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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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겁혈신(天劫血神)
모순팔병(矛盾八兵)!
나도 이름정도만 들어보았을 뿐, 그 실체나 이름의 유래같은 건 전혀 모르는 기병(奇兵)이다. 연화불창은 역사적으로 이름난 전설의 신창(神槍)이라서 알고 있지만 다른 건 모른다. 아니, 연화불창 하나만 해도 역사상 최고의 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서 거기에 맞먹는 다른 무기가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연화는 차분하게 말했다.
” 잘 모르는 표정이군요. 아니, 그게 당연합니다. 연화불창을 비롯한 모순팔병은 이계(異界)의 물건이고 제 영혼과 함께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오로지 저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무기들입니다.”
” 무슨 뜻이지?”
” 모순팔병은 한림사가(韓林四家)의 한 가문(家門)에서 정체를 밝혀냈고 이름을 정의한 마물(魔物)들입니다. 그 유래는 은주시대 이전의 신화시대의 경계에 걸쳐 있고, 원래는 소유자가 강호를 피로 물들여도 부족함이 없는 물건들이었죠.”
과거형이다.
내가 우묵한 눈으로 연화를 응시하자 그녀는 폐가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곳은 습기가 지독하고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연화가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기세가 둘러싸자 아무렇지도 않았다. 호신강기조차 초월한 경지인 듯 했다.
‘ 또 진화했군.’
발전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다. 저건 진화(進化)다. 호신강기를 자연스럽게 두를 수 있는 인간은 현 강호에서 스무 명도 되지 않는데, 호신강기를 다시 열 겹이나 압축시켜서 무의식중에 절대방어를 만들어내는 암연홍황(暗燃弘煌)의 경지에 이르다니! 방어력 하나만으로도 강호에서 공포의 존재로 군림하기에 충분했다.
더욱 무서운 것은 아직 연화는 자기 실력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건 연화가 끄집어낸 일 푼의 역량에 불과하다. 나도 그녀를 꺾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 연화불창(蓮花佛槍)
공손철검(公孫鐵劍)
앙천묵월(仰天墨鉞)
수라도(修羅刀)
운한섬련(雲漢纖鍊)
금불십환(金佛十丸)
팔안백간(八眼白干)
그리고 나머지 하나의 모순팔병을 삼 개월 전에 얻었습니다.”
” 무슨 말을 하고싶은지 모르겠군, 연화… 당신은 대체 뭘 하고싶다는 거지?”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렇게까지 말이 많은 연화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기도 하고 싫기도 했다. 그녀가 내게 유언(遺言)을 남기는 느낌이라 더욱 꺼림칙했다. 나는 자세를 바로해서 앉았다.
” 무기수집을 내게 자랑하고 싶은 건 아닐 것이다. 내가 보았던 당신의 재능은 역사에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수준이다. 모용휘나 하은천조차도 당신에게 순수한 재능만으로는 뒤쳐지는데… 무기의 묘용으로 무극(武極)에 오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인건가?”
나는 명백히 실망하고 있었다. 실망하기 직전이라고 하는 편이 나으리라.
연화의 발전속도는 나보다 수천 배나 빨랐다. 만일에 열흘의 하루나 나유타영겁이 아니었다면 나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연화의 발뒤꿈치를 바라보기도 불가능했으리라. 그녀는 강호에 출도한지 수 년 만에 최강이라 불리는 무신마를 내려다보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더더욱 강해져버렸다.
심득을 손에 넣고 한 차례 나아가있던 나를 간단하게 박살내버린 연화에게 내가 품은 감정은 분노와 절치부심 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무시무시한 재능에 대한 동경 또한 있었던 것이다.
‘ 새삼스럽군.’
나유타영겁의 나락을 겪으면서 내 모든 감정이 사그라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다지도 생생하게 감정의 고리를 느낄 수가 있다니. 역시 열흘의 하루 덕에 어느정도 시간능력에 면역이 되어서 희로애락애오욕의 칠정을 지켜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연화는 말했다.
” 그렇게 생각했다면 어쩔 수 없지요. 저는 제게 걸려있는 금제(禁制)를 풀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뿐이에요.”
” 금제라고…?”
그러고보니 예전에 연화는 나를 상대할 때 봐준 적이 있다. 그 때는 단순히 힘을 접어두고 연습상대로 삼았다는 뜻인 줄 알았는데, 설마 따로 금제가 있단 말인가? 연화의 설명이 이어졌다.
