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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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겁가(永劫歌)
폐하께서는 황태자 전하의 실종을 어찌 생각하시나이까.
그 질문은 황실에서 그와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 동창제독과 금의위영반이 거의 동시에 한 말이었다. 딱히 짜고한 게 아니었음에도 황제의 알현자리에서 그런 말이 나온 이유는, 현 시점에서 황궁 2대세력에게 가장 궁금한 사항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는 대답했다.
” 경들이 알고 싶은 것은 짐의 의지인가?”
” 그렇사옵니다.”
” ……”
당대의 천하(天下)를 지배하는 자.
황제는 의자에 턱을 괸 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결코 무능한 황제가 아니었으며 폭군도 아니었다. 도리어 금의위와 동창에 확실한 명령권을 지니고 있으며 관작을 지닌 모든 자들에게 통제권을 확보하고 있다. 역대황제 중에서도 우수한 편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능력있는 황제라는 것은 달리말하자면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었다.
‘ 내가 무림(武林)에 대해서 조치를 취하기를 바라는군.’
그리고 우수하기에 황제는 동창제독과 금의위영반의 의도를 단숨에 읽어냈다. 그들 또한 무공을 익힌 자들이지만 그에 앞서서 본질적으로는 황궁과 권력을 맹종(猛從)하는 사냥개들이다. 황태자의 느닷없는 실종이라는 이변을 맞이해서 무림에 큰 타격을 주고싶은 게 분명했다. 그래야 무림을 자기 뜻대로 길들이면서 자기 세력을 확장할 수 있을 테니까.
황제가 말했다.
” 하은천이 태자를 내게 돌려보내겠다고 약속했다.”
” 그가 아무리 동방무림의 지존이라고 하지만 어찌 오랑캐의 말을 그리도 신용하시옵니까? 생사불명의 상태가 몇 달이나 지속되었사옵니다. 이미 무림 측에서 불문율(不問律)을 깨었다고 보실 수 있사옵니다.”
” 흐음…”
황제는 애시당초 명룡군 월승혼을 하은천에게 맡기는데 일말의 의심이나 후회따위는 없었다. 그가 판단하기에 하은천은 비록 동이족 출신이지만 일세의 영웅이었으며 천하에서 둘도 없는 뛰어난 스승이었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다면 지나치게 호승심과 똘끼가 강렬한 자신의 아들쪽일 뿐이므로, 하은천이 인성교육을 시켜주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무림에서 거대한 혈사(血事)가 터지고 천겁령이란 세력이 부활하면서 덩달아서 월승혼의 사망소식이 들려왔다. 정확히는 화산규약지회에서 자신의 아들이 깽판을 치다가 죽었다고 하는 기가막힌 소식이었다.
황제는 그 소식에 그리 놀라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짚이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약속.
‘ 하은천. 나는 아직 그 약속을 믿고 있다.’
그가 하은천과 맺었던 밀약(密約)이 존재한다. 그는 다시금 밀약을 회상하며, 그때까지도 무림에 손을 대는 걸 꺼려했다. 금기나 불문율을 깨는 건 쉬우나 거대한 혼란의 시발점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는 그 하은천마저도 행방불명 – 혹은 사망했다는 소식이 나돌고 있는 상황. 황궁 2대친위세력의 수장들이 황제에게 행동을 종용하는 건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의 지존(至尊)은 오직 하나, 황제(皇帝) 뿐!
무림의 양대무신이고 천겁령이고 팔왕이고 알 바가 아니었다. 그들이 감히 황족을 시해하고 기휘를 범했다면 그게 누구든지간에 죽음밖에 남지 않는다. 아무리 무림의 세력이 강대하더라도 백만 대군을 동원하면 기필코 주멸(註滅) 시킬 수 있으리라.
한참을 고민하던 황제가 말했다.
” 찬황흑풍대(讚皇黑風隊)가 이미 움직였다. 경들은 이번 일의 결과를 지켜본 후 다시 의견을 정리해서 짐에게 찾아오라.”
” ……!!”
” 찬황흑풍대…!!”
동창제독과 금의위영반이 거의 동시에 놀랐다.
찬황흑풍대!
처음 들어보는 무력단체다.
‘ 도대체…’
‘ 폐하께선 우리조차 믿지 못하시는 것인가?’
