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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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겁가(永劫歌)
모용휘가 움직이고 약 한 식경이 지났을 때, 그는 자신이 총 백 오십 육 명의 무림인(武林人)을 권장법만으로 제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검(劍)을 일일이 사용할 필요도 없이 제압가능할 정도였다.
그리고 다섯 번째 포위망에 도달한 상태.
터엉!
모용세가 비전의 수공(手功)인 절영수(絶影手)에 당한 사십대 장한의 몸이 이 장을 튕겨서 허공을 날았다. 그는 뒤로 튕겨서 날아가다가 몸을 접어서 자세를 바로잡아서 착지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고양이처럼 기민했다. 입가에서 피를 주륵 흘리던 장한은 자신의 머리를 휘휘 저으며 말했다.
” 크윽… 네놈 괴물이냐?!”
” 미안하지만 그대는 내 상대가 아니오. 살인을 하고싶지 않으니 물러 서시오.”
” 크크크! 나 환룡권 쇄후가…”
그는 환룡권 쇄후라는 사천무림의 절정고수(絶頂高手)였다. 당연히 사천무림 전체에 명성을 떨치는 인물이었고 중원 전체로 봐도 이따금 소문이 들릴 정도의 인물이었다. 만일 그가 정사지간의 인물이 아니었다면 천무학관의 노사로 불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쇄후는 현재 기가 막혔다. 십성(十成)의 경지에 오른 그의 환룡마조권(幻龍魔釣拳)으로 전력을 다해서 덤볐는데, 고작해야 모용휘의 가벼운 일 초(一招)만에 나가떨어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내공으로 밀어붙여서 기(氣)에서 딸린 것도 아니다. 숨길 수 없는, 고수이기 때문에 더욱 적나라하게 알 수밖에 없는 실력차를 느껴버린 것이다. 쇄후가 상대방에게서 이런 느낌을 받은 경우는 사천무림에 몇 없는 진정한 초절정고수들을 면전에 두었을 때 뿐이었다.
‘ 하지만 그들조차도 나를 일 수에 격퇴하기는 힘들건만… 이 놈은 대체?!’
환룡권 쇄후의 주변에는 여러 명의 고수들이 의식을 잃고 기절해 있었다. 급작스럽게 덮쳐온 모용휘가 순식간에 십여 명의 고수를 점혈(點穴)했고 나아가서 일류고수 십수 명을 가볍게 제압한 것이다. 이 포위진의 우두머리 격인 절정고수 쇄후가 덤볐으나 일 수에 격퇴당한 상황이었다.
모용휘가 그를 차분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 실력차는 알지 않소? 당신이 이 일에 목숨을 걸 이유는 없을 텐데.”
그 목소리는 심령(心靈)을 떨리게 하는 압력이 깃들어 있었다. 쇄후는 저도 모르게 심신이 제압당하며 꽁꽁 묶이는 느낌이 들고, 입술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모용휘의 심검(心劍)에 제압당한 것이다. 환룡권 쇄후가 떨리는 눈으로 모용휘를 바라보았다.
” 그… 그렇다. 허나 네가 정말 이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으냐?”
” ……”
” 아미파와 당문을 비롯해서 사천의 유력문파가 모두 움직였다. 네가 설령 천무삼성(天武三星)이라 해도 벗어날 수 없다.”
” 할 말은 그것 뿐이오?”
조용히 손을 드는 모용휘를 보자마자 환룡권 쇄후는 그의 의도를 짐작했다. 죽일 생각은 없을테니 그의 아혈과 수혈을 동시에 점할 생각이리라. 그리고 쇄후는 알고 있어도 절대로 모용휘의 수를 피하지 못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는 대신에 기묘한 미소를 지었다.
” 흐흐… 무르군. 불살(不殺)이라.”
” 쓸데없는 은원을 맺기 싫소.”
쇄후는 이죽거렸다. 그것은 단지 모용휘의 순진함을 비웃는 것 뿐만 아니라, 그의 미래를 예상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 무공은 고강하기 그지없으나 무림을 모르는군…? 어디까지 갈지 기대하지.”
