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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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량(魍魎)
그 때였다.
망량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왕필이 은종을 빠르게 울렸는지, 저만치에서 거대한 기(氣)가 날아오는 게 느껴졌다. 내공이 없어도 기감(氣感)은 원래 수준 그대로였기 때문에 손쉽게 느낄 수가 있었다. 보통 내공이 경지에 이르렀을 때 육신통(六神通)이 뚫리는 편이었지만 나는 이미 의념의 극한에 한 번 도달했기 때문에 공능만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파밧
” 소란을 피운 게 어떤 분이신지.”
거의 탄력없이 가라앉듯이 허공에서 두세 번 꺾어서 깃털처럼 착지하는 경공. 어지간한 무공으로는 꿈도 못 꾸는 수준이다. 장내에 나타난 삭발의 고수는 언뜻 보기에도 천무학관 졸업생을 상회하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강호에서도 1푼에 들어갈만한 뛰어난 자였다.
내게 얼굴을 들이밀며 으르렁거리던 망량이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내게서 관심을 끊고 팔짱을 꼈다.
” 하! 나는 망량이다. 얼른 경옥루주를 불러와라.”
” 망량?”
삭발의 고수는 회색 면의를 입고 있었다. 사실 승려인데 옷만 가사가 아닐 뿐이었다. 그걸로 보아서 그가 소림사(少林寺) 출신이라는 사실은 확실해 보였다. 소림사의 승려 중에서도 저자만큼 고강한 무공을 지닌 자는 드물었다.
망량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던 승려가 말했다.
” 빈승은 사대금강(四大金鋼)의 하나인 공무(空茂)입니다. 시주의 무공이 가히 하늘에 닿을 수준이라 들었으니 괜한 분란을 일으킴은 좋지 않습니다. 용건을 말씀해 주시는 게 어떤지.”
” 흥.”
망량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같잖다는 뜻이 분명했다.
하지만 망량과는 달리 왕일과 왕필, 점소이는 엄청나게 놀랐다. 왠만해서는 소림속가의 고수들이 달려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나타난 건 소림속가따위는 비교도 안되는 실력을 지닌 자였기 때문이다.
” 사… 사대금강!”
” 어찌 이런 곳에.”
사대금강은 소림사의 수호호법(守護護法)의 위치에 있는 자들이다.
십팔동인(十八銅人)과 백팔무적나한(百八無敵羅漢)들은 소림사의 각 기수에서도 뛰어난 무예승을 선발해서 다시 72종절예를 전수한 고수들이다. 그리고 십팔동인보다 더욱 뛰어난 실력과 성품을 갖췄다고 인정된 자들만이 사대금강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방장과 소림사의 연배높은 고승들, 그리고 일부 호법과 장로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사대금강을 아래로 다룰 수가 없다.
그런만큼 무림에서 사대금강을 대우하는 수준은 남달랐다. 사대금강이 움직이는 건 화산파 장로급이 대거 움직이는 것과 같았으며, 심지어 흑천맹에서도 회담자리에 사대금강이 나타났을 때는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소림사의 무력에서도 정점에 가까운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 금강부동신법(金鋼不動身法)이 8성을 넘어섰구나. 훌륭해.’
나는 속으로 약간 감탄했다.
눈 앞의 사대금강 공무의 실력은 검군(劍君)과 대등했다. 검군이 무림에서 특출난 기재들을 선별해서 어둠속에서 키운 자들이라는 걸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공무의 실력은 틀림없이 초절정의 초입에 들어 있다.
망량이 도발하듯이 공무에게로 자신의 상체를 쑤욱 내밀며 올려봤다.
” 기다렸다는듯이 나타나시는군? 정주가 소림사의 앞마당이라지만 사대금강이 여기까지 와 있는 걸 우연이라고 봐야 하나.”
” 아닙니다. 생각하시는 것처럼 빈승은 시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올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 하아. 역시 개방이군.”
잠시 쓴웃음을 짓던 망량은 서 있기가 귀찮은지 손님이 아무도 없어서 한적한 탁자에 걸터앉았다. 고수가 아니라 동네 불량배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그는 주먹을 몇 번 옴작거리더니 말했다.
” 용건을 안다면 간단하겠지. 나를 소림사 방장에게 안내해라. 팔왕(八王)과 관련해서 할 말이 있으니까.”