” 저는 다른 진입자와 달리 몸뚱이를 고스란히 가지고 이 세계에 도착했습니다. 혼백(魂魄) 뿐만 아니라 육신까지도 이질적인 성격을 유지하게 되면 반발력이 생기게 되죠. 인과의 흐름과 기(氣)의 흐름 그 자체가 저라는 인간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모순팔병을 소환해서 거기에 제 영혼과 힘을 담아서 강호 여기저기에 뿌렸습니다. 힘을 여덟 단계로 금제함으로서 반발력을 줄이고 다시 수련하기로 한 거죠.”
” 이제는 전력을 다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모순팔병을 찾아내었다는 거군.”
” 태왕은 적당히 해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니까요.”
나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접어둘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연화가 보였던 기이한 행보가 이해가 된다. 그녀는 원래 지닌 재능만으로도 파천황 수준이었기에 힘을 봉인한다고 해서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추측컨대 연화의 지금 힘은 도리어 이계에서 처음으로 왔을 때보다 더욱 강해져 있을 것이다. 힘을 봉인한 채 진체(眞體)를 수련해서 무학의 덩어리가 되어버렸다면, 자연스럽게 모든 역량이 향상될 게 뻔하다. 원래도 무지막지하게 강했을 텐데 지금은 불문가지(不問可知)였다.
‘ 그렇다면 연화불창의 모순팔병 일 단계 금제를 푼 것 만으로 무신마와 대등하게 겨뤘다는 말인가?’
오싹함이 느껴진다. 나중에 권강한에게 들었지만 나와 월승혼의 마지막 대결에서 무신마가 끼어드는 일을 연화가 직접 막았다고 한다. 그 때의 결과는 무승부. 그 때는 그러려니 했지만, 연화가 모순팔병을 언급한 지금은 무신마에게 일말의 희망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는 제일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 지금 당신의 손에는 아무런 병기도 보이지 않는군. 여덟 개나 되는 모순팔병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인가?”
” 이렇게 되었습니다.”
스스스스
연화가 허리춤에 매고 있던 조그마한 막대기는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막대기의 크기는 단검과 장검의 사이 – 삼 척(三尺) 정도의 길이였고 손잡이가 따로 없었다. 말 그대로 뭉툭하기만 한 은빛 막대기였다.
하지만 나는 은빛 막대기에서 심상치 않은 패기(覇氣)가 흘러나오는 걸 느끼고 흠칫했다. 분명히 저건 무기(武器)로서는 실용성이 없다. 그런데도 은빛 막대기의 봉두(棒頭)를 응시하고 있으니 저절로 마음이 반응했다. 나도 모르게 무형의 기운을 운용해서 은빛 막대기를 견제하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반응할 정도면 보통은 저 막대기를 보기만 해도 마음이 꺾일 것이다. 이해되지 않을 정도의 위압감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연화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 은정지모(銀精之母)의 원래 길이는 정확히 일 장(一丈)이었습니다. 이 길이까지 줄이는데 제 남은 시간을 모두 소모했고, 이제야 만족스러워 졌습니다.”
” ……”
나도 모르게 은정지모에 손을 뻗었다. 연화는 저항없이 내게 은정지모를 건네주었고, 나는 은정지모의 중단을 잡는 순간 벼락같은 깨달음을 얻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늠이 되지 않던 연화의 진짜 무위(武威)를 깨닫고 말았다.
‘ 진(眞) 공령(空靈)! 내 무형검(無形劍)의 경지에 뒤지지 않는구나!’
은정지모는 단연컨대 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이다.
여덟 개나 되는 천상의 신병, 모순팔병을 녹이기 위해서 지옥화룡(地獄火龍)의 용암이 숨쉬는 천축까지 가서 직접 녹여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내력과 의념을 동원해서 기다란 은빛의 은정지모를 형상화시켰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순팔병의 신기(神氣)가 모두 융화되었다면 그 단단함과 질김은 상상을 초월한다. 다시금 지옥의 용암을 끼얹어도 은정지모는 결코 훼손되지 않는다. 연화는 지난 시간동안 무식하게 단단한 은정지모를 자신의 의념(意念)만을 동원해서 깎아내고 녹여낸 것이다.
일 장 길이를 이 척 길이로 만들었다는 건 간단한 의미가 아니다.
연화가 그 노력을 다른 곳에 쏟았다면 그녀는 아마 산맥 하나를 허허벌판으로 만들 수도 있었으리라. 그리고 은정지모의 길이를 온전하게 완성시켰다는 건, 그녀가 마음속에 들끓던 모순팔병의 무학과 의념을 통합시켜서 새로운 경지로 나아갔다는 뜻이다.
그 경지는 내가 깨달은 무형검에 뒤지지 않는 진 공령.