풀썩
다음 순간 환룡권 쇄후는 딱딱하게 변해서 기절했다. 전신이 마비되고 정신까지 기절상태가 되었으니 앞으로 세 시진은 움직일 수 없으리라. 모용휘는 그를 제압한 후 한숨을 내쉬었다.
‘ 후우, 갈수록 강한 자들이 나오는군.’
제 일진 포위망을 구성한 자들은 고수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일개 세가의 척후대 수준의 무림인들이었다. 제 이진과 삼진을 구성한 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기껏해야 강호에 떠도는 용병들이었다. 그러나 사진과 오진부터는 왠만한 세가의 전력에 맞먹는 강호인들이 우글거리며 몰려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천라지망의 근본원리였다. 시작은 약한 자들을 배치해서 진을 뺀 다음, 진의 외곽으로 갈수록 강자들이 차륜전을 벌이고 유리한 지형으로 대상을 끌어들였다. 넓은 범위에서 시행될수록 포위망에 갇힌 자의 체력심력 소모는 극한에 달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의 모용휘는 사천땅에서 열 손가락에 드는 고수들이 덤벼들어도 쉽게 상대가능했다. 그러나 이렇게 천라지망에 갇힌 상태가 며칠이고 지속된다면 나중에는 목숨이 위험해질 게 분명하다. 모용휘에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으므로 그는 잠시 바위에 앉아서 쉬고싶어졌다.
스으 –
” ……!!”
모용휘의 직감이 그를 살렸다. 그는 급히 뛰어서 피했고, 그 자리에 있던 바위는 검푸른 빛이 번뜩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가 딛고 있는 대지도 점차 회색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모용휘는 천무학관에서 배웠던 지식으로 이게 무슨 현상인지 알고 있었다.
” 독(毒)…!!”
휘잉!
그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기지력(御氣之力)으로 널부러져 있던 사람들을 끌어모아서 높은 구릉으로 던졌다. 그 중에는 물론 환룡권 쇄후도 있었다. 수십 명의 인간이 한꺼번에 중독사(中毒死)하는 상황을 막은 모용휘는 바람의 방향을 확인하자 소름이 끼쳤다.
‘ 협곡 입구인데도 용독(用毒)을?! 아군이 당하는 것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보통 일이 아니었다. 현재 모용휘가 기(氣)로 의복을 보호하고 있어서 망정이지, 지금 그의 발밑에 거무죽죽하게 흐르고 있는 독의 기운은 엄청나게 치명적이었다. 내성이 없는 자가 이런 독에 당하면 틀림없이 죽을텐데도 망설임없이 대지와 대기에 독을 흩뿌린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대규모의 독술을 시전할 수 있는 문파는 단 하나 뿐이었다.
사천당문(四川唐門)!
아군일 때는 몰라도 적이 되면 그 누구보다도 두려운 자들! 모용휘는 사천당문에서 주로 사용하는 독 중에서 이 독이 가장 자주 쓰이는 자주지독(雌蛛之毒)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자주지독은 사천당문의 십대절독(十代絶毒)중에서 최하위의 독이었으나 위력이 극악하기로 유명했다.
파스스스….
땅이 질퍽하게 녹는 게 육안으로 보였다. 대기 중에 음산한 냄새가 감돌더니 곧이어 나무의 껍질이 엿처럼 녹기 시작했다. 강렬한 산성을 지닌 자주의 독이 바람을 타고 이 일대의 모든 생명체를 죽이려 드는 것이다.
모용휘는 아까부터 숨을 참은 채 내공을 운용하고 있었다.
‘ 가만히 당할 수야 없지.’
모용휘는 피독주나 피독용 방어구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무신의 절기를 끌어올리며 독에 대항했고, 바람의 방향을 읽으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신발이 녹지 않게 보호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모용휘의 호신강기는 완성단계라고 볼 수 있었다.