동창과 금의위라는 비밀조직을 꾸리고 있는 황제가 그것도 모자라서 또 다른 비밀조직을 만들었다는 말인가?! 그것도 몰래 운용시킬 정도라면 설립한지 꽤 되었다는 소리였다. 심지어 정보기관 수장인 그들조차도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현재의 황제를 그들이 거스를 수 없는 이유였다. 행동이 굼뜨고 느려보이지만 실상은 산전수전 다 겪은 것처럼 노회하고 영리한 황제였다. 뿐만 아니라 한 번 의지를 정하면 기필코 이뤄내고 마는 의지력 또한 그들에게 있어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패군(覇君)은 아니지만 성군(聖君)도 아닌 그런 인물이었다.
잠시 후 그들이 돌아가자 황제는 의자에 앉은 채로 생각을 거듭했다.
‘ 사천에서 무신마라는 자가 질풍편을 터뜨렸다고 들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찬황흑풍대를 출동시켰고 그들에게 상황을 보고하라고 명령했다….’
찬황흑풍대는 동창과 금의위가 너무 행동이 느리다고 생각해서 새로 설립한 단체였다. 만든지는 약 5년이 넘었으며 그동안 아무 활동도 하지 않은 채 암중에서 무력만을 양성해 온 단체였다. 오로지 황제만의 명령을 듣는, 동창이나 금의위보다 더욱 무림인에 가까운 특수한 단체인 것이다.
황제는 이제 마음을 먹기로 했다.
‘ 이번 찬황흑풍대의 보고에 따라서 앞으로 방향을 정해야 겠군. 만일 황태자와 하은천이 죽은 게 확실하고 이제 천겁령이 큰 피해를 입었다면…’
황제가 파악하고 있는 무림의 동향은 굉장히 섬세하고 자세했다.
심지어 무신마가 질풍편을 터뜨린지 두 시진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미 황궁에서 보고를 다 받았고 찬황흑풍대까지 출동시킨 것이다. 가히 신속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이어진 황제의 눈빛에는 강한 살기가 깃들어 있었다.
‘ 신주팔황 백오십만 대군을 동원해서 무림을 말살시키리라.’
천겁령이 큰 피해를 입은 게 확실하다면 이독제독(以毒制毒)도 거의 끝나간다.
이제 무림인들과 팔왕의 대결이 한바탕 벌어지고 나면 약해진 무림을 모조리 소탕할 생각이었다. 황태자의 목숨값으로는 그걸로도 부족했다.
질풍편이 터진지 약 한 시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인적이 없는 사천의 이름없는 숲. 권왕 아운은 나무등걸에 앉아서 은행열매를 까먹고 있다가 말했다.
” 모용휘. 슬~슬 시작할 때도 됐지?”
가만히 서서 명상하고 있던 모용휘가 눈을 떴다.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
” 뭘 말이오?”
” 이제 천라지망(天羅之網)이 다 펼쳐진 것 같은데 힘 좀 써봐라.”
” ……”
스으
모용휘의 시선이 저 멀리에 있는 대나무숲을 향했다. 확실히 머나먼 곳에서부터 살기가 느껴지고 있었고 백오십 장 이내에 인기척이 무수히 많은 듯 했다. 아마 천라지망을 펼치고 있는 사천의 무림인들이리라.
모용휘가 말했다.
” 원한다면 천라지망이 펼쳐지기도 전에 벗어날 수 있었을텐데 일부러 걸어다닌 이유가 무엇이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팔왕 혈관음이 했다.
” 네 손에 피를 묻혀야 우리 동료로 인정할 수 있다.”
” 그건…”
혈관음이 뭐라 반문하려고 하는 모용휘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 죽이기 싫으면 마음대로 해라. 그건 네 실력껏 하면 되는 것이다.”
권왕 아운이 어깨를 으쓱했다.
” 난 뭐 상관없었는데 이 아줌마가 하도 박박 우기잖아. 그냥 심심한 김에 해 보지 그러냐.”
전왕 단사유는 흥미가 없는지 팔짱을 낀 채 앉아서 쉬고 있을 뿐이었다.
아마 이 미친 기획은 팔왕 혈관음이 모용휘에게 배알꼴려서 꺼내놓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 ……”
아운은 간단한 듯이 말했지만 간단한 게 아니었다.
