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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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겁혈신(天劫血神)
후두둑, 하며 피빛이 천하를 물들인다.
남은 건 네 명 –
여기까지 진행되는데는 보통 사람이 눈 두 번을 깜박일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으나, 그들 중에서 이 시간이 짧다고 여기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생존자들은 명옥에 당한 자들이 공격속도조차 감지하지 못했다는 걸 알아챘고, 곧이어 명옥이라는 기술의 실체를 대충이나마 알아챌 수 있었다.
극속(極速)의 사검(絲劍).
북천멸겁의 손에서는 어느새 무형사(無形絲)로 이어진 칼날이 마치 거미줄을 연상시키듯이 뻗어나와 있었고, 검처럼 뻗어서 튕긴 충격파 한 번에 호신강기가 제거되었다. 이어서 날아오는 진짜 공격 한 번에 인간의 육체는 허무하게 도륙당하는 게 북천멸겁의 제 이초식, 명옥의 실체였다.
하지만 – 북천이 행한 공격의 실체를 알아냈고, 다시 한 번 상대한다면 막아낼 자신이 있음에도 생존자들의 얼굴은 편한 기색이 아니었다.
‘ 저건… 초식이라기보다는 단순한 견제기 아닌가?’
검술로 치면 거리 재보기 정도.
북천멸겁이 전멸시키지 못했는데도 태연한 기색인 것도 알 법 했다. 그냥 맞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의 단순한 견제기가 명옥이다. 달리 말하자면 명옥조차 받아내지 못하는 상대에게는 진짜 실력을 사용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구객(九客)은 강호 전역에서도 천하오십대고수에 들고도 남는 초절정고수들의 집단이고, 그들이 구궁진법을 펼쳐서 기력이 몇 배나 강화된 상태였다.
그러나 북천멸겁의 신법(身法)과 견제기가 한 번씩 펼쳐졌을 뿐인데 반수 이상의 목숨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태월하는 제일 먼저 수준차를 알아차리고 암담한 표정을 지었다.
‘ 괴물같은 놈… 그냥 실력을 재 보는 것만으로도 이런…’
동시에 무림의 절대자들과 자신의 실력차이를 뼈저리게 느끼고 말았다. 이런 북천과 대등하게 겨뤘다는 하은천, 그리고 무신마 – 절대경지란 건 말 그대로 초인(超人)의 영역이었다.
속으로 한탄이 나왔다.
유천영이 살아 있었다면 – 이 괴물딱지들과 대등한 영역에 이를 수 있었을까.
스스스 –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살아남은 고수들은 한 줌의 감정의 동요도 없이 각자의 절초를 운용해서 북천멸겁을 압박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방금 전과는 달리, 명옥을 펼친 직후에는 선명한 빈틈이 보였기 때문이다.
‘ 아직 천의무봉의 경지는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다!’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빈틈은 절대로 아니다. 그런 거였다면 그냥 명옥의 단계에서 모두의 목숨을 끝장냈을 것이다. 북천멸겁은 자신의 빈틈이 노출될 걸 알면서도 구객을 무시하고 그냥 명옥을 펼쳐버린 게 분명했다.
구궁진법(九宮陣法)
선천오행강기(先天五行罡氣)
파앗!
네 명의 초절정고수의 전신이 휘광으로 번득였다. 개개인이 구파일방의 장문인을 훨씬 넘어서는 자들의 기력이 적어도 세 배 이상 강해지면서, 북천멸겁의 평소 호신강기만으로는 때울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기운이 쏟아지는 것이다.
승산이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신법 한 번에 견제기 한 번으로 몰살지경까지 이끌고 간 상대다. 이미 살아남을 생각을 버린 지가 오래다. 그러나 그들의 목표는 북천멸겁을 지키게 하고, 나아가서 필살기에 사용할 기력을 사용하게 해서 무신마를 유리하게 하는 것이었다.
‘ 상관없어!’
그들이 알기로 북천멸겁과 무신마의 경지는 백중세였다. 비슷한 경지의 고수끼리 싸운다면 지친 쪽이 불리한 건 당연한 일이다. 비겁한 차륜전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무신마가 쓰러지면 무림이 쓰러진다!
절대 패배해선 안 된다!
