4명을 상대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 하물며 무신마에 준하는 경지에 오른 하은천을 상대로는. 절망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지만 현실적인 전력차가 너무 큰 바람에, 나는 앞을 바라보기가 힘들어졌다.
이렇게 되면 나머지 8일을 반복해 봐야 내 몸만 더욱 망가지고 덧없이 죽어없어질 뿐이다. 나는 입술을 질끈 꺠물며, 불살검의 손잡이를 다잡았다.
” 지금까지 72초… 30여 초를 버틸 수 있다면 내 승리요.”
” 30초? 후후후…”
하은천이 낭랑한 웃음을 터뜨렸다. 비웃음이라기 보다는 호기심이 섞여 있었다.
” 난 앞으로 10초 내에 그대를 무릎꿇게 할 수 있네. 내가 기대하는 이상의 가능성을 보여주게, 유천영.”
퍼벅!
결코 허언(虛言)이 아니란 걸 깨달은 건 다음 1초의 공방이었다. 나는 정확하게 하은천의 은하구절편이 펼쳐내는 천령칠성(天靈七星)의 변화를 감지해내고 파생되는 29가지의 투로를 막아내었지만, 이윽고 하은천이 귀신처럼 파고들면서 내 좌비(左臂)의 혈도 5개를 순식간에 짚고 지나갔다.
혈도에서 아찔한 고통이 스치고 지나감과 동시에 내 몸이 빠르게 둔해지는 걸 느꼈다. 하은천과의 수싸움에서 밀려버리니 도저히 균형을 유지할 수가 없다.
나는 발악하듯이 은하구절편을 손으로 잡고 검기를 전방으로 퍼부었다. 일순간에 떨쳐낸 변화가 어찌나 많았는지 눈 앞이 새하얘지는 듯 했다. 하은천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무덤덤하게 보법을 밟았다.
사신무(四神武) 외식(外式)
무진(無盡)
주작 날파람계
휘어걸기
파바밧
” ……!!”
나를 둘러싼 주변풍경이 빠르게 반전(反轉)된다. 한 순간이지만 하은천의 몸은 내가 펼치는 유운검(流雲劍) 검정중원(劍定中元) 심어(心御)의 영역을 모조리 회피해 버렸다. 마치 불꽃의 새가 노래를 부르듯이 여유롭고 빠른 속도였다. 그저 놓쳤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순간이다.
인간이… 이런 신법을 발하는게 가능하다고?!
말도 안 돼! 난 그냥 검을 휘두르는 게 아냐. 팔왕급의 고수조차도 피하는 걸 벅차하는 검경(劍經)이란 말이다. 있을 수 없는 무공이야.
… 아니… 아니다. 나는 딱 한 번 이런 수준의 신법을 본 적이 있다.
비류연의 봉황무(鳳凰舞)를.
그리고 동시에 시간이 멈춘 듯한 찰나에 하은천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심적권청의 경지다.
[ 자네의 종남파 검법은 적수를 찾기 힘들 정도로 현묘하지만 그건 선대(先代)의 유산일 뿐. 원류를 뛰어넘지 못한다면 동방12율의 절세무공을 통합한 나를 감당할 수 없을 걸세.]꽈광!
동시에 내 몸이 하은천의 왼 손에 잡혀서 공중으로 띄워지고, 마치 춤을 추는 듯이 하은천이 가볍게 내지른 일 권(一拳)에 창자가 크게 진동했다. 한 번의 공격으로 끝이 아닌지 주먹에서 팔꿈치, 팔꿈치에서 어깨로 이어지더니 박치기까지 하면서 연속공격을 해 왔다. 동작은 다시 반복되더니 총합 7연격을 가하고는 마지막으로 명치에 붕권(崩拳)이 내려 꽂혔다.
쿠쿵
하은천이 내 몸을 대지에 내리박자 대지가 함몰되면서 폭발음이 울렸다. 나는 끝도 없이 모랫바람에 뒤덮이며 충격파에 허우적거렸다. 내가 정신이 들었을 때는 3장이나 되는 깊이로 박혀 있었다.
나는 겨우 숨만 몰아쉬면서 검을 잡고 있었다. 보통 인간이라면 수십 번이나 죽어야 정상인 절격 속에서 목숨을 건진 건 어디까지나 육합귀진신공 덕분이다. 혈관이 터져서 충혈된 눈으로 하은천을 올려다보자 하은천이 햇빛을 등지고 있었다.
” 경지에 오르면 움직임이 같은 율격(律格)을 이루는 법. 내가 사신무의 정통후계자도 아니지만 무진에 준하는 기예를 보일 수 있는 건 그때문이지. 자네는 자신과 다른 흐름과 목소리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
비틀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하은천은 아직 나를 죽일 생각이 아니라 말해주고 싶은 게 있는 듯 했다.
” 다른 흐름과 목소리…? 무슨 말이오.”
” 이유는 모르겠지만 – 자네는 재능이 없다는 걸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자각하고 있는 바람에 자신이 만든 환영을 부숴버릴 수 없다는 뜻이지.”
씁쓸하게 뇌까린 하은천은 무표정하게 왼손을 들어서 자신의 가슴께 위로 올렸다. 그리고 오른손에 들고 있는 은하구절편을 내 머리로 겨누며 기수식을 잡았다. 나는 아무 살기 없는 그 기수식을 보자마자 전신에 오싹한 공포가 닥쳐옴을 느꼈다.
” 크윽.”
저건, 분명히 은하구절편으로 펼쳐낼 수 있는 하은천 최대최강의 초식 –
예전에 무신마의 구십구합리귀에 막혀버렸지만, 옆에서 보는 위력으로는 결코 천무삼성의 필살기에 뒤지지 않았다. 게다가 경지가 오른 상태에서 펼쳐내는 절초라면 위력이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저걸 맞는다면 – 탄자결 20배 위력이 우습다.
내가 방어에 전념한다고 해도 전신이 걸레짝이 되어서 박살(搏殺) 난다.
틀림없이 죽어버린다…
하은천의 냉혹한 말이 재차 떨어졌다.
” 이제 됐어. 여태 깨닫지 못했다면 100년이 지나도 소용없는 짓… 태왕을 쓰러뜨릴 동료라는 기대는 그만두지.”
지금, 뭐라고…?
내가 반문하기도 전에 하은천의 눈이 새하얗게 빛났다.
은하구절편과 완벽하게 동조하면서 반신(半神)의 힘을 끌어오는 것이다.
” 천하군림궤(天下君臨櫃)를 얻기 전의, 좋은 여흥이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