신명락을 통해서 읽어내기로는, 지금의 내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막거나 피하는게 불가능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오직 맞찌르기로 양패구상밖에 없었다.
나는 은정지모를 쓰다듬다가 깊게 탄식했다.
” 하아… 정녕 대단하군. 하지만 이 정도로는 태왕을 꺾을 수 없소.”
연화에게 순수하게 찬탄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부정적인 말을 할 수밖에 없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진 공령 또한 보법비기 반래삼보에 뒤지지 않는 초월무학(超越武學)이지만, 역시 아수라파천무의 영역에는 미치지 못한다. 진 공령으로 태왕과 겨루게 되면 하은천과 마찬가지로 삼초지적(三招之敵)의 결과가 나올 것이다.
연화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서 무신마와 결투를 하게 되었습니다.”
” 천외일도(天外一刀) 구십구합리귀(九十九合理歸)에서 심득을 얻을 생각이군.”
분명히 말해서 무신마는 연화보다 약하다.
보나마나 백초지적도 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오만하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이 은정지모를 만져본 자라면 누구나 나와 같은 결론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무신마의 경지로는 일 장 길이의 은정지모를 한 척도 깎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수준차이가 너무 났다.
하지만 수준차이와 심득(心得)은 별개의 문제다. 천외일도 구십구합리귀 또한 연화와 같은 영역에 들어서게 된다면 또 다른 초월무공으로 진화하게 될 것이다. 연화는 무신마와 겨루는 동안에 천외일도의 진정한 힘을 얻어내고자 하는 것이었다.
동작(動作)의 극한!
백식관음과 맞먹는 천외일도의 진수(眞髓)를 얻어낸다면 어쩌면 연화가 태왕을 이기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 것이다.
나는 연화에게 다시 은정지모를 넘겨주고, 심유한 눈빛으로 연화를 꿰뚫을 듯이 노려 보았다.
” 날 찾아온 이유도 한 수를 겨루기 위해서였던가?”
”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연화가 곧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그녀는 내 영혼의 본질을 꿰뚫을 수 있는 신안(神眼)을 이미 얻었으므로 내 경지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녀가 마음만 먹었다면 우리는 지금쯤 목숨을 걸고 겨루고 있었으리라.
” 하지만 오늘은 아니군요.”
어째서인걸까.
연화는 은정지모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 권강한이 도발을 하는 바람에 북천멸겁(北天滅劫)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천겁령의 최정예인 천겁칠성(天劫七星)을 데리고 바로 선운산을 칠 예정입니다.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무신마의 목숨을 끊어버릴 작전이죠.”
엄청난 정보였다. 강호일에 무덤덤한 내가 아니었다면 누구라도 눈을 부릅뜨고 놀랄만 했다. 북천멸겁이 직접 움직인다는 건, 천겁령이 본격적으로 강호를 접수하러 나섰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무신마가 암살당한다면 이 세상 누가 북천멸겁을 막을 수 있을까!
어떻게 연화가 그 사실을 아는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권강한과 연화는 연합전선을 취하고 있었으므로 권강한에게서 직접 들었을 게 뻔했다.
” 천겁칠성이란 놈들은 뭐하는 놈들이오?”
” 동천멸겁(東天滅劫)이 비술(秘術)로 키워낸 천겁령의 고수들입니다. 권강한 말로는 천겁칠성에서 두 명만 모여도 천무삼성 중 하나와 대등하다고 하더군요.”
” 말도 안 되는 소리. 절대고수는 그렇게 속성으로 나타날 수가 없소.”
팔왕이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바람에 천무삼성의 위명이 바랜 감이 있지만, 그들은 분명히 절대고수들이다. 검후나 검성은 여건이 되면 충분히 천겁령의 고수들을 상대로 일당백을 해낼 수 있었고 의념의 경지도 가볍지 않았다. 팔왕 발호 이후로 강호 곳곳에서 기인이사들이 곳곳에서 출현했지만 천무삼성을 넘어서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단순계산으로는 천겁칠성 전원이 합공하면 천무삼성 세 명 전부를 죽일 수 있다는 소리다. 그건 말도 되지 않았다. 애초에 그 정도 전력이 있었다면 그냥 중원무림을 쳐서 멸망시키면 되지, 이렇게 빙빙 돌아갈 이유도 없는 것이다.
물론 지금의 나라면 천겁칠성이라고 해도 큰 위협거리는 아니다. 그러나 강호에 어처구니없이 피의 강이 흐르는 건 가만 두고볼 수가 없었다. 강호가 혼란스러워질수록 뛰어난 무인의 싹이 꺾이게 되고, 호적수를 기다리는 나로서는 수련에 불리하다.