천겁령이 본격적으로 일어서기 시작하면 그 와중에 죄없이 학살당하고 쓰러질 자들의 목숨은 적어도 천여 명을 넘어섰다. 그들 모두의 피를 감수하느니 무인의 자존심을 버리고 무신마의 승리에 모든 것을 거는 것, 그것이 무림원로로써 구객이 지닌 유일한 절대명제인 것이었다.
스윽
그리고 북천멸겁의 눈동자가 슬며시 아래로 향하며, 재차 천지마투의 태세를 잡았다. 천지멸절과 무쌍 날개가 극히 찰나의 순간에 펼쳐졌다. 좌측에서 자신의 최대절초, 단룡참(斷龍斬)으로 베어가던 도제 용경의는 순간 고소를 머금었다.
‘ 그럴 줄 알았지. 내가 북천 당신이라도 힘을 아끼기 위해 비기 멸절을 보여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벌써 우리의 의도를 깨달았군.’
혹여 생존자가 멸절의 비밀이나 시간차를 무신마에게 전한다면 북천멸겁은 크게 불리한 지경에 처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구객은 더더욱 북천멸겁을 붙잡고 늘어져야 했다. 무림의 운명을 위해서!
‘ 죽어라 북천멸겁!’
우측에서 언가 패권(覇拳)의 최고정수, 패극(覇極)을 떨쳐내던 천권호왕 언주봉은 이를 악물었다.
구우우우
주먹에서 분노하는 용권이 꿈틀거렸다. 핏줄이 터지고 있었다.
패극은 언가 문인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비기중의 비기이다. 소림에 못지 않은 권법의 명가라는 자부심을 지닌 언가 무인들은 단 하나의 요결을 통해 평소에 사용하는 권법의 위력을 순간이지만 20배 이상으로 증폭시킬 수 있는 비기를 익히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패극 – 전신의 호신강기와 진원진기를 모조리 쏟아붓는 대신, 이 세상 어떤 호신강기로도 방어가 불가능한 절대적인 일 권을 내뻗는 것이다. 펼치면 죽는 대신, 절대 막을 수 없다!
하물며 언가 백 년 역사에서 가장 강하다고 불리는 전전대 가주, 천권호왕이 목숨을 걸고 날리는 패극은 말 그대로 팔왕 금포염왕조차도 피하고 싶을 정도로 강대할 것이다. 천권호왕은 자신의 목이 날아가고 몸통이 뜯겨나가도 이 일 초만큼은 끝까지 펼쳐낼 거라고 생각했다.
‘ 그래… 천지마투의 태세는 반격, 방어, 공격을 동시에 한다! 몇 개의 방위에서 공격해도 마찬가지! 그러나 이 패극만큼은 – 반격이나 공격은 몰라도 방어가 불가능할 것이다! 천지마투의 태에서 지(地)만큼은 확실히 봉쇄 가능하다!’
권법의 달인인 천권호왕은 천지마투의 태세가 구현된 건 처음봤지만, 단숨에 천지마투의 유일무이한 파해법을 깨달았다. 천지마투가 막아낼 수 있는 순서를 확실히 봉쇄함으로써 대응책을 줄이고, 궁극적으로는 여럿의 힘으로 일 격을 먹일 수 있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북천멸겁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천권호왕의 자세가 패극이란 걸 알아채자 약간이지만 자세가 하단세로 움츠러들었다. 어떻게든 끝까지 지켜본 후에 반격이나 재공격으로 전환할 생각인 듯 했다.
방어가 가능한가?
푸쉭…
천권호왕은 다음 순간, 자신의 일 권이 북천멸겁의 결계를 뚫고 나아가서는 호신강기를 일차로 깨부순 걸 깨닫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여기까지 나아갔다면, 나머지 인원들이 북천에게 일격을 먹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 ……?!”
바로 그 때, 태월하는 궁기식 무상을 준비해서 의념으로 북천에게 일 격을 가하려던 중 – 알 수 없는 느낌때문에 시전을 중지했다. 그것은 원래 태월하의 실력이라면 깨달을 수 없을 정도로 조그마한 위화감이었지만, 구궁진법을 통해 역량이 상승했기에 고수의 칠감으로 북천의 한 수를 읽어낸 것이다.
들어가면 죽는다!