휘잉 –
‘ 받아랏!’
바람을 타고 마치 풍신(風神)처럼 빠르게 육지비행술(陸地飛行術)을 쓰던 모용휘는 곧이어 인기척을 알아차렸고 그쪽으로 호랑이처럼 덮쳐들어갔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있었던 인간이야말로 독술을 시전한 자일 게 뻔하기 때문이다.
” 으윽…”
” 흠!”
그러나 모용휘는 자신이 한 방 먹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거기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것은 손발과 입이 묶인 채로 버둥거리고 있는 이름없는 농민들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절망과 공포가 깃들어있는 것으로 보아 강제로 무림인들에게 붙잡힌 듯 했다. 모용휘가 급히 농민들의 속박을 풀어주자 농민이 말했다.
” 으으… 대협! 살려주십시오!!”
” 진정하십시오, 흉수는 어디…”
” 놈들이, 놈들이 여기에 혈화산이란 걸 뿌린다고…”
” ……!!”
혈화산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모용휘는 협곡의 위쪽 언덕을 올려다 보았다. 그 곳에서 빠꼼 얼굴을 내밀고 있던 몇 명의 당가 문인들이 수투를 장비한 채 항아리를 던지는 중이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모용휘는 바로 직후에 일어날 일을 직감했다.
혈화산은 자주지독보다 더욱 지독한 십대절독으로써 한번 스치기만 해도 인간의 살갗을 녹이고 뼈를 드러나게 한다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시체처리용으로 쓰일 정도로 강력한 독이 항아리째로 퍼부어진다면 이 일대는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는 지옥이 될 것이리라.
물론 모용휘는 이 찰나에 날아가서 항아리를 걷어내고 당문 무인들의 목을 쳐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십 장 밖에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암기(暗器)가 쇄도해 왔기 때문이다.
초절정고수의 암격(暗擊)이다.
쉬칵!
단 한 자루의 표창이지만 그저 그런 속도가 아니다.
여태껏 태어나서 모용휘가 보아온 그 어떤 암기고수보다 뛰어났다.
가히 일수찰(一手札)을 방불케 할 정도의 무시무시한 속도가 모용휘의 선택을 제한시켰다.
그가 항아리를 걷어내고 공격을 막아내는 것까지는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이내 모용휘에게도 먹힐 정도의 암기수법을 지닌 고수가 연속으로 빈틈을 공격해올 것이다. 만에 하나 치명상을 입는다면 이 자리에 모용휘의 무덤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항아리를 걷어내지 않는다면 모용휘는 둘째치고 이 이름없는 농민들이 혈화산에 당해서 수십초만에 핏물이 되고 말 것이리라. 모용휘는 이중삼중으로 치밀하게 안배된 함정이 처음부터 자신을 천무삼성급으로 가정하고 짰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모용휘는 이를 악물고 항아리를 걷어내기 위해 움직였다. 시간을 아껴야 했기에 암기표창을 완벽하게 피해내지는 못했고 어깨를 스치는 것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항아리가 그대로 튕겨오르는 순간 당가 문인들은 무려 칠십 장 밖의 검기점혈(劍氣點穴)을 당해버렸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 뭐, 뭐라고!!’
‘ 거리가 칠십 장인데… 검기점혈?!’
그들은 앞서 포위진을 구성하고 있던 환룡권 쇄후와 대등한 수준의 당가 고수들이었다. 암왕(暗王)의 명령만을 듣는 단독부대의 구성원인 그들은 당가 장로와 이대일로 싸워도 대등한 절정고수인 것이다. 그런 그들이 이 까마득하게 먼 거리에서 검기점혈에 손쓸 틈도 없이 당한다는 건 소설(小設)에서나 일어날 일이었다.
당가문인들이 제압당해 쓰러진 순간이었다. 방금 전에 모용휘에게 회피불가능한 암격을 먹인 의문의 암기고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차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이번 공격은 모용휘만을 노린 게 아니라 농민들까지 함께 노리고 있었다.