연화가 은정지모를 늘어뜨리며 말했다.
” 동천멸겁은 당신도 잘 아는 인물입니다. 화산파 검종(劍宗)의 장문인인 후백재입니다.”
” 그가 어떻게?”
” 진입자(進入者)였습니다. 유천영 당신도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을 텐데요.”
” ……”
물론 짚이는 바는 있다. 후백재라는 이름이 중원에서는 매우 독특할 뿐만 아니라, 그의 무공은 어쩐지 이질적이고 만화적인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예감일 뿐 상대방을 이계에서 온 이방인이라고 단정지을만한 근거가 되지는 못하는 것이다. 나는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 진입자가 지닌 특유의 권능을 이용해서 빠르게 강해지고, 그걸 천겁령의 주요고수들에게 전수한 거군. 그렇다면 가능할 것이오.”
” 동천멸겁 본인도 만만찮은 검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천겁령이 강호를 지배하는 건 필연(必然)이겠지요.”
” 남 이야기 하듯 말하는군. 연화 당신이 나서면 되지 않소?”
연화라면 북천멸겁과 함께 천겁칠성을 혼자 힘으로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짐짓 연화를 떠 보자,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쳤다.
” 그래서는 안 되니까요.”
” 무슨…”
” 북천멸겁은 유검의 무상검(無常劍)에 당해서 중상을 입고 요양 중이었습니다. 이번 움직임은 북천멸겁으로서도 무리를 하고 있는 것이죠. 권강한이 북천멸겁을 일부러 도발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 ……”
그건 정말로 알 수가 없다.
나나 연화는 무(武)의 극한, 천무삼성과 무신마는 무림세계의 수호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 북천멸겁도 천겁령의 지배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다. 그래서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각자 움직이는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권강한은 암왕 당산으로 등장했던 처음부터 아무런 목적도 없는 것처럼 여기저기 들쑤시고만 다녔다. 그의 행동에는 딱히 목적성도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권강한이 굳이 천겁령의 수장을 도발한 이유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 명심해 두세요. 지금 유천영 당신은 자신만의 검로(劍路)를 통합해서 태왕에게 도달하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겠지만, 모든 것을 관조(觀照)하지 않으면 결코 그 길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권강한의 움직임은 혼돈스러워 보이지만 분명한 법칙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 무슨 말을 하고싶은 것이오?”
” 권강한은 지금 천겁혈신(天劫血神)을 부르러 갔습니다. 북천멸겁을 동요시키기 위해서이죠.”
천겁혈신이 살아있단 말인가?
그리고 권강한은 북천멸겁도 모르는 천겁혈신의 소재를 알고 있단 말인가?
어째서? 어떻게?
가볍게 던지는 말 하나하나가 말도 안 되는 특급정보였다. 연화의 저의를 알아보려고 머리를 굴려봤지만 나는 원래 두뇌가 영민하지 못했다. 그래도 마음의 평정을 흐트리지 않고 연화의 말에 이목을 집중했다.
” 제 이름을 걸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은거하는 것만으로는 또 다시 윤회의 축이 돌아갈 뿐입니다. 당신이 권강한의 진정한 목적을 밝혀낸다면 -”
이어진 말에 내 얼굴이 납빛처럼 굳어졌다.
” 당신은 모든 걸 걸고 권강한을 죽여야만 합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
연화가 여기에 찾아온 목적은 오로지 충고(忠告). 자신이 태왕에게 도전해서 스러지고 나면 권강한을 견제할 사람은 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권강한이 단순한 방관자가 아니라 또 다른 악의(惡意)를 품고 있는 혼돈의 광대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나도 새삼 호기심이 생기고 말았다.
권강한은 도대체 무엇을 목표로 이 무림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일까?
돈, 명예, 사랑, 무공의 극한, 무림의 평화, 그 어떤 것도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 당신 입으로 이야기해줄 수 없는 이유는, 내가 밝혀내야 의미가 있기 때문이겠군.”
” 말이 길었군요.”
스으
연화는 마치 유령처럼 자연스럽게 신형을 이동해 있었다. 분신술이나 잔영술따위는 다른 공간전이(空間傳移)의 경공인 공령(空靈)의 묘용이었다. 저기에 백식관음이 합쳐진다면 말 그대로 권신(拳神)의 경지다.
연화가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말했다.
” 그럼 안녕히.”
” 잘 가시오.”
그것이 내가 본 혈모니(血牟尼) 연화(蓮花)의 마지막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