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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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겁혈신(天劫血神)
북천멸겁은 자신의 흉부를 찢어놓은 무신마의 필살의 일격의 무게를 느끼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기억이 빠르게 과거를 향하는 것을 느꼈다.
살을 주고 뼈를 깎았을까, 아니면 줘 버린 게 뼈였을까.
어느 쪽이든 일생일대의 도박인 건 마찬가지였기에 주마등을 보는 건 필연일지도 모른다.
약 백 이십년 전의 일이었다.
리(裏)에 속한 요결과 기예를 모두 체득한 수제자, 북천멸겁이 들은 말은 그렇게 어이없는 혹평(酷評)에 불과했다. 물론 막 이십대 초반의 애송이였다 하더라도, 북천멸겁은 이미 세간에서 초절정이라고 불리는 경계를 뛰어넘은 상태였다. 객관적으로 무림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알고 있는 북천멸겁은 – 고작해야 자신의 경지가 호신용 무공을 달성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북천멸겁은 잠잠하게 가라앉은 채 스승의 말을 들었다.
아직까지 천하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그는 자신의 스승이야말로 무림에 악몽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혈신(血神)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설원(雪園)을 내려다보며 술 한 잔을 즐기고 있던 천겁혈신은 말을 이었다.
북천멸겁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 저도 놀아보려 합니다.] [ 왜?] [ 제 몸 하나 지킬 수준은 된다고 방금 사부께서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 애새끼가 말 하나는 잘 하는군.]왠지 투덜거리는 천겁혈신이었지만 싫지 않은 기색인 듯 했다. 애초에 호신용 무공을 달성했다고 말한데도 그런 말 뜻이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스승은 다시금 명주(名酒)를 벌컥대며 마시다가 말을 이었다.
[ 너는 이제부터 북천(北天)이다.] [ 무슨 뜻입니까?]반문.
북천멸겁의 이런 기억을 알게 된다면 세상 사람들은 깜짝 놀랄 것이다.
설마 향후 백여 년 동안 강호에서 공포의 존재로 자리잡는 북천멸겁이, 자신의 칭호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있었다니! 하지만 당시의 북천은 그냥 혈신의 절기를 열심히 배우는데만 몰두해서 다른 일에는 집중하지 않고 있었다.
퍼버버벅
퍼버벅
약간의 구타가 이어졌다.
[ 이 새끼가 기본 다 뗐다고 개기기는…]피를 흘린 채 널부러져 있는 북천멸겁을 보며 씩씩대던 혈신이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 너를 필두로 3명 정도 더 모아서 사천멸겁(四天滅劫)이라고 이름지을 것이야. 그래야 꼴같잖은 사천성(四天星) 놈들이 열받아서 부들부들대는 꼴을 볼 수 있을테지.]쓰러져 있던 북천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 사천성? 그들은 누구입니까.]이어진 혈신의 대답은 퉁명스러웠지만 진실되어서, 북천이 이 날의 대화를 백수십 년동안 잊어먹지 않는 계기가 되었다.
[ 세계(世界)를 제패한 후 비뢰(飛雷)를 떠받치는 네 개의 기둥!]세계.
거대한 단어.
북천멸겁이 그 규모에 놀라워하고 있을 때 혈신의 말이 이어졌다.
천겁혈신(天劫血神)의 강호 출도 –
수백 년 무림사에 다시 없을 그 대사건이 일어난 진짜 이유를 들어버린 북천멸겁이었다.
씨익 웃고 있던 천겹혈신이 말을 이었다.
스승은 퉁명스럽게 말하더니 이후 두 시진동안 북천멸겁에게 비결을 전수했다.
비결의 전수는 상상 이상으로 복잡하고 괴로웠고, 천하에 다시 없는 무골인 북천멸겁조차도 기혈이 뒤틀리고 박살나는 고통에 신음소리를 낼 정도였다. 모든 전승이 끝났을 때는 눈과 전신모공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혈인(血人)의 형상이 되었다.
천겁혈신의 마지막 말이 북천멸겁의 귀에 백여 년 동안 떠돌았다.
[ 리(裏) 뇌신살(雷神殺). 네가 비뢰문주(飛雷門主)나 사천성(四天星)을 마주쳤을 때 마지막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구명절초(求命絶招)다.]” ……”
쿨럭!
북천멸겁은 재차 피를 토해냈다.
‘ 이대로는 죽는다.’
역시 너무나 상태가 위중하다. 그가 강호출도 이래로 이런 무식한 치명상을 입은 일은 유검 때 이래로 달리 없었다. 아니 – 유검 때는 왜인지 그가 마지막 공격을 가하지 않았기에 그나마 상태가 나았지만, 지금은 필살의 기세로 공격해 온 무신마의 최종절초를 맞아버렸다.
