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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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량(魍魎)
내가 망량으로써 살아가면서 처음으로 하는 일은 누각경비가 되었다.
‘선배’라고 하는 자들은 정주의 무림문파 출신으로, 실력이 이류(二流)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무공은 별볼일 없는 편이다. 팔왕이나 초절정고수들과 손을 겨뤘던 내 시점으로 보자면 미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마음은 착한 사람들이었다. 갑자기 신입이 들어온 상황에서도 무난하고 편하게 대해주었다. 그들은 내가 축기(築氣)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자, 그럴수도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음 뭐. 딱히 내공이 필요한 일은 아닐세. 자네 취해서 진상부리는 성인남자 하나 때려눕힐 실력은 되지?”
” 네.”
” 그거면 돼. 탄경(彈經)이나 검파(劍派)같은 기술을 익힌 고수가 나타나면 이 은종(銀鐘)을 울리게. 그러면 속가고수 분들이 알아서 처리해 주겠지.”
그들은 내게 경비용 은종을 건네준 후 자기소개를 했다.
” 나는 왕일(王一)이고 이쪽은 왕필(王弼)이네. 유성문(流星門) 출신이지.”
” 망량이라고 합니다. 사사한 문파는 없습니다.”
” 하하하. 알고 있네. 어떤 문파가 설마 문하제자에게 내공도 안 가르치겠나.”
” ……”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대뜸 종남파 출신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약간 죄책감을 느끼면서 나는 왕일과 왕필에게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류문파 출신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고, 그런만큼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하고 있었다.
진시(辰時)경에 주루에 출근해서 오전오후 내내 정해진 자리에 앉아서 동향을 감시하고, 저녁무렵에는 취객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한 후에 술시(戌時)경에 퇴근하는 게 일상이었다.
왕일과 왕필을 따라서 일을 하던 바로는 별로 힘들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사건이랄만한 게 발생하지 않았다. 취객들 중에서 가끔 진상을 부리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냥 취기가 강해서 실수를 저지를 뿐이었다. 굳이 검술을 쓰지 않아도 완력만으로 충분히 제압이 가능했다.
나는 퇴근한 후 첫째 날의 자정에 자지 않고 기다렸다.
‘ 어떨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다음날이 시작되자 나는 익숙한 소리를 들었다.
왕일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처음 보는’ 나에게 일을 설명해 주었다.
” 음 뭐. 딱히 내공이 필요한 일은 아닐세. 자네 취해서 진상부리는 성인남자 하나 때려눕힐 실력은 되지?”
” … 네.”
열흘의 하루.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내 삶에 붙박혀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내공이 있었던 시절을 생각하자 약간 당황스러워졌다. 그 때는 하루하루 내공을 쌓는 재미로라도 견뎠지만 지금은 그냥 열 배로 시간이 늘어났을 뿐이다. 시간이 남아돌아서 고민인 지경이 된 것이다.
나는 열흘 내내 왕일에게서 일을 배웠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반복되는 하루를 지낼 것이다. 기이한 감정이 내 몸을 휩쓸었지만, 이내 잊어버리고는 숙소에 틀어박혔다.
내공을 쌓지 못한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수련을 해야 하는가.
” ……”
나는 조용히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어둠 속에서 벽에 손이 닿였다. 나는 전신에 미미하게 흐르는 기(氣)를 모아서 조용히 손 끝의 경락으로 내뿜어 보았다.
투웅!
그러자 상당한 반탄력과 함께 벽에서 소리가 났다. 나는 역시 기(氣)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 보통사람 수준은 된다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그정도라고 해도 원래 지니고 있던 요령대로 사용하면 왠만한 자들을 감당할 수는 있다.
그리고 천천히 손 끝으로 바닥을 눌렀다.
이번에는 천천히 손가락이 돌바닥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약 한치 정도 손가락을 꽂아넣다가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려서 그만두었다.
‘ 의념(意念)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뇌(腦)가 타버리겠구나.’
의념은 내공에 구애받지 않는 순수한 의지의 힘이다. 하지만 의념을 끌어올릴 때 몸에는 상당한 반작용이 발생한다. 내공은 의념을 발휘할 때 몸의 내구력을 높여주는 역할을 해 주기 때문에, 자주 사용하고자 하면 역시 부담이 생긴다.