” 개방본타에도 찾아가서 한차례 분탕질을 치셨다더군요. 어찌 이리도 포악한 행보를 하신단 말입니까.”
” 하아? 너네가 내 말을 안 믿고 개소리를 하니까 그런 거잖아. 아니면 네놈도 좀 두들겨맞아야 정신을 차릴테냐.”
왕필과 왕일이 긴장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절정고수가 이런 말을 듣고도 분노하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까부터 망량은 자신감이 넘쳐 흘러서 대놓고 사대금강 공무를 도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대금강 공무는 한차례 고개를 흔들더니 잔잔하게 말했다.
” 시주가 익힌 신법인 백팔유령환(百八幽靈幻)을 빈승이 깰 방법이 없습니다. 백초지적이 되지 않겠지요.”
” 하아? 너희는 빗장모내기를 그렇게 부르는가 보군. 뭐 좋아.”
아리송한 표정을 짓던 망량이 벌컥 화를 냈다.
” 그래. 마치 그 백팔유령환만 아니면 이기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군. 건방진 땡초가.”
공무는 부드럽게 받아넘기는 기색이었지만 도리어 망량이 짜증을 냈다. 성정이 다소 폭급하고 거친 편인 듯 했다. 하지만 나는 망량이 보기보다는 사악하지 않고 참을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성질이 급한 마도(魔道)의 인물이었다면 벌써 한바탕 생사결을 치렀을 것이다.
‘ 뭔가를 기다리고 있군…’
내가 속으로 망량의 의도를 생각하고 있는 동안,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바닥에 진각을 한 번 내려찍었다.
꿍!
가볍게 발을 한 번 굴렀을 뿐인데, 갑자기 바닥이 원형으로 움푹 패이면서 충격파가 터져나왔다. 충격파는 누각을 삐져나와서 심지어 주변 건물에까지, 무려 30여 장이나 훨훨 날아갔다. 사람을 해하고 싶지 않았는지 사람들은 갑작스런 돌풍에 당황스러워 할 뿐이었다.
” 자! 땡초야. 나는 삼성(三成)의 공력을 봉하고 백팔유령환도 사용하지 않겠다. 이 상태에서 네놈이 나를 상대로 백 초를 받아낸다면 소림사 방장 앞에 가서 무릎꿇고 사죄해 주마.”
” … 진심이신지.”
처음으로 사대금강 공무의 안색이 일변했다.
지켜보고 있던 왕일이 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하며 중얼거렸다.
” 미… 미친건가? 사대금강을 상대로…”
나는 망량이 다소 무리수를 둔다고 생각했다. 사대금강의 무력은 소림사 전체를 통틀어서 20위권 내에 들어가며, 강호를 통틀어서 100위권에 든다. 숫자가 많아 보이지만 무림인구가 백만여 명이 훨씬 넘는 걸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고수다. 그를 상대로 공력을 봉하고 필살기를 봉인한다는 건 자살행위에 가까운 것이다.
망량이 킬킬 웃었다.
” 보아하니 점잖은 말로 나를 쫓아내려는 것 같은데 그렇겐 안돼. 땡초 네놈도 한가지 조건을 걸어 줘야겠다.”
” 무엇인지.”
” 내가 이기면 나를 소림사 방장에게 안내해라.”
” 그리 하겠습니다.”
꾸욱
사대금강 공무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주먹을 꾸욱 말아 쥐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한쪽 팔을 앞으로 내민 채 권법의 정자세를 잡았다. 왕일과 왕필은 못 알아보는 모양이었지만, 나는 그의 자세가 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 백보신권(百步神拳)이군.’
약간 흥미가 생겼다. 천무학관에 소림출신 학도가 매우 많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백보신권을 배우지도 않았고 쓸 수도 없었다. 심지어 용천명조차도 백보신권의 원형만 알고 있을 뿐 제대로 수련한 기색은 아니었다. 전설적인 무림의 제일권법인데도 대우가 이렇게 된 까닭은 당연히 수련난이도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백보 바깥에서 적을 격살할 수 있다는 표현, 그 이상으로 백보신권의 위력은 강력했다. 소림사 역사상 백보신권의 수련자가 나타났을 때 쉽게 피해낸 자는 오직 한 명, 천겁혈신 위천무 뿐이었다. 천겁혈신을 제외한 누구도 백보신권을 우습게 보지 못한 것이다.
