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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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겁혈신(天劫血神)
북천멸겁과 무신마 사이에 수많은 두뇌싸움과 추리가 오갔다.
연화는 북천에게 왜 그런 제안을 한 것인가?
그녀가 원하는 것은 절대자의 공멸(公滅)인가?
그녀는 강호의 패권(覇權)을 원하는가?
온갖 종류의 추측과 억측, 그리고 신빙성 있는 추리가 두뇌회전 속에서 감돌았다. 그러나 그 중에서 어느것도 그들에게 확신(確信)을 건네줄 수 없었다. 심지어 9할의 확률로 그들을 싸움붙였다고 하는 객관적 진실 앞에서도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연화라고 하는 절대고수(絶對高手)가 얼마나 규격 외의 무공을 지니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화의 힘이면 구구절절 그들을 싸움붙이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혼자 힘으로 강호무림을 200년은 지배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될 정도로 연화의 강함은 압도적이었다.
침묵하던 중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북천멸겁이었다.
” 나쁘지 않아. 네놈과는 언제고 결판을 내기로 했고, 그녀는 등을 떠밀어줬을 뿐이다.”
” 그런가? 생각이 같군.”
스으으으
무신마의 흑도(黑刀)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밀려나왔다. 어차피 이 자리의 싸움을 피할 수 없음을 알고 있으므로 두 명의 절대고수는 결코 투기(鬪氣)를 해제하지 않았다. 흑도의 극(極)에서 흘러나온 회색빛이 도신(刀身)에 흐르는 광경이 소름돋는 공격력을 상징했다.
” 그러나 양패구상만큼은 싫다는 데 동의하는가?”
무신마의 말에 북천멸겁은 망설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까지 서로 죽일듯이 싸우고 있던 둘이었으나, 그들은 무인임과 동시에 강호의 대세력을 이끄는 최고권력자이기도 했다. 당연히 냉정하고 객관적인 안목으로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냉철한 군주였다.
연화가 무슨 꿍꿍이든간에 남 좋은 일만 시켜주는 건 원하는 바가 아니다. 어쩌면 연화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북천멸겁의 그런 생각을 부추겼다.
콰르릉!
뇌전같은 도광(刀光)이 일어나더니 주변에 몰려들던 바위 덩어리를 파쇄시켜 버렸다. 수만 개의 빛이 육 장 크기 바위를 조약돌 더미로 만드는 광경은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바위산의 붕괴가 거의 끝나간다.
서서히 흙먼지가 걷히고 광암이 교차하는 하늘을 쳐다보던 무신마가 말했다.
” 이 자리에서 누가 살아나가든 연화와 결판을 지어야 한다.”
” 어쩌자는 거냐?”
이어지는 무신마의 제안은 너무 충격적이라서 천하의 북천멸겁도 흠칫하고 당황했다.
” 지금 천외일도(天外一刀)와 멸절(滅絶)의 비결(秘決)을 교환한다.”
” ……!!”
북천멸겁의 붕대가 팽팽하게 솟아오르며 긴장할 정도였다.
비결의 교환!
결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강호에서는 의형제처럼 친한 사이끼리도 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죽기살기로 싸우는 적 세력의 대장과 비결교환을 하자니? 보통 사람이라면 무신마 갈중혁이 죽기 전에 미쳤다고 생각했으리라.
그러나 북천멸겁은 이 제안이 진실된 것이라고 깨달았다.
연화는 그 정도로 강하다.
원래라면 무신마와 북천멸겁이 힘을 합쳐서 싸워야 하는 상대이다.
이 자리에서 어느 한 쪽이 소득없이 죽는다면, 남은 한 명은 연화의 손에 처절하게 개구리처럼 밟힐 것이다. 그럴 바에야 한 쪽이 발전할 수 있도록 각자에게 비결을 전수하자는 게 무신마의 뜻이었다.
북천멸겁이 어둠 속에서 코웃음 쳤다.
” 웃기는군! 너도 나도 서로의 후계자에게 최종비결을 전했을 텐데?”
” 그들이 비결을 완성시키는 데는 최소 3년이 걸린다. 효룡이나 남천에게 한 달 내로 경지를 상승시킬 정도의 천재성이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냉혹한 평가였다.