퓨퓨퓻!
따당!
모용휘는 허공에서 몸을 반전시켜서 천상제를 몇 번이고 구사하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암기를 걷어내었다. 농민들에게 가해진 위협까지 남김없이 걷어낸 모용휘는 잠시 이마에서 땀이 흥건하게 흐르는 것을 느끼고 흠칫했다.
‘ 땀이? 설마 벌써 기력이 줄어들었단 말인가?’
아직 포위망의 절반도 뚫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땀을 이렇게 많이 흘린다는 건 모용휘의 기력이 적어도 일 할은 소진되었다는 사실을 뜻했다. 잠시 모용휘가 침음성을 흘리고 있을 때 어둠 속에서 육합전성이 들려왔다.
[ 과연 칠절신검 모용휘로군! 할아버지를 뛰어넘었다는 소문이 거짓이 아니구나.]중후한 음성.
모용휘가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였으나 그 자에게서는 초절정고수의 품격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 정도의 암기고수는 사천당문을 통틀어도 얼마 없었기에 모용휘는 그의 정체를 손쉽게 좁혀갈 수 있었다. 모용휘가 어둠을 노려보며 말했다.
” 당신은 혹시 당문의 팔비신살(八譬神煞) 당기령이오? 설마 그럴 리가 없겠지. 천하의 팔비신살이 무공도 모르는 자들을 공격할 리가 없겠지!!”
모용휘의 말에는 사뭇 감정이 맺혀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방금 전 당가문인들은 일반 농민들을 미끼로 모용휘의 행동을 제약하고 피해를 입힌 것이다. 모용휘는 자신이 당한 피해는 둘째치고 무림과 관련없는 자들까지 끌어들인다는 사실이 분노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자 어둠 속의 암기고수가 서서히 걸어나왔다. 그는 청수한 이목을 지닌 청의(靑衣)의 노인이었는데 닭 한마디로 잡지 못할것처럼 약해 보였다. 그러나 청의 노인은 끌끌 웃으며 모용휘의 말을 긍정했다.
” 네 말대로 본노(本老)가 팔비신살 당기령이다.”
팔비신살 당기령!
그는 현 당가주의 사촌형이었으며 동시에 대외적으로 알려진 당문제일고수였다. 그의 암기술은 이미 삼십대 시절에 천하일절으로 공인받은데다가 천하오십대고수(天下五十代高手)이기도 했다. 염도나 빙검과 동급으로 취급받는 초절정고수가 현재 모용휘의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모용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아직 천라지망이 펼쳐진지 두 시진도 되지 않았는데 이런 거물이 나타날줄은 몰랐던 것이다.
당기령이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 너는 내 생각보다 훨씬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구나. 암왕의 말씀대로 너를 천무삼성급으로 간주하고 상대하도록 하겠다.”
” 이 농민들은 보내 주시오. 무림과 관계없는 자들을 해치려 들다니 부끄럽지도 않소?”
팔비신살 당기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 아… 그래? 물론 보내 주지.”
그 순간이었다.
퍼퍼퍼펑!!!
농민들의 몸뚱이가 비명지를 새도 없이 폭발했고 그 육편(肉片)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혈액과 살점이 요란하게 흩날리는 속도는 왠만한 암기를 능가했고,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한 지근거리에서의 폭발에 모용휘는 목숨을 걸고 막아내야 했다.
검막(劍幕)으로는 부족했다. 호신강기를 끌어올린 모용휘는 연이어 무신의 기운을 끌어올리며 공기 전체를 불태웠다. 희뿌연 살점이 날아다니다가 모용휘의 머리칼을 스쳤는데 그것만으로도 머리카락이 황산에 닿은 것처럼 매캐하게 타들어갔다.
” 저승으로 말이다.”
당가 무인들은 처음부터 그들의 몸에 시혈폭의 술법을 펼쳐두었다.