부우우웅
공무의 소매 앞섶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공력을 가볍게 끌어올리는 것 뿐이었지만 이미 강철을 찢어버릴 만큼의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저걸로 철선수를 뿌리면 금강불괴가 아닌 이상 한 방에 핏덩이가 될 것이다. 게다가 소림사 무인답게 느껴지는 내공이 몹시 심후하고 강했다.
망량은 공무를 잠시 노려보다가 자신의 왼팔을 들었다. 그리고는 중얼거렸다.
” 옛법.”
파캉!
잠시 후 공무의 팔에서 엄청난 내공이 실린 강기가 원통형으로 내뿜어졌다. 말 그대로 시퍼런 번개를 휘감고 광자포가 쏘아지는 듯한 위용이었다. 속도도 워낙 빨라서, 내공이 없는 나로써는 의념의 흐름을 통해서 공격순간만 간신히 파악할 수 있었다.
망량은 그 자리에서 마치 버드나무처럼 몸이 비스듬히 휘어지며 피했다. 낭창낭창하고 줏대없이 흔들리는 것 같았지만, 그 자체로 현묘한 신법에 가까웠다. 발의 움직임과 몸에 흐르는 힘의 방향이 전혀 엇갈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공무의 공격은 거기서 끊이지 않았다.
백보신권(百步神拳)
대라성불(大羅省佛)
일순간, 공무의 양 팔에서 푸른 빛이 번뜩이더니 무시무시하게 빨라졌다. 망량이 즉시 피하자마자 파고들려 했지만 틈조차 주지 않으려는지 강기의 폭풍이 마구 퍼부어졌다. 나는 지켜보고 있다가 왕일과 왕필에게 피해가 갈 것 같자, 그들을 끌어안고 뒤로 피했다. 두 사람은 멍하니 있다가 죽을 뻔 한 것도 깨닫지 못한 듯 했다.
콰과과광!!
순식간에 누각의 바닥이 붕괴되면서 맨땅이 운석이라도 맞은 것처럼 파여 들어갔다. 실제로는 망량이 계속해서 버드나무같은 움직임으로 피하고 있기 때문에 한 방도 맞지 않아서, 공무는 무리하면서도 끊임없이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이윽고 망량은 휙하고 자신의 몸을 자연체로 만들더니 중얼거렸다.
” 민들레.”
동시에 공무는 자신이 망량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은 걸 확신했는지 갑자기 육영분신(六影分身)을 동원하면서 현란한 권격을 내뿜기 시작했다. 저 정도로 기를 방출하면 보통은 기진맥진할텐데 공무의 내공은 또래의 무인이 지닌 것보다 2배 이상 많아 보였다.
휘리릭
망량은 민들레의 자세에서 거의 힘도 들이지 않고 흐느적거리면서 공무가 칠식(七式) 사십육격(四十六擊)을 발출하는 걸 다 피해냈다. 마치 미끌거리는 고무를 때리는 마냥 통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공무의 공격에 실린 내공이 엄청나다는 걸 알고 있어서, 만일 한 방이라도 맞는다면 그대로 망량은 피곤죽이 될 것이라는 것도 파악했다.
그 순간이었다.
망량이 갑자기 양손을 앞으로 모아서 앞날개 자세를 하더니, 백보신권의 절초가 들어오는 순간에 앞가슴을 연 것이다. 자살행위나 다름없어 보였지만 서서히 판도가 달라졌다. 공무의 일권이 망량의 앞날개 자세에 도달한 순간 갑자기 꽈리를 틀듯이 손등이 수도의 자세로 변했다. 그리고 팔꿈치가 90도로 휙 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공무의 뒷통수를 가격하게 된 것이다!
이 한 번의 반격은 너무나 절묘해서 공무는 피할 도리가 없었다. 그는 급히 내공을 전부 모아서 망량의 가슴팍에 일장을 날렸다. 못 피한다면 양패구상을 하려고 하는 의도였다.
옛법
활개짓
” ……?!”
하지만 그것마저도 간파되었는지 망량이 두 팔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리자 공무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손을 돌리는 꼴이 되었다. 망량이 직전에 팔꿈치로 공무의 뒤통수를 박살내는 걸 멈추자, 공무는 앞으로 철푸덕 엎어졌다.