‘ 이, 이럴수가…’
옆에 있는 묵호자도 함께 공격해 들어가고 있었지만 태월하는 기겁을 하면서 재빨리 그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묵호자가 눈에 의문을 띄웠지만 태월하는 그저 입을 굳게 다물고 천지마투의 태세를 벗어나는 중이었다.
콰칙
도제 용경의의 단룡참이 천지마투의 태세 중에서 천(天)에 부딪혔다. 북천멸겁의 손에서 살짝 튀어나온 검은 나비(黑蝶)가 용경의의 심장으로 쇄도했다. 용경의는 북천멸겁의 한 수를 알고 있었지만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투웅
심장 부분이 마치 커다란 공모양처럼 뜯겨나갔다.
무형무음무기(無形無音無氣)의 공격은 이미 인식하기 전에 살육을 끝낸 상태였다. 그것이 바로 북천멸겁의 무공이 상상이상으로 막기 힘든 이유 중 하나였다.
” 우오오오오!!”
이미 치명상을 입었으나, 가슴에서 피를 뿜어내면서도 도제 용경의는 비명같은 외침을 내지르며 끝까지 초식을 전개했다. 동귀어진을 각오한 이상 멈추는 일은 있을 수가 없었다. 북천멸겁은 그런 용경의를 무심하게 바라보다가 심적권청의 영역에서 한 마디를 내뱉었다.
” 사선(死線)을 넘어선 기백, 간만에 보지만 – 그래도 현실은 어쩔 수 없지.”
퍼벅
도제 용경의의 필생의 공력을 담은 단룡참은 북천멸겁의 목젖에서 두 치까지 접근했으나, 다음 순간 그의 전신이 마치 벌집처럼 쑤셔지며 인간의 형태를 잃자 없던 것이 되고 말았다.
마치 마술과도 같은 변화라서, 찰나지간에 북천멸겁의 공격범위를 벗어난 태월하는 할 말을 잃었다. 그 또한 초절정고수였지만 북천의 공격은 아예 형태가 존재하지 않아서 무슨 수를 썼는지도 판별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명옥(冥獄)
규할노도(叫割怒刀)
투투퉁
기분나쁜 불협화음과 함께 – 패극을 뻗어내던 천권호왕의 몸도 갈기갈기 찢어져서 고깃조각이 되고 말았다. 피와 살점이 튀는 살육공간 속에서도 북천멸겁은 상처는 커녕 몸에 피 한 방울 튀지 않은 채 오연히 서 있었다.
오른손으로 자신의 턱을 쓰다듬고 있는 북천멸겁 –
그 모습은 마치 인세에 강림한 마왕(魔王)과 다름이 없었다. 묵호자는 평생 두려운 것 없이 살아왔다 자부했으나, 북천멸겁의 무위를 보자 몸이 덜덜 떨리면서 무릎이 휘청이는 게 느껴졌다.
” 으… 으으…”
그나마 침착한 것은 태월하였다. 태월하가 말 없이 북천멸겁을 노려보자, 북천멸겁이 조소하듯이 말을 던졌다. 그답지 않은 칭찬이었다.
” 천지마투가 아니란 걸 용케 알아차렸군 – 종남파의 무공으로 그 수준에 오르는 게 가능할 줄이야.”
” … 이상했소. 천지인의 균형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방어에 편중되어 있었고 – 우리를 함정에 유도하는 것 같았소.”
그렇다.
북천멸겁은 그 찰나의 순간에 – 네 명을 한꺼번에 체력소모 없이 몰살시키기 위해서, [천지마투의 파해]라는 그럴듯한 미끼를 던진 것이다!
천지마투 없이 그저 반격만 한다면 동귀어진을 노리고 달려드는 자들을 쳐죽이는 건 더 간단했다. 그러나 이론상으로는 가능한 전법이었으나 초절정고수 넷이 동귀어진의 기세로 달려드는 상태에서 기만전술을 행할줄은 몰랐기에 태월하는 소름이 돋았다.
왜냐하면 방금 행동은 북천멸겁 스스로도 죽음의 위기를 감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천지마투의 절대방어를 버리고 재반격을 택하다니!
‘ 이 자는… 도대체 자신감이 어디까지란 말인가…?’
만일에 구객의 역량이 북천의 예상을 상회했다면, 반격은 커녕 뜻밖의 공격 때문에 중상을 입는 건 북천이었을 것이다. 말 그대로 도박이나 다름없는 상황인데 그 상황에서 기만전술을 사용하는 담력은 예상을 할 수가 없었다.