마도에서도 악독하기 그지없다는 유마폭에 비견될 정도로 잔인한 수법으로, 시혈폭이 펼쳐진 자들의 육체를 폭발시켜서 상대방을 없애는 맹독을 비산시킬 수 있었다.
” 으아아아아…!!”
모용휘는 비명을 지르듯 순식간에 팔비신살 당기령에게 덤벼들었다. 당기령이 아무리 천하오십대고수라고 하지만 정면에서 일대일로 붙으면 이십 초만에 패배시킬 자신이 있는 모용휘였다. 당기령은 모용휘의 가공할만한 검기를 정면에서 받자 움찔하고 두 걸음을 물러서다가 손을 확하고 펼쳤다.
투쾅!
” 크흑!!”
모용휘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야말로 절대고수의 일 초처럼 무지막지하게 빠른 암기가 날아와서 그의 어깨죽지를 관통했기 때문이다. 당기령이 뒤로 주춤하고 물러서면서 이마의 땀을 닦았다.
” 놈… 십대금용암기 서열 2위 귀동환(鬼動丸)을 맞고도 죽지 않아? 정말 지 할애비처럼 괴물이구나…!!”
그랬다.
방금 전 당기령이 발출한 것은 – 한 번 쓰이고 나면 무려 백여 년동안 제련해야한다는 전설의 십대금용암기인 귀동환이었다. 당가에만 은밀하게 제조법이 전해내려오는 이 귀동환은 마환포와 대등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사용되고 나면 반드시 상대방의 죽음을 불러왔다. 귀동환으로 죽일 수 없었던 것은 역사상 천겁혈신 위천무 뿐이었다. 심지어 마교교주조차도 귀동환에 미간이 꿰뚫려 죽었던 역사가 있는 것이다.
마환포와 달리 귀동환은 단순무식하게 엄청나게 빠를 뿐인 암기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고수를 죽이기에는 충분했다. 사실 마환포도 쳐낸 모용휘에게 있어서 귀동환 정도는 집중하고 있으면 쳐낼 수 있는 암기였으나 – 농민들의 죽음 때문에 마음이 흐트러지면서 빈틈을 보이고 만 것이었다.
슈슈슈슛
그리고 주변에 녹의를 입고 수투를 장비한 괴인들이 쉴새없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절정고수 수준을 넘어선 자들이었다. 모용휘가 어깨를 지혈하며 주변을 노려보자, 당기령이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 이들은 당가가 자랑하는 화혈단(華血團)이다. 그 부상을 입고 우리의 만천화우(滿天火雨)를 견딜 수 있을지 보자꾸나.”
” ……”
모용휘는 침묵했다.
그는 지금 당장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화혈단의 십 구 명이나 되는 절정고수들이 연계해서 지옥의 만천화우를 펼쳐낸다는 생각도 까맣게 잊고 생각에 몰두했다. 당기령이 필생의 힘을 다해서 암기를 떨친다는 걱정도 잊은 상태였다.
과연 불살(不殺)을 지킬 수 있을까?
지켜야만 하는가?
인간쓰레기들을 상대로?
그리고 다음 순간 화혈단과 당기령이 동귀어진을 각오하고 펼쳐낸 만천화우가 모용휘를 덮쳐들었다.
” 좀 어떠냐 모용휘.”
약 한 식경이 지난 후.
모용휘에게 말을 건 인물은 권왕 아운이었다. 그는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더니 상황에 대해 평가를 내렸다.
여기는 지옥(地獄)이다.
만천화우 수십 번이 펼쳐진 흔적은, 아운또한 익히 겪어왔던 수라장이기에 이상하지 않다. 인간을 통째로 폭발시키는 잔인함도 강호행에서 겪은 적이 있는 아운이다. 그러나 모용휘가 친히 찢어발긴 인간들은 그런 수라도에서도 이해 불가할 정도로 잔인한 몰골이 되어 있었다.
점굉(點轟).