물론 나유타영겁의 시간 속에서 나는 몇 번이나 내 몸을 재생시킨 적이 있다. 다만 그건 시공간이 특이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무의식의 집합인 허공록에 연결되어있다는 특수성이 아니면, 인간이 그 정도 의념을 발휘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래저래 기존에 하던 방법대로 수련을 하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일단 먹고 살 길을 마련해 뒀지만 이대로는 무의미하게 시간을 낭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턱을 괴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초에 내가 고민하던 건 육합귀진신공의 극한에 도달함으로써 무의 극한을 향하는 길이 맞느냐였다. 하지만 미처 도달하지 못하고 끝내버린 상태로써는, 다시 거기에 집착하는 일이 옳은지 알 수가 없다.
나는 더 이상 ‘유천영’이 죽은 이후의 무림상황을 생각하지 않는다.
솔직히 이제 알 게 뭐란 말인가?
팔왕이 난을 일으키든, 천겁혈신이 부활하든, 다시 한 번 무림에 전쟁이 일어나든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비류연만큼은 아직도 신경이 쓰이지만 그조차도 절실하진 않았다. 방향이 잡혀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의욕만 불태우는 건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 어쩔 수 없지.”
나는 결국 ‘검로(劍路)’ 그 자체를 머릿속에서 염상으로 다듬는 작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원래라면 내공을 담은 움직임으로 직접 시연하면서 시험해 보겠지만, 내공이 거의 없는 지금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경옥루에서 일하기 시작한지 약 세 달 정도 지났을 때였다.
내게 있어서는 약 2년 반이었다. 별다른 내공은 쌓지 못했지만, 의외로 영겁동안에 얻어냈던 팔왕의 무공과 각종 천문학적인 숫자의 무예(武藝)를 머릿속에서 정립하는 것도 일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얽으면서 하나하나 묘리(妙理)를 깨닫는 것만으로도 재밌는 일이었다.
나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별다른 불평도 없이 묵묵히 일을 하고 있었다. 영겁 때 겪었던 괴로움에 비하면 이건 고통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저 숨을 쉬고 평범하게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해할 수 있다.
정말로 큰 일 한번 생기지 않는 평범한 하루가 쌓이고 있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 음식 맛이 왜 이래?”
콰앙
왠 거친 인상의 사내 하나가 탁자에 크게 주먹을 내리쳤다. 그러자 탁자 뿐만이 아니라 주루의 나무바닥이 한차례 진동을 했다. 그 진동을 느끼자 왕일과 왕필의 얼굴이 가볍게 변했다. 상당한 내공을 지닌 상대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점소이는 당황해서 몸을 떨고 있었다. 그러자 상황을 지켜보던 선배 왕일이 웃는 낯으로 다가갔다.
” 하하 손님 왜 그러십니까?”
” 왜 이러냐고? 보면 모르냐. 이 작면(灼面) 맛이 이상해!!”
” 아… 어떻게 이상하신지요.”
” 생선비린내가 나잖아!”
왕일은 의혹어린 얼굴을 했다. 작면이란 건 정주지방의 음식으로, 면을 튀기듯이 해서 고기조각과 함께 내놓는 음식이다. 고깃기름을 튀기기 때문에 생선비린내는 날래야 날 수가 없다. 그가 냄새를 맡아보기 위해서 성큼 다가섰을 때였다.
퍼억
” 크하악…!!”
왕일은 사내가 뜬금없이 내지른 주먹에 맞아서 이 장이나 허공을 날았다. 직전에 방어를 했는지 큰 부상은 없어 보였지만, 땅바닥에 내팽개쳐진 왕일은 핏기침을 토해내었다. 쿨럭거리는 모양새를 보면 갈비뼈가 한두 개 부러진 모양이었다.
왕필이 버럭 외쳤다.
” 이게 무슨 짓이냐!”
” 큭큭. 너희같은 놈들과는 할 얘기 없다. 루주 불러와.”
왕필이 왕일을 부축하며 이를 악물었다.
” 무림인같은데, 이름과 명호를 밝혀라!”
” 흐흐흐. 네놈이 들을 자격이 있을까?”
건들거리던 사내는 자신의 흑색무복의 옷깃을 흔들면서 도발했다.
” 이리 와서 삼초(三招)를 받아내 봐라. 그럼 가르쳐 주지.”