천라지망의 무서운 점은 당장 주변을 둘러싼 무림인들이 강대한 고수라서가 아니었다. 시작은 쭉정이나 약한 무림인들이 섞여 있지만, 그들이 몇 죽는다고 하더라도 포위망은 끊기지 않는다. 천라지망을 구성하는 인물단위는 최소 수십명 이상이었으며 아마 이번 천라지망에 동원된 인원수는 족히 천여 명 단위라고 볼 수 있었다. 즉 어떻게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눈을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게다가 장소와 시간을 크게 낭비하면서 그들을 일일이 쳐죽이는 동안 기력과 체력은 소진되고, 잠잘 틈이나 밥먹을 틈도 없이 계속 싸우거나 기습에 대비해야 한다. 다수가 한 명을 철저하게 말려죽이는 게 가능한 것이다.
‘ 나중에는 사천의 최강급 고수들이 합공을 해 올 것이다. 쉽지 않겠군.’
모용휘는 물론 그들 중에 자신을 일대일로 이길만한 고수가 전무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용휘의 턱끝까지 온 고수들은 충분히 많았고, 모용휘의 생각대로 불살(不殺)을 고수하며 그들을 잡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용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자 아운이 말했다.
”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게 수련이 될거같은데 힘내 봐라.”
” 알겠소.”
파앗!
모용휘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쏜살같이 사라졌다. 천라지망을 뚫기 위해 행동을 개시한 것이다. 그 뒷모습을 볼멘 눈으로 바라보던 혈관음이 말했다.
” 저 놈이 도망치지 않을까?”
” 그럴 놈이 아니지. 우리보다 놈이 더 절실한 거 같으니.”
침묵하고 있던 전왕 단사유가 말했다.
그는 희미한 눈을 떴다.
” 진입자(進入者)가 움직이면 모용휘가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 태왕도 그걸 감안하고 우릴 보낸 거겠지. 느긋하게 지켜 보자.”
혈관음이 새삼스러운 듯 둘을 쳐다보았다.
진입자!
그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역시 눈 앞의 삼태상(三太上)은 모두 다른 세계 출신의 진입자라는 뜻이었다. 동방십이율의 군주가 될 수 있었음에도 그냥 은거하는데 만족한 것은 애초부터 이 세계에 크게 관여하기 싫어서일 확률이 컸다.
혈관음은 호기심이 들었다.
‘ 이 자들이 팔왕에 가입한 것은 철갑검마의 유언 때문이라고 했지. 대체 그 유언이 무엇이길래?’
삼태상이 불쑥 찾아온 것은 정확하게 유검에 의해 팔왕세력이 반쯤 와해된 후였다. 아미산의 일전만으로 팔왕 중 절반이 쓸려나간 셈이라서 혈관음은 미칠것만 같았다. 그런데 마침 그 때 동방무림의 전설적인 삼태상 세 명이 찾아와서 태왕을 알현했다.
삼태상과 태왕은 약 한 식경동안 대화를 했던 것으로 보였다. 혈관음은 밖에 있었기에 그들이 어떤 대화를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대화가 끝나자마자 삼태상은 팔왕에 신규가입한 것이다.
나중에야 혈관음은 태왕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봤지만, 태왕은 그저 철갑검마의 유언이라고 한 마디를 할 뿐이었다.
동방무림의 정점이자 불세출의 영웅, 철갑검마!
그는 어떤 유언을 했던 것일까?
그리고 삼태상이 딱 시점을 맞춰서 팔왕에 가입하게 된 게, 그 유언과 어떤 상관이 있단 말인가?
퍼버버벅
발달된 청각으로 백여장 밖에서 권장(拳掌)이 난무하는 소리를 듣던 전왕 단사유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 불살(不殺)이라. 되지도 않는 실력으로 흉내를 내는군.”
권왕 아운이 유쾌하게 웃었다.
” 하하하, 좋지 않냐. 저 수준일 때는 다들 그런 생각을 하기 마련이지. 난 모용휘가 꽤 마음에 든다.”
” 아운. 어떻게 할 거냐?”
” 뭐… 합비(合肥)에 미리 가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진입자가 끼어들 것 같군. 적당히 지켜보다가 격외(格外)급이 나오면 놀아보자고.”
” 좋다.”
스르르륵
잠시 후 그 자리에서 팔왕 셋의 모습이 사라졌다. 극한의 경공과 은잠술으로 녹아들듯이 사라지는 모습은 인간경지의 무공으로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