무수한 실같은 점이 화혈단 무인들의 전신을 수천 번이나 관통하고 있었다. 그들의 명줄은 예전에 끊어져 있었고 외견상으로는 점 이외에 큰 부상이 보이지 않았다. 점이 깨알같이 박혀있을 뿐 깨끗한 시신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그러나 아운은 이 시체를 천하에서 가장 잔인하게 살해당했다고 단정지었다.
‘ 내부가 너무 심하게 파괴되어서 곤죽이 되었군. 세포까지 갉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참격(斬擊)인가.’
미세한 점이 한 번 뚫린 순간에 이미 화혈단은 뇌까지 묽은 죽처럼 변해버렸을 것이다. 내부에서부터 파괴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검술이었다. 강호에서 오래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권왕 아운이었지만 이런 검술을 목격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가관인 것은 팔비신살 당기령의 시신이었다. 그는 마치 땅과 일체가 되어버린 것처럼 혈수(血手)처럼 땅에 녹아들어 있었다. 실제로는 점굉이 수천 수만 번이나 이어지면서 대지와 접착한 것처럼 몸뚱이의 가죽이 벗겨진 것이었다. 아마 그는 죽을 때까지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공포 속에서 죽었으리라.
이 참극을 일으킨 당사자인 모용휘는 침묵하며 그 자리에 꿇어앉아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용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권왕 아운이 말했다.
” 어깨는 괜찮나? 귀동환에 맞은 것 같은데.”
” … 괜찮소.”
슈르륵
놀라운 일이었다. 모용휘의 말이 끝나자마자 엄지손가락만한 구멍이 뚫려있던 어깨의 부상이 완치된 것이다. 인간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재생력이었지만 실상은 무신의 절학이 음(陰)과 양(陽)을 동시에 다루면서 인체의 회복력을 초인 수준으로 끌어올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권왕 아운이 약간 측은한 눈으로 모용휘를 바라보았다.
” 이제부터라도 도와줄까? 미친 아줌마의 잡소리를 끝까지 따라갈 필요는 없다.”
” ……”
모용휘는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섰다.
흙투성이가 된 그의 얼굴에는 한 줄기 눈물자국이 흘러 있었고 입술은 어찌나 깨물었는지 피가 줄줄 새고 있었다. 단지 각오를 새긴 듯한 눈동자만이, 아직 무인(武人) 모용휘가 죽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었다.
모용휘가 말했다.
” 괜찮소.”
그는 도리어 혈관음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아무리 암왕의 부하라지만 – 천하오십대고수이자 무림원로인 당기령이 이토록 잔인하고 마도스러운 수법을 쓸 줄은 몰랐다. 암왕의 명령일 수도 있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만난 모든 자들은 그를 사로잡기는 커녕 죽이려 들고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던 정파의 모든 껍질이 서서히 내면에서부터 벗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은 괜찮다. 아직은 – 괜찮다.
그러나 조금 더 살펴보아야 한다.
힘에는 선악(善惡)이 없다는 유천영의 말을 이해할 때까지.
” 나는 이 수련(修練)을 계속 할 것이오.”
권왕 아운은 그 대답을 듣고 혀를 끌끌 찼다.
” 무리하지 마라.”
아마 팔비신살 당기령과 혈화단이 공격해 올 때까지만 해도 모용휘는 자신의 전력을 사용하지 않았던 게 틀림없다. 그것은 그가 살의(殺意)를 진심으로 품은 적이 없었기에 힘의 예봉(銳峰)이 뭉툭했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는 실력의 삼 할도 쓰지 않은 채 여기까지 왔으리라.
그러나 이제 마음을 독하게 먹기 시작하면 무신의 계승자로써 완성형에 도달해 가는 그 진력(眞力)이 사용법을 익히게 되어서 더욱 날카롭게 될 것이리라. 그 때의 모용휘는 지금과는 다른 인물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 재밌겠어.’
권왕 아운도, 전왕 단사유도 한 차례 거쳐왔던 수라의 길!
그 길을 거치고 난 모용휘의 모습이 기대되는 아운이었다.