이미 북천멸겁은 자력(自力)으로는 무슨 수를 써도 살아날 수 없다는 걸 절감하고 있었다. 자신과 방금 전까지 건곤일척을 두고 겨루던 무신마가 눈 앞에 조각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할 겨를도 없었다. 이 자리에서 살아나가지 못한다면 결론은 양패구상일 뿐이기 때문이었다.
길어봐야 한 식경 버티면 잘 하는 것일까?
문제는 북천멸겁은 현재 혼자의 힘으로는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류무사가 와서 칼만 내리쳐도 죽을지도 몰랐다. 딱히 회심의 한 수를 준비해놓은 것도 아닌지라 북천멸겁은 한시바삐 동천멸겁이나 남천멸겁이 와 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꿀럭 꿀럭
피가 너무 많이 흘렀다. 기(氣)를 움직여서 응급처치로 지혈해 두었지만 그래도 피가 분수처럼 흐른다. 이 상황에서 살아나기를 바라는 게 과한 분수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베여나간 오른팔은 생각도 나지 않는다. 도리어 무신마를 쓰러뜨렸다면 그 정도는 약과였다. 이제 이 자리에서 살아나갈 수만 있다면, 천하는 바로 그의 것이었다. 몇 번의 고난만 거쳐나간다면 –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다.
천하…
북천멸겁이 조용히 그 단어를 되뇌이고 있을 때였다.
” 또 만나는구만, 마천각주(魔天閣主).”
낯익은 목소리.
북천멸겁은 자신의 삼 장 밖에 나타난 괴인(怪人)을 흐릿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제 산의 붕괴는 멈춰 있었고 돌안개와 흙먼지만 흐르고 있었다. 희뿌연 사방 속에서도 상대의 형체는 명확하게 눈에 들어왔다.
은발(銀髮)의 괴인.
영문모르게 젊은 외모.
그리고 세상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듯한 생사안(生死眼).
이런 곳에서 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눈 앞에 서 있었다. 북천멸겁의 일 장 거리까지 온 무명(無名)은 쭈그려앉았다.
” 당신 북천멸겁이었어?”
” 쿨럭… 쿨럭… 후우… 흐흐…”
북천멸겁은 뭔가 말하고 싶었으나 여유롭게 말할 수가 없었다. 그는 연신 피를 토하며 기침을 해 대었다. 그의 평생에 이토록 비참한 꼴로 남 앞에 있어본 적은 달리 없었지만, 그는 수치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그의 앞에 있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무명이었기 때문이다.
북천멸겁이 말했다.
” 살려주십시오…”
존대.
북천을 아는 자들이라면 그의 말투에 먼저 크게 놀랄 것이다.
아무리 생명이 위급한 지경이라지만,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던 마도 최강의 패왕이 목숨을 구걸하다니! 그러나 잘 들어보면 그의 억양이 목숨을 구걸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상급자(上級者)에게 요청(要請)을 하는 말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비굴함보다는 간절함이 강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그 차이를 순간적으로 느낀 무명이었지만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 이 놈 왜 이러지?’
그와 마천각주의 관계는 철저한 계약 관계였다.
기억을 잃고 멍청하게 세상을 떠도는 무명을 데려와서 마천각 십삼번대 대주라는 직위를 주고, 그의 모든 과거를 세탁시켰다. 세탁시킨 것인지 원래부터 없었던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 이후 백여년 가까운 세월동안 마천각주는 그에게 있을 자리를 제공해 주었고 무명도 하릴없이 지내 왔다. 두 사람은 십여 년에 한번씩 만나서 술을 한 잔씩 마셨는데 그저 예의상 마시는 수준이었다.
즉, 거의 남남이나 다름없는 타인인 것이다.
그렇기에 무명은 북천멸겁이자 마천각주인 눈 앞의 인물이 숨기고 있는 비밀에 호기심이 강하게 일어났다. 그 동안은 귀찮아서 캐묻지 않았지만, 그가 자신의 진정한 정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은 틀림없는 것이다.
살려야 한다.
스으
무명의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무명의 손 끝에 황금(黃金)의 빛이 감돌았는데, 기공(氣功)의 완성된 모습인 것처럼 무시무시한 잠재력과 밀도를 지니고 있었다. 소림사의 성승(聖僧)이라고 할지라도 저런 기류를 낼 수가 없을 정도였다.
‘ 어? 이게 뭐였지? 이 상황에 제일 적절한 기술인 건 맞는 것 같은데…’
정작 기술을 펼쳐내는 무명 본인이 당황하고 있었다.
분명 이 기술을 쓰면 북천을 살릴 수 있다.
그런데 이 기술이 뭔지 모르겠다.
세상에 이런 모순이 어디 있는가!