하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효룡이든 남천이든 천재의 반열에 들어있는 자들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3년 내에 절대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의념을 쓴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 크크… 너와 나는 할 수 있다는 소리인가.”
” 당연하지.”
무신마의 눈이 번득였다.
” 그것이 절대경지에 오른 자의 권능이니까.”
” ……”
북천멸겁은 말없이 그 사실을 마음속으로 인정했다.
그렇다.
절대경지에 오른 무인이 한없이 공포스러운 존재인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그 자리에 멈춰있지 않고, 기회만 있으면 끝도 없이 발전해 나가는 천재들! 또한 다른 절대경지의 요결을 쉽사리 흡수할 수 있는 포용력 또한 가공할만 했다. 연화가 북천멸겁에게 백식관음의 요결을 전수하겠다는 데에도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본디 순수한 노력의 결정체로 완성되는 것이 백식관음이라는 경지이지만 – 그것을 재능으로 때우고 변이시켜서 자기만의 것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재능이 북천멸겁에게 있었다. 천겁혈신조차도 그 재능을 탐내서 수제자로 삼은 인물은 결코 범상치 않은 존재인 것이다.
잠시 후 북천멸겁이 말했다.
” 삼 초(三招).”
” 좋다.”
무신마의 응답이 이어진 직후, 두 무인은 격돌했다.
콰과광!
엄청난 힘과 속도의 방출!
벽력탄같은 굉음이 올렸지만 방금 전까지 죽일듯이 겨루던 것과는 약간 성질이 달랐다. 북천멸겁의 수법은 실전용이라기 보다는 마치 무공의 견본을 보여주듯 정확하고 확실한 묘의(妙意)를 드러내는데 치중해 있었고, 무신마의 도로(刀路)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생살을 내보이는 듯한 극한의 시연!
그들 수준의 고수만이 할 수 있는 실전 속의 요결교환이었다.
여기에는 속임수고 기만이고 있을 수 없었고, 순전히 자신의 무인의 혼(魂)을 내어놓는 기백이 필요했다. 진실된 의념이 교차하는 사이에 위증따윈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한 쪽이 의심한다면 즉시 양패구상의 각도가 나오는 위험한 시연이기도 했다.
‘ 알겠군.’
‘ 이런 느낌인가.’
두 절대고수의 뇌리에 영감이 스쳐지나갔다.
파밧
그리고 요결의 전환이 끝난 후 북천멸겁은 싫은 표정을 지었다. 보기 드물게 그가 감정을 표출하는 일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무신마는 만일에 천겁령과 북천멸겁이 이길 경우, 어떤 탄압과 학살이 자행될지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자 연화에게 무림이 농락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도박을 하듯이 요결을 교환하는 걸 먼저 제안한 것이다.
평소 자신이야말로 무림의 제일고수 이자 패왕이라고 자처하던 북천멸겁에게는 이같은 무신마의 태도가 짜증스럽게 느껴졌다. 그것은 그의 심중에 포용력과 그릇으로 무신마에게 뒤쳐졌다는 열등감이 스쳐지나갔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북천멸겁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 … 네놈의 후계자 한 명은 적어도 3년간 가만 놔 두겠다.”
” 후후. 그릇을 비교하자는 건가?”
” 닥쳐라.”
북천멸겁은 무신마의 비웃음에 살의어린 웃음을 지었다.
” 내가 이길 게 뻔하지 않은가!”
쿠구구구구구
북천멸겁은 더 이상 망설일 게 없다고 생각하자 이제 남김없이 힘을 쓰려 했다. 북천멸겁의 남은 내공이 폭발하듯 치솟아 오르고, 한 순간 하늘이 뻥 뚫리는 듯 했다. 가공할 내공력 때문에 부스러진 바위더미가 중력을 역전해서 용오름을 타기 시작했고, 북천은 마치 기로 이루어진 흑암의 덩어리처럼 보였다.