쿵
” ……”
누가 봐도 변명할 길이 없는 패배였다. 망량은 자기 발 밑에 쓰러져 있는 공무를 내려다보며 킬킬 웃었다.
” 맞어. 내공만큼은 니가 나보다 위야. 그런데 역시 중원인들은 기(氣)에 취해서 위의(威意)를 모르는구만. 소림사도 이럴진대, 어떻게 십이율주를 감당하겠다는건지.”
그리고 망량이 손을 뻗어서 공무를 일으켜 세우려 하자 공무는 급히 무탄력 경공으로 제자리를 찾았다. 그는 얼굴이 시뻘개져 있었는데, 시종일관 공세를 취하다가 상대방의 절묘한 반격에 패배당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듯 했다. 공무는 겨우 안정을 찾고는 질문했다.
” 시주의 무공은 대체 무엇이오? 개방본타에서의 그 무시무시한 경공도 백팔유령환이라고 이름붙였으나 중원의 누구도 들은적도 본 적도 없습니다. 방금의 기묘한 기술도 모르겠습니다.”
” 그냥 쌈수야.”
” 무슨…”
” 아 됐고. 사대금강답게 약속을 지켜라.”
공무는 참담한 얼굴이 되었다.
그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을 텐데, 경솔하게 망량의 내기에 응하는 바람에 임무를 그르치고 만 것이다.
” 아… 알겠습니다.”
” 좋구만. 하은천한테 의뢰받은 일이 빨리 끝나겠어.”
대충대충 대답한 망량이 갑자기 나를 뒤돌아 보았다.
” 근데… 난 갑자기 저 놈한테 관심이 생기는걸.”
패배감에 젖어 있던 공무는 저만치에 떨어져 있던 나를 바라보았다. 사실 그의 입장에서는 시종일관 나는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아마도 소림사 방장의 명을 받아서, 개방에서 분탕질을 친 망량을 억제하러 온 것이리라.
망량과 내 눈이 마주쳤다. 망량이 히쭉 웃었다.
” 어이 너! 방금 우리 대결을 모두 파악한 거 같은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 그럴리가. 내가 그대들같은 초고수들의 싸움을 어찌 본단 말이오.”
내가 부정하자 망량이 고개를 흔들었다.
” 아냐아냐. 네 녀석, 분명히 정확하게 땡초놈의 장력이 여파를 미치기 전에 종이한장 차이로 두 놈을 뒤로 빼돌렸다고. 그 후로도 계속 내가 반격하는 순간을 정확하게 보고 있었어. 이렇게나 정확하게 관(觀)의 경지를 통찰하는 놈은 생전 처음 보는군!”
” ……”
나는 그제서야 망량의 무공수위를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상대방의 내공은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아마 팔왕과 겨루어도 일천 초는 겨루어야 승부를 낼 수 있을 정도의 [절대고수]다. 망량은 자신이 지닌 무공을 완전히 통제해서 극의를 꿰뚫어본 경지에 도달해있는 것이다.
‘ 몸이 원상태였더라도 오백 초는 들여야 꺾을 수 있는 고수… 어째서 이런 자가 여기에 온 거지.’
나는 힐끔 망량을 바라보았다.
” 하은천의 부탁을 받았다면, 당신은 혹시 십이율(十二律)의 문주(門主)요?”
” … 뭐, 뭐라!”
망량은 방금 전까지 장난하듯이 웃고 있던 표정을 딱 굳혔다. 입이 약간 벌어진 걸 보면 진짜로 놀란 듯 했다. 그는 갑자기 주먹을 말아쥐면서 험상궂은 표정이 되었다.
” 왜 그렇게 생각하지?”
” 방금 그 동작, 앞날개자세 직후에 휘도는 자세가 사신무(四神武)의 주작 휘어걸기와 비슷했소. 기초는 다르지만 아무래도 파생된 원리가 같은 듯 하더군.”
” 사신무까지… 네 녀석은 동방무림에 대해 굉장히 많이 알고 있구나.”
망량은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노려 보았다.
그러더니 잠시 후 말했다.
”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그리고 네놈도 내가 소림사 방장을 만나는데 같이 가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