파파파파팟
당혹스러워하면서도 무명의 손은 순식간에 허공을 점하더니 무시무시한 속도로 북천멸겁의 전신을 폐혈(廢穴)했다. 전신의 모공과 정공이 닫히고 기력이 빠르게 쇠했다. 보통 인간의 전신혈도를 폐혈해 버리면 생명을 이루는 기의 근간이 닫혀서 누구든지 죽게 되는 게 보통이었다.
꽈릉!
그러나 다음 순간, 무명의 손은 황금광을 뿜어내더니 영광(靈光)과 함께 북천의 명치를 강하게 쳤다. 그러자 마치 체했던 어린아이가 구토를 하듯, 전신의 혈도에서 생명력이 강하게 흘러나왔다.
무명의 머릿속에 이 기술의 원리가 빠르게 기억을 되찾았다.
‘ 인간의 몸은 지속적으로 기를 뿜어내고 흡수한다. 생사가 위중한 부상을 입었을 때는 전신이 쓸데없이 낭비하는 기운을 완전히 닫아버린 후, 일백구십칠 개의 요혈을 짚어서 정확한 순서로 파동(派動)을 몸에 새긴다.
극한의 반발력을 이용해서 모든 사기(死氣)를 제압하는 이 기술이야말로 영광경반충(靈光鏡反衝)의 응용이다.’
영광파동권(靈光派動拳)
치유의 경
영광경반충뢰경(靈光鏡反衝雷經)
쿠궁!
생명의 파동이 강하게 북천멸겁의 전신을 뒤흔들었다.
세상에 잊혀진 전설적인 권법, 영광파동권(靈光派動拳)에서도 최종오의급 기술이 소용돌이처럼 북천의 심장에서부터 휘돌면서 생명력을 강하게 뿌렸다. 점착되듯 뿜어져나가는 기운은 이내 완전하게 부숴진 뼈를 모조리 이어붙였고, 강기에 잘려나간 혈맥과 근맥을 다시 이었으며, 심지어는 허옇게 떠 있던 피부에 분홍빛 혈색이 되돌아 왔다.
천 년을 이어온 영단이나 영약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을 기술 한 번으로 해내 버린 것이다. 이 세상 그 어떤 신의(神醫)가 와도 이룰 수 없을 정도의 일인지라 북천멸겁은 자신의 귀신같은 악운(惡運)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 강호의 운명은 내가 무극(武極)에 도달하는 걸 원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하필 이 순간에 ‘이 사람’이 자신의 눈 앞에 때맞춰서 나타날 리가 없다.
” 쿨럭… 쿨럭…”
약간 피기침을 토하며 자신의 몸을 진정시키는 북천멸겁이었다. 놀랍게도 그의 몸은 씻은듯이 치유되어 있었으며 오른팔이 잘려나간 것 외에는 별다른 부상도 없었고, 내공의 진력(盡力)도 1할 정도는 회복되어 있었다.
무명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 자, 이제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 당신과 내가 무슨 관계인지 말해 보시오, 마천각주.”
스윽
북천멸겁은 대답을 하는 대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서 무명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읍소(泣訴)했다.
이것은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 감사합니다. 스승님.”
진심어린 눈물.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승이 그의 목숨을 구해줌과 동시에, 리 뇌신살을 받았을 때 비뢰문주와 사천성 외에는 사용하지 않겠다던 그 자신의 맹세를 깨뜨린 죄책감에서 나오는 눈물이었다.
” 어?!”
무명은 당황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 내가 왜 당신 스승이야? 미쳤소?”
” ……”
북천멸겁은 생각했다.
여태껏 그 사실을 숨겨왔던 이유 – 그것은 다름아니라 자신의 스승이 기억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자신의 기억을 무의식적으로 찾기 싫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무던히도 자신의 과거를 찾아다니는 것 같지만, 심층의식에서는 아직도 황금안(黃金眼)의 악몽(惡夢)에 시달리고 있다. 적어도 본인의 의지로 다시 맞서싸우기를 택하기 전까지는 결코 강요할수도 억지를 쓸 수도 없는 문제였다. 그리고 그것은 북천멸겁이 백여 년 동안 신중하게 강호를 관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가장 큰 장애물이었던 무신과 무신마는 죽었고, 이제 선운산의 기재들만 몰살시키면 남은 건 강호제패 뿐이다. 그 때야말로 처음 천겁혈신이 강호에 출도하던 당시에 생각하고 있었던 사천성(四天星)과 비뢰문주(飛雷門主)를 끌어내는 비원(秘願)이 이루어질 것이리라.
” 제 이름을 걸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당신께선 이름없는 자가 아닙니다(無名).
당신께선 마천각 십삼번대 대주 따위가 아닙니다. ”
북천멸겁은 천천히 걸어가서 자신의 떨어진 오른팔을 주웠다.
그리고는 무명의 정체를 담담하게 말했다.
” 당신은 천겁혈신(天劫血神) 위천무(爲天武)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