무신마는 이제서야 북천멸겁이 5푼의 힘도 남기지 않고 젖먹던 힘까지 다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지금까지도 진심으로 전력을 다하긴 했지만, 북천멸겁의 냉정한 성격상 그는 언제나 5푼의 힘을 감춰두고 있었다. 이제는 그런 대비조차도 하지 않고 무신마 갈중혁을 죽이려고 나선다는 뜻이었다.
우드득 우드득
단지 의념과 기파의 소용돌이에 한 차례 휩쓸린 것 뿐이었는데도 무신마의 팔다리 근육이 움츠러들었다. 만일 젊어진 육체가 아니었다면, 구십구합리귀의 마지막 리를 깨닫지 못했다면 지금의 방출만으로 뒤로 물러났을 것이다. 온갖 조건을 붙여서야 북천멸겁과 대등한 선에 서 있다고 생각하자 무신마는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 나도 잘 모르겠군.’
별로 좋지 않은 상황이다. 그건 틀림없다. 요결의 상호전수까지 해버린 이상, 이 싸움은 결코 져서도 안되고 도망쳐서도 안 되는 싸움이다. 무신마의 평생을 건 일생일대의 도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전투였다.
그런데도 – 무신마가 지닌 흑사자의 심장은 마치 상체를 터뜨릴 것처럼 격렬하게 두근거리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도(刀)를 잡았을 때의 신선한 긴장감이 전신에 예리한 칼날처럼 배여들었다.
굉천혈류도법
천외일도
구십구합리귀
흑십자(黑十字)
십자 형의 무형의 쌍인(雙刃)이 승부수를 띄우듯이 북천멸겁에게 날아들었다. 극순의 시간속에서도 북천멸겁은 흑십자의 무시무시한 속도를 태연하게 최대신법으로 피했고, 반 보(半步)를 돌아서 손을 휘둘렀다.
휘리리리릭
극한의 찰나가 쪼개지는 듯한 순간에 무신마의 눈에는 북천멸겁의 손가락 끝에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진동(振動)하는 몇 줄기의 영사(靈絲)가 비쳐보였다. 지금까지는 절대고수의 직감에 의존해서 극한의 공격을 쳐내기만 했기에 직접 목격하는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아마 백식관음의 리(理)를 오랫동안 체현하면서 찰나의 세계에 보다 오랫동안 몸을 담그게 된 덕분이리라.
그리고 동시에 무신마 갈중혁은 북천멸겁에게서 터져나오는 무시무시한 속도의 근원이, 왠지 비류연의 무공과 닮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말로는 잘 설명할 수 없지만 생이별한 친척을 보는 듯, 같으면서도 달랐다.
단 하나 공통점이 있다면 진짜 환장하게 빠르다는 것 뿐이었다. 북천이든 비류연이든 강호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극쾌(極快)와는 차원이 다른 영역을 다루고 있었다. 갈중혁 자신도 쾌도에는 일가견이 있는데도 그들의 영역은 질투마저 날 정도였다.
파앙!
구중겁도(九重劫刀)의 힘으로 자연스럽게 북천멸겁의 한 수를 반격한 갈중혁은 그대로 쐐기를 박듯 전진했다. 단순한 팔방풍우(八方風雨)처럼 보이는 휘두르기였으나 사실은 굉천혈영도법의 변화 중 어떤 것이든 변화할 수 있는 심오한 묘수였다.
순간 북천멸겁의 눈이 큰 갈등을 하듯 떨린 것은 착각일까? 워낙 찰나간의 일이라 무신마는 보지 못했으나, 갈중혁의 삼 도(三刀)를 영사로 걷어낸 북천멸겁의 몸이 허공에서 두 바퀴를 돌았다.
처음 보는 움직임.
그렇지만 위협적일 정도는 아니다.
아직까지 우세는 갈중혁에게 있다 –
‘ 끝내자, 북천!’
