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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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유타(那由佗)
제일 처음 검을 가르쳐 준 사부가 해준 말이 잠깐 기억났다.
일안이족삼담사력(一眼二足三膽四力)
완력은 가장 단련하기 쉬워서 노력만 하면 누구든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힘은 정신력에 쉽게 좌우되고 농락당한다.
하지만 심신을 성실히 단련한 사람도 전술의 이로움을 단련한 자를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두루 살피고 간파할 수 있는 ‘눈’을 가진 자가 가장 강하다고 인정받는다.
하지만… 첫 살인을 할 때 꼭 그런건 아니란 걸 깨달았었다.
눈은 공포로 탁해지고, 다리는 둔해지고, 마음은 손쉽게 ‘힘’에 굴복한다.
전쟁에서 정신없이 칼으로 사람을 찔러죽인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오열했었다.
이게… 이런게 인간의 본성이라면 무(武)라는 건 대체 뭐지?
…….
인간은 너무나도 여리고 약해서 쉽게 부서진다.
그게 바로 인간이다.
혼자서 계속 싸울 수 있는 인간은 한 명도 없어.
그게 바로 ‘우리’라는 존재니까 –
계속해서 용기를 얻어갈 뿐이다.
그렇게 사부가 말하셨다.
… 정말로 그런 걸까요?
불가능한 걸까요?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꿈에 불과한 걸까요?
혼자서 영겁토록 계속 싸우는 건… 정말로 불가능한 겁니까?
나의 첫 사부이자, 영원한 마음의 스승이여.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했었습니다. 인간은 너무나 약하기 때문에 부숴진다면 – 내가 조금 더 강해지면 되는 거라고. 나는 태어나서 줄곧 마음을 의지할 여유가 없었기에, 남에게 지워지는 짐만큼은 나 스스로 덜어내고 말겠다고.
해답따윈 없다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주변에서 용기를 얻으면서 ‘인간’으로써 강해질 도리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나는 인간으로써 강해질 기회가 없었습니다. 미쳐버린 시간(時間)의 수라장을 헤쳐나왔을 뿐.
그렇기 때문에 –
나는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와 비교하게 되는 최강(最强)보다는 모든 걸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는 최고(最高)를 동경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잃어버린 걸 되찾지 않아도 좋으니까, 혼자서라도 계속 싸워 나가기로.
… 이게, 강해지기 위한 길인 걸까?
아무리 괴롭고 슬퍼도
… 인간은
자신의 뜻으로 자신의 마음을 꿰뚫으면서까지…
계속해서 싸울 수 있는 건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게…
세계 누구도 내게 용기를 주지 않을 지라도.
기(氣)가 점차 느껴지지 않는다.
반대인가?
이 공간에서 숨쉬는 순간, 기가 자연스럽게 체내로 얽혀든다. 언제부터인지 마음은 공허 속에서 맴돌면서 오직 생각만을 거듭하고 있었다. 마음과는 별개로 수련하고자 하는 의지는 끊임없이 뇌를 움직이면서 나를 미치지 않게 만들었다.
웃긴 일이다.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련하기 위해서 살아 있다.
내 몸에 잠재되어 있는 기의 농도가 외부세계와 완전히 같아지고 있는 걸 느꼈을 때가 되어서야 서서히 변화가 찾아왔다. 간단하게나마 소주천(小周天)이 몸 속에서 돌아가는 게 느껴지고, 의념으로 주변 사물에도 조금씩 변화를 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 ‘한 걸음’을 옮길 정도의 움직임은 불가능하다.
나는 그제서야 시공의 복원력이란 존재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끊어내야 할 ‘고무줄’은 단순히 일개인의 강한 의지력으로 어찌될 게 아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10억명 넘는 인간들의 인과(因果)가 칭칭 얽혀서 시꺼멓게 되어있는 무시무시한 시간의 감옥이다.
‘영겁(永劫)’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적어도 ‘영장’을 압도할 정도의 힘이 필요하다.