” 후회하지 마라.”
부웅
왕필은 거침없이 자신의 검을 뽑았다. 주루 내에서 싸우는 건 원래 해선 안 되는 일이지만 상대방이 무림인인데다 시비를 거는 게 확실했다. 이 경우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도리어 왕필이 무능한 셈이다.
원래 그의 장기는 암기투척 쪽이었지만 사문이 외부에 알려지면 곤란하다고 해서 검을 쓰고 있었다. 물론 검으로도 상당한 실력이었지만 지켜보는 내 입장에서는 불안한 감이 있었다.
‘ 왕필 실력으로는 힘들다. 그저그런 무뢰배가 아냐.’
” 하압!”
왕필은 짧은 기합성을 지르며 일참(一斬)을 내질렀다. 아무런 초식 없는 간단한 베기였지만 자세와 기세가 제대로 잡혀 있어서 어지간한 초식 못지 않았다. 사내는 왕필의 공격을 보다가 히쭉 웃으며 자신의 왼쪽 팔을 휘둘렀다.
터텅
소매가 흔들리며 왕필의 검 배면을 쳤다. 그러자 마치 강철을 두들기는 듯한 소리가 나면서 검이 튕겨져 나갔다. 천으로 만들어진 옷가지에 철검이 튕기는 일은 보기 드문지라 왕필은 황급히 검을 추스리면서도 당황해했다.
” 이익.”
연이어서 왕필이 추룡건곤(追龍乾坤), 연벽환뢰(然璧渙雷)의 초식을 연환해서 공격했지만 흑의무복 사내는 다시금 소매만 휘둘러서 가볍게 왕필을 격퇴했다. 중간에 약점을 찌를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지만 놔둔 걸 보면 분명히 봐주고 있었다.
왕필이 허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자가 씨익 웃었다.
” 뭐 이런 시골루주의 하급무사 치고는 꽤 하는군. 허나 쓸데없이 살생하고 싶지 않으니 어서 루주를 불러 와.”
” 귀… 귀하가 누군지 알려주시오.”
” 나?”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 뭐 쉽게 말하자면 사파무림의 떠오르는 별, 전설이 될 그 이름하야 망량(魍魎)님이시다! 팔왕 일 때문에 소림사에 시비를 걸러 찾아왔으니까 후딱 루주를 불러오란 말이다.”
” ……”
” ……”
상처를 부여잡으며 관전하고 있던 왕일.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왕필.
그리고 석 달동안 나랑 많이 친해진 점소이.
3명은 거의 동시에 가만히 있던 나를 돌아보았다. 의혹 가득한 시선이었다.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흑의무복 사내, 망량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 어? 나 멋있지 않았냐. 반응이 왜 그래.”
상당히 자기 잘난 맛으로 살아가는 듯한 자였다.
하긴 실력을 보면 그럴 만 했다.
”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왕일이 말을 더듬거렸다. 나는 전혀 이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왕필이 무언의 압박을 하고 있었다. 내가 끝까지 말을 안 하고 버티고 있자 결국 왕필이 무겁게 말했다.
” 저 친구 이름이 망량이오.”
” ……”
자칭 사파무림의 떠오르는 별, 망량은 황당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어이없는 듯이 외쳤다.
” 이… 이 자식아. 저… 저작권 침해다! 내가 강호에 출도할 때 얼마나 신경써서 지었는 줄 알아?! 아니 넌 뭔 생각으로 이름에 그렇게 불길한 한자를 쓴 거냐!”
나는 간명하게 대답했다.
” 그럼 이름 바꾸겠소. 유천영으로.”
” 엉?! 그건 얼마 전에 죽은 종남파의 고수 이름이잖아. 그것도 안 돼. 나 때문에 바꿨다고 하면 종남파 놈들이 시비를 걸 거야.”
” 어차피 소림사에 시비걸러 온 거 아니었소? 주문이 많구려.”
망량은 심각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곤 고개를 끄덕였다.
” 이름은 중요하지. 생각해 봐라. 누가 검류혼(劍流魂)이라고 별호를 지었는데, 어떤 사람은 검류혼이 이름이라고 생각해 봐.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얼마나 뻘쭘하겠냐.”
” 그렇겠구려.”
마침내 망량이 폭발했다.
” 지금 내가 그런 상황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