그렇게 확신한 갈중혁은 그대로 일도결(一刀決) 파흔(破痕)을 써서 도세(刀勢)를 벌집처럼 확장시키며 마지막 일격을 박으려 했다. 무시무시한 속도에 기반한 북천멸겁의 필살수도 모조리 되튕기는 상황이라서 갈중혁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그 일례로 북천의 팔목은 온통 긁힌 자국으로 가득했고 압박 때문에 근육통이 지속적으로 누적되는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아까부터 종이 한 장이 계속 쌓인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꽤앵 거리는 기묘한 소리와 함께 허공이 말려들어갔다. 갈중혁의 도극에 집중된 의념의 기운이 일정 수위를 넘어서자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기의 극한이 강기라고 한다면 의념의 극한은 뜻 그자체를 뭉치는 무형(無形)처럼 변해버리는 것이었다. 마치 그림책에서 그림이 튀어나오는 듯한 그 느낌은 차원이 다른 무력이 엄습해 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내려친다.
마치 산악(山岳)이 통째로 내려앉는 듯한 그 거대한 흑도(黑刀)의 위상은 북천멸겁이 평생 마주했던 절학 중에서도 손꼽힐만한 것이었다. 팽가의 비전도법이라는 혼돈패왕도(混沌覇王刀)도 이렇게 패도적일 수 없고, 산서의 명가인 산서쾌도문도 이 빠름을 흉내낼 수 없었다. 무신마 갈중혁이라 불리는 흑도 최대의 거인이 전신전령을 다해서 펼쳐내는 마지막 공격이었다.
쫘아아악
공기가 먼저 갈라졌다. 허공에 체공중인 상태로 북천멸겁의 눈은 멍하니 심연을 떠돌았다. 그는 갑자기 한 손을 움직여서 가슴을 활짝 열었고, 그것은 틀림없이 자살행위처럼 보였다. 무신마는 이걸로 다 끝났다고 확신하고 광대뼈가 올라갈 정도였다.
그래. 웃었을 것이다.
심적권청의 찰나에 북천멸겁에게서 들려온 심어(心語)가 아니었다면.
” 버리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면, 그리 해 주지.”
푸콱
‘ 피하지 않는다…?’
핏줄기가 분수처럼 치솟아 올랐다. 북천멸겁의 오른팔이 통째로 베여서 떨어져 나가고, 참상(斬傷)이 배를 두어 번 가른 후, 심장 바로 앞의 갈비뼈를 다섯 번 베었다. 누가 보아도 치명상이나 다름없는 부상이었다. 가뜩이나 원래부터 무리하고 있었던 북천멸겁이었는데 이 지경이 되면 신의가 와도 살릴 수 없다고 보는 편이 좋았다.
북천멸겁이 회생불능의 상처를 입은 그 순간, 무신마 갈중혁은 죽음의 예감을 느꼈다.
‘ 뭐지?’
이상한 감각이었다.
머리로는 자신의 승리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데 어쩐지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단순히 시간이 천천히 느려진 탓이라고 생각한 갈중혁이 흑도를 거두고 뒤로 물러서려 했으나 발도 움직이지 않았다.
손도 발도 모공도 혈액도 혈류도 근맥도 모조리 멈춰버렸다.
그랬기에 무신마 갈중혁은 조금도 움직이지 못한 채 뻣뻣이 굳어서 중상을 입은 북천멸겁을 내려다 볼 수 밖에 없었다. 믿기지 않는 눈으로 부릅뜬 채 눈썹을 치켜뜬 무신마를 보던 북천멸겁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 쿨룩… 쿨룩… 크크..”
” 이건…”
” 스승님… 죄송합니다.”
무신마는 흠칫 굳었다.
눈 앞의 북천멸겁은 울고 있었다!
그것도 거짓 눈물이 아니라 진정으로 한스럽고 자기자신에게 혐오를 느끼는 눈물이었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운다는 말인가?
” 신을… 진정으로… 신을 죽이기 위한 혈신(血神)의 비원(秘願)…”
북천멸겁은 한스러운 듯한 기색이었다.
백 년 전 – 스승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어진 한 마디.
” 리(裏) 뇌신살(雷神殺)… 설마 이런 곳에서 쓰게 될 줄은…”
촤악!
그것이 끝이었다.
수백 개의 참격(斬擊).
어디서 온지도 모르는 무형무기무의(無形無機無意)의 공격이 가해졌다.
한 때 무신마라고 불렸던 자의 몸뚱이가 조각나서 떨어지는 광경이 현실같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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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검로 재연재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쓸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