나는 수백 수천년 동안 무공을 수련해 오면서 한 번도 그정도의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나유타(那由佗)가 얼마나 처절한 지옥인지, 지금까지 600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매일매일 곱씹고 이를 갈아야 했다.
언제부터 참극(慘劇)이 시작되었을까?
그렇다고 해도 나는 목숨을 스스로 끊는 걸 거부했다. ‘한 걸음’을 걷는 건 불가능해도 생명을 포기하는 건 언제든 가능했는데, 나는 수백여년 이상 멈춘 시간속에서 살아가기를 선택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진정한 ‘싸움’은 언제나 혼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강해져도 그건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나가는 것도 물러서는 것도 나의 의지이기 때문에 누구도 날 도와줄 수 없다.
어느덧 내가 알고있는 무예는 자꾸만 가짓수가 늘어서, 100여개를 넘었을 때는 곤혹스러울 정도가 되었다. 영락(靈洛)은 영겁 속에서 자꾸만 증폭되어 가는 의념 때문에 범위가 자꾸 넓어지고만 있다. 처음에는 눈 앞의 하은천만을 읽어내던 현상이, 이제 와서는 주변에서 관전하던 팔왕과 기타 실력자들의 세월마저 읽어버리게 된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게는 독(毒)이다.
나는 영겁 속에서 종남파의 검류를 통합한 천둔검류를 자꾸만 다듬고, 또다시 다듬으면서 당초에 생각했던 ‘천년검로(千年劍路)’의 기본형을 만들고 있었다. 그 시도는 제법 성공해서, 검기의 숙련도 자체는 이제 강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영락을 따라서 다른 무예가 얽혀들어오면서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깨달음을 통해 응축된 검류가 탁해지고, 제멋대로 풀려버리면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더 이상은 상상력으로도 내가 뭘 해야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무식할 정도로 많은 기(技)가 심(心)을 어지럽힌다.
단지 훑어보는 수준이면 괜찮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무진장의 시간동안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다른 무예도 연구하고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는 와중에 또다른 묘리를 짚어내곤 한다. 몇 번이고 실수가 반복되니까 이젠 수습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러 버렸다.
그러던 어느날 – 내가 수백여년 동안 이룬 것도 하나 없이 그냥 무한대의 시간에 내동댕이 쳐져 있다는 걸 발견했다. 마음속이 허해지고 머릿속이 텅 비었다. 더 이상 생각하는 게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왜 이러지?
노력하는 시간은 결과를 가져다주는데… 내 신념이 틀렸단 말인가?
모르겠다.
어라.
그러고보니 이 ‘다음’엔 뭐가 있지.
없다.
울혈(鬱血)이 내장에서 비어져 나왔다.
그리고 천천히 밑에서 위로, 안에서 밖으로, 눈에서 뺨으로, 목에서 혀로, 심장에서 뇌로 피가 치밀어 올랐다. 그 과정은 너무나, 너무나 느려서 도리어 괴로웠다. 차라리 한 순간의 고통이라면 편할 텐데 – 전신을 이루고 있던 진기(眞氣)가 붕괴하면서 몸의 오행육합(五行六合)이 조화를 잃어 버린다.
아니야, 난 할 수 있어.
아직 할 수 있다고.
이런 곳에서 주저앉기 위해서 수백 년을 괴롭게 달려온 게 아냐.
그 때였다.
내가 필사적으로 마음을 되찾고 평상시와 같은 냉정한 상태로 되돌아가려고 할 때, 눈 앞에 환영이 나타났다.
나타난 것은 정말로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다지 못난 건 아니지만 그렇게 잘 생기지도 않은 이목구비. 표정을 풀면 편하고 밝게 보이겠지만 꾹 다물고 있는 입. 언제나 삭막하고 냉정한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있는 한 쌍의 눈.
그것은 바로 나였다.
아주 오래 전에 환마동(幻魔洞)에서 보았던 ‘나’, 평행세계의 유천영이었다.