북천멸겁이 조소를 머금으며 한 발짝을 앞으로 내딛었다. 태월하와 묵호자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 자, 이제 두 명이다. 본좌를 어찌 막을 셈이지?”
” 이 목숨으로 막겠소.”
끝까지 압력에 굴하지 않고 투지를 불태우는 태월하를 보자, 북천멸겁은 눈에 이채를 띄었다. 구객은 벌레취급할만한 무인들이 아니었고 북천은 그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 정도의 절대적인 전력차를 보고도 마음이 꺾이지 않는다는 건 – 뭔가가 이상했다.
북천멸겁이 흥미가 생겼는지 입을 열었다.
” 네가 유천영의 스승이냐?”
” 아니오. 그에게 세 개의 비전초식을 전해 주었으나 – 나머지는 모두 그 혼자 깨달았소.”
” 흐음…”
북천멸겁은 잠시동안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절레 저었다.
” 죽었다니 아쉽군. 그를 한 번 만나보고 싶구나.”
북천의 입에서 진정한 아쉬움이 흘러나왔다 – 그것만으로도 태월하는 왠지 위안이 되는 걸 느꼈다. 천지를 통틀어 두려울 것 없는 마왕이, 유천영을 인정한 것이다. 태월하는 답답해지는 마음을 애써 다잡으며 검을 중단세로 들었다.
” 끝까지 체력을 남기고 싶겠지만 그렇게는 되지 않을 것이오.”
” 종남파의 검술 따위로 말이냐?”
” 물론 안될 말이지만.”
스스스
” ……!!”
다음 순간, 태월하가 허리춤에 매여있던 한 자루의 도를 마저 들어서 자세를 잡자 일검일도(一劍一刀)의 형세가 되었다. 그 자세를 본 순간 북천멸겁의 얼굴이 처음으로 딱딱하게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
너무나 익숙한 자세.
언젠가 꺾어야 할 숙적이라 생각했던 자의 기본자세 –
태월하는 태(態)를 잡는 것만으로도 기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음양(陰陽)의 균형을 겨우 육합귀진신공의 힘으로 붙잡고 있었으나, 역시 이 절학은 구현하는것만으로도 힘에 부치는 것이다. 태월하는 곧 자신이 쇠약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지켜보던 묵호자에게 전음을 보냈다.
[ 어떻게든… 멸절을 끌어내겠소. 당신이 본 것을 부디… 술법으로 무신마님께…]주륵
묵호자는 눈물을 흘렸다. 구궁진법으로 보조했어도 결국 이렇게 몰살당하고 말았으나, 태월하를 비롯해서 모든 달인들이 목숨을 거는 걸 옆에서 지켜보자 울컥하는 감정이 흘러나온 것이다. 묵호자도 진정으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기로 작정하며 힘차게 전시술(傳示術)을 사용했다.
[ 죽어도 끝까지 지켜보겠소. 태월하.] [ 고맙소…]술자가 본 장면 모두를 정신연결된 타인에게 보여주는 술법!
무신마는 현재 구객과 북천멸겁이 싸우는 걸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전달받고 있었다.
피가 끓어오른다.
기력의 부족으로, 태월하의 입에 피가 고이고 눈에서 혈루(血淚)가 흘러내리기 시작하자, 생명의 그릇이 점차 꺼져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가만히 놔둬도 죽을 것이다 –
그러나 북천멸겁은 태월하의 도발을 그냥 참아 넘길 수가 없었다. 이것이 구객이 목숨을 걸고 하는 도전이었고, 북천멸겁은 회피할 생각이 없었다. 그의 자존심과 연관된 문제였다.
그는 분노한 기색으로 오른손을 뻗었다.
” 무신(武神)의 건곤태극음양일원신기(乾坤太極陰陽一元神氣). 육합귀진신공으로 칠 성(七成)까지 끌어올렸는가.”
북천멸겁 최초의 분노가 터져나왔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 앞에서 무신 혁월린의 무공을 들고 나왔단 사실에 짜증이 북받친 것이다.
” 하잘것 없는 발악이다!!”
다음 순간 – 북천멸겁의 멸절(滅絶)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