‘유천영’은 빙긋 웃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뻗어서 내 이마를 쿡쿡 찔렀다. 실제로 촉감이 느껴졌지만 이게 환각이라는 걸 알고 있다. 내 영락이 극도로 민감해져서 영적인 자극을 실체처럼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 세계에서 버림받은 쓰레기.]……
[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다시, 시공의 균열을 통해 나타났지. 아니 – 사실 지금의 ‘나’는 네 의념이 만든 망집(妄集)에 가깝겠지만. 지금 이런 곳에서, 이런 때 나는 반드시 네게 질문해야만 한다고.]뭘 질문한다는 걸까.
나는 사실 듣지 않고도 알 수 있다.
그 사실이 너무나 굴욕스럽다.
한 순간이지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마음이 당장이라도 박살날 것 같다. 다른 사람이면 진작에 미쳐서 정신을 잃어버렸을 텐데 – 여태껏 제정신이 남아있기 때문에 더 아프고 굴욕적이다.
하지만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입가의 근육을 움직였다.
그리고 여태껏 느껴본 적이 드문 극렬한 분노를 뿜어내며 천천히 외쳤다.
” 아 냐 ! ”
뼈가 찢어질 것 같은 소리, 내장이 찢어질 것 같은 소리가 생생하게 들린다.
고통보다도 더욱 절실하게 내 몸이 무너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의지가 한 번 꺾여버리자 육합귀진신공이 더욱 강렬하게 반응한다. 살고 싶다는 본능과 죽고 싶다는 논리가 충돌하면서 머릿속을 괴롭게 했다.
그만
그만 생각해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어
순수한 광기가 느껴진다. 절망의 구렁텅이 앞에서 ‘놈’은 미친듯이 실소를 흘렸다. 예전에 보였던 열등감이 마치 거짓말인 것처럼 나를 장난감처럼 바라보고 있다. 내가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 사악하고 뱀같은 미소다.
[ 천 년을 노력했는가…? 웃기지 마, 흐흐흐.삼천세계 무량대수의 모든 대존재들이 포기했던 목표에 다가가려는 게 네놈이다.
고작 천 년으로 될 리가 없다는 걸, 난 환마동에 나타났을 때 이미 알고 있었다…!!]
놈의 독백이 이어졌다.
[ 하지만 나는 오로지 사실만을 이야기하면서 너를 여기까지 계속 이끌었지…그래… 범재도 노력하면 천재를 이길 수 있다…
그건 사실이야… 나도 겪었어…
그것만큼은 내가 거짓말 했다는 걸 인정하지…
하지만 나머지는 모두 네놈이 선택하게끔 했지…]
” …….”
[ 검의 끝같은 건 없고, 절망과 허무 뿐이다.결국 절망할 것이다.
그러니 당장 자살해라…
이건 모두 진심이었다. 하지만 난 네놈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어. 그러니까 쓸데없는 희망을 갖게 할 재미가 있었지…!!]
이 놈은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나는 육합귀진신공의 육맥이 가닥가닥 끊어져서 고통이 치솟아 오르는 와중에도 놈을 똑바로 노려 보았다. ‘유천영’은 내 뺨에 흐르는 피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으며 중얼거렸다.
중요한 건 천재 따위를 뛰어넘는 게 아니었던 거지…
무극(武極)을 꿈꿨던 게, ‘유천영’의 원죄다.]
” 아 냐 !!!”
더욱 강하게 부정했다. 마음이 꺾였지만 나는 죽지 않았다. 아직까지 살아서 발버둥치고 있다. 몸도 의념이 회복됨에 따라서 점차 상태가 나아지고 있다. 수백 년동안 지옥에 빠져 있었다고 해도, 남은 시간동안 이겨나가면 되는 거다.
[ 천 년을 노력했냐고 물었지…?]‘유천영’은 훗하고 웃었다.
이어진 말이 나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내가 해 봤으니까 말하는 거다.
절대 불가능해.
그러니까 당장 자살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